[eBook] 축복
켄트 하루프 지음, 한기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종종 라떼를 텀블러에 담아 사 마셨던 집 앞의 자그마한 커피숍 여주인은 이사 나가던 날 진심으로 서운해 했다. 아직 아기 티가 나는 둘째 아이를 이제 더 이상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빌어. 많은 얘기를 나눈 사이는 아니었지만 어느 날 울고 나와 늦게 커피 주문을 받는 그녀에게 하지 않은 질문은 우리 사이를 조금 좁힌 것도 같다고 생각했다. 아지트처럼 가곤 했던 도서관의 따뜻한 사서 선생님은 갑작스런 퇴직 앞에서 손수 믹스 커피를 나에게 타주며 섣불리 작별 인사를 하지 않았다. 일상이었던 나날들과 작별하며 그렇게 나이가 든다. 정말 대단치도 아무렇지도 않았던 시간들이 뒤돌아 보면 거기 그렇게 다른 평행 우주의 차원에서 과거의 나를 품고 무한 반복될 것만 같다.



아까 상점 앞에서 내가 울었던 것 말이오. 나로 하여금 울음을 터뜨리게 한 그 일 말이오. 거기서 내가 보고 있던 것은 바로 내 인생이었소. 어느 여름날 아침 앞쪽 카운터에서, 나와 다른 누군가 사이에 오간 사소한 거래 말이오. 몇 마디 말을 주고받는 것. 그냥 그뿐이었소. 그런데 그게 전혀 쓸모없는 일이 아니었던 거요.

-켄트 하루프 <축복> 중에서



이야기는 작가 켄트 하루프가 설정한 가상의 아름다운 마을 홀트에서 암으로 죽어가는 한 노인을 중심으로 그의 곁을 지키는 늙은 아내와 나이 든 딸, 이웃 조손 가정, 마을에서 입지를 잃어가며 가족에게도 소외되는 목사의 나날들이 교차하고 만나며 풀려 나간다. 대드의 시선은 자신의 과거의 삶을 반추하는 것과 이웃들의 보여지는 현재를 끊임없이 오고가며 마을의 서서를 완성한다. 이루지 못한 사랑들, 가족 간에 풀리지 못한 숱한 오해와 실망은 그 자체로 온전히 켜켜이 쌓여 각자의 삶의 한 장을 이룬다. 작가는 섣불리 끼어들지도 상황을 재단하지도 않는다. 대신 읽는 이들은 이 마을의 지극히 평범하게 넘어지고 절망하고 또 다시 묵묵히 나날의 숙제를 해 나가는 그들을 통해 우리를 보고 우리의 과거를 되짚고 미래를 상상하게 되며 켄트 하루프가 하고 싶어했던 얘기에 저도 모르게 젖어들게 된다. 산다는 일의 그 지리멸렬한 일상이 가지는 지엄한 무게가 이렇게 아름답게 형상화될 수 있다는 사실에 뭉클했다.




8월 어느 날 밤의 일이었다. 대드 루이스는 그날 새벽 세상을 떠났고 이웃집 어린 소녀 앨리스는 저녁에 길을 잃었다가 어둠 속에서 마을의 가로등 불빛을 보고 집을 찾았다. 그렇게 그 아이는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로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가을이 되면서 날씨는 차가워지고 나뭇잎이 졌으며, 겨울이 되자 산맥에서 바람이 불어왔고 홀트 카운티의 고원지대에는 밤새 폭풍이 불고 사흘 내리 눈보라가 쳤다.

-켄트 하루프 <축복> 중에서




대드 루이스의 마지막은 <스토너>의 그것을 연상시킨다. 조용하고 평화롭고 슬픈 죽은 자의 시선과 그의 곁을 지키는 산 자들의 시점은 섬세하게 얽혀 장엄한 끝의 시간을 완성한다. 사는 일을 쓰는 것과 그것의 마침표를 언급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통과하는 일인데도 언제나 놀랍고 항상 슬프다. 이야기는 그것을 뛰어넘어 보려 하지만 그 주위를 맴돌며 한계를 인정할 때 가장 빛난다.


오늘도 사라지는 시간들. 여전히 주워담고 싶은 말들. 되돌리고 싶은 실수들. 그게 사실은 축복일 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신의 아주 먼 섬
정미경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쓰는 일도 사는 일도 고단하고 허덕일 무렵 이 이야기가 왔다. 정미경은 이 작품을 미완의 유작으로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차마 그녀가 온몸을 삭아내리며 써내려 간 이 이야기를 쉽게 읽을 수 없었다. 쓰는 일을 때로 부수적인 것으로도 가능하다고 여겼던 나의 오만이 수만 가지 결 속에 웅크린 그 결코 스러지지 않을 엄중한 실재 앞에서 무너졌다. 그녀 앞에서 이야기는 장치에 불과할 수 있다는 깨달음은 곁가지였다. 그 이야기를 지탱하고 그 이야기를 엮어나가는 것은 그녀의 명징한 처절한 언어였고 그것은 쉽게 치기로 호기로 쓰여지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녀를 삭아내리게 하고 태워버리는 것이었다.


흘러가는 건 시간일까. 아니면 살아 있는 것들이 그물처럼 얽혀 있는 시간의 눈금 위를 걸어가는 건가.

-p.7


시작의 문장에서 나는 흠씬 두들겨 맞는 기분이었다. 결국 이미 짜여진 시간의 날줄과 씨줄 위를 걷는 것이 삶이라면 그것은 얼마나 처연하고 허무한 것인가 하고. 이 문장은 낯설지 않았다. 그렇다면 수긍하는 지점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당신의 아주 먼 섬>은 그렇게 쉽거나 단순하지 않다. 그저 운명에 몸을 내맡기고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그러한 사람들의 절대 숙명의 엘레지가 아니다.


거의 매일 이곳으로 오지만 풍경은 매번 달라진다. 문득 뒤를 돌아보면 내가 걸어오지 않았던 또다른 풍경이 보인다. 애잔하게 나부끼는 삘기, 하늘, 바다, 섬과 섬, 섬 뒤의 섬. 정모에게 이것들은 풍경도 색채도 아닌 시간이다. 언젠가 이 시간은 멈출 것이다. 그때도 바람은 남아 있을 것이다.

-p.58


돌아보면 항상 그렇다. 결국 시간. 모든 사람, 공간, 사물은 결국 그 시간의 풍화로 해체된다. 시간의 결은 예리하고 엄혹하다. 그것이 남길 것에 항상 회의했다. 바람이 남아 있을 것이라는 작가의 말이 마치 예언 같다. 무겁지도 대단치도 않은 바람이 남아 그 존재가 살아냈던 시간을 증언해 줄 것이라는 예언은 저릿하게 아름답다. 


섬으로 돌아온 정모가 꿈꾸었던 세상에서 하나뿐인 소금도서관은 과연 시간의 풍화에 견뎌낼 수 있을까. 삶이 그러했듯 확실한 것은 없다. 전적으로 옳은 것도 언제나 빛나는 것도 없는 게 삶이지만 그래도 돌아보면 그게 생이었을 것이다.


"속 끓일 것 없다. 지나고 보니 아픈 것도 낙이고 힘든 것도 낙이야."

-p.176


팔십 년을 넘게 산 할미가 이십 년을 채 살지 않은 소녀에게 하는 이야기는 사십 년을 산 나에게 들어와 박힌다. 이제야 이 할미의 이야기를 가슴으로 이해하기 시작한 나이에 상실이 없는 삶이란 꿈꾸어서도 안 된다는 뒤늦은 체감의 지점에서 나는 오늘도 딛고 선 땅이 흔들리는 것을 느낀다. 이것은 위로가 되는 이야기다. 앞으로도 경험해야 할 수많은 상실과 고통의 진동이 파르르 전해져 온다. 견딜 수 있을거야. 그래야 비로소 늙어 죽을 수 있는 것이다. 늙어 죽는 자는 전사다. 


작가의 남편이 말미에 붙인 발문이 비로소 미완의 작품의 마침표를 찍는다. 갑작스럽게 사랑하는 아내이자 작가를 잃은 그가 다시 덧붙인 정현종의 <견딜 수 없네>는 그의 아픈 상실을 대변한다. 차마 표현할 수 없었던 수많은 답답한 감정이 시인의 언어를 만나 마침내 흘러나온다. 


<중략>

흘러가는 것들을

견딜 수 없네.

사람의 일들

변화와 아픔들을

견딜 수 없네.

<중략>

-정현종 <견딜 수 없네> 중



나도 사실은 견딜 수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청명한 하늘, 이국의 언어. 분명 아름답고 찬란한 구석이 있지만 늙어버린 나는 뭔가 내내 불편하여 서성이게 된다. 그건 내가 들어갈 수 없는 '풍경'의 환시 같은 거다. 나는 구경꾼, 손님, 방랑자, 깍두기다. 나의 눈빛은 내내 불안정하고 숨결은 거칠다.

나는 아무래도 여기에서는 행복할 수가 없다.


내가 나온 곳으로부터 내가 결국 가 닿아야 하는 곳으로 오랜만에 이 책이 왔다. 모국어란 때로 참 엄정하다. 내가 무시하는 것들, 내가 지나친 것들을 적확하게 지적한다. 떨칠 수 없는 모정과도 닮았다. 늙은 엄마는 장성한 자식을 다르게 대하지 않는다. 학교 가방을 처음 메고 나간 아이처럼 하지 않아도 되는, 해도 별 수 없는 말들을 주워섬긴다. 아이는 다 흘려듣는 듯하지만 그 말들은 차곡차곡 쌓여 아이에게 무게를 더한다. 내가 그렇다. 그 어떤 내용이라도 이러한 모국어라면 나에게 결국 관통하여 들어와서 남고야 마는 완강함이 있다. 나는 도저히 저항할  수가 없다.


'지난봄, 우리는 영우를 잃었다.'는 문장은 <입동>을 시작하는 이야기가 아니면서 그 중심에서 완강하게 버티고 있다. 다섯 번의 이사 끝에 부부가 당도한 곳은 안정적인 보금자리가 아닌 또 하나의 상실을 담보한 허공이었다. 차곡차곡 열심히 벌어 외부의 시선으로 볼 때 점점 그 중심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여겼던 안도감은 어이없는 사고로 일거에 부서지고 만다. 시시하고 안온한 일상조차 기적이자 어마어마한 붕괴 지점을 눈가림하고 있는 허룩한 이음매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이 평범한 부부의 이야기는 다리를 후들거리게 만든다. 누구나 이러한 상실과 이러한 상실을 경험했을 때의 타인들의 몰이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그 잔인한 현실에 대한 자각의 지점 때문일까? 담담한 문체가 뼈로 스민다. 부부는 그 상처로부터 나아갈 수 있을까?, 라고 묻는 지점에서 현실은 그리 허룩하지 않음을 작가는 넌지시 이야기한다. 시간이 모든 것을 이기고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김애란의 시선은 상실과 소외로 가 닿는데 그 뻗침이 작위적이거나 연민을 담보한 것이 아니라 그냥 그 속으로 스며 따뜻하게 이동하다 보니 그 경계를 자연스럽게 허물어뜨려 공감하게 하는 힘이 있다. 조손가정의 아이가 우연히 만나게 된 유기견과 함께 지내게 되며 그 개의 아픈 마지막을 동행하는 이야기 <노찬성과 에반>, 다문화 가정의 아이가  노인 폭행 사건의 방관자가 되는 이야기를 엄마의 시선으로 그린 <가리는 손>은 다 같이 아직 채 성장하지 않은 소외 계층의 아이들이 어떻게 소극적 악에 무감하게 되는지가 설득력 있게 그려져 있다. 우리는 무조건적 선을 기대하며 최소한의 선조차 제공해 주지 않은 것은 아닌가 하는 자성을 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마냥 찬란해야 할 것만 같은 젊음을 누리지 못한 채 취업 시장의 어둑한 곳에서 분투하고 있는 젊음에 대한 작가의 천착은 여전히 유효한 듯 <건너편>에서는 공무원 시험 장수생이 가정을 이루고도 결국 자신이 지향했지만 한없이 거절당했던 그 지점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모습이 생생하다. 중년을 향해 가는 그 수많은 젊음들은 거기에서 그렇게 작가의 방식대로 늙고 성숙하고 살고 있어 정이 든다. 흔들리고 절망하고 그럼에도 그 기적적인 일상성에 매몰되지 않으려 애쓰는 그들이 기특하다.


그녀의 애도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어디로 가고 싶은신가요>에서 제자를 구하려다 떠난 남편에 대한 원망은 그 남편이 '죽음'으로 뛰어든 것에 대한 원망이 아니라 '삶'이 '삶'에 뛰어든 남편의 시선으로 비로소 진화하는 마지막 이야기다. 그것은 분명 많은 설명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다. 삶은 언어로 담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시간성 안에 걸린 그 이야기는 끊임없이 환기되고 복기되고 다시 이해되며 그렇게 비로소 마침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니. 섣부른 치유와 화해와 이해를 강요하지 않는 담백함이 빛난다. 그녀의 이야기가 날아서 들어온 이유다.


나는 내일도 또 실망할 것이다. 탄생으로부터는 또 하루 더 멀어지고 죽음에 하루 더 가까이 가고 사람들의 거죽은 더욱 두꺼워지고 나의 거죽은 더욱 허룩해질 테니까. 그럼에도 이러한 이야기가 있어 참 많은 위로가 된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09-18 22: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19 0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0-09 03: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0-10 0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0-10 0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터에서
김훈 지음 / 해냄 / 201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젯밤 꿈 속에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이모가 나왔다. 이모는 꿈 속에서도 몸이 아팠던 기억을 가지고 있었지만 정결한 숲에서 얼굴을 보여준 이모는 우려했던 것보다 훨씬 건강해 보이고 예뻤다. 안심이 되기도 했지만 문득 잠에서 깨니 역시 마음 한곳이 아려왔다. 이모에게 제대로 된 작별 인사, 감사를 전하지 못했다. 죽음 앞에서 생은 어찌 이다지 하찮고 허무하게 스러지고 마는 것인가. 죽고 나면 우리 같은 평범함은 때로 하찮음과 망각으로 치환되어 서럽다. 기억하는 사람이 남는다고 해서 생이 더 유의미해지고 무거워지는 것은 아닐진대 오늘이 영원할 것처럼 마치 발이 단단히 이 지구t상에 못박혀 있는 것처럼 일상 속의 사람들은 싸우고 끄달리고 욕망하고 붙잡는다.


"2017년 설", 작가의 사인은 힘찬데 어쩐지 조금 아릿하다. 내가 기억하는 김훈은 영원한 오십 대인데 작가는 벌써 칠십 대에 접어들었단다. 우연히 옆에 있던 딸아이가 작가의 후기를 읽다 "엄마, '늙기가 힘들어 허덕지덕하였대'."라고 뜻도 이해하지 못한 말을 슬며시 옮긴다. 작가보다 한참 어린 나인데 그 '허덕지덕'의 무게를 실감한다. 시간의 경과가 늙음과 동의어는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늙어지지만 늙음을 내면화하는 일은 별개의 일이다. 거죽은 풍화하는데 내면에 생의 기운과 젊음의 추억은 차곡차곡 쌓이니 그것들을 내칠 용기를 차마 내지 못한다. 어느 날 서 있을 초로의 여인과 나를 동일시하기란 쉽지 않다.


"마동수는 1979년 12월 20일 서울 서대문구 산외동 산18번지에서 죽었다."



이러한 첫문장으로 들어갈 때 이야기의 하중이 절로 다가와 다리가 갑자기 무겁게 느껴졌다. 생으로 시작하지 않고 죽음으로 풀어나가는 이야기. 이 이야기는 필연적으로 다시 그 사람의 삶으로 가는 역순환적 순서로 갈 것을 예고하는 것은 아니다. 마동수의 삶은 결국 그가 낳은 형제 마장세와 마차세를 이야기하기 위한 출발점이 되기도 하고 그들의 이야기가 결국은 만날 접점이 되기도 하고 마침내 그들의 이야기가 종결될 복합적인 지점이다. 세상에 발붙이지 못한 부박한 아비의 삶은 결국 죽음을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전제이자 출발, 도착점이 된다. 형제는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아 분투하지만 결국은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게 되고 그의 삶을 닮게 되는 생존의 그 지엄하고 가혹한 본질에 가 닿는다.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했고 이미 늙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오해했던 시간은 시간의 결을 따라 제대로 해석되고 때에 따라서는 나의 것이 되기도 한다.


"아버지가 죽어 홀가분했다."는 차남 마차세만의 문장이 아니었다. 형 마장세는 일치감치 베트남전의 참전을 로 빌미로 그의 던적스러운 삶에서 도망치려 하지만 결국 그가 타지에서 벌였던 불법적인 사업으로 인해 아버지 만큼 추락한다. 형과는 달리 동생 마차세는 늘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과 죽음을 지척에서 지켜보게 되지만 그 또한 신산하고 초라하고 때로 비겁한 그들의 생존에서 멀리 떨어지려 시도해도 결국은 다시 떨어지는 진자 추처럼 생으로 귀환한다.


억새꽃이 부풀었고, 가을빛이 자글거렸다. 시든 줄기가 바람에 끄달리면서 바람을 버티고 있었고 꽃씨들은 바람 속으로 흩어졌다. 억새는 꽃이 아니라 꽃의 혼백처럼 보였다.

-p,311


전쟁통에 전남편과 젖먹이를 잃어야 했고 평생 방황하는 남편을 두고 형제를 키워내야 했고 말년은 치매로 요양원에서 보내야 했던 형제의 어머니를 화장하고 내려오는 길의 묘사는 눈부시다. 그것은 비단 어머니 김도순의 삶의 은유로만 해석될 것이 아니다. 누구나의 삶인들 이러지 아니할까. 충분히 나이든 김훈의 삶의 결을 간파해내는 문장들은 가슴의 결에 아로새겨질듯 간명하면서도 처절하다. 그의 문장은 끌로 판 듯 치열하고 또렷해서 차마 흘려보내지 못할 듯하다.


우리의 삶은 지극히 사적이지만 공적인 큰 파도 속에서 부유하며 그 사사로움을 잠식 당한다. 누군가의 삶도 결국 개인적인 서사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이유다. 사사롭지만 사소하지 않은 그 모든 것들을 언어로 도열하면 삶의 지고하고 처절한 순간들이 드러난다. 개인과 사회와 역사, 욕망과 의지와 이상과 좌절의 겹쳐진 그 틈새를 간파한 작가의 필력은 그가 살아 낸 생의 기억들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늙고 사는 일을 실감한다. 무겁고 무섭지만 신비로운 일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17-03-06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따님이 문장을 또박또박 잘 읽는데요?
엄마를 닮아 글을 잘 쓰려나 봅니다.ㅎ
그 뜻이야 앞으로 살면서 문득문득 많이 떠오르겠죠.
김훈 작가의 그 문장 참 기가막히군요.
정말 앞으로 살면 살수록 허덕허덕할 때가 많겠죠?
살면 살수록 물 같으면 좋겠는데...

blanca 2017-03-07 09:28   좋아요 0 | URL
벌써 4학년인 걸요. 김훈 문장은 여전히 경이로운 대목이 많더라고요. 늙는 일은 절로 되는 게 아니라 너무 넘어야 할 산이 많은 것 같아요.

stella.K 2017-03-07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딸래미가 벌써 4학년이어요? 아니 언제에...ㅎㅎㅠ

blanca 2017-03-11 13:20   좋아요 0 | URL
저도 깜짝 놀라요. 제가 4학년이던 게 엊그제 같은데 --;;; (이건 좀 과장이죠? ㅋㅋ)
 
바다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44
존 밴빌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어디에서 오는 길이었을까. 잘 기억나지 않는다. 퇴근길이었을 낯선 아저씨는 가족에게 주려고 산 붕어빵 봉지에서 붕어빵을 하나 꺼내 낯선 아이에게 건네 주었다. 따뜻했다. 하늘의 달은 정말 신기하게도 집까지 따라와 주었다. "신들의 시절"이었을까? 세상도 우주도 한없이 광대한 시절,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 신기한 것은 신비로 점철되던 시절, 유년. 서서히 장막은 걷히고 남에게 일어날 수 있었을 또는 있었던 모든 일들은 나의 안전한 지지대로도 파고든다는 것을 알게 되는 그 시점, 나도 내가 사는 삶도 별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단단하게 깨닫게 되는 그 시간, 어른은 소멸을 향해 늙어간다.


온화한 날씨 속에 한 해가 끝을 향해 이울어가고, 낙엽들이 허둥지둥 달려가고, 알아채지도 못하는 사이에 낮의 밝음이 희미해지고, 가로등이 매일 저녁 어제보다 약간 더 일찍 켜지는 때에. 그래, 이것이 내가 어른의 생활이라고 생각하던 것이다. 늦가을에 맞이한 기나긴 화창한 날씨 같은 것, 고요의 상태, 호기심이 사라진 차분한 상태. 견디기 힘들었던 유년의 날것 그대로의 직접성은 다 사라지고, 어렸을 때 곤혹스러워하던 것은 다 풀리고, 모든 수수께끼가 해결되고, 모든 질문에 답이 나오고, 순간순간에 물이 똑똑 듣듯이 거의 알아챌 수도 없이, 황금 방울처럼 똑똑, 마지막, 거의 알아챌 수도 없이 해방을 향해 흘러가는 상태,

-p.92


이 남자는 지금 이 시간을 상실과 더불어 통과하고 있다. "그들은, 신들은 떠났다."는 선언으로 시작되는 이야기. 이미 남자는 충분히 늙었다. 반 세기가 더 지나 돌아온 유년의 풍경은 화석처럼 보존되어 있었다. 오십 년의 시차는 같은 공간 안에서 경계를 허물고 서로 극복된다. 남자가 회상하는 자신의 세계 밖의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지극히 관조적이다. 남자는 그 모든 시간을 직접 통과해 왔건만 번번히 불투명하게 관찰하는 시점에 자신을 고착화한다. 그렇다면 그가 이야기하는 모든 것은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우리의 이야기로 응축되는 것이다. 내가 어린 시절 경험했던 그 모든 것의 직접성은 비록 서사의 구체적인 결은 다르지만 이 남자의 음험한 짝사랑과 서툴지만 영롱했던 그 모든 처음이었던 것들과 겹친다. <바다>를 읽게 되면 그래서 멈칫멈칫하게 된다. 이것은 타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도 되니까.


작가는 "세속적 표현의 순간"을 고대하는 이 남자의 목소리를 빌어 그의 소망을 실현했음을 들킨다. "나는 표현될 것이다."는 작중 화자의 고백으로 폄하되지 않는다. 그 뒤에 숨어 끊임없이 자신의 시선을 들키는 작가 본인의 것으로 의심되어도 충분할 것이다.


사는 일은 지난하지만 절실한 일이다. 상실과 필연적으로 만나는 것은 유한한 삶의 본질적 속성일 게다. 눈물 없이는 나아갈 수 없는 일이다. 상실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일은 그래서 때로 진부해지지만 영원히 반복되는 삶의 이야기다. <바다>를 유영하는 일은 그러한 상실을 저마다 개별적인 지점에서 보편적인 곳으로까지 밀고 나가는 힘겹지만 의미 있는 과정이다. 우리는 이미 모두 모든 불가능한 것들의 발치를 쓸어가는 시간을 통과해 신들의 시간을 통과해서 다시 신들의 시간으로 갈 운명이다. 그 운명을 기억하는 과정에서 <바다>는 하나의 이정표가 되어 줄 듯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