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더울 땐, 호캉스가 최곤데.

남이 해주는 밥을 먹고 책 읽는 일 외에는 아무 할 일도 없는 시간들...

함께 이야기 할 사람이 있어도 좋고....

 

그런데 올 여름엔 여유가 없다.

한 시름 덜었나 싶으면 또 일이 생기고

한 고비 넘겼나 싶으면 또 다른 굽이가 보인다.

왜 인생을 이렇게 종종거리며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마음에 여유가 없으니 책도 손에 안잡히고, 이럴 때 일수록 좋은 책을 만나야 하는데.

다행히 이번 주에는 <서부 전선 이상 없다>가 너무 좋아서

단숨에 읽어버리고는 시름도 함께 넘겨버렸다. 남은 한 주도 좋은 책을 만날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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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아직도 글을 쓰고 떠벌이는 동안 우리는 야전 병원과 죽어가는 동료들을 보았다. 이들이 국가에 대한 충성이 최고라고 지껄이는 동안 우리는 이미 죽음에 대한 공포가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반역자가 되거나, 탈영병이 되거나, 겁쟁이가 된 것도 아니었다. 어른들은 걸핏하면 이런 표현들을 쓰곤 했다. 우리들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고향을 사랑했다. 그리고 우리는 공격이 시작되면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다른 사람이 되었고, 대번에 눈을 뜨게 되었다. 어른의 세계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보게 된 것이다. 우린 어느새 끔찍할 정도로 고독해졌다. 그리고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고독과 싸워나가야 했다.
- P18

˝그렇데 프란츠야, 이제 잠 좀 잘 거니?˝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다. 눈물이 뺨 위로 흘러내린다. 그 눈물을 닦아 주고 싶지만 내 손수건이 너무 지저분하다.
이러는 사이에 한 시간이 흘러간다. 나는 긴장한 채 앉아서 그가 혹시 또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그의 얼굴 표정을 유심히 살핀다. 그가 입을 열고 소리라도 치면 좋으련만! 하지만 그는 머리를 옆으로 돌리고 울기만 할 뿐이다. 그는 자기 어머니, 자기 형제들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어쩌면 이미 그럴 능력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는 지금 열아홉 살 된 자신의 조그만 생명과 홀로 대면하면서, 그 생명이 자신을 떠나려 하기 때문에 울고 있는 것이다.
- P32

뭐니 뭐니 해도 군인에게 땅만큼 고마운 존재는 없다. 군인이 오랫동안 땅에 납작 엎드려 있을 때, 포화로 인한 죽음의 공포 속에서 얼굴과 수족을 땅에 깊이 파묻을 때 땅은 군인의 유일한 친구이자 형제이며 어머니가 된다. 군인은 묵묵 말없이 자신을 보호해 주는 땅에 대고 자신의 두려움과 절규를 하소연한다. 그러면 땅은 그 소리를 들어주면서, 다시 새로 10초동안 그에게 생명을 주어 전진하게 한다. 그러고는 다시 그를 붙잡은데, 때로는 영원히 그러고 붙잡고 있기도 한다.
- P50

소년 병사는 수송 과정을 도저히 견뎌 내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기껏해야 2,3일밖에 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겪은 온갖 고통은 그가 죽을 때까지의 이 기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아직은 몸이 마비 상태라 그는 아무런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한 시간만 있으면 그는 참을 수 없는 고통에 고래고래 단말마의 비명을 지를 것이다. 앞으로 비록 며칠간 살아 있다 하더라도 그는 미칠 것 같은 고통에 시달릴 것이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고통스럽게 하루 이틀 더 산다고 해서 누구에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 P63

우리가 공포에 등을 돌리면 전선의 공포는 가라앉는다. 우리는 심하고 노골적인 농담을 하면서 공포에 대처한다. 누가 죽으면 우리는 그가 엉덩이를 오므렸다고 말한다. 우리는 만사를 이런 식으로 말한다. 그래야 우리는 미치지 않고 버틸 수 있다. 그렇게 하는 한 우리는 저항하는 것이다.
- P115

하나의 명령으로 이 조용한 사람들이 우리의 적이 되었다. 하나의 명령으로 이들이 우리의 친구로 변할 수도 있으리라. 우리가 모르는 몇몇 사람들이 어디간의 탁자에서 어떤 서류에 서명했다. 그리하여 몇 년 동안 우리의 최고의 목적은 평상시 같으면 세상의 멸시를 받고, 최고형을 받을 일을 하는 것이다. 누가 이곳에 와서 어린이 같은 얼굴과 사도 같은 수염을 지닌 이 조용한 사람들을 직접 본다면 누가 이들을 우리의 적이라고 생각하겠는가! 그들이 우리에게 적인 것 이상으로 하사관이 신병에게, 고등학교 선생이 학생에게 더욱 고약한 적이다. 그런데도 만일 이들이 풀려난다면 우리는 다시 이들을, 이들은 우리를 쏠 것이다.
-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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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플라스의 마녀>는 순식간에 읽어버릴 만큼 흡인력이 강했고,(히가시노 게이코의 소설이 그렇지 뭐.)

업무용으로 투덜거리며 읽어야만 했던 어린이소설 <리얼 마래>와  <내가 김소연진아일 동안>은 의외로 정말 재미있었다.

두권다 마지막엔 감동의 눈물을 찔끔했다는 것은 안 비밀! 애들 소설을 읽고 눈물이나 찔끔거리다니, 딸들이 알면 비웃을 일이지만, 이 책을 두 딸들에게 바치며 진짜 재밌어 한번 읽어봐, 강추야. 했는데도 안 읽고 시큰둥하다면, 엄마 이거 읽고 울뻔했어, 라고 내 스스로 밝힐 셈이다.

 

<내가 김소연진아일 동안>은 워낙 유명한 황선미 작가의 신작이니 만큼 나무랄데 없는 구성이었지만,

다만 나중에 소연이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더 들어갔으면 어땠을까 했다. 그래서 소연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생각하니

찜찜하기 짝이 없었다. (나무랄 데 없다고 해놓고선....)

 

<리얼 마래>는 진짜 흠잡을데 없었다. 진짜다.

요즘은 어린이 소설도 정말 수준이 높다. 게다가 아주 현실적이다.

그래서 이제는 어린이 소설을 읽고 동심으로 돌아간다거나 하는 일은 없다. 어른이 읽어도 시사점이 많고 머리가 지끈거린다.

 

가끔 어린이 소설도 읽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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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는 다작이면서도 태작이 드문 작가로 알려져 있다. 이 작가는 과연 어디까지 진화할 것인가. 일본 전국 서점원들의 코멘트는 그에 대한 애적이 담겨 있는 만큼 핵심을 꿰뚫고 있다. ‘물리적인 법칙을 사용하면 가까운 미래는 예측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어떤 법칙을 사용해도 예측 불가능하다. 예측 불가능한 것이야말로 미스터리의 묘미다.‘

(옮긴이의 말 中)
- P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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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이자 전기 작가인 슈테판 츠바이크(1881)와 역사학 박사, 잡지사의 편집장, 방송진행자인 귀노 크노프(1948) 두 독일 작가는 반세기의 격차를 건너 뛰어 같은 제목의 책을 발간하게 된다.

 

어떤 일이 햇빛을 받으면 역사가 되고, 달빛을 받으면 신화가 된다고 했던가. 역사가 될뻔했던 찰나, 그리고 뒤안길, 우연과 착오가 빛을 받아 역사로 태어난 경우, 가짜 영웅들의 불행을 파헤친 두 역사가.

1권의 신의 신비스런 작업장인 역사 속에서 무심하게 스쳐 지나간 고귀한 순간들을 들추어내어 현대인에게 운명’‘의 심오함을 다시 지각해 주었고, 2권은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사진을 주제로 하여 숨겨진 영웅들의 비화나 시대적 배경을 들어내 보여 주었다. 대표적인 사진은 <벌거벗은 베트남 소녀>.

흥미롭고 지나간 역사에 대해서 조용히 더듬어 보는 귀한 계기가 되었고,

 

제목 <우연의 역사>에 시선이 가는 것은, 그보다 신경이 거슬리는 것은 인간의 역사인 인생우연이 개입되고 그것을 운명이라고 이름 지으며 나이가 들어갈수록 얼굴 없는 운명에 순종되어 가는 것을 거부할 수 없기 때문일까.

 

책 속의 인물들이 의지보다 순간적인 상황에 의해서, 타인의 흥미에 의해서 삶을 살아내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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