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페이지를 넘긴 후의 첫 소감은 그 사람 정말 능청스럽네였다.

 

거짓말(픽션)을 풀어나가는 너스레. 설화나 신화의 분위기를 현실적인냥 이야기하는 익살.

시간, 공간의 방대함이 마치 대하소설을 읽고 있는 듯한 착각. 세상의 온갖 엽기적인 행동, 잔인한 성품의 캐릭터를 갖고 있는 등장인물. 모든 등장 인물들의 기이하고, 어이없이, 마치 저주를 받은 듯한 죽음.

이 모든 허무맹랑한 주제들이 널러져 있다가 어느덧 연결되어 귀결시키는 작가의 기발함이 존경스럽다.

 

박색노파, 금복, 춘희 3대의 세 여인의 괴이한 삶을 뼈대로 노파의 딸 애꾸, 금복의 첫 남자 생선장수, 벽돌쟁이, 쌍둥이 자매, 코끼리 점보, 칼자국, 수련, 약장수,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춘희와 처음이자 마지막 여정을 느낀 어릴적 친구 통뼈 등의 세상살이는 너무나 비현실적이어서 한 펴의 설화로 남기기에 충분하다.

 

그들의 삶은 자체가 목표였든, 무의식의 본능적인 생활이었든 욕망에서 비롯되어 그로 인해 죽음을 맞는다. 바다의 신비스럽고 거대함을 상징하는 고래처럼 그 욕망은 클수록 파괴력도 무섭고 거구의 겅정, 춘희, 점보의 슬픔과 비애를 연상케 한다.

 

우리는 우리의 성격에 따라 어떤 행동을 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한 행동에 의해 우리가 된다.‘ 이렇게 작가는 인물들의 상상 밖의 생활로 독특한 그들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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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편집부에서 임의로 지은 것이라 한다.

 

고흐가 자신의 경제적 후견인이자 화상인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와 동생에게 부친 그림의 일부로 엮어져 있다.

 

편지의 내용은 자신을 새장에 갇힌 새로 비유하며 자신의 무력감, 경제적 빈곤, 자신에 대한 한탄. 사랑 등을 솔직하게 표현되어 있어 화가 고흐의 인간적인 내면을 느끼게 해 준다. 그림에 대해 자상하게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발작성 질환을 앓고 있는 예민한 성품 외 또 다른 따뜻한 형제간의 우애를 엿볼 수 있다.

 

데생에서 유화로 변실할 때의 심적 변화, 색채에 대한 강한 집착과 고뇌, 초상화, 인물화를 작업함에 있어 모델의 내면을 표현하려는 고민, 기술, 기교보다 영혼이 담긴 정직한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열정, 세간의 무관심과 소외,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진정한 화가가 되고자 했던 몸부림 등 모든 정신적 고통은 훗날 그를 정신질환으로 발전시킨 계기가 된 것은 아닌지...... 절망감 앞에서 조용히 합리적으로 논리적으로 그리고 정당하게 절망하겠다는 강한 의지와 각오도 동생에게 토로한다.

 

아버지가 목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신을 강하게 부정, 동생 테오가 신의 섭리를 언급하자 몹시 실망하여 이 세상은 신의 실패한 습작, 신이 뭘 할는지 모를 때 제 정신이 아닌 불행한 시기에 서둘러 만들었음이 분명하다. 선량한 신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자신의 습작을 위해 많은 수고를 했다는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한다.

 

37세의 고흐는 동생 테오와 심하게 다툰 뒤 한 달 후 스스로 가슴에 총을 쏘아 죽는다.

테오에게 부치지 않은 한 통의 편지 말미에 적힌 네 입장을 정하고 진정으로 사람답게 행동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런데 도대체 넌 뭘 바라는 것이냐?”의 내용은 동생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동생 또한 형이 죽은 6개월 후 33세의 나이로 건강이 악화되어 죽음을 맞이한다.(1891.1.)

1914년 테오의 유해는 형의 무덤 옆에 안치되게 된다.

 

고흐의 일생을 어둡고, 침울한 자화상과 매치시켜 새삼 다시 보게 되었다. 고흐가 설명하는 색채가 그림과 맞아 떨어지지 않아 아쉬웠으나 이는 편집상 어쩔 수 없는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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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암으로 죽음을 앞둔 60 나이의 엘리엇에게 마지막 간절한 소원은 인생 내내 그리움이었던 젊은 나이 서툰 사랑으로 저 세상으로 떠나보낸 일리나를 만나 보는 것이다.

 

캄보디아에서 외과의사로 구호활동을 마치며 귀국길에 만난 노인으로부터 신비의 알약 10개를 받게 된다.

9개를 먹으며 9번의 30년 전으로의 시간 여행을 떠나 연인 일리나의 죽음을 막으나 긴 세월의 차이로 결코 만날 수는 없다.

 

절친한 친구 매트는 죽은 친구가 남긴 알약 1알을 먹고 30년 전으로 돌아가 죽음을 예고하며 금연과 운동을 다짐시키고 현실로 돌아오게 된다.

 

죽을 운명을 극복하여 각자의 생을 각자의 시간 속에서 살던 세 젊은이가 61세의 어느 해변가에서 만남을 갖게 된다.

 

가슴을 따스하게 하는 러브 스토리와 우정을 바탕으로 한 시간의 개념과 운명을 환상적으로 접목시킨 이 소설을 일고 나니 묵직한 숙제를 받아든 느낌이다.

 

내가 과거로 돌아갈 계기가 주어진다면 어느 시점으로 가고 싶을까. 또 어느 부분을 바로 잡고 싶을까. 지금이 20년 전의 시간 여행을 온 순간이라면 이 순간 무엇을 해야 돌아야 회한이 없을까.

 

주위가 온통 아름답고, 조심스럽고, 아쉽다.

오늘의 마감을 향하는 시계의 초침 소리가 엄하디 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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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를 자퇴하고 베트남전에 차출되기 전까지의 사춘기를 그린 작가 황석영의 성장 소설.

 

사람은 씨팔... 누구나 오늘을 사는 거야.”라는 인생관을 지닌 주인공(유준)세울이 지체되겠지만 확실히 내 인생을 살아보고 싶은 거다.”라고 말하는 친구(영길, 중길, 인호, 정수, 동재, 상진)들은 세상의 낙오자로, 그러나 자신의 삶의 주인공으로서 거친 삶을 선택해 살아간다.

 

새벽 동쪽에 나타날 때는 샛별이라는 고운 이름의 금성은 식구들의 저녁 식사가 끄나고 개가 밥을 기다리는 늦은 시각에 나타나면 개밥바라기로 불린다.

 

학교, 가족, 사회에서 쏠리고, 몰리어 개밥바라기로 불리는 젊은이들에게 작가는 말한다.

너희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

하고픈 일을 신나게 해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태어난 이유이기도 하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때려치운다고 해서 너를 비난하는 어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거다. 그들은 네가 다른 어떤 일을 더 잘하게 될지 아직 모르기 때문이다.

 

미래를 위한 오늘을 결코 살지 않겠다던 다른 친구들은 황혼의 나이에 서서 반듯한 선로를 이탈하고픈 젊은 열정의 청춘들에게 어떻게 말해주고 싶었을까?

인생엔 연습이 없다?

 

각 단원마다 주인공 준과 친구드리 화자가 되어 자신의 세상살이를 독백처럼 풀어놓는 구성도 새롭다.

 

방황하는 청춘들의 용기가 가슴 시리고, 용기 뒤에 가려진 두려움이 찬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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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작품 속에서 단편적으로나마 짐작했던 가족사를 소설의 형식을 빌리기는 했으나 세상에 당당하게 내보일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도도함과 자부심이 한 몫을 했겠으나, ‘성이 다른 세 남매를 키우는 싱글맘이라는 새로운 구성의 가족이 용납되고 이해될 만큼 세상이 변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9살 큰딸이 아버지의 결혼식장에서 <즐거운 나의 집>을 연주하며 언젠가는 아버지를 떠나게 되리라는 예견을 하는 것으로부터 소설은 시작된다.

 

19살의 조숙한 딸 위녕의 시점에서 본, 평범치 않은 삶을 극히 너무나도 평범하게 살아가는 좌충우돌, 눈물 많고 외로움과 두려움에 쉽게 노출되는 엄마를 그려내는 소설.

 

수험생 딸보다도 더 밀린 글에 짜증을 내고, 엄살을 떨어대는 엄마는 베스트셀러 작가이면서 결코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것 같지 않다.

자타가 공인하는 페미니스트 엄마는 뒤틀리고 부서진 인생으로 보이는 사회의 시선에 자주 주눅이 들고 약한 모습을 자식들에게 쉽게 들킨다.

교육정책을 비판하며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외치는 엄마도 공부의 중요성을 강요할 때는 어처구니없는 비논리적인 수선을 떨어대는 학부모일 뿐이다.

 

세자식들이 제각기 자신의 아빠를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서는 묘한 풍경도 삶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가족의 운명. 아버지의 죽음을 맞는 둘째와 함께 가슴 아파하는 가족애도 뜨겁게 그려져 있다.

 

논픽션과 픽션을 넘나들며 가족의 다친 자존심을 챙기는 공지영은 역시 유능한 소설가이다.

 

그녀가 새기고 있는 묘비명 :

내 열렬히 사랑하고, 열렬히 상처받았으며, 열렬히 슬퍼했으나, 이 모든 것을 열렬한 삶의 일부로 받아들였으니 이제 좀 쉬고 싶을 뿐.”

 

그녀의 열렬하고 치열한 삶은 뜨거운 사랑에서 출발했음을 이 소설에서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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