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소셜리스트인 마오쪄뚱(모택동)과 실용주의자였던 저우언라이(주은래), 덩샤오핑(등소평)의 두 사상적 대결 사이에서 비롯된 문화혁명의 현장에서 시작된다.

주인공 육일심은 중국을 장악했던 일본이 패망하면서 들이닥친 소련군에 의해 만주개척단(일본인이 중국 본토를 일본화 시키기 위해 일부 일본인을 반 강제적으로 만주로 이주시킴)으로 형성된 마을이 몰살당하면서 전쟁고아가 된다. 샤오이뻔궤즈(중국인이 일본인을 칭하는 모욕적인 욕)라는 온갖 멸시를 받으면서 여러가지의 희비를 겪으며 성장하여 결국 한 인간으로 꿋꿋이 일어서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다.

 

고아로 떠돌던 주인공은 무자비한 중국인에 끌려가 혹독한 생활을 하다가 노예로 팔리던 중 한 중국인에 의해 육일심이라는 중국 이름과 함께 새 삶이 시작된다. 아낌없는 사랑과 최고의 교육을 받으며 평탄한 중국인으로써 뿌리를 내려간다. 그러나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무고한 누명을 쓰고 노동개조소에서 비인간적인 젊은 시절을 보내기도 한다. 한편 헤어졌던 누이가 극도로 잔인하고 가난한 중국인에 끌려가 노예 같은 혹독한 삶을 살다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아야하는 애절함을 겪기도 하고 처자식의 죽음을 상처로 안고 안정된 사회인으로써 살아가는 일본인 생부를 만나 중국인 양부사이에서 갈등을 겪는 인간적인 과정을 그린 인간사이다. 일본과 중국의 거대한 톱니바퀴 틈에서 세월을 살아내야 하는 인간의 무력함과 나약함, 그러나 인간만이 지닐 수 있는 강한 인내심과 의지력도 볼 수 있었다. 이 작은 가슴 안에 담을 수 있는 사람의 그 많은 근본들 -사랑, 깊은 이성, 이해심, 자애, 애잔함, 노력, 끈기, 그런가하면 간교함, 잔인성, 악독함-이 인간 내면에 아주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음도 느꼈다.

 

이 책의 흐름을 잇고 있는 제철소 건설이야기 속에서 몰랐던 중국의 경제와 정치의 새로운 한 단면을 볼 수 있었다. 철의 강조성을 주장하며 밀어부쳤던 제철소 건설은 사실 모택동이 실권을 쥐고 있던 주석 하국봉을 밀어내고자 했던 정치적 음모의 한 방책이었다는 점, 제철소 건설과정에서 중일우호를 앞세워 일본의 자금을 교묘한 방법으로 끌어들이던 중국.(자국의 대불방식이 현금지불이라는 점으로 비용을 터무니없이 낮추어 놓고 막상 계약 체결시에는 5년 연불로 씀으로써 유리한 입장을 끝내 고수했다.) 경제적 강국 일본도 이런 억지논리에 두 손을 든 적이 있었던 과거와 민족의 일치와 애국을 중시하는 일본도 중국에 버려진 내 국민을 방치할수 밖에 없었던 가슴 아픈 오점의 흔적이 있따는 것도 새삼 알았다.

 

모택동이 갑자기 죽으며 권력을 장악한 부인 강청과 4인방이 숙청되는 문화혁명의 10년간 주은래 총리의 박해, 등소평의 피신, 호요방과 하국봉의 정치적 힘겨루기도 잠깐씩 다루어진 폭 넓은 소설이다.

과연 중국은 대륙의 크기만큼이나 민족성을 간파하기도 힘들거니와 역사 역시 장구하여 단순히 일컬어질 수 없는 무궁무진함과 막강한 저력도 느껴졌다.

 

일본인 혈통이라는 불리함을 가진 육일심과 아버지가 노동개조소(감옥)에서 자살한 반혁명분자인 딸로써 살아가야하는 부인 강월매 부부가 딸 연연의 장래를 염려하면서도 양부 곁에 남기로 결정함은 대지의 아들로서 살아온 깊은 자존심과 성장의 시간이 묻어있는 조국의 믿음 때문이었을까? 나라면 과연 어찌했을까? 아픔과 상처를 지닌 곳, 갚을 수 없는 은혜를 입은 양부. 그 동안 아들에게 졌떤 빚을 갚고자 하는 생부의 애절함과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어 이루어놓은 경제적 사회적 안정을 뿌리칠 수 있었을까?

요즘의 사회적 붐을 일으키고 있는 차이나드림에 앞서 읽어보았는데 뜻밖에도 더 많은 훈을 얻은 소중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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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을 28살을 눈앞에 둔 여류 잡지사의 여기자와 암울한 어린 시절을 겪으며 성장하여 사회적인 명성을 떨친 - 그러나 그는 늘 삶의 쓸쓸함과 덧없음을 풍기는 스산한 겨울 분위기를 벗어버리지 못한다. - 유부남인 미술가와의 통속적인 사랑 이야기이다.

 두 지성인이 사회적인 윤리나 관습, 열정적인 사랑 사이에서 고뇌하는 모습을 여주인공의 일기를 빌어 그려내고 있다. 결국 가족들과의 도덕성조차도 예술에서 배제할 수 없다는 남성의 결단으로 사회적인 통념을 극복하지 못하는 보수적(?), 고전적(?) 결말을 맺는다. 여주인공 희원은 시인으로 등단함으로써 예술가들의 자유분방함을 빌어 이 사랑을 지속시키려하나 일방적인 상대의 의지로 뜻을 이루지 못한다.

  희원이 새 삶을 시작하면서 지난 일 년 간의 과거를 흘려보내는 예식으로써 자신의 사랑의 흔적인 일기장을 읽어 내려가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나는 내일이면 한 남자의 아내가 된다. 그 남자는 건강하고 쾌활하고, 아마는 성실하다. 나는 그를 사랑하게 될 것이고 그의 이름은 앞으로의 내 삶에서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 될 것이다.

 그러나 여자에게 있어서 결혼은 하나의 레테(망각의 강)다. 우리는 그 강물을 마심으로써 강 이편의 사랑을 잊고, 강 건너의 새로운 사랑을 맞아야 한다. 죽음이 찾아올 때까지 오직 그 새로운 사랑으로 남은 삶을, 그 꿈과 기억들을 채워 가야한다.

 나는 지금 그 강가에서 나를 건네줄 사공을 기다리고 있다. 내 귓전에는 느릿느릿 저어오는 그의 노소리가 들린다. 나는 가리라. 앞서의 수많은 여인들이 희망과 기쁨으로 또는 탄식과 눈물 속에 건너간 이 뱃길을 가리라. 강 이편의 그 무엇에도 연연함이 없이.

 그리하여 나는 이제 그 홀가분한 출발을 위해 지난 세월과 마주하고 섰다. 내가 새삼 이 일기장을 펴드는 것도,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미혼 시절을 향한 허심한 목례, 여기에 담겨진 기억들을 망각의 불속으로 던져버리기 위한 마지막 작별의 의식에 지나지 않는다. 아직은 현란한 애증의 그림자를 벗어버리지 못했지만 이윽고는 똑같은 빛깔로만 떠오르게 될 시간들이여. 한때는 내 삶에 버금가는 소중함이었지만 이제는 끝 모를 침묵과 어둠속으로 살아져 가야 할 기억들이여. 기쁠 수도 슬플 수도 없는 노래여.

 

 그리스 신화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리비디아라는 소도시에 바위 틈에서 흘러나오는 작은 샘물이 있는데 오른쪽으로 흐르는 물은 므메모쉬네(기억의 샘물), 왼쪽으로 흐르는 물은 레테(망각의 샘물)이다. 그 두 샘물이 어우러져 하나의 시내를 이루는데 이 시내의 이름이 바야흐로 LIFE(인생)! 어찌 사랑과 이별을, 과거와 현재를 구분하려고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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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총사>, <춘희>의 작가 앙리 뒤마의 아버지인 알렉산드로 뒤마의 본 작품은 1844년부터 1846년까지 신문에 연재될 만큼 방대한 양의 낭만주의적 소설이다.

 

주인공 에드몽 당테스의 파란만장한 삶은 마피 경찰서의 기록 보관서에서 뒤마가 발견한 프랑수아 피코라는 실제 인물을 소설화한 것이라고 전해진다.

 

약혼녀를 사랑했던 친구의 음모로 감옥생활을 하게 된 점, 가족들의 비참한 죽음, 친구와 약혼자가 결혼한 사실, 부호가 된 동기, 전말을 알아내는 과정은 사실대로 쓰여졌고, 자유를 찾는 과정, 시대적 배경, 복수하는 과정(나폴레옹 몰락과 시체와 뒤바뀌어 탈출, 친구와의 불화로 죽임을 당함, 하이데와 떠남)에서는 변화를 주었다.

 

주인공 에드몽 당테스, 청순한 여인 약혼녀 메르세데스, 에드몽이 선장이 된 것을 시기한 당글라르와 약혼녀를 가로채고자 했던 페르낭 몬테고의 음모, 방관자 카르두스, 감옥생활 중 스승이자 막대한 재물을 물려준 파리아 신부. 신부의 죽음으로 인한 탈출, 자유인이 되어 찾아갔을 때는 이미 관광객을 맞고 있었던 악명을 떨쳤던 감옥 이프섬, 보물이 숨겨져 있었던 몬테크리스트 섬, 복수 중 주인공이 변장을 한 신드바드 선원, 윌모아경, 부소니 신부.

새부인과 부정으로 낳은 아들에게 배반당해 미쳐갔던 빌포르 검사, 자신을 끝까지 신뢰해 주었던 선주 모렐에게는 아들 막시밀리앙에게 유산을 남겨주는 것으로 은혜를 갚는다.

거지가 되어 죽는 카드루스, 은행의 파산과 딸의 가출로 풍비박산이 된 당글라르, 과거를 알고 아들 알베르를 데리고 메르세데스가 떠나자 권총자살을 하게 된 페르낭, 1821년 오스만 제국에 항거하다 멸망한 그리이스 왕녀 하이레.

주인공의 추리력, 공간 시간을 넘나드는 재빠른 변모, 외모나 성격을 더듬어가는 데는 독자들의 상상력이 요구되는 점이 글의 흥미를 돋운다고 볼 수 있다.

 

친정 엄마는 <십자성>이라는 제목으로 읽었으되 억울하게 감옥 생활을 하던 비극적인 장면을, 내가 소녀시절에 읽은 바로는 탈출하는 대목을 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이젠 결코 단순치 않은 감정의 고비를 겪은 나이가 된 탓인지 인물마다의 가슴앓이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고, 극적인 많은 장면들이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이프섬을 돌아보고 마르세이유 바다를 향해 부르짖는 들끓는 분노심.

“저주 있으라, 나를 저 컴컴한 감옥에 가둔 자여. 그리고 내가 그 속에 갖힌 것을 잊고 있던 자들이여. 저주 있으라.”

 

에드몽 당테스와 메르세데스의 따스하면서도 차분한 이별의 대화, 그러나 깊이 느껴보려니 은밀한 통곡으로 들려온다.

 

사랑이란 이름의 그것이 살아가는 곳은 영원한 피안일까?

    

“에드몽, 제가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제 아들이 행복해지는 것 뿐입니다.”

 

“그럼, 아드님이 죽음에서 비켜나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인간의 목숨은 오직 하나 하느님의 손에 달려있으니까요. 그 나머지 일은 제가 맡지요. 그런데 당신은?”

 

“난 아무것도 필요 없습니다. 전 두 개의 무덤 사이에서 살고 있습니다. 하나는 이미 오래 전에 죽은 내가 사랑했고,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에드몽 당테스의 무덤이며, 또 하나는 당테스에게 죽임을 당한 그 사람의 무덤입니다. 죽임을 당한 것도 무리는 아니지만 저는 그를 위해 기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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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리 아들 세민이가 19살 때 어버이날 꽃바구니와 함께 아빠에게 선물한 것이다.

 

장수도 얼마 안 되는데, 글씨체는 크다. 넉넉한 여백에 치즈 조각 그림까지 삽입된 동화책 같은 선물을 51세의 아빠에게 선택한 까닭이 있었으리.

급속도로 벼화해가는 세상에 노출된 엄마의 어눌한 대처가 늘 염려스럽고 안타까웠던가 보다. 심사숙고하며 골랐을 세민이를 상상해보니 참 대견스럽다.

 

두 생쥐와 두 꼬마 이간이 등장하는데 우리들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분류한 것 같다.

변화는 늘 일어나고 있으며 이를 예상하여 신속히 자신을 변화시킨 스니프와 스커리.

현재의 생활에 안주해 새로움을 받아들이지 못하며, 과거에 미련을 갖고 있는 햄.

늦게나마 환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현실에 따르기로 했던 허.

    

작은 변화를 보고 큰 변화를 예상하며, 치즈(현실)가 움직이는 만큼 내가 적극적으로 움직여 주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자신감을 가지고, 긍정적인 사고로 익숙해 있는 것에만 나를 맡기지 말라는 교훈.

 

없어진 치즈를 보고 놀라지 말지어다. 그럴 줄 알고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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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氏의 <토지>에 대해서는 늘 한쪽 발을 담구고 있는 느낌이다. 언젠가 다시 읽고 싶고, 권하고 싶어 안달이다. 서희, 길상이는 물론 홍이, 봉순이, 월선네는 문득 문득 그리워지곤 한다.

 

그만큼 애정과 존경을 갖는 글이 조정래氏의 작품들이다. 그의 글을 읽으며 굽이굽이 숨겨진 애환의 역사를 공부할 수 있었다.

 

우리 한반도의 이념과 사상, 왜 하나가 되기가 평화로움을 이루기가 그토록 힘들며, 그 깊고 가슴 아픈 골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깨닫게 해준 <태백산맥>.

 

일제시대부터 해방까지의 우리 민족의 절절한 아픈 삶을 그려놓은 <아리랑>. 싸락눈을 몰고 온 늦은 가을의 찬바람 앞에 서 있는 그들, 용서하고 용서 받을 수 있었을까.

 

<한강>은 전후부터 80년대 초까지의 이야기인 까닭에 내가 기억하고, 간접적으로 겪은 일이 얼픗얼픗 섞여 있어, 무심히 지나쳤던 우리 누이, 오라버니들이 지녔던 암담한 소망의 눈빛을 이 책을 읽으며 진정으로 이해했다고 해도 그조차 너무 얄팍한 감상에 지나지 않을 것 같다.

 

내 곁의 가까운 이는 자신의 넋두리에 지나지 않는다며 책장을 일찍이 덮었다. 부모님 시대의 지긋지긋했던 가난을 되돌이키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

내 의식과 다른 내 형제, 동료들의 아픔을 외면했던 가책?

나와 다른 길을 가는 그들을 그다지 대면하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현대화, 공업화 앞에 농촌이 무너져가는 과정. 서독으로 외화벌이를 나선 간호원, 광부. 월남전에 참가했던 젊은이들의 허탈한 귀국. 내 남편의 삶도 보태졌던 사우디아라비아의 근로현장. 포항제철의 설립. 학교에서 가장 비중을 많이 차지했던 반공이야기. 이승만, 박정희 정권의 몰락. 연좌제에 묶여 스러져가는 젊음. 이런 경제 발전의 모순으로 생겨난 굶주림이 이야기의 흐름이 된다.

 

인내와 고통이 몸부림치던 비극 속에서 나는 아무런 상처 없이 성장했다. 친구였던 성북동 제갈숙, 청운동 서영란, 그들의 집에 놀러 갈 때 엄마는 큰 맘 먹고 낙원시장에 가서 새 원피스를 사 입혀 주셨다.

식모 살던 계숙이 언니, 엄마가 늘 콜록거렸던 친구 매희, 예민했던 탓일까 욕심이 많았던 때문일까 갖고 싶었던 것이 유난히 많았던 경숙, 흰 블라우스가 얼마나 입고 싶었던지 그 한을 풀고 싶어 딸 승현이에게 원 없이 사 입혔다고 했다. 그네들 모두의 흔적이 한강 어디쯤엔가 녹여져 있으리.

 

천두만, 나상득 아저씨, 갈포댁, 유일민과 임채옥, 유일표, 월해덕, 서동철, 이상재와 허미경. 청량한 겨울 하늘의 뭇별 같이 가슴을 시리게 한다.

격랑시대, 불신시대. 20년이 지난 오늘도 아무런 자극이나 자책없이 매스컴을 자유자재로 넘나들고 있다.

 

우리 아이들은 어떤 시대에 어떤 생을 살아낼까.

삐죽삐죽 얼굴을 내민 겨울 밭의 초록빛 겨울 보리 같이 신선하고 아름다운 우리 아이들.

인내하며 지혜롭게 살아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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