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운탕 (유용주)


     도시는 거대한 솥,

     펄펄 끓는다

     반짝이며 수없이 떠오르는 고기떼들

     썩은 고기들의 끝없는 악취

     그래도 매운탕엔 향기가 나야 제맛이지

     깻잎과 미나리와 쑥갓을 듬뿍 넣고

     소주 한 잔 카아악!


     어디선가 무지막지한 큰 손이

     자꾸만 장작을 가져와 불을 지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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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6-03-18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깻잎과 미나리와 쑥갓같은, 아니 소주같은 사람이 될래요! ㅎㅎㅎ
검둥개님이 반가워 버선발로 달려왔음 ^^

물만두 2006-03-18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둥개님 전 의자채로 밀고 왔어요~

검둥개 2006-03-18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잘 지내셨죠? ^^ 저두 버선발루 나와 답글을 답니다.
그런데 지금으로만두 충분히 멋지시지 않아요?

만두님 과격하시기는 ^ .^
남들이 보면 천하장사루 알겠어요!

2006-03-19 07: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검둥개 2006-03-19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 무슨 위트는 ^^;;; 님의 글부터 올려주시라구요.
 

묵집에서 (장석남)


묵을 드시면서 무슨 생각들을 하시는지
묵집의 표정들은 모두 호젓하기만 하구려

나는 묵을 먹으면서 사랑을 생각한다오
서늘함에서
더없는 살의 매끄러움에서
떫고 씁쓸한 뒷맛에서
그리고

아슬아슬한 그 수저질에서
사랑은 늘 이보다 더 조심스럽지만
사랑은 늘 이보다 위태롭지만

상 위에 미끄러져 깨진 버린 묵에서도 그만
지난 어느 사랑의 눈빛을 본다오
묵집의 표정은 그리하여 모두 호젓하기만 하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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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6-03-17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묵을 먹으면서 사랑을 생각한다오
서늘함에서
더없는 살의 매끄러움에서
떫고 씁쓸한 뒷맛에서
그리고

아슬아슬한 그 수저질에서

검둥개님, 묵 한 사발 같은 시를 대령하셨군요.^^

잉크냄새 2006-03-17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인들의 삶을,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란 이리도 호젓하군요.
오랫만이네요. 저도 오랫만에 왔어요. 퍼갑니다.

비로그인 2006-03-17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 말씀에 동감합니다. 시인이란 정말 새로운 눈을 열어주는 사람들이지요?

검둥개 2006-03-18 0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이 시 멋지죠? ^^
묵 먹구 싶어요.

잉크냄새님 정말 오랫만이어요. 잘 지내셨죠?

Manci님 저두 동감이어요. :)
 


추억 거지 (진이정)


내겐 추억 없다
찰나찰나 연소할 뿐
하얀 절망의 재도 한땐 창창한 나의 추억이었으리라
지금의 추억에 살고 지금의 추억에 사라진다
지금에게 추억의 주소를 묻는 시골영감의 순진함
추억으로 가는 지하철은 음탕하다
서로 비벼대며 참을성 있게 추억한다
가지 않는 자여 추억의 고자여
추억의 재가 날리는 아침
크게 심호흡하라
난 추억 실조에 걸려 있으므로
내 옛연인만은 추억이 아니리라
기억의 사다리 타고
일천구백육십사년의 지붕으로 올라간다
아직 내 연인은 태어나지 않았다
나는 빨간 마후라를 목에 두른다
죽으러 가는 백마부대 용사들이
하얀 말 대신 트럭 타고 간다
눈물 대신 노래 부르며 간다
나는 그 가사들을 전부 기억한다
용사들의 겁에 질린 고함마저 용케 기억한다
나는 기억한다 그러므로 악몽이다
다행이다 내 연인은 태어나지 않는다
아버지의 해머 대신 싯누런
크래용의 햇님이 고향을 북북 문대고 있다
어느새 추억은 해바라기처럼 치근덕댄다
추억의 까아만 씨앗들로 주전부리하다보면
나도 몰래 또 어른이 되어 있다
추억 다오
나는 추억 거지
나는 추억 부랑자
내 앞의 줄이 끝이 없구나
추억 되지 않으려 필사적인 최신유행들,
쉼 없는 첨단이며 전위여
촌스럽게 기다리련다
추억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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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싶다....... (허수경)


서울 처음 와서 처음 뵙고 이태 만에 다시 뵙게 된 어른이 이런 말을 하셨다 자네 얼굴, 못 알아볼 만큼 변했어

나는 이 말을 듣고
광화문, 어느 이층 카페 구석 자리에 가서 울었다
서울 와서 내가 제일 많이 중얼거린 말
먹고 싶다......,
살아내려는 비통과 어쨌든 살아 남겠다는 욕망이
뒤엉킨 말, 먹고 싶다
한 말의 감옥이 내 얼굴을 변하게 한 공포가
,삼류인 나를 마침내 울게 했다
그러나 마침내 반성하게 할까!

나는 드디어 순결한 먹고 싶음을 버렸다 서울에 와서 순결한 먹고 싶음을 버리고
조균의 어리석음, 발바닥의 들큰한 뿌리
그러나 사랑이여, 히죽거리며 내가 너의 등을
찾아 종알거릴 때 막막한 나날들을
함께 무너져주겠는가, 이것의 먹고 싶음,

그리고 나는 내 얼굴을 버리고 길을 따라 생긴 여관에 내 마음조차 버리고
안녕이라 말하지 마 나는, 먹고 싶다......,
오오, 날 집어치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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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당 가는 길 (허수경)


757 좌석버스, 세간의 바퀴가 나를 그곳까지 데려다주었다 딴은 그렇게 말할 수도 있지만 결국 내가 내 발로 그곳까지 갔을 뿐

라면 반 개의 저녁이면 나는 얼큰하게 먹어치운 저녁 기운에 이런 노랠 했었다네 We shall overcome
버리고 떠나온 한 비럭질의 생애가 밀물지듯 서늘해지는 세월의 저녁 We shall overcome 우리 이기리라 넘어가리라 건설하리라 또 다른 생애에의 희망 이 무감동의 희망

그러나 세간의 바퀴여
잠깐, 나는 단 한번도 내 뒷모습을 용서하지 않았으나 내 그림자는 발목을 잡고 한번도 나를 놓아두지 않았도다 그리고
길 아닌 길 건설의 무감동이 나를 무너지게 했던 그 길에, 가끔 깃을 털고 때까치가 날고 나, 미류나무에 기대어 마을을 내려다보면 하나, 둘, 불켜진 창마다 가슴은 언제나 설레어 이런 날 종일 누군가를 기다렸으나

온전한 벗도 온전한 연인도 다 제 갈 길을 갈 뿐
나, 내 마음의 古老를 좇아 서둘러 떠났을 때 보았다
무수한 생이 끝나고 또 시작하는 옛사랑 자취 끊긴 길
그 길이 모오든 시작을 주관하고 마침내 마감마저 사해주는 것을

눈에서 지워진 그 길 원당 가는 길이었던
내 삶의 무너지는, 자취 없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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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6-02-17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757 좌석버스 타고 원당 가는 일이 종종 있었어요.
한때 원당에서 1년 동안 기거했던 나날, 명동에서 757을 타면 서오릉을 거쳐 지나갔죠. 신도시 일산과 퇴락의 기운이 서린 구파발 사이의 원당, 그곳에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언니가 살고 있어요 ㅎㅎㅎ
검둥개님, 오랜만이에요.

검둥개 2006-02-18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잘 지내셨지요? 저는 원당이 어느 곳인지 몰랐어요. 사랑하는 사람이 살고 있는 장소로 데려다주는 버스가 있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