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붙이 --송기원

나이가 마흔이 넘응께
이런 징헌 디도 정이 들어라우.
열여덟살짜리 처녀가
남자가 뭔지도 몰르고 들어와
오매, 이십년이 넘었구만이라우.
꼭 돈 땜시 그란달 것도 없이
손님들이 모다 남 같지 않어서
안즉까장 여기를 못 떠나라우.
썩은 몸뚱아리도 좋다고
탐허는 손님들이
인자는 참말로 살붙이 같어라우.

 

"... 고은 선생이 집필한 ... 이 발문에서 거의 유일하게 비판적인 언급이 ... 바로 "살붙이"를 두고 행해지고 있다 ...  "우리는 이런 시를 통해서 너무 성급하게시리 버림받은 이 땅의 여자에 대한 여권 운동적인 측면이나 민중 생존권의 도덕적 요청 문제를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 (83) 고은 선생이 "살붙이"라는 작품에 비판을 가할 때, 객관적 사회 모순에 대한 저항 없이 서정시를 쓰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습니다만, 실은 이런 식의 비판은 논리적으로도 약간 문제가 있는 듯한데요. 무엇보다 사회적 저항과 서정이라는 것이 그렇게 분명하게 갈라질 수 있는 것인지 ... (85)"

---"인간, 흙, 상상력," 김종철 저,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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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승개밭--심호택


할머니 말씀은 노상
노다가 목 마르거든 옥순네 집으로 가거라--
물으 한 그릇 청해 주시오 하거라--
그 말씀이 마냥 가소로왔다
해해해
싫어 싫어 청해 주는 게 또 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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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덜린의 그집은 삼층이다  (오규원)
--튀빙겐에서--

그집은 넥카강변에 있다
그집은 지상의 삼층이다
일층은 땅에
삼층은 뾰죽하게 하늘에
속해 있다 그 사이에
사각의 창이 많은
이층이 있다
방안의 어둠은 창을 피해
서 있다
회랑의 창은 모두
햇빛에 닿아 있다
그집은 지상의 삼층이다
일층은 흙 속에
삼층은 둥글게 공기 속에 있다
이층에는 인간의 집답게
창이 많다
넥카강변의 담쟁이 넝쿨 가운데에
몇몇은
그집 삼층까지 간다



시인 황인숙의 산문집을 읽고 있는데 이런 시가 나왔다.
오규원은 시인의 은사라고 했다. 선생과 학생으로 처음 강의실에서 만났던 때의 일화가 재미있다.

당시 마흔 하나이던 오규원 선생은 강의실을 채운 학생들에게 앞으로 뭘 어떻게 쓰고 싶은지 돌아가며 이야기해보라고 했단다. 차례가 되어 젊은 황인숙이 여차여차하다고 대답을 하자, 선생은 "여기 왜 이렇게 겉멋 든 사람이 많아!"라고 고함을 쳤다고.  하필 자기 순서 직후에 그런 말을 듣고 불끈한 시인은 자기도 모르게 "뭐라고!"라고 맞고함을 쳤단다. 선생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천연덕스레 강의로 돌아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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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6-05-28 0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일화가 너무 재미있네요. ^^

검둥개 2006-05-28 0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 감사합니다. ^^
서재 이미지 멋진데요. (특히 헤어스탈이!)
철학자 누구신가요? ^^

balmas 2006-05-28 0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힛!
스피노자 캐리커처랍니다.
그럴 듯한가요? ^^

잉크냄새 2006-05-28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둥개님, 오랫만이네요.
참 부러운 사진을 가지고 오셨군요.

검둥개 2006-05-28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마스님 아주 그럴 듯 합니다. ^^

잉크냄새님 ㅎㅎ 저두 부러운 사진이야요. 구글에서 횔덜린 집 이렇게 이미지 서치해서 찾아봤답니다. 시를 읽고보니 어떤 집인지 참을 수 없이 궁금하야. ^^

진주 2006-05-28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기속에 둥글게 떠있는 삼층방을 제게 준다면,
창가에 마른꽃가지를 자잘하게 걸고 둥그런 벽을 따라 맞춤제작한 침대만큼 넉넉한 둥그런 소파를 들여놓을 거에요. 햇빛이 들어오면 속옷같이 얇다란 옷에 맨발로 뒹굴어야죠. 조금 떨어진 곳엔 둥근 티데이블도 하나 놓고요. 한쪽에는 책상을 놓고 책꽂이를 놓아야죠. 반그늘 식물들도 적당히 들여놓고요. 그러니까 여긴 아무나 들여놓지 않는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서재로 만들고 싶네요. 횔덜린씨, 3층만 세 좀 놓지요? ㅋㄷㅋㄷ

검둥개 2006-05-28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진주님! 계획이 너무 멋지십니다. 이참에 그럼 저랑 같이 임대하시죠. ^.^
저도 삼층방에 그렇지 않아도 눈독을 들이구 있던 참이었걸랑요.

어머 올리브님, 이게 얼마만여요!!! (와락, 부비부비)
잘 지내셨지요? 정말 2006년도 반이 지났다니 믿기지 않어요.
ㅎㅎ 저는 올리브님과 진주님이 함께 하얀 린넨 원피스를 입고 맨발 차림으로 독서하시는 모습을 상상해봅니다. 너무 멋있어요 헤헤.

로드무비 2006-05-29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껌정 박스티에 회색 추리닝이야요.^^

검둥개 2006-06-05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리브님 로드무비님, 저와 선호도가 비슷하시군요.
전 회색 추리닝 반바지에 낡은 티셔츠요 ^.^
 

지옥에서 한 철  (유용주)
이상기에게

때론 하찮은 열정이
삶을 이끌어나간다네
어젠가 그젠가 노래방에 가서
새벽 두시까지 악을 썼다네
화장실에서 들었는데 각 방에서 부르는 노랫소리가
지옥에서 몸부림치는 귀신들의 울음소리로 들렸어

사는 것이 곧 지옥이야
(누가 그랬더라 정들면 지옥이라고)
지옥 한 귀퉁이 사글세 들어 라면을 끓이는 사람아
소주는 충분히 받아놓았는가

내 그리 곧 가겠네
밤새워 한번 취해보세나

 

유용주,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짐>, 17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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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문 (권혁웅)



오래 전 사람의 소식이 궁금하다면

어느 집 좁은 처마 아래서 비를 그어 보라, 파문

부재와 부재 사이에서 당신 발목 아래 피어나는

작은 동그라미를 바라보라

당신이 걸어온 동그란 행복 안에서

당신은 늘 오른쪽 아니면 왼쪽이 젖었을 것인데

그 사람은 당신과 늘 반대편 세상이 젖었을 것인데

이제 빗살이 당신과 그 사람 사이에

어떤 간격을 만들어 놓았는지 궁금하다면

어느 집 처마 아래 서보라

동그라미와 동그라미 사이에 촘촘히 꽂히는

저 부재의 주파수를 맞춰 보라

그러면 당신은 오래된 라디오처럼 잡음이 많은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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