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검둥개 헌책방 (검둥개 서재) &gt; 한국소설</title><link>http://blog.aladin.co.kr/blackdog/category/906728</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삶이란,버선처럼 뒤집어볼수록 실밥이 많은 것 / 안도현</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Wed, 22 Apr 2026 10:32:32 +0900</lastBuildDate><image><title>검둥개</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t_765787154316457.jpg</url><link>http://blog.aladin.co.kr/blackdog/category/906728</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검둥개</description></image><item><author>검둥개</author><category>한국소설</category><title>너와 나의 적당하고 평균적인 사악함 - [친절한 복희씨]</title><link>https://blog.aladin.co.kr/blackdog/5874804</link><pubDate>Mon, 24 Sep 2012 06:2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blackdog/587480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18146&TPaperId=587480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98/80/coveroff/893201814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18146&TPaperId=587480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친절한 복희씨</a><br/>박완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0월<br/></td></tr></table><br/>작가 박완서의 글을 읽는 일은 즐겁고 거북스럽다. 주인공들도 등장인물들도 악질스럽다고까지는 할 수 없으나 다분히 위선적이고 사악하다. 그런데 그 위선과 사악함은 바로 우리 자신들의 평균적 사악함이다. 예전에는 사악한 인물이 나오는 이야기들을 읽으면 마음이 뛰었다. 한국은 모름지기 착함과 예절바름, 그 같은 모든 미덕을 숭앙하는 사회가 아닌가. 그런 사회의 압력에서 자유로운 사악한 인간들에 대해 읽으며 나는 글 속의 반동스런 기운이 불러오는 자유에 내 소심한 코를 벌름거리곤 햇다. 하지만 이제는 잘 모르겠다. 그런 주인공들의 사악함의 얼마만큼이 과연 주인공 자신들의 본성에서 오는 것인지를. 이 책에 실린 박완서 단편들 속 주인공들의 사악함은 대부분 사회가 개인들에게 부과하는 외부적 규범에서 유래한다. 사악하려고 해서 사악해진 것도 아니고 사악하지 않으려고 애쓰거나 사악하다는 자의식이 대단한 것도 아닌 인물들의 그저 일반적 생활인의 처세에 걸맞을 만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딱 그 정도의 사악함. 평균적이고 적당히 조절된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는 딱 그만큼의 사악함. 책 말미에 김병익이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을 노년문학이라고 분류하는 것이 그래서 나는 좀 못마땅했다. 이런 종류의 평균적 사악함은 어느 연령에서나 찾아지는 것이 아니던가. 책을 읽으면서 부처님 손바닥 안의 원숭이처럼 나는 나 자신의 사악함에 대해서 생각했다. 한 때는 제법 독창적이 아닐까 혼자 착각도 했던 스스로의 사악함의 사회적 근원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내내 면구스러웠다. <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98/80/cover150/893201814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988059</link></image></item><item><author>검둥개</author><category>한국소설</category><title>왜 박선생님은 동구를 술자리에 데려가셨나? - [나의 아름다운 정원]</title><link>https://blog.aladin.co.kr/blackdog/896130</link><pubDate>Wed, 14 Jun 2006 01:4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blackdog/89613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4310743&TPaperId=89613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56/coveroff/898431074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4310743&TPaperId=89613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나의 아름다운 정원</a><br/>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07월<br/></td></tr></table><br/>일단 첫 장을 넘기면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재미있는 소설이다. 한씨네 집 아들 동구는 삼대독자임에도 불구하고 손자를 어여삐 여겼다가는 자칫 며느리와의 기세 싸움에서&nbsp;열세에 몰릴 것을 두려워한 할머니에게 매일 구박을 받는다. 게다가 동구는 난독증이 있어서 잘 쓰고 읽지를 못하는데, 그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아버지는 동구를 철퍼덕 철퍼덕 때린다. 할머니는 숨은 고기점을 꺼내려고 밥상의 김치찌게를 젓가락으로 엉망으로 헤집어놓는 충청도 과부 할마씨,&nbsp;&nbsp;아버지는 자기 어머니가 며느리에 대한 불만을 말할 때마다 아내의 말을 들어주기는 고작하고 못배운 당신이 뭘 알아, 로 시작했다가 수가 틀리면 집안의 물건을 집어던지고 심지어 아내를 때리기까지 하는 외국계회사 직원이다.&nbsp;어머니는 요리솜씨 하나로 시집오자마자 시어머니를 부엌에서 당당히 몰아냈고 집에서도 제과점 것보다 더 맛있는 카스테라를 만들 줄 아는 요리의 대가다. &nbsp;이런 혼란의 도가니에 영주가 태어난다. 동구의 여섯살 아래 동생인 영주는 식구들 모두에게 특별한 존재다. 
동구 왈, "나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먹통이고, 엄마나 아버지도 가끔 벽창호 같아 보일 만큼 고지식한 사람들이고, 할머니로 말하자면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도 너무 바쁜 사람이어서 영주가 존재하기 이전에 우리 식구들은 아무도 서로에게 애정을 표현한 적이 없었다.그런 우리 식구들 틈에서 영주같이 표현력이 풍부한 아이가 태어났다는 것은 누군가 허튼소리 잘하는 사람의 얼토당토않은 농담 같은 일이었다. 영주의 갑작스런 행동을 처음 접했을 때 우리 식구는 모두 몹시 당황했다. 그리고 곧 그 신기한 행동에 걷잡을 수 없이 매료되었다." (23-24) 한 살 짜리 영주의 재주란 누군가가 자신을 안아줄 때마다 손으로 업어준 사람의 어깨나 팔을 토닥토닥 어루만지는 것이었다. 심지어 남아선호사상에 깊숙이 물든 악다구니 욕쟁이 할머니마저도 영주를 사랑한다. 
하지만 영주 덕택에 가정에 뭔가 화목 비슷한 것이라도 깃들이는가 싶던 시간은&nbsp;거짓말처럼 급작스럽게 끝이 나고 만다. 오히려 대사건 이후 엄마와 할머니 간의 골은 더이상 깊어질 수 없이 패여서 급기야 엄마는 병원으로 그 후엔 외가로 가버리고 만다. 할머니는 할머니대로 며느리에게 한 치도 양보할 태세가 아니라, 아버지는 패잔병처럼 추레한 몰골이 된다. 동구는 자기 한 몸 던져 이 문제를 해결하기로 한다. 불로소득처럼 주어진 해결책을 무기력해진 아버지는 선뜻 받아들인다. 
동구는 성장소설에 종종 등장하는 저 너무 일찍 세상물정을 다 깨달은 그래서 아이답지 않게 시니컬한 태도를 지닌 조숙한 아이가 아니다. 동구는 어리숙하지만, 식구들에 대해서 알 건 다 알고, 문제의 핵심도 나름대로 파악하고 있지만 별다른 해결책이 없으므로 그냥 입을 다물고 마는, 순진한 소년이다. 세상에 이렇게 착하기만 한 아이가 어디 있어? 라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세상의 모든 아이들 속에는 동구가 살고 있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나서도 한가지 의문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동구가 존경하고 흠모해마지 않은 박선생님은 왜 대학 선배와 그 선배의 선배인 주리 삼촌을 만나는 토요일 저녁, 그 대포집에 동구를 데려갔을까? 대포집에서 일어난 동구의 주정은 가히 이 책의 클라이맥스를 이루는데, 이 의문이 풀리지 않아서 나는 내심 마음이 찜찜했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박선생님은 이미 학교를 떠날 결심을 하고 서울에 머무르는 마지막 날 자신의 애재자 동구를 보고 가기로 한 것이었던 모양이다. 아, 이걸로 다 설명이 된다. 얼마나 마음이 후련한지!
"선생님 울지 마세요! 선생님은 아무 잘못이 없어요! 바지를 다려 입은 것이 무슨 잘못이에요? 자기가 뭐라고 선생님 이름을 함부로 부른대요? 저 사람이 나쁜 거에요. 울지 마세요. 내가 크면 가만 두지 않을 거에요. 선생님, 울지 마세요!" 
시국에 분노하면서 저항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심각한 선생님 앞에서,&nbsp;빨대로 빨아 마신 술과 고등어 안주 냄새에 속이 울렁울렁하던 동구는, 대학시절 선배에게나 선전 문건이나 빨리 빨리&nbsp;배달하지는 않고 집에 가서 그 시간에&nbsp;면바지 따위를&nbsp;다려입고 왔다고 힐난을 받았다는 선생님을 옹호하며,&nbsp;이렇게 계획에 없이 그만 사랑고백을 하고 만다. 사대문 안으로는 탱크가 들고 장기집권한 독재자가 암살된 후 또다른 군부독재의 서막이 올라가기 직전 그 짤막하고도 긴장되던 시절, 동구에게 중요한 건 잘 이해되지 않는 정치가 아니라 글도 잘 읽고 쓰지 못하는 자신을 아껴준 사랑하는 자신의 선생님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다. 삶이 정치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가 삶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BR><BR>왜 박선생님은 동구를 술자리에 데려가셨나?<BR>동구 같은 아이가 사는 사회엔 군부독재가 아니라 민주주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셨겠지!]]></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56/cover150/898431074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5661</link></image></item><item><author>검둥개</author><category>한국소설</category><title>God is in details - [오래된 정원 - 상]</title><link>https://blog.aladin.co.kr/blackdog/895310</link><pubDate>Mon, 12 Jun 2006 16:2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blackdog/89531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3369&TPaperId=89531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3/1/coveroff/893643336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3369&TPaperId=89531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오래된 정원 - 상</a><br/>황석영 지음 / 창비 / 2000년 05월<br/></td></tr></table><br/>한 삼십여 페이지 가량 읽어가던 중 예전에 이미 읽었던 책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나는 좀 충격을 받았지만 소설 속에서 여전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기억할 수 없었으므로 계속해서 읽어내려갔다. 일단 예전에 읽었던 책이라는 기억이 회복되자, 책을 읽는 내내 왜 이 책을 읽었던 기억이 그렇게 까맣게 잊혀졌는지, 왜 이 책을 처음 읽고 이렇다할 인상을 받지 못했었는지를 계속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래도 책이 나올 당시에 후일담 소설이 붐을 이루었던 만큼 다른 동종 소설과 크게 달라보이지 않았을 테고, 게다가 도피중인 정치범과 그를 숨겨주다 사랑에 빠지는 여자, 라는 식의 이야기가 진부하게 느껴지기도 했을 것이다.
다시 읽어보니, 이번엔 의외로 과거에 눈을 두지 않았던 부분에 관심이 쏠렸다. 자연경관의 변화를 묘사한 무척이나 서정적인 문장들이라든가, 감옥에서의 생활처럼 소소하고도 구체적인 일들의 언급 (독방 창문으로 철사줄을 내어 비둘기를 잡아 뺑기통 위에서 삶아 먹는 일, 드나드는 쥐라도 애완동물로 만들려고 애를 쓰는 죄수들, 단식과정에서 변화하는 감각경험 등), 그리고 먹는 음식 이야기들. 디테일. 
황석영이 이 시대의 다른 작가들과 구분된다면, 그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그의 작품 속에 담긴 시대와 역사에 대한 의식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소설의 완성도와 감동은 소재의 역사성만으로는 얻어지지 않는다. 등장인물들의 파리하고 몰개성적인 성격은 적이 실망스러웠다. 오현우, 한윤희, 송영태, 최미경. 그들은 모두 80년대를 대표하는 전형적인 인물들이기는 하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소설 속에서 그들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인간들이 아니고, 그냥 유신에 반대한 젊은 청년, 학생운동에 동조적이었던 빨치산의 딸, 부르조아 출신의 학생운동권, 노동운동에 투신하는 젊은 여대생이었다. <BR><BR>역사가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그것이 우리와 같은 인간들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학생운동 전략을 유창하게 토론하는 소설 속의 인물의 말빨에 반하지 않고,&nbsp;광주사태 비디오를 보고 수배자를 도피시켜주다가 사랑하게 된 사연, 그 남자가 무기수로 징역을 가버리게 된 사연에 자동적으로 감동하지 못한다. 
우리가 감동하는 건 소설 속의 인물이 우리에게 사소하게 말 걸 때다. 이를테면 이런 부분에서. 해방정국 좌익 지식인이었던 한윤희의 아버지가 열차 안에서 우연히 만났던 민청 소속의 젊은 여학생을 다음해 데모에서 다시 만나 스치며 이렇게 사과할 때: "지난번에 땡감 먹인 걸 사과하오. 난 정말 몰랐어요" (155) 새벽 세 시에 서울역에 도착하자 서울이 온통 비상경계 상태여서 동이 틀 때까지 아무 곳으로도 갈 수 없었고,&nbsp; 학생과 아버지는 어쩌다가 여인숙 방에 함께 가게 되었는데, 불을 켜놓고 우두커니 마주 앉아 있다가 아버지는 학생에게 시장기나 떼우라고 인절미며 감을 내주었단다. 그런데 여학생이 감을 아주 조금씩만 떼어먹더라는 거였다. 아껴먹느라 저러나 해서 아버지는 감 하나를 더 내어주고는, 화롯가에서 그만 졸았는데 깨어보니 여학생은 이미 가고 없더란다. 나중에 집에 와서 감을 꺼내 먹어보니 떫기가 얼마나 떫은지 뱉아버리고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는데, 새댁이던 아내가 웃으면서 그건 땡감이라 햇빛에 익혀 먹거나 소금물에 담가두었다 먹어야 하는 거라고 설명을 해주었다고. 
현대건축가 미에즈 반 데어 로에는 신은 세부에 존재한다고 말했다. <BR>디테일, 그것이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다. 역사의 디테일이건, 사랑의 디테일이건, 배신의 디테일이건.&nbsp;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3/1/cover150/893643336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30139</link></image></item><item><author>검둥개</author><category>한국소설</category><title>너의 자서전  - [국자 이야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blackdog/893623</link><pubDate>Fri, 09 Jun 2006 15:3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blackdog/89362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2819185&TPaperId=89362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53/5/coveroff/898281918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2819185&TPaperId=89362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국자 이야기</a><br/>조경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br/></td></tr></table><br/>&lt;불란서 안경원&gt;을 읽은 후, 나는 조경란의 열혈팬이 되기로 했다. 단편 "환절기"의 마지막 장면을 기억하는가? 출렁이는 무거운 바께쓰를 이고지고 가 남의 집 대문 앞에 늘어선 푸른 화분에&nbsp; 김이 펄펄 끓는 물을 쏟아붓던 주인공. 터널처럼 어둡고 길고 음습하던 한 시절을 다시 보듯, 나는 오싹한 동질감에 사로잡혔다. 삶이 끔찍한 것은 누구에게나 대개 마찬가지다. 그러나 누구는 목을 매고, 누구는 케세라 케세라 하며 살아간다. 여기에 그 들여다보기 섬&#52255;하고&nbsp;또 지긋지긋한 끔찍함을 오랫동안 응시해온 작가가 있다. 
조경란을 생각할 때면 이제는 중년이 된 작가 오정희를 함께 떠올리게 된다. 철저한 절망이라는 친연성이 그들의 소설 사이에 있다. 오정희도 조경란도 읽기에 쉬운 작가는 아니다. 그들의 문체가 아름답고, 그들 소설의 구성이 치밀하지만, 문장과 기교가 그들의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조경란의 소설 대부분은 일인칭이며 그들의 경험은 쉽게 작가의 추체험으로 읽힌다. 소재의 새로움이란 루이제 린저에게처럼 조경란에게도 별 의미가 없는 개념이다. 그들 소설의 가치는 진정성과 치열함에 있다. 진정성과 치열함은 상상력이나 쿨함처럼 지어낼 수 있거나 따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일상 속의 권태를, 삶의 지리멸렬함을, 생존의 끔찍함을, 나와 타인이라는 지옥을 눈이 빠지도록 들여다보는 데서 얻어지는 단 한 줌의 성찰이다. 
무엇에 대해 우리는 성찰하는가? 삶은 우리로 하여금 무엇을 성찰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가? <BR>딱 두 가지로 요약하자면, 그것은 나와 타인의 관계, 사랑과 증오다. 
진부하다고? <BR>인간의 진실이 거주하는 장소는 원래 그렇게 진부한 법이다. 지방소도시의 먼지 뒤집어쓴 여인숙처럼.
&lt;국자 이야기&gt; 속 단편들은 &lt;불란서 안경원&gt; 속의 단편들보다 구성이 느슨하고 문장의 무게와 밀도가 덜하다. 분노와 적의로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뜨거운 백열전구 같던 주인공들은 여전히 '나'를 탐구한다. 그러나 그 탐구는 &lt;국자 이야기&gt; 속에서 훨씬 더 유연하고 여유로운 방식으로 전개된다. 물론 비교의 대상이 남의 집 식물에 펄펄 끓는 물을 부어 죽이는 종류의 인물이던 것을 고려하면, 그 "훨씬 더 유연하고 여유로운 방식"이라는 것은 여전히 이를 악물어야 간신히 수행할 수 있는 정도의 고된 노동을 수반한다. 이를테면 조경란 소설의 원체험이라고 할 수 있는 가족과의 불화, 가족의 붕괴는 "잘 자요, 엄마"의 주인공에게서 제어할 수 없는 거미공포증에 비견된다. 그 공포증을 극복하기 위해 주인공은 행동치료를 시도한다.
"나의 가족은 이제 거미가 되었다. 작게 나와 있는 가족사진을 들여다보았다. ... 나는 내 왼팔에 아버지를 올려두고 동생은 오른팔에 조카는 어깨 위에 죽은 막내동생은 내 가슴 위에 올려두고 그리고 엄마는 내 머리 위에 올려두었다. 그들이 내 몸 위를 걸어다니고 나를 만지고 핥고 내 눈물을 닦아 주었다. 공포는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으나 나는 후퇴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반복하곤 했다." ("잘 자요, 엄마" 135)
절망에서 치유로 행동과 깨달음으로 &lt;국자 이야기&gt;의 주인공들은 아주 작은 발걸음을 내디딘다. 그 작은 발걸음은 물론 늘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좁은 문"에서의 금박의 메타포가 사용되는 방식엔 조금 작위적이란 느낌이 있고, "입술"의 구성은 독자에게 상당한 혼란을 안겨주며, "돌의 꽃"의 박쥐남자라는 소재엔 확실히 어색한 감이 느껴진다. 그러나 이는 전진과정에서의 시행착오로 보인다. 나는 법을 배우려면 걷는 연습부터 해야 하는 것이다. 다행히 조경란에겐 날고 싶은 욕망과 날아오르려는 의지가 있다. 
"그러고 보니까 당신, 아무 말도 안 했구나, 내 얘기만 했네. 미 미안해. 하지만 이 이게 내 이야기의 끝 끝은 아 아니야. 난 한 번도 모 못 해본 마 말들이 너 너무나 많아. 이 이제 나는 인생이 너무나 노 놀랍고 신비로워서 입 입을 다물고 있을 수가 없어. 내 시 심장 소리는 내가 모 못 듣는 거잖아. 호 혹시 사람들이 말하고 싶은 건 하 한 가지가 아닐까. 한 한 가지 비 빛깔처럼 말이야. 가 가까이 다가오는 사 사람한텐 자 자리는 내주는 거야. 내가 마 말을 하는 건 다 당신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야. 말을 해. 말을 안 하면 귀 귀신도 모르는 거야. 말 말을 하지 못하면 살아도 주 죽은 거야. 말을 해, 사 사랑이 사라지거나 혹은 죽거나 아 아주 자 잠들지 않게끔. 나 나는 정말 마 말을 자 잘하는 사 사람이 되고 싶 싶었는데. 당신, 나 나를 좀 쳐 쳐다봐. 내게 마 말해줘, 다 당신에 과 관한 것. 자, 이 이젠 다 당신 차 차례야." ("입술" 223-224)<BR>&nbsp;<BR>작가후기에서 이런 구절을 읽고 나는 그만 눈물이 핑 돌았다. "어떤 장엄한 나무 한 그루를 만나게 될 때, 나는 나의 일부가 그 나무 속으로 서서히 미끄러져들어가는 것을 느낀다. 사랑하는 대상으로부터 분리되는 것, 분리할 줄 아는 힘, 아마도 나는 그런 것을 원했던 것 같다. 저항과 흥분과 체념과 냉담 사이를 왔다갔다하며 다시 걷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이 불완전하며 변덕스럽고 위협적인 세계를 만질 수도 입을 수도 껴안을 수도 없는 이 연약한 언어가 과연 어떻게 그려낼 수 있는지. 나를 표시해줄 수 있는 어떤 점 하나 같은 게 저 길 끝에 정말 있을지." (292)
이런 작가에게라면 좀더 많은 열혈팬들이 있어도 좋지 않을까?<BR><BR>내게 말해줘, 당신에 관한 것, <BR>&lt;국자이야기&gt;는 드디어 그렇게 말할 수 있게 된 작가가 '나' 아닌 '너'에 대해 쓴 自敍傳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53/5/cover150/898281918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530564</link></image></item><item><author>검둥개</author><category>한국소설</category><title>시시덕거리며 재밌나게 읽어요 -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title><link>https://blog.aladin.co.kr/blackdog/893527</link><pubDate>Fri, 09 Jun 2006 13:2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blackdog/89352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10862&TPaperId=89352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9/89/coveroff/893201086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10862&TPaperId=89352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a><br/>김영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07월<br/></td></tr></table><br/>책장을 재빨리 넘기다가, 십 년 전, 친구네 하숙방에서 &lt;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gt;는 김영하의 첫 장편소설을 읽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그 때 내 심기에 그토록 거슬렸던 한 가지 사실도. 주인공의 이름이 미미가 뭐냐! 그러나 이 책은 생각보다 훨씬 잘 읽혔다. 잘 읽었다. 십 년 전의 실망은 없었다. 
십 년 전이면&nbsp;한창 오렌지족이라는 말이 유행할 때였다. 그 때만 해도 김영하 역시 젊디 젊은 작가였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를 오렌지족 작가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실은 그의 정체성은 어쩌면 양아치 쪽에 가까웠던 걸까? 
"죽어라고 학교 다녀봐야 대학 갈 팔자도 아니고, 국으로 있는 놈만 병신이다. 선생들은 패지, 애들은 쪼지, 주먹으로 못 잡을 바에야 뜨는 게 장땡이다. 대학 못 샀다고 어이고 불쌍한 내 새끼 하면서 카페 차려줄 재산이 있기를 하나, 그저 밖에서 구르는 게 집도 좋고 지도 좋은 거지. 부모들만 애들이 돌빡인 줄 안다. 우리도 눈치로 다 때려잡는다. 다 지 갈 곳을 알고 그쪽으로 흘러가면서 구겨지는 거다." ("비상구", 167-168) 
이건 안목 있는 시대 통찰도 아니고, 삶과 사회에 대한 심오한 깨달음도 아닌, 동네 양아치, 삐끼, 날라리들의 평균적 상황인식에 불과하다. 
"너무 늦었다. ...&nbsp; 앞만 보고 달렸다. 발 밑으로 기왓장 부서지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두두두둑.&nbsp; ... 왜 이렇게 죽어라고 쫓아와? ... 다행히 타넘을 지붕은 얼마든지 있었다. 니미 씨팔이다." ("비상구", 187) 
이걸 멋지다거나 깊이 있다고 할 수는 없다. <BR>하지만 그렇다고 사실이 아닌 것도 아니다. <BR>오히려 보다 정확히 말해서, 이건 현실에 아주 유연하게 밀착된 사실이다. <BR>너와 내가 다 아는 사실, 너와 내겐 책임이 없는 사실, 너와 내가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사실. 
그래서? <BR>우리는 &nbsp;"하!", 하고 오 분간 입을 벌리고 감탄한다. 
나는 오늘 도서관 서가 앞에 서서 황석영의 &lt;오래된 정원&gt;이나 &lt;무기의 그늘&gt;을 들고 갈팡질팡하다가 결국 김영하의 이 소설집 한 권만을 빼들고 나왔다. 황석영을 읽으려면 왠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책장을 넘기기 전에 심호흡을 해야 할 것만 같았던 것이다. 김영하의 소설엔 그런 부담이 없다. 그의 소설은 술 마시고 밤중에 들어와서 잠들기 전에 혼자 보는 심야의 티비 단막극 같고, 삐까뻔쩍해서 밤에 들어서면 눈이 시리는 LG24에서 사 피우는 처음 보는 상표의 외제담배 같다. 적당히 흥미진진하고 적당히 통속적인, 바로 그래서 중독적인 단막극, 한 번 피우고 나면 그걸로 끝인 담배 한 대의 찰나적 위안. 
티비 단막극은 티비 단막극일 따름이고, 담배 한 대는 담배 한 대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매일 밤 티비를 들여다보다 잠이 들고, 담배연기를 뿜어올리며 하루를 보낸다. 그런 의미에서 김영하는 우리 대중을 위안하는 소설가다. 그의 소설은 저 위 별표들의 이름처럼 "상품만족도"가 높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우리는 걱정한다. 하지만 버스와 트럭이 부닥치는 와중에, 전화카드가 없어서,&nbsp;보고를 독촉하는 상관 때문에,&nbsp;자칫 생명을 위협당하고 있을지도 모를 타인에 대한 관심 같은 건 지키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심지어 그 사람의 발이 엘리베이터 문 사이로 대롱대롱 끼여서 시야를 가득 채울지라도! 정말이지 그건 여간&nbsp;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nbsp;집에 온수가 끊어지기라도 한다면야 더더욱!&nbsp;그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자, 이제 편한 잠옷으로 갈아 입고 리모컨으로 티비를 켤 차례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9/89/cover150/893201086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98952</link></image></item><item><author>검둥개</author><category>한국소설</category><title>좋은 작가 윤영수 - [착한 사람 문성현 - 창비소설집]</title><link>https://blog.aladin.co.kr/blackdog/823653</link><pubDate>Mon, 20 Feb 2006 12: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blackdog/82365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6449&TPaperId=82365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8/98/coveroff/8936436449_1.gif"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6449&TPaperId=82365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착한 사람 문성현 - 창비소설집</a><br/>윤영수 지음 / 창비 / 1997년 05월<br/></td></tr></table><br/>이 소설집을 읽고 가슴이 뛰었다. 각박한 현실을 다루는 작가의 시선이 거칠지만 푸근하고 따뜻했다. 기법의 세련됨이나 척-하는 멋은 없어도 각각의 단편이 작가와 같은 시간-공간대에 사는 독자의 경험과 교차하면서 울림을 남긴다. 이런 기쁨을 맛보려고 우리는 한편으로는 지겹다고 말하면서도&nbsp; 한국소설 읽기를 멈추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여덟편의 이야기가 실린 이 단편집에서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은 이야기는 "콩켸팥켸"였다. "콩켸팥켸"는 정신없이 뒤죽박죽인 된 상태를 일컫는 우리말이라고 한다. 오십이 다 된 중년의 주부가 친구의 말을 따라 모처럼 우아하게 혼자서 외식을 하러 나가기로 한다. 그래봤자 고른 날이라고는 남편도 아아들도 다 늦게 들어오는 그래서 혼자 빈집에서 찬밥을 먹는 날이다. 가는 곳도 무어 대단한 요리집도 못 되는 동네 한식집이다. 주부의 간이란 마음을 먹어도 좀처럼 커지지를 않는 것이다. 
그런데도 막상 옷을 차려입고 나가자니, 손지갑이 어디 갔는지 보이지를 않고, 열쇠가 눈에 띄어주지를 않는다. 거의 포기하다시피 하다가 간신히 아파트를 나와보니 이번에는 가스는 껐는지 그 다음엔 현관문은 잠갔는지 불안해서 다시 들락달락. 이젠 정말 끝이다, 라고 음식점을 향해 씩씩하게 걸음을 옮긴다 싶으니 왠걸, 소리가 이상하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새 원피스 아래로 발에 걸쳐진 것이 보라색 욕실 플라스틱 쓰레빠다.
소주 한 잔이나 담배 한 대에 인생무상이니 삶의 허무를 되는 대로 갖다붙이는 것이 우리네 흔한 치기이듯이, 이 단편 속 중년의 여주인공이 하루 저녁 혼자 용감하게 해보기로 한 외식에도 뭔가 야무지고 똘똘한 인간이 되어보겠다는 결의라거나 갑자기 어디에서 솟아났는지 모를 용기나 투지처럼, 거의 허황되어 보이지만 그래서 오히려 나름대로 더 절절한 오만가지 의미가 스며들어 있다. 그런데 이 외식에 보라색 쓰레빠가 왠 말인가.
뒤죽박죽이 된 상황은 그러고도 한참을 더 간다. 붐비는 저녁시간에 혼자 들어가 차지한 테이블에서 주인공은 곧 세 명의 남자와 합석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몰리고, 음식을 먹으며 공상에 잠기다가, 중년의 인생을 새롭게 시작할 거대한 사업계획, 폐백음식 장사를 구상하기에 이른다. 벅찬 가슴으로 계산대에 서고 보니 왠걸, 자신이 열심히 먹어댄 것이 사실은 합석한 사람들이 주문한 불고기가 아니었던가. 주머니에 돈이라도 넉넉히 있으면 실수였다며 돈이라도 내주면 그만이겠는데 여유라곤 없는 주부의 지갑에 그만한 돈이 있을리 없다. "참으로 걱정이었다. ... 앞으로 다가울 하많은 삶의 순간마다 하많은 일들을 얼크러뜨리고 황황해할 이 대책없는 여자를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나는 참으로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pp.152-153.) 이 단편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이 정신없이 얼크러진 세상이며, 머릿 속이며, 대책없는 자신이며가, 어찌 비단 중년주부의 문제이기만 할쏘냐. 이 단편이 형성하는 공감대는 그래서 단순히 건망증이 심각해진 중년 여인들을 훌쩍 뛰어넘는다. 세상 속의 모든 것들이 우리가 감당하기엔 너무 빠른 속도로 질주한다. 사는 데 필요한 것들이 어느 순간 일일이 다 셀 수 없을 정도로 증가한다. 시간을 영위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쓸려 익사할까 쩔쩔매며 매일을 산다. 모두가 다 칼 루이스가 되어도 모자랄 판인데 우리의 달리기 속도는 중고등학교 때 체력장에서의 그 백미터 기록에서 좀처럼 나아지지를 않는다. 그래서 이 단편을 읽으면서 나는 실소했고, 그러면서 마음이 편했고, 그러면서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이 다시 보였다. 이 정도면 하나의 단편을 읽고 얻을 만한 것은 다 얻은 것이 아닌가. 
이 책에는 "콩켸팥켸" 이외에도 7편의 단편이 더 실려 있다. "벌판에 선 여자", "해묵은 포도주", "알몸과 누드"는 한 장소에서 우연히 지나치는 세 사람의 이야기를 하나씩 쓴 것인데, 각각의 이야기가 긴밀하게 연결되지는 않아도 모두 읽고나면 세 단편으로 묶여 나타난 현실 속에서 독자는 역으로 시대를 보는 작가의 치밀한 눈을 엿볼 수 있다. "기사와 건달의 섬"과 "밍크코트가 된 고래"는 끝이 모호한 작품들이다. 문제적 현실은 작가의 손에 잡혔는데 다듬어진 각이 충분히 선명하지 않다고나 할까. 그러나 마지막에 실린 두 단편, "삼가 조의를 표함"과 "착한 사람 문성현"은 흔하지 않은 소재와 탄탄한 인물 설정으로, 왜 이 작가가&nbsp;주목받아 마땅한 신진인지를 보여준다. 
"좋은 작가 윤영수"는 문학평론가 최원식이 이 책의 말미에 실린 자신의 해설에 붙인 제목이다. 그 해설의 부제는 연옥의 탐구다. 부제의 의미는 나로서야 알 길이 없지만, 제목은 참 좋은 제목이 아닌가. 책을 읽고 난 독자로 하여금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니 말이다. 이 책의 작가 윤영수는 좋은 작가다, 라고.]]></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8/98/cover150/8936436449_1.gif</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89861</link></image></item><item><author>검둥개</author><category>한국소설</category><title>너무나 심상(尋常)한 비극 - [타인에게 말걸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blackdog/823463</link><pubDate>Mon, 20 Feb 2006 06:0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blackdog/82346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2810242&TPaperId=82346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9/1/coveroff/8982810242_1.gif"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2810242&TPaperId=82346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타인에게 말걸기</a><br/>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12월<br/></td></tr></table><br/>독자란 이상한 동물이다. 생각없이 읽으려고 골랐다가도 정작 소설이 그렇게 읽히면&nbsp;&nbsp;어느 순간 골을 낸다. 맛없는 과자인 줄 알면서도 입에 넣고서는 여지없이 실망해 부아를 터트린다고나 할까. 그럼 왜 알면서도 맛없는 과자를 입에 넣었을까? 그건 아마 즐거운 일탈을 위해서가 아니라 편재하는 지겨운 현실을 다시 보려는 목적으로 소설을 골랐기 때문일 터이다. 각 단편의 완성도라거나 문학적 성취도와는 무관하게 , 그것이 투영하는 현실의 얼굴을 잘 드러내는 소설집, &lt;타인에게 말걸기&gt;는 그런 책이다. 
이 소설집에 들어앉은 단편들 속 인물들은 모두 연애와 결혼, 사랑과 타인에 대해 성찰하는 중이다.&nbsp;결혼은 왜 하나, 누구와 하나. 왜 연애는 망가지고 결혼은 깨어지나. 사랑은 무엇이고 타인은 누구인가. 단편들 속의 인물들은 이런 질문들을 묻는다. 작정을 하고 이런 물음을 탐구하고 있다기보다, 그런 물음에서 싫어도 헤어나지 못하는 상황 속에 있다. 그들은 불행하고, 그 불행의 핵심에는 더이상 작동하지 않는 타인과의 관계, 보다 더 정확히 말해, 파국을 맞은 사랑이 있다.
어떻게 보면 얼마든지 극적일 수도 있는 소재인데도&nbsp;은희경의 단편들은 하나같이 숭늉처럼 밍밍한 맛을 낸다. 사랑의 파국, 그 진행과 경과를 묘사하는&nbsp;이야기들 속에서 은희경의 인물들은 행동하지 않는다. 그들은 사고하지도 않는다. 그들이 끊임없이 하고 있는 것은 오직 느끼는 것이다. 마치 인간존재의 모든 기능이 단순히 감수성 하나로 환원된 것처럼! 그러나 행동과 사고과 연결되지 않은 채&nbsp;고립된 감수성이란 얼마나 허약한 것인가. 
그 허약한 감수성이 낳는 행동들은 그래서 독자를 실망시킨다. "세번째 남자를 만날 것이다", 라는 의미가 불분명한 예감("그녀의 세번째 남자"), "그럼 잘 가"라고 차일 거라는 불안 때문에 미리 관계를 파기하기("특별하고도 위대한 연인"), "언니와 나는 다르다"라는 너무 지당해서 오히려 힘이&nbsp;빠져버리고 마는 깨달음("연미와 유미"), 사랑하는 남자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방기하는 것("짐작과는 다른 일들"), 문제를 알아채고도 '그냥' 사는 것("빈처"), 이혼한 남편의 새 아내를 만나느니 직장을 그만두는 것("열쇠"), 말 거는 타인 앞에서 방관자의 위치를 지키는 것("타인에게 말 걸기"), 욕망 앞에서 모호해지는 것("먼지 속의 나비"). 
심상(尋常)해서는 안 되는 좌절과 고통과 상처와 대처가 참으로 심상하다.
은희경의 인물들은 무기력하고, 자신이 야기한 고통과 좌절에는 사뭇 민감한 촉수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문제의 근원으로부터는 끊임없이 고개를 돌리거나 생각하지 않음으로써 적당히 타협한다. 그 타협의 결과는 안으로 검게 썩은 구멍이 난 감자처럼 구제불능의 상태에서 그대로 열중쉬어 상태로 서 버리는 것이다. 세상은 냉장고처럼 썩은 감자를 잘 보관해준다. 이 책 속의 단편들이 보여주는 현실과 그 속의 인간들의 모습은 그렇다. 그 앞에서, 이 책을 다 읽은 독자는 대체 무어라고 말할 것인가.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9/1/cover150/8982810242_1.gif</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90170</link></image></item><item><author>검둥개</author><category>한국소설</category><title>기록되는 삶 - [안녕, 레나]</title><link>https://blog.aladin.co.kr/blackdog/705671</link><pubDate>Sun, 10 Jul 2005 13:1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blackdog/70567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8537564&TPaperId=70567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52/85/coveroff/898853756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8537564&TPaperId=70567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안녕, 레나</a><br/>한지혜 지음 / 새움 / 2004년 11월<br/></td></tr></table><br/>서평 제목을 정하기는 참 힘들다.&nbsp;숙고 끝에 나는 "기록되는 삶"이라고 쓰기로 한다. 이 말이 아마도&nbsp;이 신예&nbsp;작가의 첫 단편집을 읽은 나의 소감을 가장 잘 요약하는 듯 싶어서.&nbsp;
이 책에 담긴 열 편의 단편이 다 한결같이 만족스럽고 맘에 쏙 들었다고 하면 필시 거짓말일 터이지만, 나는&nbsp;&nbsp;삼십이 조금 넘은 그러니까 뜨겁고 요란한 젊음의 터널을 막 지난 (그러나 여전히 아직 젊은) 작가가, 자신의 첫 단편집에서 이미 우리 일상의 다양한 부분을 골고루 건드린 것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그 일상이란 조금 지루하고, 조금 신산스럽고, 조금 희한하고, 조금 우습고, 그리고 조금은 쓸쓸한 것이다. 그래서 어찌 보면 별스러울 것 없는 소재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별스러울 것 없음이 바로 이 단편집에 진실의 힘을 불어넣어주는 듯 하다. 
물론 몇몇 소재는&nbsp;꽤 산뜻한 반면(호출),&nbsp; 어느 것은&nbsp;조금 진부하다 (안녕 레나/ 자전거 타는 여자). 단편의 구성도 몇몇은 인상적이며 흥미롭지만 (목포행 완행열차/ 햇빛 밝은), 어느 것은 주제가 뭐야 싶게 헛갈리기도 한다.(한마을과 두갈래 길을 지나는 방법에 대하여) 그러나, 이 책이 작가의 첫 단편집인만큼 나는 이 작가에 대한 성급한 비평보다는 즐거운 기대를 품기로 한다. 
책 말미에 평론을 단 이명원은 이 단편집에서 저자가 실업청춘시대의 군상을 잘 그려내고 있다고 한다.&nbsp;하지만 개인적으로 나는&nbsp;"목포행 완행열차"의 한 장면이&nbsp;이 작가의 잠재력을 더 잘 드러내는&nbsp;것 같았다.&nbsp;&nbsp;
"우리 엄마 그 허연 몸뚱이가 길 속으로 우어우어 울면서 뛰어가는데, 엉덩이도 동그랗고 젖통아리도 동그랗고 그 동글동글한 몽치들이 공처럼 사방으로 튀는데, 창피해서 막 울면서 쫓아가다가도 어떨 때는 그 하얀 몸뚱이를 보면 가슴 한켠이 서늘하니 쿵 내려앉아." ("목포행 완행열차" 중에서)
단번에 독자의 마음과 눈을 동시에 사로잡는 이 장면은 상황을&nbsp;소설 속으로 강렬하게 극화해내는 작가의 힘을 보여준다.&nbsp;"햇빛 밝은"에서&nbsp;교미하던 사마귀가 자동차에 뭉개지는 장면도 이와 유사하게 내게는 인상적이었다. 이 작가의 다음 작품집은&nbsp;독자들에게 또다른 어떤 즐거움을 선사할지&nbsp;기대해본다.&nbsp;&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52/85/cover150/898853756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528569</link></image></item><item><author>검둥개</author><category>한국소설</category><title>용서한다는 것 그리고 사랑 -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title><link>https://blog.aladin.co.kr/blackdog/672204</link><pubDate>Sun, 08 May 2005 03:1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blackdog/67220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1844299&TPaperId=67220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55/30/coveroff/897184429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1844299&TPaperId=67220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우리들의 행복한 시간</a><br/>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5년 04월<br/></td></tr></table><br/>지인에게 공지영의 신작소설을 읽었다고 했더니 이 작가를&nbsp;높이 평가하지 않는 그는&nbsp;시큰둥한 반응이었다.&nbsp;그냥 그렇게만 말했으니 망정이지 곧이곧대로 눈물 콧물 다 쏟으며 질질 짜며 읽었다고 했으면&nbsp;무지하게 민망할 뻔 했다. 읽기는 무척 빨리 읽었는데 읽고 나서는 감정이 복잡했다. 뭔가 신파에 속은 것 같기도 하고, 어쩌다가 그렇게 쉽게 무장해제가 되었는지도 영 모르겠고,&nbsp;무엇보다 그렇게 휘둘려서 읽은 책을 어떻게 평가를 하나 싶었다. 
인기작가라서&nbsp;그런지 이 작가의 작품들에는 몇가지&nbsp;편견들이 따르는 듯 하다. 나 자신도 개인적으로 이 작가의 과거 작품들에 대해 지나치게 감동/감상과 신파에 치중한다는 불만을 품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nbsp;눈이 팅팅 붓도록 울면서 읽은 이 책을 (그리고 그랬던 나 자신까지를)&nbsp;나는 수상스런 눈으로 보지 않을 수 없었다.&nbsp;이제 보다 냉정한 머리로 (그러나 역시 두 번 눈물을 찔끔하긴 했다) 재독을 마치고 이 책을 추천할 수 있어서 기쁜 마음이다. 
독자 입장에서 보기에 이 책의 미덕은 여러가지이다. 무엇보다도 이 소설은 가난과 범죄 &amp; 아동학대와 범죄와의 상관관계, 성폭력/강간과 그에 대한 가족 혹은 사회 단위에서의 무관심 및&nbsp;폭력,&nbsp;사형제도의 본질에 이르기까지&nbsp;정말로 많은 생각할거리를 제공하지만, 결코 그에 이론적 사변을 들이대지 않는다. 이 책의 주변적 등장인물들은 대개 전형적이지만, 그럼으로써 흔하게 널린 문제들을 소설 중간중간에 제기하는 역할을&nbsp;한다. 그리고&nbsp;소설 속의 여자들 특히, 가족소유 대학재단 덕에 교수직을&nbsp;꿰어찬 문유정과 전직 영화배우 출신으로 교수 아내가 된 문유정의 셋째 올캐 서리나/서영자는 일반적으로 그런 배경을 지닌 사람들에 대해 우리가 품을만한 예상을 벗어나며&nbsp;책읽기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주인공인 사형수 정윤수의 과거는 거의 주말드라마스러울 정도지만 작가의 치밀한 묘사력에 힘입어 현실성을 획득한다. 공지영의 문장들은 아름다우며 또 빨리 읽힌다. 
이 책은 상처, 증오와 불화,, 그리고 무엇보다도 용서와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소설에는 읽는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놓는 부분들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굳이 꼽으라면 나는&nbsp;가난한 노파가 자기 딸을 살인한 자를 용서하겠다고 구치소로 찾아와&nbsp;정윤수와 대면하는&nbsp;장면과, 문유정이 정윤수가 처형된다는 소식을 듣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자신을 강간했던 사촌오빠를 그리고&nbsp;강간당한 딸에게 등을 돌렸던 제 어머니를 용서해보려고 죽을 힘을 쓰는 장면을 들겠다. 사람의 인생을 지배하는 상처라는 것이 있다. 그런 상처는 무릇 네게 돌 던진 자를 용서하라, 따위의 어설픈&nbsp;경구로 쉽게 아물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nbsp;작가는 그런 종류의 상처라는 게 무엇인지를 소설에서 잘 그려낸다. 어설프고 쉬운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문유정의 어머니는&nbsp;끝내 딸에 대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줄 모르고,&nbsp;병원에서 죽음에 대한 공포에 떨고, 두 아들을 두 번씩이나 버린 정윤수의 어머니는 치매에 걸린 무의탁노인 신세로 발견된다. 
"착한 거, 그거 바보 같은 거 아니야. 가엾게 여기는 마음, 그거 무른 거 아니야. 남 때문에 우는 거, 자기가 잘못한 거 생각하면서 가슴 아픈 거, 그게 설사 감상이든 뭐든 그거 예쁘고 좋은 거야. 열심히 마음 주다가 상처 받는 거, 그거 창피한 거 아니야...... 정말로 진심을 다하는 사람은 상처도 많이 받지만 극복도 잘 하는 법이야.&nbsp; ....(중략)...&nbsp; 아는 건 아무것도 아닌 거야. 아는 거는 그런 의미에서 모르는 것보다 더 나빠. 중요한 건 깨닫는 거야. 아는 것과 깨닫는 거에 차이가 있다면 깨닫기 위해서는 아픔이 필요하다는 거야."
이것은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구절,&nbsp;나로 하여금 이 작가 특유의 감상성에 보다 너그러운 시선을 보내게 만들었던 구절이다.&nbsp;종종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던&nbsp;이 작가 작품들의&nbsp;감상성이 앞으로 어떤 식으로 변화발전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nbsp;마지막으로, 이 소설의 흠을 하나&nbsp;&nbsp;들자면, 소설 전반부에 문유정이 정윤수에게 감정이입되는 부분의 템포가&nbsp;지나치게 빨라&nbsp;독자에게는 되려 감정이입이 덜 되고 어색한 느낌을 준다는 정도이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55/30/cover150/897184429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553004</link></image></item><item><author>검둥개</author><category>한국소설</category><title>평범한 삶과 허리가 부러져 못 일어날 만큼 노력한 삶 -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title><link>https://blog.aladin.co.kr/blackdog/660418</link><pubDate>Sun, 17 Apr 2005 15:0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blackdog/66041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4311049&TPaperId=66041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2/77/coveroff/8984311049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4311049&TPaperId=66041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a><br/>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08월<br/></td></tr></table><br/>이 책을 완독하는 데 딱 두 시간이 걸렸다. 동네 커피점에서 읽기 시작했는데 웃음을 참을 수가 없어서 사람들 눈치가 보일 정도였다. 결국에는 책을 얼굴 높이에 들어올려 얼굴을 가려야 했다. 웃고 싶으면 이 책을 읽으시라.&nbsp;오피스텔 소설에 질려 한국소설 읽기를 중단한 이래&nbsp;실로 신선하고 즐거운 독서경험이었다. 
굳이 옥에 티를 잡는다면 주인공이 대학시절&nbsp;아르바이트 하는 부분과 그 때 짧게 만나서 헤어진 아름다운 여대생이 나오는 부분은 전체 소설의 전개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하는지가 모호하다는 정도. 주인공이 청춘시절을 회상하다 보니 빼질 수 없다 해서 등장하는 것 같기는 하지만, 전체 소설의 주제에는&nbsp;별 기여를 하지 않는다. 반면 주인공의 중고시절, 즉 삼미가 대활약(!)하던 시절이 나오는 부분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다음은&nbsp;가장 감명깊게 읽었던&nbsp;구절: (125-6페이지.)
"그날 밤 나는 새로운 사실 한 가지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그저 평범하다고 생각해온 내 인생이 알게 모르게 삼미 슈퍼스타즈와 흡사했던 것처럼, 삼미의 야구 역시 평범하다면 평범하다고 할 수 있는 야구였단 사실이다. 분명 연습도 할 만큼 했고, 안타도 칠 만큼 쳤다. 가끔 홈런도 치고, 삼진도 잡을 만큼 잡았던 야구였다. 즉 지지리도 못하는 야구라기보다는, 그저 평범한 야구를 했다는 쪽이 확실히 더 정확한 표현이다. 다시 말해 평범한 야구를 했던 삼미 슈퍼스타즈.&nbsp;&nbsp;
... ... 
6위 삼미 슈퍼스타즈: 평범한 삶. 
5위 롯데 자이언츠: 꽤 노력한 삶. 
4위 해태 타이거즈: 무진장 노력한 삶. 
3위&nbsp;MBC&nbsp;청룡: 눈코 뜰 새 없이 노력한 삶. 
2위 삼성 라이온즈: 지랄에 가까울 정도로 노력한 삶. 
1위 OB 베어스: 결국 허리가 부러져 못 일어날 만큼 노력한 삶.&nbsp;"
*평범성에 경의를. 프로되기에 반강제로 끌려가는 평범인들에게도 경의를.]]></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2/77/cover150/8984311049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27740</link></image></item><item><author>검둥개</author><category>한국소설</category><title>강력한 캐릭터, 허약한 플롯 - [그 남자네 집]</title><link>https://blog.aladin.co.kr/blackdog/651908</link><pubDate>Sat, 02 Apr 2005 16:5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blackdog/65190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752940&TPaperId=65190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52/25/coveroff/8972752940_1.gif"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752940&TPaperId=65190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그 남자네 집</a><br/>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04년 10월<br/></td></tr></table><br/>이 소설은 장단점이 있는 풍속세태소설이자 (여성의 경험을 여성 스스로의 관점에서 다룬다는 의미에서) 페미니즘 소설이다. '그 남자'와의 연애담은 그 사건이 일으킨 주인공의 의식세계를 드러내기 위한 장치일 뿐이어서 아슬아슬하고 안타까운 연애소설을 기대하는 독자들은 실망할 것이다.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 징그러울 정도로 솔직하게 자신과 주변인들을 관찰하고 기술하는 여성 캐릭터이다.&nbsp;박완서 소설에서 유사하게 반복되어&nbsp;등장함에도, 이 캐릭터는&nbsp;현재까지의 한국 소설에서는 여전히&nbsp;주목되는 인물상이며, 박완서의 문장은 이 강력하고 복합적 주인공 캐릭터를 피와 살을 갖춘 인물로 완벽하게 재현한다.&nbsp;&nbsp;반면 주변여성들은 상대적으로 일면적인 캐릭터로 남겨지며 그들간의 관계 역시 어긋나거나 부재하거나 한다. (e.g. 춘희와 주인공, 시어머니와 주인공) 그리고 이 어긋남과 부재는 의도적으로 계획된 것이라기보다는 작가의 주의소홀로 인한 것이라는 느낌을 준다. 
마지막으로&nbsp;소설적 완성도에 있어서는 플롯과 의미적 상징구조에 있어서의 느슨함이 무엇보다 아쉽다. 그 남자가 실명을 하게 되는 기이한 사건은 소설 전체를 아우르고 주제를 선명히 하나로 모으는 중심사건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데 실패한다.&nbsp;
결론적으로 주인공의 캐릭터와 이를 뒷받침하는 문장은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이지만&nbsp;플롯의 느슨함과 다른 여성인물들 및 그 남자의 인물탐구가 소홀히 된 점은 안타까운 약점이다.&nbsp;&nbsp;&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52/25/cover150/8972752940_1.gif</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522515</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