쭉 뻗은 팔이 공중에서 멈췄다. 필라테스. 퍼트리샤가 테이블을 위로 건넨 쪽지는 필라테스 수업에서 알게 된 여자가 쓴 것이라 했다. 안드레이 보로프코프의 아내. 퍼트리샤는 그냥 아는 사람일 뿐이라고 했지만, 명백한 거짓말이다. 살인 청부업자를 소개할 만큼 허물없는 사이라면 퍼트리샤는 보로프코프 부인에게 다른 민감한 정보까지 털어놨을 공산이 컸다. 이를테면 나를 써서 남편을 죽인 뒤에 떠나기로 계획한 목적지라든지.
"좀 어린 거 아녜요?" 베로가 물었다.나는 파스타를 찔렀다. "나 서른한 살이에요. 벌써부터 무덤에 한 발 담근 노인네 취급하기예요?""지난번엔 무덤에 두 발 다 들어가 있던데."
세월이 흐르면서 서서히 멀어지는 친구들을 나는 손 놓고 보기만 했다. 친구들 대신 스티븐을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혼할 때 스티븐의 친구들은 모두 그를 선택했다.
이혼한 후로는 뭘 먹어도 골판지 맛이다.
전화를 팍 끊었다. 그의 사타구니를 무릎으로 가격하는 것만큼 통쾌하지는 않은, 그저 유치하고 진부한 복수라는 건 인정하지만, 그가 말하는 도중에 전화를 끊을 때마다 내 마음 한구석이 조금이나마 밝아졌다. 시럽에 더럽혀지지도 않고 약속 시간에 늦지도 않은 아주 작은 한 조각(그런 조각이 남아 있다면 말이지만)이.어쨌거나. 그렇다고 내 기분이 괜찮아졌다는 뜻은 아니다. 괜찮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