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는 일에 길들여져 있다.
그에 비하면 나는, 내 자랑을 하는 건 아니지만, 지는 일에 길들여져 있다. 세상에는 내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산만큼있고, 아무리 해도 이길 수 없는 상대가 산더미처럼 있다. 그러나 아마도 그녀들은 아직 그런 아픔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당연한 일이지만 그런 것을 지금부터 굳이 알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녀들의 유유히 흔들리는 자랑스러운 포니테일과 호리호리한 호전적인 다리를 쳐다보면서 나는 하릴없이 그런 생각을 한다. 그리고 페이스를 지키면서 느긋하게 강변도로를 달린다. - P145
많은 물을 일상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행위인지도 모른다.여기서 ‘인간에게 있어서‘라는 것이 약간은 과장일는지 모르지만,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인 것처럼 느껴진다. 얼마 동안 물을 보지 않고 있으면 내가 무언가를 조금씩 잃어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든다. 그것은 음악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이 어떤 사정으로 오랜시간 음악으로부터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을 때 느끼는 기분과다소 비슷할지도 모른다. - P140
주어진 개개인의 한계 속에서조금이라도 효과적으로 자기를 연소시켜 가는 일, 그것이 달리기의 본질이며, 그것은 또 사는 것의 (그리고 나에게 있어서는 글쓰•는 것의) 메타포이기도 한 것이다. - P128
코너를 돌면 그들이 맞은편에서 하얀 숨을 내뿜으면서 묵묵히 달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 때도 있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이렇게 생각한다. 그만큼 혹독한 연습을 견뎌온 그들의 생각은, 그들이 품고 있던 희망과 꿈과 계획은 대체 어디로 사라져버렸을까 하고.사람의 생각은 육체의 죽음과 함께 그다지도 허망하게 사라져버리는 것인가, 하고, - P119
달리기뿐 아니라 습관을 들이고 싶은 중요한 것들에 모두 해당되는 얘기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빈틈없이 단련하는 것. - P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