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의 카프카 (상)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 / 문학사상사 / 200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는 모두 여러 가지 소중한 것을 계속 잃고 있어. 소중한 기회와 가능성, 돌이킬 수 없는 감정. 그것이 살아가는 하나의 의미지. 하지만 우리 머릿속에는, 아마 머릿속일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것을 기억으로 남겨두기 위한 작은 방이 있어."


무슨말 보다 그저 '하루키다운 소설'이다가, 이 책의 배경에 가장 잘 어울리는 색을 가진 문장일듯 하다. 비록 하루키를 읽고, 그와 어떤 방향이라도 소통을 하였고, 또 하고 있는 이들끼리만 통하는 문장이겠지만, 그 어떤 문장보다도, 이 책은 하루키스럽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하리라 느껴진다. 도대체 하루키다운게 뭐냐고? 글쎄, 뭐라고 말을 해야 하지?

내가 느끼는 하루키의 하루키스러움은, 자기만의 내면속에 웅크리고 있는, 좀처럼 나오지 않는 그런 연기(煙氣)들을, 직접적으로든, 아니면 메타포를 통해서든 참으로 묘한 내면의 울림을 통해 표현함에 있다. 누구든지 생각하곤 하는, 나만의 진지함과 내 주변의 진지함. 그 세계의 진지함. 그 진지함의 갈퀴로 사람들의 마음속 찌꺼기들을 여기저기 긁어주는데서 느끼는 신선함과 상쾌함을. 난 그것을 하루키 소설이 던져주는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다 좋은데 말이지, 그의 인물들은 정말 지나치게 진지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 무슨 한마디 한마디가 그렇게 진지할 수 있지? 평상시에 우리의 대화가 그렇게 진지한 것이었나? 가식같단 말이지."

분명,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자신만의 진지한 내면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무슨 고민과 생각이 있어도 당신을 만나서는 그저 시시콜콜한 이야기만 늘어놓다가, 다음을 기약하며 한숨으로 헤어진다. 그 한숨을 바라보라. 우울하고, 고민이 있고, 삶이 고달프고, 또는 사랑에 빠졌을 때,.그때 우리가 절실히 바라는 바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털어놓고 싶은 심정이다. 이 가슴속에서 썩어문드러지고 있는 감정을 아무데나 휙!휙 던져버리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이렇듯 우리는 평상시의 얼굴이라는 봉투속에 이 썩어가는 감정들을 하나, 둘 쌓아놓기만 한다. 하지만 더이상 그 평상의 얼굴이라는 봉투속의 감정들이 넘칠무렵, 그 악취가 자신의 사위를 감싸고, 터지기 직전에 이르러서야, 그제서야 울며불며 외친다. "나.. 괴롭다니까!!"



우리는 감정을 드러내는 데에 어떤 '격식', '의식'을 차리려고 한다. 사실, 소설속의 인물들이 그 진지함을 전혀 방해받지 않고 술술 내뱉을 때, 오히려 그 원활함에 하지 않아도 될 고민과, 상처를 받을지 모르지만, 우리처럼 가슴이 미어 터질때를 기다리는, 즉, 어떤 "때"와 어떤 "격식"을 차린다는 것은 가식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마주보는 서로가 상대의 얼굴에서 고민의 자취를 느끼고 있을때, 그럼에도 어떤 격식이 터뜨려지지 않음을, 그 폭발을 기다리는 것은, 알고도 모르는 척. 그게 사실 진정한 가식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루키 소설의 인물은, 결코 가식적이지 않다. 그래도 껄끄로워 보인다면 가식적인 우리의 모습을 비웃는 것 같은 그들에게서 느끼는 어떤 불편함이다. 

지금 나 자신을 보고 있는 나 자신이 진지하고,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내가 진지하고, 필사적으로 먹이를 달라 조르는 금붕어도 진지하고, 저기 끓고있는 라면 또한 진지하다. 그 무엇도 자신의 진지함을 숨기려 하지 않는다. 하루키의 인물은 우리의 내면에 뭉쳐져 있는 진지함들을 그저 밖으로 끌어내온 죄밖에 없다. 

<해변의 카프카>는 그런 소설이다. 숨기지 않고, 나를 드러내며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다만, 이 <해변의 카프카>의 세계는 진지한 사실성속에 비사실성 - 비현실성을 가지고 진행한다. 그 비현실성이 가지는 메타포의 의도야 이해가지 않는바가 아니지만, 분명 실제의 삶을 배경으로 전개하는 데 있어서는 다소 부조화가 일지 않을 수 없다. 이건 SF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이외수"씨의 초기작들이 도인의 세계와 지금의 세계를 한데 혼합하여 마치 현실인양 표현하는 것처럼, 현실과 비현실이 공존할 수도 있다. 더군다나 이외수씨 소설을 SF라 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건 조금 다르다. 그 책들은 신비적인 또는 도가적인 내음을 소설전반에 퍼뜨리며 서서히 그런 세계를 드러내는데 비해, <해변의 카프카>는 마치 현실인양 그려놓고 도저히 알 수 없는 일들의 연속으로 폭격을 퍼붓는다. 대체 환상주의 소설도 아니고, 사실적이라는 하루키의 소설이 왜 이런거야? 이거 무슨 소설이야? 분명 나도 그건 느끼면서 읽었다. 도저히, 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허무맹랑한 구조로 나아가는 이 소설의 발자욱들을 분명 나는 느끼고 있었다.

내가 하루키의 소설을 즐기는 이유중의 하나가 리얼리즘이라는 것은 말한바 있다. 하지만 내가 즐기는 그 현실성은 하드보일드도 아니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묘사력의 화려함도 아니다. 내가 즐기는 리얼리즘은, 뻔히 아닌줄 알고 있는데도, 그래야 하는곳이 그곳에 있고, 마땅히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나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뻔뻔한' 하루키의 진행법이다. 나는 이렇게 비현실도 현실처럼 읊어내는 하루키를 즐기는 것이고, 그래서 굳이 따지지 않는다. "아니 KFC할아버지는 통닭 이제 안팔아요?", "거기, 별장이 어딨지? 대체 그런 숲이 어딨어?" "거기 천국이야? 버뮤다야? 말도안돼."



이 책을 하루키의 가장 위대한 소설로까지는 보지 않지만, 하루키로서는 괜찮은 소설 하나 썼다는 생각을 한다. 분명, <상실의 시대> 만큼 사람의 마음을 끄집어 당기지는 못했고,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만큼의 충격도 주지 못했다. 하지만 이 둘을 절충했다고나 할까. 이 두 작품의 장점들을 섞어 놓았다는 생각은 문득 들었다.

즉, 이 <해변의 카프카>는 그저 하루키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기 보다는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하루키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자기의 마음에 동시에 두고 있는 사람이 즐길 수 있는 소설이라고 본다. <상실의 시대>만을 떠올리며 보는 이는, 이 복잡하고 기이한 배경에 거부감을 느낄터고,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만을 떠올리며 보는 이는, 이 소설의 밋밋함에 실망감을 금치 못할 게다. 하지만 이 둘을 다 마음에 지니고 본다면, 이 두가지의 하루키적 특징을 맛 볼 수 있을터다.

그 둘과 동행한다고 이 책이 반드시 좋아 보일터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이 책을 좋지 않게 보는 시선들을 살펴보았을 때, 분명 그 둘 중 - <상실의 시대>,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 어느 하나만의 추억을 가지고 이 책을 평하는 것을 많이 보게 될 터이다. 그들의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것들이 주었던 너무도 강렬하고 자극적인 맛은 사람에게 집착을 낳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의 맛을 즐기는 것 못지 않게, 왜 간혹 섞어 먹는 재미도 만만치 않잖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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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rsta 2004-09-11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90년대 초 까지만 해도 <난 왕가위가 좋더라><난 하루키를 읽어>라고 말하면 좀 멋져보이던 시절이었죠. 하루키를 좋아한다는 말이 진부한 느낌까지 안겨주는 지금, 저는 여전히 하루키를 좋아합니다. 아직은 평가를 보류하고 싶은 몇몇 일본 작가들 무리에 하루키까지 포함시키는 건 좀 부당하다고 생각해요. <해변의 카프카>에 악평 일색이라는게 좀 씁쓸하던 차에 호의가 느껴지는 리뷰를 읽으니 마음이 먼저 반가와하네요. 잘 읽었습니다. :)

_ 2004-09-11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놓고 하루키에 대해 알은체하며 그게 독서의 깊이를 말해주는 양 말하는 사람들을 볼때면, 그렇게 하루키를 우상화시키는게 오히려 그의 글들에 대해 반감을 가지는 사람을 만들어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상실의 시대에서는 정말 지나치게 큰 충격을 받은적이 있었는데, 그 뒤로는 정말 즐기고픈 작가로서 하루키를 접하고 있지요^^
 
사랑이라니, 선영아 작가정신 소설향 18
김연수 지음 / 작가정신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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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람선을 타고 가던 어느날. 홀에는 댄스파티가 벌어졌다. 아, 타이타닉을 떠올리지는 말길. 온갖무게를 가지고 연주를 하고 있는 이도 없고, 온갖 귀금속을 부적인양 몸에 붙이고 화려한 드레스로 왈츠를 추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냥. 우리의 춤판이다. 유람선에서는 꼭 왈츠를 추란 법은 없다.

어떤 모임을 가진 사람들인지,  40인지 50대인지 모두 여자뿐이었다. 술마시고 춤추고 웃고 흥겹다. 부어라 마셔라. 마셨으면 흔들어라. 흔들어라. 으쌰으쌰. 저기있는 당신도, 귀막고 있는 당신도 다같이 으쌰으쌰.

그사이, 그 꽃밭에, 그 화사만발한 꽃만의 향연에 불청객 수컷 벌 한마리가 난데없이 끼어든다. "이봐, 이봐, 너무 즐거운거 아냐? 나도 끼워 달라구, 같이 놀아보세."

아무리 동방예의지국이라는 한국이지만, 그 거침없는 꿀벌의 대시에는 꽃들도 조금은 기분이 상했나보다. 꽃님들은 그를 과감히 내친다. 감히, 혼자 꿀맛을 보려는 특권을 누리려면, 예의를 보여라는 거다. 꽃잎도 좀 닦아 주고, 화분도 좀 옮겨주고. 응? 이에 그 남자, 먹다 남은 음식을 치우고, 술을 날라오고, 서빙을 자처한다. 저좀 잘 봐주세요. 네? 네? 이정도면 꿀 한방울 값은 안될까요? 네? 네?

유람선 위. 의자에 앉아서 이모습을 내려다 보던 김연수. 그는 이 장면을 보고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단다..

"사랑 따위는 하지 않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마음이 없다면 소주를 살 일도, 노래를 부를 일도, 춤을 출 일도 없을 텐데."....

내가 요즘에 가장 싫어하는 CF가 하나 있다. 인기가 있는지 시리즈물로 제작되고 있는 어떤 마트 선전인데, 거기에는 여자1명과 남자2명이 나온다. 그런데 그 남자 2명이 이 여자 한명을 무지나 좋아하나 보다. 서로 여자의 관심을 끌려고 온갖 오도방정(! 너무 나를 그렇게 보지는 말길.) 을 떨고, 그 방방거림에(!)따라 그 여자는 이리갔다 저리갔다. 흔들흔들 한다.

난 저 CF가 정말, 너무, 극히나, 절대적으로 싫었다. 젠장, 사랑이라는 게 저런거야? 어떤 인간이 사랑은 쟁취하는거야!라며 한대 쥐어 박아버리고 싶은 웃음을 짓더니,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며 골빈 웃음을 짓더니 정말 그런건가? 쟤들 도대체 뭐하는 거야? 저렇게까지 사람에게 잘보이려고 노력을 해야 하고, 저렇게 진땀을 빼야 하나? 사랑은 헌신이라고는 하지만, 저건 그게 아니잖아? 지금 뭐야?

라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혼자만의 생각으로 흥분하고 있을 때, 니가 그러니까 여자가 없는거야라는 면박을 당하고 있을 때, 저 김연수의 생각을 봤다. 사랑따위 안할 수 없냐니? 저 작가 제정신인거야? 어떻게 대놓고 저런 말을 할 수 있지? 근데, 그런데 말야. 이거 너무 반갑잖아.

그랬다. 일단 소설의 내용이 뭐든, 김연수가 썼던 아니든 간에, 나는 나의 혼자만의 생각에 턱하니 들어 맞는 어떤 코드를 하나 찾은 것이다. 나는 정말 이 책에, 이 글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갈릴레오가 지구가 돈다고 하는데도 안돈다는 다른이들때문에 돌아버리고 있을때, 옆에서 누가 "잘했어요, 맞아요. 지구가 돌아요~" 했으면 얼마나 좋아했으랴? 그가 누구든 분명 와락 끌어 안았을 것이다. 나도 그와 마찬가지 심정이었다.

'발단 전개 절정 결말. 세상사가 다 이런 아치 모양의 다리를 건너가는 게 아니겠니? 그러니까 이렇게 길게 설명하는 거지. 여름 매미가 가을 단풍을 알 턱이 없지. 너는 연애도 제대로 못 해본 어리보기라서 잘 모르겠지만, 낭만적 사랑도 마찬가지야. 너는 사랑이 발단하고 전개되어 절정에서 영원할 것 같니? 결말은 영원히 유예될 거라고 생각하니? 천만의 말씀. 천 년의 사랑이든 만년의 사랑이든 한 번 지나가면 사랑은 잊혀져.' 50p

주인공 광수는 결혼직후, 정말이지 아무것도 아닌 한송이 꽃의 꺾임때문에 의처증 같은 심정으로 자신의 결혼이라는 생활을 돌아보게 된다. 그녀가 누구였고, 과거는 어떤것인지. 그리고 그 돌아봄이 이 소설의 주 사건이다.  진우라는 인물은 처음의 작가의 생각과도 같이 사랑에 대한 회유와 염세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물론 사랑따위 하지말라는 주의는 아니지만, 사랑이라는 것은 영원하지도, 꼭 아름다운것만큼은 아니다라는 시선을 가지고 있다.

이 <사랑이라니, 선영아>는 이 두명이 다라고 할 수 있는 소설이다. 이 둘의 대화가 주를 이루고, 나머지 인물은 거의 부수적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선영이가 있다. 꼭 내가 싫어한다는 CF와 구성이 비슷하다만, 그 CF와 이 소설의 차이점을 말하자면, 한개는 내가 무척이나 싫어한다는 것이고 나머지 한개는 20대 초반의 나의 인생에 새로운 시각을 하나 가져다 주었다는 것이다. <사랑이라니, 선영아>는 당연히 후자다.

다만 알아둘 것은 작가가 "사랑따위 안 하고 살 수 없나"하고 했고, 거기서 내가 새로운 시각을 얻었다 해서, "나는 영원히 사랑따위 믿지 않고, 사랑을 증오하리라"라는 것을 얻었다는게 아니다라는 것이다. 그런 것이었다면 "엄마, 나 100점 맞았어요"라며 자랑스레 내가 새로운 시각을 얻었다며 호언하지 않는다.

이 소설은 사랑의 파탄소설이 아님은 물론이거니와, 사랑에 대한 불신의 모습이 역력히 비치는 진우조차도 사랑을 원망하는 척 하지만, 그의 내면을 보면 어쩌면 그도 사랑을 그리워 하고 있다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그런 사람의 마음을 자극하는소설이다. 

기억이 아름다울까, 사랑이 아름다울까? 물론 기억이다. - 123p 라고 하지만,

꽃에는 입술이 없지만 자신을 바라보라고 말한다. 사랑에는 혀가 없지만 네가 누구인지 먼저 알아 내라고 종용한다. 사랑을 통해 우리는 저마다 위대한 개인으로 자란다. 거울에 비친 그 위대한 개인을 사랑할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을 향해 단호한 어조로 "사랑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지구에서 얼마나 멀리까지 갈 수 있느냐는 미 우주항공국의 업무지만, 우리가 얼마나 깊이 사랑할 수 있느냐는 스스로 대답할 문제다. 그건 우리가 얼마나 자신에 대해 깊이 알고 있느냐, 혹은 우리가 얼마나 자신을 깊이 사랑하느냐에 달린 문제다. 80 - 81p

라고도 말을 하는 것을 보면 분명 작가의 생각은 사랑따위 집어춰라!는게 아니란걸 알 수 있다. 어쩌면 그는 사랑에 대해 불신하는 진우의 모습에서 겉으론 강한척(?)하지만 속으로는 그래도 사랑을 갈망하는 모습을 그려냄으로써, 나같은 - 사랑, 천만에!! - 사람에게도 사랑이라는 불씨를 당겨주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난 바로 딱히 그와 같지는 않지만 그에 반응하는 나의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는 말이다.


어느날, 친구와 카페에 앉아서 얘기하던 중, 나의 사랑의 처절한 몸부림이라는 시각을 보고, 친구가 한마디 해 주었다.

"물론, 맞아. 그런 모습이 그렇게 보이고 나도 그렇게 보여. 그런데 말야 웃긴건, 그렇게 생각을 하고, 또 그런 말을 내뱉고, 그렇게 조언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사랑을 하지 않았고, 또 하지 않고 있다는 거지. 사실 그들은 사랑에 대해 많은 것을 알은 척하지만, 실제로 아는 것은 하나도 없어."

그때 딱히 나는 뭐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전혀 부정하고 싶은 생각도 없거니와, 정곡을 찔렸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 사랑이라는 것을 모르는 철없는 나에게는 어떤 확고한 시각 하나로 나를 고정시키기 보다는 다양한 시선으로 나를 둘러쌀 필요가 있다는 것을, 그래서, 실망하더라도 덜 실망하고, 상처 받더라도 덜 상처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난 사랑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오늘 나는 또하나의 시선을 얻게 된 것이었다.

분명, 사랑은 아름다운 것이다. 인간으로 태어나, 나 아닌 다른 인간을 사랑한다는 그것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고, 상대방의 결점을 결점으로 보지 않고, 자기자신으로 안으려는 모습이 아름답다. 시끄럽다. 그래, 사랑 그건 아름다움 그자체다. 내가 아무리 궁시렁 거려봤자. 불변의 진리다. 이의 있는사람?

그도 그럴 것이, 온통 사랑을 찬양하고 있는 것들의 홍수 뿐이다. 물론, 사랑의 아픔을 노래하고 그 아픔의 힘들고, 아려옴을 말하는 이도 있지만, 결국 귀결은 그래도 그 사랑은 아름다웠다거나, 그래도 나의 앞날에는 사랑이 존재하리라는 것이다. 즉,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돈다는 것이다. 사랑은 당신의 주위를 언제나 빙빙, 끝없이 돈다는 것이다. 이런 무대에,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돌지 않고, 오늘부로 서기로 했답니다.라고 지껄였다간은, 보기좋게, 아니 별로 보기에는 좋지 않게 뺨 한대 맞을게다.

항상 그 찬양일색이라는 것에 불만이었던 나는, 처음에 그런 불만을 달래고 싶어 이 책을 집었다. 왜 우울할 때는 더 우울한 영화를 본다거나, 음악을 듣는다거나 하여 펑펑 울어버리는게 조금은 시원할때도 있지 않은가? 나도 딱 그 심정이었다. 혼자만의 꿍꿍이로 앓던 나의 마음에 "사랑, 꺼져라"는 내용으로 나를 위로하리라며 집어 든 것이다.

하지만 아니다. 나같은 이들을 슬쩍 유혹하여 집어들게 하고서는, 다른 안경하나 턱 하니 씌워 버리는 김연수, 그는 대단한 작가다. "어? 나는 전혀 그런 생각이 아니었어. 사랑은 정말 아니란 말이지." 설령, 그가 그런 마음으로 이 책을 썼고, 내가 착각의 자유를 맘껏 누린 꼴이 되었더라도, 이 <사랑이라니, 선영아>는 참으로 나의 마음을 끄는 소설이다. 한 사람에게 또 다른 시선을 가져다 주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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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ninara 2004-09-08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재미있어서 단숨에 읽고 갑니다..추천 쭉~~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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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xx일 x시 xx분께 xx시 xx구 xx동 x아파트 x모씨 집 안방에서 x씨가 선풍기를 켜 놓은 채 숨졌습니다.

밀폐된 방안에서 타임조절도 하지 않은 선풍기바람만을 씌우며 잠에 들게되면 선풍기의 바람때문에 잠든 사람은 결국 산소부족으로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그래서 반드시 선풍기는 방문을 열든 창문을 열든 공기를 통하게 해놓고 이왕이면 타임을 맞춰 놓고 잠드는것이 좋다.(좋다? 목숨을 생각한다면 이 좋다라는 표현이 부적절 할 수도 있다.)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나는 여전히 선풍기를 켜놓은채 잠을 잔다. 어제라고 별 다를바 없이 나는 선풍기를 켜 놓고 잠에 들었다. 다만, 평상시와 다른 한가지가 있다면 방문을 모두 닫아 버렸다는 것이다. 보다싶이 나는 알고 있다. 밀폐된 공간에서 선풍기를 계속 켜놓으면 어쩌면, 아니 '재수 없으면' 죽을 수 있다는 것을.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어젯밤 내 좁은 모든 방문과 창문을 닫고 선풍기를 부러 켜놓은채 잤다. 뒷생각은 없었다. 죽는 것도 사는것도 아무생각이 없었다. 그저 컴퓨터로 강의를 평상시와는 다르게 12시까지 듣고 극도로 피곤한 상태에서 1시간 더 책을 보고, 물도 마시지 않고 그냥 그렇게 선풍기를 켜고 불을 끄고 누웠다. 2분뒤, 난 갑자기 벌떡 일어나 열려있는 창문을 닫아버리고 다시 그렇게 누웠다. 멍한 상태. 사위는 조용했다. 선풍기는 여전히 휭휭 잘 돌아갔다.

쿵! 쿵! 쿠쿠쿵!

누가 나의 방문을 계속 잡아 흔든다. 벌떡 눈을 뜬 나는 '누구지?' 아, 초대형 태풍 한분이 친히 한반도까지 행차를 하신다더니, 그분의 행차소식이었구나. 지랄병이라도 걸리셨는지 정말 요란스러우시군요. 그런데 내 방문은 뭐가 좋다고 저렇게 오도방정을 뜰며 나를 깨우는 건지 원..한대 쥐어 박아버려?...

잠깐, 잠깐. 나는 여전히 선풍기를 틀어놓고 잤고, 여전히 새벽에 잠을 한번 깼다. 평상시와 전혀 다를게 없이 똑같았다. 그러고 보니 방문과 창문을 닫았다는 일상의 자그마한 변화는 나의 큰 삶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내가 죽지 않았다는 것보다, 태풍을 먼저 생각하고 있는 내 자신에게 문득, 놀라움을 느꼈다. 젠장, 또 하루는 이렇게 시작되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죽어버렸다면 지금 글을 쓰고 있지도 않겠지. 아, 대신 매스컴 한번 탈지도 모르지. 경남 모모에서 모씨가 선풍기 바람에 궁시렁궁시렁 씨부렁씨부렁..죽지 못해 사는건지, 안죽어서 살고 있는건지..알수가 없다.

"그럼, 그게 핵심이야. 그해의 리그에서 삼미 슈퍼스타즈가 <자신의 야구>를....그 <자신의 야구>가 뭔데? 그건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야. 그것이 바로 삼미가 완성한 <자신의 야구>지. 우승을 목표로 한 다른 팀들로선 절대 완성할 수 없는 - 끊임없고 부단한 <야구를 통한 자기 수양>의 결과야." 251p

얼마전 서울에 잠시 갔을 때, 친구와 함께 서점에 들른적이 있었다. 그때 그 친구는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읽어보았냐고 나에게 물어보았다.

"아니, 난 야구를 전혀 좋아하지도 않고, 야구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어. 지금 구단은 물론, 지금 박찬호가 소속된 팀 이름도 모르는 판국에 무슨 야구고, 무슨 삼미냐, 삼양 라면은 안다."

근데 그게 아니란다. 이 책은 야구를 전혀 몰라도 볼 수 있는 책이란다. 그 뿐만 아니라, 너무 재미난 것은 물론이거니와, 앞으로의 삶에 하나의 방향점이 되더라는 것이었다. 뭐야, 난 이 책이 '삼미슈퍼스타즈'를 알고 있는 사람만이 봐야, 그 시대를 알고 있는 사람만이 봐야 공감할 수 있는 책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가 보지?

새삼 내가 살아있음을 자각하며 아침을 맞이하고 있을때, 마침 저 생각이 떠올랐다. 삶의 방향점이라.. 그래 어쩌면 지금의 나에겐 어떤 지표가 필요할지 모른다. 설령 이 책이 "야구선수, 나처럼 하면 한달만에 된다!!"고 포효하고 있을지라도 나는 무엇이라도 지표가 필요했다. 살아 남기위해 그 무언가를 잡을 지푸라기라도 절실했다. 그리고 이 책을 잡고, 그 친구의 말을 믿고 그 자리에서 내쳐 다 읽어 버렸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 과연 이게 말이 될법한 소리냐. 프로야구선수란 사람들이 이래도 스포츠맨 정신에 위배되지 않느냐. 모른다. 야구하는 사람 자기 잡기 싫고 치기 싫다면 할 수 없는 거지 뭘 바라겠느냐. 다만, 저 말이 인생에 던져주는 바는 어지간한 바보가 아닌 이상은 다 알아 차릴 것이다.

굳이 힘들려 낑낑대며 살지 말자는 것이다. 어차피 다들 힘든 인생이다. 저기 저 엘리트층에 있든 밑에서 소주잔이나 기울이고 있든 다같이 힘든 삶인데 뭣하러 힘들여가며 애써, 더 힘든 삶을 자초하냐는 것이다. 그래, 사실 이 책은 별거 없다. 특이한 유머스런 문체와, 마치 작가 자신의 삶인양 읊어 내는 그 자연스러움에는 정말 머리가 쭈삣 설 정도지만, 우리에게 던져주는 바는, 왜 그리 바쁘게 사느냐는 것이다. 왜 그리 힘들게 사느냐는 것이다. 뭐가 부족해서, 뭐가 불만이라서? 이거다.

"헛소리 마라. 삶의 실패자들이 자위적으로 내뱉어나는 그 자족적 자세가 속도가 생명인 지금의 이 프로시대에 먹힐줄 알아?"

그래, 그들은 실직자, 무직자, 부상자 등등 흔히 낙오자로 불리우는 사람들의 집합체이다. 하지만, 그들이 과연 낙오자일까? 그들이 과연 실패자일까? 분명 지금 나의 눈으로도 그들은 인생의 실패자들이다. 하지만 누구를 기준으로 그들은 낙오자이고 또 실패자인지. 지금 나의 시선은 어디에 고정되서 그들을 내려다 보는건지. 

왜 그들은 '삐까번쩍' 프로올스타즈와 경기를 하며 '씨익'하고 웃어 주었을까? 미쳐서? 전혀. 이 책이 흔히 인생의 저변에 있는 자들을 위한 소설이라는 말이 많지만, 사실 진정 이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바로

당신은 실패자가 아니다!! 나는 실패자가 아니다!!

라는 말이다. '좌절하지 마세요.' '힘들어도 참아요.' 따위의 위로가 아니다. 왜 좌절하고 앉아 있고, 뭐가 힘드냐는 거다. 당신이 당신을 잘못된 곳으로 이끌고 있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느냐는 질책이다.

사랑을 하고 있는 친구에게는 왜그리 삭막한 인생을 살고 있느냐는 소리를 듣고, 미래를 열심히 준비중인 친구에게는 왜 그렇게 나태한 삶을 살고 있느냐는 말을 듣고, 동창에게는 삶을 왜 그렇게 힘없이 사느냐말을 듣고, 결국 아버지에게는 호로새x라는 말을 듣게 되었...되었..되었..되었다. 룰루랄라. 지금 내가 즐거워 보인다면 나는 정녕 미친것이다.

무척이나 어지러운 나의 삶과 시선에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분명 또다른 인생의 지표하나를 나에게 전해주었지만 큰 조력자가 되어주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비록 내가 가고자 하는 삶과, 내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에 부합하는 지표는 아니었지만, 내가 믿고 따를 그 지표가 되지는 않았지만, 나의 마음 속 어딘가에서 무언가 잠시 꿈틀 했다는 것은 느낀다. 그 잠시 꿈틀거림에서 나는 살아 있다는 것을 느꼈고, 또한 내가 살아있음에 기쁨을 느끼고 있음을 깨달았다..

현실에 만족하는 것이 아닌 자기자신에게 만족하는 삶. 문득 호어스트 에버스의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가 떠오르지만, 그의 유머가 치즈같이 담백함으로 우리를 끌어들인 소설이었다면 이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유머는 담배와 같이 텁텁하면서도 사람을 깊게 빨아들이는 맛이 있다.

잠깐, 그러고 보니 롯데라는 팀이 만년꼴찌라는 프로구단으로서는 상당히 명예로울수 있는 문구를 달고 다닌단다. 그럼에도 롯데는 제법 많은 고정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들이 롯데를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왕년에는 잘했기에? 언젠가는 잘하리라는, 개천에서 용나는 꼴을 바라며? 대리만족이라도 느껴볼려고? 아니면, 삼미와 같이 프로의 세계에서도 보란듯이 너와 나, 우리의 삶을 재현하고 있기에? 후, 뭘까? 그들은 어떤 야구를 하고 있지?

"그저 달리기만 하기에는 우리의 삶도 너무나 아름다운 것이다. 라는 생각을, 했다. 인생의 숙제는 따로 있었다. 나는 비로소 그 숙제가 어떤 것인지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고, 남아 있는 내 삶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야 할지를 희마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그것은 어떤 공을 치고 던질 것인가와도 같은 문제였고, 어떤 야구를 할 것인가와도 같은 문제였다. 필요 이상으로 바쁘고, 필요 이상으로 일하고, 필요 이상으로 크고, 필요 이상으로 빠르고, 필요 이상으로 모으고, 필요 이상으로 몰려 있는 세계에 인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278 - 279p

솔직히 여전히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분명, 삶은 전진하기만은 아깝고 아름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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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y 2004-09-07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기억하실지..^^
서재 그만두신거 되게 섭섭해 했었는데 접속하는 순간 리뷰가 올라왔다고 알려주네요.
다시 님의 리뷰 읽을 수 있어 너무너무 반가워요.

진/우맘 2004-09-07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얼마 전에 굉장히....감동하며 읽었더랬어요.
음....퍼가도 되려나? 그럴게요.^^

로드무비 2004-09-15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발마녀님도 이 책 리뷰를 아주 재밌게 쓰셨더라고요.
시간 나실 때 꼭 한번 읽어보세요.^^

_ 2004-09-15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하얀마녀님께서 백발마녀라고도 불리우시는군요 ^^;;
지금 당장 읽어보러 가지요 ^^
 
불법의 제왕
존 그리샴 지음, 신현철 옮김 / 북앳북스 / 200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사실 이 책을 접할때의 자세랄까, 그 기본 마음가짐에는 크게 보아 두가지가 있을 듯 하다.

첫째는, 존 그리샴이라는 타이틀하에 그의 작품을 애독하고 싶은 마음가짐. 그의 작품이 실망스러웠다면 이번에는 조금 나아졌길, 이전에도 충분히 재밌었다면 이번에도 그 재미를 또 한번 만끽해보고픈 마음. 존 그리샴이라는 하나의 작가에 충분히 매료되어 이 책을 집어 들 수 있을 터다.

둘째는, 존 그리샴이야 어떤 작가이든지, 법정 스릴러라는 그 숨막히고 복잡하게 엮이는 지적 두뇌싸움의 열기를 느껴보고 싶어서, 그래서 법정스릴러라는 장르로 불리는 이 책을 집어든 경우가 있을 터다.

즉, ' 그리샴'의 법정스릴러를 찾아 보느냐 '법정스릴러'의 존 그리샴에 무게를 두느냐 인데, 나는 첫번째 보다는 두번째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영화 '사라진 배심원'을 보고서 존 그리샴을 찾아봐야 겠다는 생각이 든게 아닌것도 아니지만, 존 그리샴의 법정 스릴러보다는 법정 스릴러의 존그리샴에 무게를 준게 사실이다. 이 두번째의 입장에서, 즉 존 그리샴이 이제까지 무슨 작품을 써왔던 이제까지 재미가 있어왔던 없었던 간에 나는 오직 이 책, 하나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보았을 때 이 책은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얽히고 섥히고, 공격하고 반격하고 등의 너무 치열한 두뇌싸움을 기대한 나였기에 실망이 따라왔는지도 모르지만, 사실 여기에는 그 어떤 스릴러적 요소가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어느날 주인공에게 찾아온 의문의 사나이에게 '집단소송'을 거시오라는 권유를 받은뒤, 이 소설의 주요 스토리가 형성되어지는데, 그 주요 스토리가 뚫어 놓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너무 싱겁기 그지 없었다. 소송사건 하나에 얽혀지거나, 숨어있는 의문, 함의 같은것이 있는것이 아니라 그저 일방적인 공격 일로다.

소송을 걸어라. 이겼구나. 돈벌었다.

이 세 레파토리를 반복하는 싱거운 구조를 띄고 있는데, 중간중간에 삽입되는 주인공의 사생활은 자칫 법정스릴러라는 거대한 장르를 달고 있는 이 소설이 너무나 싱겁게 흐를 우려가 있어 보여 교묘하게 이뤄놓은 장치로밖에 해석되지 않았다. '이거 너무 싱거운거 아냐?'라는 불만이 일기 전, 바로 또 다른 관심거리를 둠으로써 일종의 싱거움을 방지하는 예방책이라고 할까?

소설 자체가 지루한 것은 절대 아니다. 한번 읽으면 솔직히 놓기 힘들만큼 사람을 충분히 매료시킬 만큼의 그 어떤 문체가 있고 흐름이 분명 있다. 하지만 이건 법정스릴러는 절대 아니다. 스릴러라고 하면 보는 사람의 손에 땀이 배이게 까지는 하지 못하더라도 같이 긴장할 수 있는 그 어떤 요소를 심어 놓아야 하지만, 이 '불법의 제왕'은 그 의문의 사나이와 마지막에 이루어지는 반전부분을 제한다면 그 어떤 스릴러적 요소가 없었다. 스릴러로서는 과감히 실격점을 주고 싶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이 법정 드라마 정도로 장르소개를 바꿔 읽는 다면 느낌이 충분히 달라지리라 믿는다. 여타 영화에서 볼수 있는 따뜻한 백설공주 변호사와 악덕하기 그지 없는 마귀할멈 변호사와의 힘겨운 싸움에서 일궈내는 인간미같은 드라마적 요소는 비록 없지만, 책의 표지에도 적혀 있듯, 미국 변호사들의 도덕불감증을 찔러내고 그 도덕불감증에 말미에 터뜨려지는 허무함을 그려낸 점에 있어서는 또 다른 드라마적 요소가 충분히 있다고 본다.

물론, 안타깝게도 나는 이 책이 법정스릴러 일것이라고, 영화 '사라진 배심원'에서 잠시도 긴장을 늦출수 없는 그 긴장감을 그대로 안고서 '불법의 제왕'을 본것이기 때문에 크게 실망하지 않을수 없었다. 나처럼 법정에서만 이뤄질 수 있는 그 특수한 공간에서만 느낄수 있는 스릴러적 요소에 집착하지 않고 편안히 읽을수 있다면 이 책은 충분히 재밌는 책이다. 하지만 나처럼 스릴러를 기대한다면 충분히 싱거울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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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 개편만 하시고나면 이런저런 불만(!)만 터뜨려 놓는것 같아 죄송스럽기 그지 없습니마나, 마이리뷰 관리에서 내가퍼온 마이리뷰에 대해서는 정보가 전혀 갱신되지 않는것 같는데요...제가 모 2분의 마이리뷰를 퍼왔는데, 퍼온 마이리뷰에는 하나도 없다고 나오더라구요.

(그리고 마이리뷰 퍼올때 상품이지미와 별점도 같이 퍼와 지면 좋을것 같은데...그건 조금 까다로운 부분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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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지기 2004-03-02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ird나무님.. 오랜만이에요.. ^^ 잘 지내시지요?.. ^^
말씀해주신 부분.. 반영하겠습니다. 원래 계획상에 있었던 것인데... 살짝 빠뜨렸습니다.
테스트 기간이 길었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100% 완벽하게 오픈하는 건 힘드네요. 이해해주신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
이번 초 내내.. 안정화/보완 작업을 할 예정이랍니다. ^^

ceylontea 2004-03-03 1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여전히 묵묵히 알라딘 테스터의 길을 걷고 계시네요...
서울 오시면... 지기님으로 부터 얻어먹을 밥그릇 수가 너무 많아 배터지시면 안되는데...

sooninara 2004-03-08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이가서 먹어 드릴까요? 불러만 주세요..배터지면 안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