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144805.html
<서양 금서의 문화사>(길 펴냄)를 쓴 주명철 교수는 여러 면에서 행복한 사람이다. 학교 근처에 집을 짓고 같이 역사학에 매진하는 아내와 함께 자식처럼 기르는 강아지 여러 마리와 살고 있다. 학교에 오고가는 시간을 절약하여 학문에 집중적으로 투자할 수 있어 좋고, 동양사를 전공하는 아내와 학문적인 교감을 통해 역사학에 대한 이해의 전망을 높일 수 있어 좋다.
내가 보기에 주명철 교수가 행복한 사람인 또 다른 이유는 학문의 삶에 들어선 이후 꾸준히 한 주제에 집착하여 많은 성과를 올리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그의 연구 주제는 ‘책’이고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금서’이다. 실상 지금은 책이나 독서의 역사가 갖는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 역사학의 한 분야로 당당하게 자리매김하고 있지만, 주 교수가 프랑스에서 돌아와 1990년 <바스티유의 금서>(문학과지성사)를 출판하였을 당시만 하더라도 그것은 아주 낯선 주제였다.
주명철 교수가 애정을 갖고 천착하는 또 하나의 분야는 신문화사이다. 원래 파리 1대학에서 다니엘 로슈 교수의 지도 아래 작성한 박사학위 논문을 ‘번역’하여 출판하였던 <바스티유의 금서>를 이제 <서양 금서의 문화사>로 개정해야 할 당위성의 하나도 신문화사의 새로운 이론에 맞추어 금서의 역사를 새로 써야 할 필요성에 있었다. 그러니 이 책은 그의 두 관심사가 행복하게 만난 장소인 셈이다.
|
» 앙시앵 레짐 시대를 풍자한 성직자와 귀족이 허리가 휜 농부의 등에 올라탄 그림. <서양 금서의 문화사>는 파리의 민중이 처해 있던 문화적 조건을 신문화사적 방법론으로 살폈다. |
| |
|
|
저자에 따르면, <바스티유의 금서>에서는 ‘사회문화사’의 방법론을 주로 적용하여 책이나 독서 능력과 같은 문화적 공통 요소가 어떻게 불평등하게 분포되어 있는지 밝히려 했다. 이제 <서양 금서의 문화사>에서는 ‘신문화사’의 방법론을 이용하여 구체적인 개인한테서 그러한 공통 요소가 어떻게 발현되었는지 살피고자 했고, 그 과정에서 상징·표상·사교성·의사소통 방식도 중요하게 다루었다.
그렇지만 이 책이 <바스티유의 금서>와 다른 이유는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저자는 그 책이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수준 높은 독자의 관심을 크게 끌지 못했던 이유를 스스로에게서 찾으며 그 단점을 보완하여 내용을 더하고, 빼고, 고쳐 “새 책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책을 만들려 시도했다.
그리하여 제1부에서는 앞으로 전개될 내용에 대한 컨텍스트로서 계몽주의의 역사적 배경과 파리의 민중이 처해 있던 문화적 조건에 대해 살폈다. 제2부와 제3부는 <바스티유의 금서>를 고쳐 실었다. 제2부에서는 책, 또는 더 광범위하게 인쇄물을 만든 사람들에 초점을 맞췄고, 제3부에서는 그 사람들이 어떤 제도적 틀 속에서 활동했는지 도서출판법과 검열제도의 작동 방식을 분석했다. 원래 책의 ‘후기’는 진부하다고 생각되어 뺐고, 대신 제4부를 새로 보완하여 서지학의 한 갈래가 책의 문화사와 갖는 관련성은 물론 사상의 사회사를 연구해야 할 필요성, 프랑스 혁명을 통해 바뀐 앙시엥 레짐 문화의 모습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왜 ‘금서’일까? 어쩌면 우리는 존재하는 것보다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통해 어떤 사회의 실상을 더 잘 알 수 있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우리는 ‘금서’를 통해 한 사회의 지도층이 무엇을 두려워하며 무엇을 억압하려 하였는지 살필 한 통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금지시키시오, 우리는 더 욕구할 것입니다.” <캔터베리 이야기>에 나오는 이 구절을 상기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어떻게든 금서를 구했고, 그것은 여론의 형성에 크게 이바지해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그것은 특히 앙시엥 레짐의 질서를 파괴한 프랑스 혁명의 시대에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저자는 여러 곳에서 자신의 책에 대해 ‘미흡’하고 ‘단점 투성이’라고 겸손하게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서양사를 전공하는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사료를 구하기 어렵다는 난점을 말하고 있는 상황에서, 원사료를 직접 구해 읽고 역사학의 새로운 이론을 적용시켜 이 책을 썼다는 사실 만으로도 이 책은 칭찬을 받아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