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행사내용
일시
장소
주최
공동주최
오에 겐자부로
강연회 25일(수)오후3시
교보문고 강남점 교보문고(재단,진흥원) 한국외대/
일본근대문학회
강연회 26일(목)오후3시
한양대
백남학술정보관
6층 국제회의실
한양대 일문과  
오르한 파묵
강연회 25일(수)오후3시
한국외대 한국외대 터키어과  
볼프 비어만
강연/노래공연 27일(금)오후7시
대학로 독어독문학회  
강연/노래공연 24일(화)오후3시
중앙대 중앙대 독문과  
로버트 하스
시낭송회 25일(수)오후2시
미대사관저 미국대사관 영어영문학회
  24일(화)오후2시
서울대 영어영문학회  
강연회 26일(목)오전12시
숙명여대 숙명여대 영문과  
마사오 미요시
강연회 25일(수)오후5시
연세대 영어영문학회  
에를링 키텔센
강연회 25일(수)오후3시
한국외대 한국외대
스칸디나비아어과
 
모옌
학술대회 27일(금)오후4시
한국외대 대만홍콩문화연구회의 한국외대
  28-29일
전남대 민족문학작가회의 5.18재단
르 클레지오
강연회 25일(수)오후3시
교보문고 본점 교보문고(재단,진흥원)
불문학회
강연회 25일(수)오후5시
이화여대 이화여대 불문과  
루이스 세풀베다
강연회 26일(목)오후3시
교보문고 강남점 교보문고(재단,진흥원) 한국외대
티보 머레이
  28일(토)오후
단국대 문예창작학회  
하스미 시게히코
  25일(수)오후2시
서강대 서강대 영상대학원  
  25일(수)오후7시
필름포럼 필름포럼  
  26일(목)오후1시
고려대 고려대 일문과  
베이 다오
강연회 24일(화)오후4시
교보문고 본점 교보문고(재단,진흥원)
중국현대문학회
학술대회 27일(금)오후4시
한국외대 대만홍콩문화연구원  
  28일(토)오후
단국대 문예창작학회  
응구기 와 시옹오
강연회 28일(토)
동국대 아프리카문화연구소 동국대
강연회 26일(목)오후2시
한국외대 영어영문학회  
마거릿 드래블
강연회 26일(목)오후2시
한국외대 영어영문학회  
문학수업 24일(화)오후3시
성균관대 성균관대 영문과  
강연회 25일(수)오후7시
영국문화원 영국문화원  
장 보드리야르
학술대회 27일(금)오후6시
프레스센터 프랑스학회  
전시회 24일(화)오후5시
대림미술관 대림미술관  
로버트 쿠버
강연회 25일(수)오후6시
서강대 아메리카학회  
강연회 24일(화)오후2시
서울대 영어영문학회  
개리 스나이더
강연회 24일(화)오후3시
교보문고 강남점 교보문고(재단,진흥원) 동국대
불교대학원
시낭송회 25일(수)오후2시
미대사관저 미국대사관 영어영문학회
베라 갈락치오노바
강연회 25일(수)오후4시
한국외대 한국외대 러시아어과  
    28-29일 전남대 민족문학작가회의 5.18재단
토마스 브루시히
강연회 23일(월)오후3시
서울대 서울대 독문과  
강연/노래공연 24일(화)오후3시
중앙대 중앙대 독문과  
미정된 사항은 결정되는대로 업데이트됩니다.
작가별 행사는 예약을 받지 않으며, 개인적으로 참가하시면 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인간아 > [퍼온글] 동아시아의 평화와 '일본문제' ..

  출처:녹색평론사(greenreview.co.kr)

동아시아의 평화와 '일본문제' - 김종철(녹색평론 발행인)

 여러해 동안 우리의 삶에 위협으로 가해지고 있는 이른바 북핵문제를 둘러싼 긴장과 갈등은 해결의 기미가 보이기는커녕 날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최근 들어서, 상황은 부쩍 악화되어, 심지어 국내의 언론에서도 미국에 의한 북폭의 현실적 가능성이 빈번히 언급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우리는 매일매일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미국정부 관계자들의 어조와 표정에 매달려 일희일비하는 서글픈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해방 60주년을 맞이하여 좀더 뜻있는 시간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대신, 우리는 또다시 우리의 삶의 기반의 허약함을 목도하여야 하는 착잡한 사태에 직면하고 있다.

  만약 미국이 예방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이라크를 침략한 논리를 그대로 적용하여, 북한의 영변 핵시설 지역에 대한 공격을 실지로 감행한다면, 그때는 형용할 수 없는 괴멸적인 재앙이 한반도에 들이닥칠 것이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로 인한 피해는 비단 한반도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 나아가서는 미국 자신에게도 엄청난 것이 되리라는 것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실제로, 물론 가상이지만, 북한에 대한 미국의 폭격이라는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는 날, 수많은 정치적·군사적·경제적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동북아시아에 있어서의 미국의 위상이 하루아침에 급격히 추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결과일 것이다. 예를 들어, 만에 하나라도 미국의 북한에 대한 공격이 어디까지나 엄포용이 아니라, 실제 상황이 되는 순간이 온다면 한반도는 물론, 동아시아 전역에 걸쳐서 일찍이 보지 못했던 엄청난 반미 기운이 급격히 고조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그런 사태 속에서 자칫하면 미국은 지난 60년 동안 이 지역에서 행사해온 패권적 지배력을 상실하게 될지도 모르는 의외의 사태에 직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과연 미국이 이러한 상황을 감내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지만, 적어도 합리적인 전략가라면 이러한 사태의 전개는 결코 원하지 않을 것이다.

  한반도에서 쉽게 전쟁이 일어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우리가 믿는 것은 결국 그것이 미국이 추구하는 이익에 부합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의 교수 개번 매코맥은 최근에 발표된〈동북아시아에 있어서 공동체와 정체성―1930년대와 오늘〉이라는 논문에서 최근의 북핵문제에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분석하고 있다.

 

  만일 ‘북한의 위협’이 (어떤 방법으로든) 해결된다면 워싱턴의 전략가들은…일본과 남한에 있는 미군기지를 (그리고 미사일 방어시스템을) 정당화할 다른 이유를 찾아내어야 할 것이다. 동아시아는 빠르게 ‘유럽의’ 방향으로 갈 것이고, 커다란 정치적·사회적·경제적 파장이 일어날 것이다. 다시 말하면, 미국은 그 단기적 목표 즉 북한정권의 붕괴나 정책의 변화를 성취하면, 이 지역을 미 제국 속에 계속하여 편입시키고자 하는 자신의 장기적 목표를 손상시키게 될 것이다. 따라서, 미국이 이 지역에 있어서의 자신의 패권적 지위를 계속 유지하기를 원하는 한, 미국은 김정일 정권이 존속하고 있는 것이 유리한 것이다.

 

  이것은 리얼리즘에 입각한 꽤 설득력 있는 분석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매코맥 교수의 분석은 예외적인 것이라기보다, 아마도 이 문제를 바라보는 비판적 분석가들의 일반적인 견해를 대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볼 때, 실제로, “석유도 나지 않는” 북한을 미국이 섣불리 공격할 것이라고는 쉽게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나, 물론,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오늘의 미국 행정부의 정책결정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이른바 네오콘 그룹의 사고방식은 보통 사람들의 상식수준을 크게 넘어서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이라크 침략도 실제 미국 자신에게 득보다 실이 크다는 다양한 각도에서의 분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감행되었다. 더욱이, 이라크 침략은 아마도 역사상 미증유의 대규모의 전쟁반대 목소리가 들끓는 가운데 시작되었고, 이 과정에서 선제공격을 불허하는 국제법의 존재도, 유엔의 권능도 간단히 무시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미국 자본주의의 근간에 가로 누워있는 침략적인 성격이다.

  최근에 출판되어 이미 독서계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는 구술기록《대화―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은 지난 반세기 동안 반독재, 민주주의를 위하여 전심전력으로 헌신해온 뛰어나게 양심적인 한 지식인의 험난한 생의 역정이 대화 형식으로 반추되고 있는 매우 흥미로운 회상록이다. 아마도 한국현대 지성사 혹은 사상운동사의 기념비적 증언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이는 이 귀중한 회상록에서 리영희 선생은 오랜 세월 냉전체제 하의 가혹한 체험을 통해서 얻은 미국에 대한 자신의 지견(知見)을 간단명료하게 압축하여 말하고 있다. 그 결론은 “미국 자본주의는 그 본성으로 인해 국제사회에서 잔인무도할 수밖에 없다”는 확신에 요약되어 있다.

  리영희 선생의 말을 조금더 들어보면, “약소민족에 대한 전쟁 없이는 그 제국주의적 경제, 정치, 군사, 과학기술 체제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게 내 확신이에요…약소민족들이 조금이라도 민주적 복지와 자립적 경제체제를 추구하려고 하면 그런 정권들은 미국이 뒷받침하는 반동적이며 미국에 예속된 군부로 하여금 쿠데타를 일으켜 전복시켜왔어요.” 이러한 말은, 이제와서 보면 그다지 새로울 게 없는 발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미 예컨대 노엄 촘스키 교수와 같은 미국의 비판적 지성을 통해서 이러한 발언에 꽤 익숙해져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 발언이 새삼스럽게 우리에게 절실하게 다가오고, 깊이 심금을 울리는 것은, 그것이 단순히 서재에서 익힌 급진적 관념이 아니라, 냉전구조의 모순과 혹독한 시련을 온몸으로 겪어온 개인적 체험 끝에 나온 발언으로서의 큰 무게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 발언에는, 늘 정의에 목말라 하면서, 강자의 전횡으로 약소국 민중의 삶이 끝없이 유린되는 국제정치의 현장을 첨예한 의식으로 지켜보아왔던 한 외신기자의 분노와 슬픔이 서려있고, 탁월한 정보 분석가만이 누릴 수 있는 권위가 배어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북핵문제를 둘러싼 갈등을 포함하여, 동아시아에 있어서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는 요소로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결국 ‘일본문제’일 것이다.

  올해가 한국이나 중국이 식민지 지배로부터 벗어난 지 60주년이 되는 해라면, 일본으로서는 태평양전쟁에서 패배한 지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 전후(戰後) 60주년이 되는 해 봄에 일본이 과거 자신이 피해를 끼쳤던 이웃 나라들에 대해서 내놓은 것은 과거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나 사죄도, 동아시아의 평화로운 미래를 약속하는 자세도 아니었다. 그들은 또다시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기 시작하고, 수상의 야스쿠니신사(靖國神社) 참배와 역사교과서 문제에 대해 국내외에서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를 계속해서 무시해왔다. 그 결과 일본정부는 2001년의 경우보다도 역사왜곡이 더 심한, 그리하여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보다 노골적으로 정당화하는 역사교과서를 문부성 검정에서 합격시켰다.

  이웃 나라들의 존재는 안중(眼中)에도 없다는 듯이 행동하는 일본국가의 이러한 자세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그들이 이미 심각한 자폐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이 자폐증은 매우 선택적이다. 일본은 아시아의 근린 국가들에 대해서는 철저한 무시로 일관하면서, 동시에 미국에 대해서는 더할 나위 없는 굴종적·노예적 자세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고이즈미 일본수상의 거듭된 야스쿠니신사 참배문제나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미화하는 역사교과서의 문제를 비판하는 한국이나 중국 측의 목소리에 대해서 일본정부는 내정간섭을 말라는 투로 늘 응수해왔다. 그러면서, 그들은 아시아에서 가장 큰 미군기지를 제공하고 있고,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을 원하는 미국의 요구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게다가, 이제는 미국의 종용에 의해서 전후 60년 동안 지켜온 평화헌법 체제를 방기(放棄)하고, 이른바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의 국가”가 되기 위한 일련의 개혁조치들을 착착 실행해 나가고 있다.

  일본국가의 이러한 우경화는 이제 돌이키기 어려운 흐름으로 굳어져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이나 중국에서 아무리 거센 반발이 일어나고, 반일시위가 아무리 치열하게 전개되더라도, 또 일본 국내의 평화와 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려는 수많은 시민들의 양심의 소리에도 불구하고, 이 추세는 당분간 역전되기는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이 추세의 배후에는 비단 일본의 보수지배층의 이해관계만 아니라, 광범한 풀뿌리 계층의 지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수정주의적 역사관에 입각하여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을 미화하는《새로운 역사교과서》의 저자들이 주장해온 것은 일본의 교육이 ‘자학사관’에서 벗어나 자신의 역사에 대한 자긍심을 자라나는 세대에 심어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논리는 역사의식이 결여된 대부분의 대중 사이에서 큰 설득력을 띠고 쉽게 전파될 수 있다.

  오늘날 산업사회는 예전의 농업사회 혹은 상업사회와는 달리, 공동체의 과거의 경험에 대한 존경심이 없는 사회이다.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과학기술과 끝없이 새로운 상품의 소비를 제도화하고 있는 자본주의 경제체제 하에서 옛 사람의 지혜라는 것은 거추장스럽고, 불필요한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영국의 역사가 J. H. 플럼이 말하듯이, 현대사회라는 것은 ‘과거의 죽음’으로 특징지어지는 사회임이 틀림없다.

  아닌 게 아니라, 현재 일본의 고등학교에서 한반도에 왜 두개의 국가가 있는지 그 연유를 알고 있는 학생은 한 학급에서 겨우 두세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역사적 기억의 심각한 퇴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이러한 상황에서, 단지 사람의 본능적인 향토애와 애국주의적 정서에 호소하는 자민족중심주의적, 자폐적 사관이 쉽게 전파·수용되리라는 것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실제로, 우리가 정작 우려해야 할 것은, 이와 같은 대중적, 풀뿌리 차원에서의 포퓰리스트 내셔널리즘일지도 모른다. 역사학자 테사 모리스-스즈키에 의하면, 오늘날 일본 사람들이 공식적인 학교교육을 통해서 역사를 배우는 정도는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따라서 현재의 역사교과서 검정문제는 그 자체로 중대한 문제라고 할 것은 없는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지금 만화, 영화, 텔레비전, CD 등 보다 전파력이 강한 대중 미디어를 통해서 널리 유포되고 있는 자폐적인 사관의 확산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일본정부와 지배층은 이러한 대중적인 차원에서의 정서적 공감을 이용하면서 지금 자신의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위한 순차적인 계단을 밟고 있을 뿐이다. 사과할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 사과를 요구해봤자 소용없는 일인 것처럼, 일본국가에 대하여 식민지 지배와 침략의 과거에 대한 응분의 책임을 질 것을 추궁하는 것은 점점 갈수록 부질없는 일이 되고 있다.

  그런데, 일본이 명백히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선린관계와 평화의 전망을 손상시키는 이러한 방향을 집요하게 고집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아마도 그 궁극적인 이유는 하나의 근대국가로서 일본도 예외 없이 갖고 있는 근원적인 자기확장의 욕망, 즉 부국강병의 욕망에서 찾아야 할지 모른다. 이것은 근대적 국민국가 체제가 세계의 기본질서를 형성하고 있는 한, 소멸될 수 없는 욕망일 것이다. 일본의 개헌파가 일본국가의 대외 교전권(交戰權)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현행헌법 제9조를 애써 삭제하려고 하는 명분이 바로 ‘정상적인 국가’가 되겠다는 것이다. 이 경우 ‘정상국가’란, 단순한 방어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언제라도 무력으로 약자를 위협할 준비가 되어있는 군사국가를 뜻한다는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지금 일본이 군사력을 증강하고, 미·일동맹 체제를 강화하는 데 있어서 빌미는 언제나 북한으로부터의 위협이지만, 이것은 따지고 보면 한갓 구실에 불과할 공산이 높다. 실제로는, ‘정상국가화’를 통해서 그들은 자존자대(自尊自大)의 욕망을 실현시키고 싶을지 모른다.

  그러나 물론, 일반적인 국가의 욕망이라는 측면에서 오늘날 일본의 자폐적인 증상을 충분히 설명할 수는 없다. 필요한 것은, 예컨대 2차 대전 이후 독일이 보여준 것과 같은 수준의 전쟁책임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사죄가 왜 일본에서는 가능하지 않은지 그 구체적인 사정을 좀더 깊이 생각해보는 것이다.

  여기에서 무엇보다 주목할 것은 일본의 ‘정체성’ 문제이다. 일본은 1867년 메이지 유신 이래 자신이 지리적으로 비록 아시아에 속하면서도 비(非)아시아적 특성을 가진 나라라는 자의식을 강하게 소유해왔다. 실제로, 일본은 일찍이 서구 제국주의로부터의 침략위협에 노출되었으나, 메이지 유신에 의한 근대국가 체제의 수립을 통해서, 그리고 그로 인한 자본주의 산업화의 실현을 통해서 비서구 사회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예외적인 ‘성공’을 거둔 국가가 되었다. 같은 동양에 속하는 다른 나라들이 식민지로 전락하거나, 제국주의의 침략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경험을 해온 것과는 대조적으로 일본이 이러한 ‘근대적’ 국가의 수립에 성공할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인가―이것은 일찍부터 수많은 일본 지식인들이 던져온 물음이었고, 그 대답은 대개 일본의 문화와 전통과 역사의 ‘특이함’에 있었다.

  예를 들어, 서양의 자본주의 근대화를 개화하게 한 역사적 조건으로서의 봉건제가 아시아에서는 예외적으로 일본의 중세사회에만 존재하고 있었다. 따라서, 일본의 전통사회는 이미 자기 속에 근대화에의 발전적 역동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일본은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과는 근본적으로 이질적인 문화, 특이한 전통 위에 서 있는 나라라는 것이다.

  아시아 속에 있으면서도 자기는 아시아가 아니라고 하는 생각,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하면, 아시아가 아니고자 하는 욕망―이것은 일찍부터 ‘탈아입구(脫亞入歐)’의 욕망으로 표현되었다. 자기자신을 미개하고 야만적인 아시아와는 질적으로 다른 우월한 존재라고 여기는 이러한 ‘탈아의 욕망’은 메이지 시대 초기부터 존재하였던 것이지만, 나중에 이것이 아시아에 대한 정복과 침략이라는 제국주의적 폭력의 논리로 발전했다는 것은 우리가 다 아는 사실이다.

  실제로, 오늘날에도 일본인들의 탈아입구라는 심리적 경사(傾斜)는 뿌리깊은 것으로 보이지만, 여기에는 일본 지식인들의 공헌도 적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아마도 그 대표적인 사람은 지금 일본에서 이른바 ‘국민작가’로 추앙받고 있는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일 것이다.

  시바는 역사와 풍습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박람강기(博覽强記), 그리고 뛰어난 이야기꾼의 솜씨를 가지고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있어서 달리 유례가 없을 성공을 거둔 역사소설가이다. 그는 일찍이 나름대로 역사와 사회에 대한 진보적인 시각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일본이 경제대국으로 부상하는 상황에 대응하여 그 일본의 근현대사를 좀더 적극적으로 옹호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이것은 당시의 대중적 정서에 부응하는 측면이 강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리하여, 그는 대중적으로 비상히 설득력있는 필치로써 그동안 침략과 패전이라는 쓰라린 기억 속에 사로잡혀왔던 사람들에게 그들의 역사가 단지 실패와 좌절만이 아니라, 얼마나 자랑스러운 것이었던가를 역사소설의 형식을 빌려 광범하게 유포하였다.

  시바가 특히 강조하고,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메이지 유신 이후 적어도 청일전쟁까지 일본이 서양에 맞서는 독립된 근대적 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한 과정에서 겪은 파란만장한 시련과 인내, 영웅적인 투쟁, 그리고 그 결과로 획득한 ‘근대화’의 성취이다. 그에 의하면, 일본은 서양세계가 옛 희랍, 로마문명으로부터 시작하여 근 2000년이라는 장구한 기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이룩해온 ‘근대화’를 단기간에 성취할 수 있었던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한다. 따라서, 그것은 과연 ‘위업’이라고 할 만하다는 것이다.

  다만, 그러한 일본이 나중에 아시아에 대한 침략·지배자가 되고, 만주침략에서 진주만 공격에 이르는 군국주의 파시즘의 길을 걸어갔고, 그 결과 마침내 처절한 패배를 당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 일련의 군국주의화의 과정은 그 이전의 메이지 시대의 창조적 발걸음과는 엄격히 구별해야 한다고 시바는 보고 있다.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쇼와 시대의 책임이지, 메이지 시대와는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과연 메이지 시대와 쇼와 시대가 그렇게 확연하게 구분될 수 있는 것인지, 그 두 시대 사이에 과연 지배적인 가치, 사상, 지향, 제도에 있어서 괄목할 만한 차이가 있었는지 매우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어떻든 이러한 시바의 역사적 관점이 일본의 대중으로 하여금 자기역사에 대한 자긍심을 갖게 하는 데 지대한 기여를 해온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각도는 조금 다르지만, 이와 관련해서 전후 일본의 대표적인 정치사상가로 손꼽히는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의 경우도 간단히 언급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마루야마는 물론 시바와는 달리 대중적 차원이 아니라, 학계와 지식계에서 커다란 권위와 영향력을 갖고 있었던 사상가였던 만큼 그가 보여주는 일본 근현대사에 대한 시각은 여러 각도에서 깊이 검토될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 1945년 전쟁이 끝난 직후, 대학으로 복귀한 마루야마는 유명한〈초국가주의의 심리와 논리〉라는 평론을 발표하여, 전쟁 전 일본국가의 파시즘 체제에 대한 비판적 분석으로부터 그의 사상가로서의 생애를 시작하였다.

  그런데, 이미 여러 논자들에 의해 지적되어온 사실이지만, 이 평론과 나중의 좀더 본격적인 저술을 통해서 마루야마는 일본의 전쟁책임에 대해서는 길게 논하지만, 일본의 식민지 지배 문제에 대해서는 의도적이든 아니든 외면하고 있다는 본질적인 한계를 드러낸다. 이러한 사실은 그가 태평양전쟁 말기에 징병에 의해 식민지 조선에서 병사로서 복무하였다는 그의 개인적인 이력을 고려할 때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그러나, 식민지 문제에 대한 그의 무관심을 좀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마루야마의 파시즘 체제에 대한 비판의 핵심이 무엇인가를 고려해야 할지 모른다. 즉, 그의 시각에서 볼 때, 메이지 시대 이후 일본 근대화의 핵심적인 결함은 그것이 서구에서 보는 것과 같은 자유주의적 가치와 제도를 결여한 위로부터의 근대화였다는 것, 따라서 그것은 시민계급의 형성을 보지 못하고, 결국 군국주의 파시즘 체제로 이어지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마루야마는 결코 근대화 그 자체를 문제시한 사상가는 아니다. 이 점에서 그는 수많은 다른 사상가, 지식인들과 근대적 가치에 대한 시각을 근본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적인 것은 어떻든 받아들여야 하는 ‘선(善)’일 수밖에 없고, 다만 그것이 민주적인 과정을 수반해야 한다고 그는 생각하였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물어보아야 할 근본적인 질문은, 과연 근대화 혹은 ‘근대성’이라는 것이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또, 근대화 혹은 근대성이 진정한 ‘민중의 평화’와 양립할 수 있는가?

  마루야마 마사오의 경우, 식민지 지배 문제에 대한 그의 무관심은 어쩌면 그의 서구적 근대에의 뿌리깊은 지향과 관계가 있을지 모른다.

  생각해보면, 식민지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서구적 근대의 필연적인 산물이고, 서구적 근대와 그 근대를 모방한 모든 근대화의 과정은 풀뿌리 민중의 삶에 대한 근원적인 공격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식민지 지배 혹은 식민지적 착취의 구조를 떠나서 근대화 혹은 근대성에 대해서 생각할 수는 없다. 근대화 혹은 근대성이라는 개념 자체는 반드시 식민지의 존재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적 산업화와 시장시스템의 확산을 그 필수적인 요건으로 하는 근대화 혹은 근대성이라는 것은 세계 전역의 풀뿌리 민중 공동체들에게 한마디로 재앙이자, 홀로코스트였다. 오늘날 엘리트들의 감각으로는 수긍하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이것은 콜럼버스 이후의 세계사가 증언하는 움직일 수 없는 현실이다.

  마루야마는 또한 메이지 시대 국가형성기의 주요 사상가, 민권운동가, 교육가였던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의 찬미자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후쿠자와는 동시에 당대의 대표적인 탈아론(脫亞論), 정한론(征韓論)자였다. 그러니까, 그는 일본이 근대적 국가로 발전하는 데 있어서 아시아적 정체성(正體性)을 벗어나고, 조선을 식민지로 만드는 일은 불가피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엘리트로서의 마루야마 마사오가 이처럼 후쿠자와 유키치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찬미했던 것은 단순히 우연이 아닐 것이다. 아마도 마루야마 역시 일본의 근대화에는 식민지 지배가 불가결한 요소라고 생각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어떤 의미에서, 후쿠자와나 마루야마는 둘다 식민주의와 근대성의 표리일체 관계를 인식하지 못하는 여타의 사상가, 지식인들의 ‘순진성’에 비해서 훨씬더 냉철히 근대성의 본질을 투시하고 있었던 사상가였는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시바 료타로 같은 작가의 ‘순진성’에 비한다면 말이다.

  흥미롭게도, 메이지 유신 이후의 일본 근대화의 과정을 ‘위업’으로 찬미했던 시바는 1996년 2월 사망하기 직전에 가졌던 한 대담에서, 오늘날 시장원리의 지배 속에서 황폐화하고 있는 일본사회의 현실을 개탄하고, 각별히 토지문제에 대한 관심을 피력하였다. 그의 사후《주간 아사히》지에〈일본인들에게 보내는 유언〉이라는 제목으로 게재된 이 대담기록에서, 이와 같은 현실의 타개책으로 시바가 제안하고 있는 것은 ‘토지의 공유화’였다. 그의 말을 조금 들어보자.

 

  나는 경제를 모릅니다. 그러나, 사상만으로 오늘의 밭을 보아도, 노동의 가치라는 것은 이제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노동의 가치가 사라지고, 물건을 만드는 기쁨도 없습니다…이대로 일본 전국이 이렇게 된다면 우리들이 천년 이상 장구한 세월에 걸쳐 가꾸어온 모랄이 붕괴해버린다고 생각합니다…땅은 우리가 거기에 기대어 살고, 마지막에는 거기로 뼈를 묻는 곳입니다. 땅 위에서 인생이 있고, 역사가 전개됩니다. 땅은 우리들 모두의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토지사유가 시작되었습니다…토지는 누구의 것도 아니고, 모두의 것이라는 윤리가 예전에는 있었습니다. 멀리로부터 돌아온 러시아인이 대지에 입을 맞추듯이, 일본국에도 멀리로부터 돌아오면 다시 밟아보는 땅의 온기를 느끼고 애국심이 생길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최후의 버블(거품)이 일어나서 토지는 뒤죽박죽이 되어버렸습니다…자본주의는 멋대로 풀어놓으면 맹수와 같이 먹어치운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다음 시대가 오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내게는 있습니다. 이처럼 어둠을 만들어버리면 일본열도라는 땅 위에 사람은 거주할지 모르지만, 튼튼한 사회를 구축한다는 것은 어렵습니다…적어도 토지문제를 윤리적인 의미로 결산을 해두지 않으면 다음 시대는 오지 않습니다. 토지투기를 쓰라린 마음으로 보아온 사람으로서 왠지 자포자기의 기분입니다.

 

  현대 일본의 이른바 국민작가가 생애 최후의 자리에서 이러한 절망감을 토로하고 있는 모습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시바는 오랜 작가로서의 생애 동안, 천년 넘게 계속되어온 일본정신을 찬미해왔고, 그런 맥락에서 메이지 유신 이후의 근대화의 성과를 바라보며 일본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자긍심을 유포해왔다. 그런데, 생애 최후의 자리에서 그는 그러한 일본적 문화와 정신의 절망적인 붕괴를 보고 있는 것이다. 그 원인은 그가 보기에 일본 전역을 휩쓸고 있는 토지투기 바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토지의 공유화를 제창하고, 그러한 경제적-윤리적인 대혁신이 없으면 일본의 미래가 없다고 경고하고 있다.

  시바가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은, 간단히 말하면, 현대 산업사회가 어디에서나 직면하고 있는 생태학적·도덕적 붕괴의 현실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가 개탄하고 있는, 토지가 투기상품이 되어버린 이러한 절망적인 현실은 바로 시바 자신이 그동안 찬미해 마지않았던 일본 근대화의 필연적인 귀결이 아닌가. 근대화의 추진은 찬미하면서, 그 필연적인 결과로 발생한 생태학적·윤리적 붕괴에 대해서 이렇게 개탄스러워한다는 것은, 윤리적으로 또 생태적으로 건전한 근대화가 존재할 수 있다는 가정 위에서나 가능하다. 그런데, 되풀이하지만, 그런 근대화가 과연 있을 수 있는가.

 

 

  일찍이 식민지 해방투쟁의 선구적 이론가로서 프란츠 파농은, 서구 근대사회는 언제나 휴머니즘에 관해 말하면서 세계 전역에서 풀뿌리 민중의 평화로운 살림을 뿌리째 거덜내고, 거리낌 없이 토착민을 살육해온 역사적 현실을 응시하면서, 서구 근대와의 결연한 결별을 선언한 바 있다.

  그의 선언이 당장에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의 운명의 개선에 얼마나 이바지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이제와서 우리가 근대적 가치와 제도와 관습의 테두리를 떠나서 생존할 수 없다는 것도 명백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행복을 정말로 생각한다면, 근대화 내지 근대성이라는 것이 결코 무조건 떠받들고 옹호해야 하는 가치가 아니라는 것을 부단히 의식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는 우리와 다음 세대의 단순한 생존의 가능성을 위해서도 이제 ‘근대적인 것’의 배후에 있는 근본모순과 어둠을 근원적으로 직시하지 않으면 안된다.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소수 엘리트 그룹을 제외하고는, 근대사회의 출현은 지구상의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처음부터 대재앙을 예고하는 비극적 씨앗이었다.

  아시아에서 제일 빨리, 성공적으로 근대화를 실현하였다는 자부심으로,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도 잊어버리고, 끊임없이 자기의 이웃을 멸시하고, 강자에 대하여 노예적인 자세로 일관하는 오늘의 일본국가와 그것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참으로 희극적이다. 이 희극성은 그들이 그들 자신의 자부심, 자긍심의 근거인 근대화의 ‘위업’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허구적인 것인가를 깊이 자각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한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재일코리안 역사가로서 김정미(金靜美)라는 이가 있다. 그는 어떤 기관에도 소속하지 않은 독립적인 재야의 학자로서,《中國東北部에 있어서의 抗日朝鮮-中國民衆史序說》,《水平運動史硏究》그리고《故鄕의 世界史》와 같은 치열한 저술활동을 통해서 일본의 식민지 지배의 문제를 끈질기게 천착해왔다. 그는 일본이 오늘날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을 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사정을 다음과 같이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다. 즉, “일본제국주의가 식민지로서 지배한 지역의 사람들에게 보상·배상을 한다면, 일본은 세계 최빈국(最貧國)의 하나가 될 것이다. 아메리카 제국주의가 베트남 인민들에게 끼친 피해에 대해서 정말로 보상·배상을 한다면 아메리카는 세계 최빈국의 하나가 될 것이다.”

  김정미 씨는 물론 여기서 제국주의로 인해 식민지 민중에게 끼쳐진 삶의 훼손이 얼마나 엄청난 규모의 것인가를 말하고 있지만, 그의 예리한 지적에 담겨있는 함의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가령 흔히 패전 후 잿더미에서 오늘의 일본경제가 부흥했다고 하지만, 그것도 우스운 이야기라는 것이다. 전후 일본경제의 부흥은 한국전쟁에 의한 특수(特需) 외에, 이미 식민지 지배를 통해 아시아 민중들에게 입힌 상해(傷害) 위에서 이루어진 이른바 본원적 축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정미 씨의 이 발언이 내포하는 궁극적인 의미는 이보다 훨씬더 심각한 차원에 관계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놓치지 말아야 한다. 즉, 그것은 바로 오늘의 일본 혹은 미국의 경제도 계속해서 어떤 형태로든 제국주의적 식민지배의 구조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구조를 계속 유지하기를 원하는 한, 일본이(그리고 미국도) 진정으로 과거의 침략·지배 행위에 대해서 사죄를 한다거나 국가적인 정당한 보상과 배상을 결정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들의 현재와 같은 방식의 경제 시스템의 근본적인 방향전환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것은 적어도 지금 상황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사태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러한 방향전환은 일본이 아시아 속의 일원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겸허히 재발견하고, 이웃 나라들과 여하히 평화로운 선린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할 때, 비로소 시도될 수 있는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방향전환을 위한 시도는 궁극적으로 일본에 국한된 과제가 아니라는 것은 굳이 여기서 덧붙일 필요가 없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V, 기억을 잃어버리다
 
영화와 드라마 속 기억상실증 해부
김상연 기자
2005년 5월 1일 dream@donga.com
겨울연가 등 기억상실증을 다룬 드라마는 종종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감상적이 되기 전에 잠깐. 아무리 상상력을 덧붙였다지만 브라운관 속의 기억상실은 정말 사실일까. 영화와 TV에 나온 기억상실증을 하나하나 살펴보자.
드라마 ‘열여덟 스물아홉’

29세가 18세로 되돌아간다

먼저 ‘그럴 수 있다’는 의견. 서울대 의대 신경과 이경민 교수는 “사고 당시와 가까운 기억을 잃어버리는 것은 기억상실증의 한 특징”이라고 말했다. 사람의 뇌 속에서 단기기억(작업기억)이 장기기억으로 바뀌는 과정을 ‘강화’라고 한다. 최신 기억일수록 강화 과정이 늦게 또는 약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잃어버리기도 쉽다.
그러나 동아대 의대 최병무 교수는 “사고 주위의 짧은 기억을 잃어버리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10년의 기억을 송두리째 잃어버리는 것은 어렵다”고 말했다.

드라마 ‘봄날’에서 남자 주인공은 처음 만난 친어머니와 차를 타고 가다 교통사고를 당한다. 차 안에서 어머니가 죽고 주인공은 13세로 돌아가는 기억상실증에 걸린다.
이 드라마에 대해 연세대 세브란스정신병원 김재진 교수는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기억상실증의 원인은 크게 심리적인 것과 육체적인 뇌 손상으로 나뉜다.‘봄날’의 경우 친어머니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한 충격으로 기억상실증에 걸렸을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심리적인 원인으로 생긴 기억상실증을 ‘해리성’이라고 한다.

만일 주인공이 충격적인 기억을 잊고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기억상실증에 걸렸다면 13세 이후의 모든 기억 대신 친어머니에 대한 기억만을 선택적으로 잊어버릴 것이다. 다만 서울대 이경민 교수는 “기억상실증에 걸려 연인을 알아보지 못해도 과거에 사랑하던 감정을 느낄 수는 있다”고 했다.

겨울연가

자기 이름까지 잊어버릴 수 있을까

일본에서 용사마 열풍을 일으킨 드라마 ‘겨울연가’에서 남자 주인공(배용준)과 여자 주인공(최지우)은 고교 시절 사랑에 빠진다. 성인이 돼서 다시 만나는데 남자는 여자를 알아보지 못한다. 심지어 자신의 예전 이름도 기억 못한다. 드라마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에서도 남자 주인공이 사고 한번 당하더니 예전 기억을 모두 잃고 새로운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
아무리 드라마가 상상이라고 하지만 ‘겨울연가’나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식의 기억상실증은 지나친 오류라고 의학계는 평가한다. 심리적인 충격이든 사고 때문이든 이렇게 기억 전체를, 그것도 정신은 멀쩡한데 기억만 송두리째 잃어버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동아대 의대 최병무 교수는 “이름까지 잃어버릴 정도의 기억상실증이라면 뇌를 크게 다쳐 판단력, 집중력, 언어 능력 등 뇌기능의 상당 부분이 손상됐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뇌에서 기억이 저장된 곳만 선택적으로 파괴되기는 매우 어렵다”고 덧붙였다.
재미있게도 기억상실증 환자가 자기 이름만 잊을 수는 있다. 아내, 애인, 부모, 직장 상사 등 특정인에 대한 기억도 곶감 골라 먹듯 잊을 수 있다. 심각한 갈등 관계에 있는 사람을 잊으려는 일종의 방어 기제다. 연세대 김재진 교수는 “심한 스트레스가 반복되면 드물게도 밤에 꿈을 꾸면서 기억상실증에 걸릴 수도 있다”며 “꿈 속에서 스트레스를 피하려는 무의식적인 정신활동이 매우 활발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첫키스만 50번째

첫키스만 50번 할 수 있을까

영화 ‘첫키스만 50번째’를 보면 기억상실증에 걸린 여자가 하루 동안 일어난 일을 잠만 자면 잊어버린다. 그녀는 마지막에 결혼도 하고 아기도 낳지만 자신은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른다. 영화 ‘메멘토’는 증세가 더 심하다. 10분마다 기억이 사라진다. ‘웃찾사’의 ‘희한하네’라는 코너도 비슷한 증상을 웃음의 소재로 삼고 있다.

기억상실증에 걸리면 두 가지 다른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 하나는 예전 기억을 잃어버리는 것인데, 이를 후행성 기억상실증이라고 한다. 한국의 TV 드라마에 많이 나온 기억상실증이 주로 이 증상이다. 다른 하나는 새로 겪는 경험을 기억하지 못하는 선행성 기억상실증이다. 앞서 말한 두 영화 모두 선행성 기억상실증을 다뤘다. 동아대 최병무 교수는 “기억은 지속 시간에 따라 5~10분의 초단기, 며칠 동안의 단기, 몇 달 간의 중기, 몇 년 이상 지속되는 장기기억으로 나뉜다”고 말했다. 두 영화는 초단기 또는 단기기억을 오랫동안 지속시키지 못하는 병에 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영화 ‘첫키스만 50번째’에 대해 서울대 이경민 교수는 “하루 종일 발생하는 일들을 잘 기억하고 지내다가 잠만 자면 모두 소실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메멘토’는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김종성 과장은 최근 ‘춤추는 뇌’라는 책을 통해 비슷한 환자를 소개했다. 이 환자는 평소에 술을 지나치게 마신데다 뇌졸중에 걸려 기억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뇌 양쪽의 해마가 모두 손상됐다. 그는 영화 주인공처럼 새로운 기억을 10분 정도 밖에 유지하지 못했다. 밥을 먹은지 10분이 지나면 먹은 사실을 잊고 밥을 또 달라고 했다.

본 아이덴터티

기억상실증 환자에게 킬러 본능이?

“전문 킬러가 기억상실증에 걸려 이름도 성도 모른 채 평범한 주부로 살아간다. 그러나 요리를 할 때마다 나타나는 눈부신 칼질에 자신의 과거 직업을 요리사라고 생각한다.”
영화 ‘롱키스 굿나잇’의 전반부다. 영화 ‘본 아이덴터티’도 기억상실증에 걸린 CIA요원이 등장한다. 이 영화들의 특징은 주인공이 기억상실증에 걸려도 무술이나 사격 등 신체적인 기능이 여전히 뛰어나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가능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충분히 가능하다. 고려대 교육학과 김성일 교수는 “기억은 사건이나 지식에 대한 서술기억, 축구공을 차거나 젓가락질을 하는 절차기억 등으로 나뉜다”고 말한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물리학과 정재승 교수는 “서술기억은 특정 영역에 저장돼 있지만 절차기억은 좀더 교묘한 형태로 저장돼 있어 한번 익히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영화 ‘롱키스 굿나잇’의 주인공은 아직 서술기억이 남아 있는 경우며 많은 기억상실증 환자들이 비슷한 증상을 보인다”고 말했다.

영화 ‘페이첵’에서는 뇌의 특정 신경세포를 제거해 기억을 지우는 장면이 나온다. 강원대 심리학과 강은주 교수는 “기억은 한군데가 아니라 뇌의 여러 부분에 네트워크로 분산 저장돼 있다”며 “컴퓨터처럼 뇌의 특정 부위를 제거해 특정 정보를 지우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고 밝혔다. 강 교수는 “특히 오래된 기억일수록 단단하기 때문에 지우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잃어버린 기억찾기

머리 부딪히면 기억이 되돌아올까

드라마를 보면 기억상실증에 걸린 환자가 종종 머리에 충격을 받고서 기억이 돌아온다. 기억상실을 고치기 위해 일부러 머리를 세게 때리기도 한다. 과연 이런 방법이 효과적일까.
정신과 의사들은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말한다. 영국국립병원 신경정신과 살리에 박센데일 박사는 이런 장면에 대해 “다리뼈가 부러진 사람이 다리를 다시 다친다고 좋아지는 경우가 있는가”라고 미국 과학잡지 ‘디스커버리’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박센데일 박사는 “기억상실증을 다룬 영화 60편을 분석한 결과 많은 장면이 부정확하다”며 “실제 환자가 자신의 이름 등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경우는 드물며 새로운 기억을 잘 간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영화 ‘니모를 찾아서’에 등장하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물고기가 현실에 가장 많은 사례라고 한다.
그러나 옛사랑과 주고받은 반지를 보다 기억이 떠오르는 장면 등은 비교적 사실적이다. 서울대 이경민 교수는 “아직 검증된 바는 없지만 연상작용을 이용한 기억 인출 연습이 효과가 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기억상실증 드라마와 영화의 가장 큰 오류. 이들 드라마만 보면 기억상실증이 자주 일어나는 정신병처럼 보인다. 그러나 기억상실증은 실제로 매우 드문 정신질환이다. 기억상실증의 남발이야말로 상당히 비과학적인 설정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재료
멸치 150그램, 슬라이스 아몬드 50그램
 
조림장
간장 1작은술, 설탕 2큰술, 와인 1작은술(정종이 없어서 ^^),
물엿 3큰술, 고춧기름 3큰술, 생강즙 1작은술
 
 
계량해둔 멸치와 슬라이스 아몬드
 

 
오븐팬에 좌르륵 멸치와 아몬드를 깔고 오븐에 넣어요~
 
 
만들기
 
1. 먼저 멸치와 슬라이스 아몬드를 170도씨로 예열된 오븐에 넣어 10분정도 구워요.
 
2. 조림장을 팬에서 끓이다가 멸치와 아몬드를 넣어 볶는다.
 
3. 조림장이 없어지면 불끄고 통깨넣어 버무려요.
 
4. 넓은 팬에서 다 식힌후에 통에 보관한다.
 
tip. 조림장은 금방 끓기때문에 거품이 생기기 시작하면 멸치와 아몬드를 넣어
멸치와 아몬드에 조림장이 잘 섞이도록 한다.
 
 
 
오븐에서 꺼낸 멸치와 아몬드를 끓인 조림장에 섞어서 식히고 있는중~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바람구두 > 신화를 통해 현대문명 사고하기....

신에 대한 도전
-“아테나와 아라크네 / 에리시톤 / 욥기”를 중심으로

바람구두(windshoes)


1. 아테나와 아라크네
- 신의 지혜와 인간의 기술

제우스는 티탄족 가운데 가장 지혜로운 여신 메티스를 아내로 삼았는데, 메티스가 두 번째로 낳을 아들이 제우스의 왕위를 빼앗을 것이란 예언이 두려워 아내를 집어 삼킨다. 계속 두통을 호소하는 제우스의 두개골을 쪼개자 그 안에서 완전무장한 모습으로 아테나가 빠져 나온다.(아테나를 직접 출산까지 한 제우스는 여신 아테나의 부탁은 거절한 전례가 없을 만큼 총애했다.)

지혜의 여신 아테나는 도시 아테나를 탐낸 해신 포세이돈과 더불어 도시 아테나를 두고 인간에게 가장 유용한 선물을 준 신이 도시 아테나를 차지하는 경쟁을 했다. 인간에게 말(馬)을 준 포세이돈(말의 신이기도 하다)과 올리브를 준 아테나의 대결에서 아테나가 승리한다. 아테나는 이외에도 여러 가지 기술들을 관장했고, 인간에게 그것들을 나눠주었다. 베틀, 바느질, 마름질, 염색, 자수를 가르쳤고, 도자기 굽는 법, 농부들을 위해 쟁기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수레를 발명했고, 조선술을 개량해 주었고,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 나팔을 발명했다. 무엇보다 그녀는 지혜의 여신이었다.

인간 아라크네는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움은 단순히 육체적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길쌈과 수  놓는 솜씨마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것이었다. 사람들은 아라크네의 이런 솜씨가 당연히 아테나 여신의 가르침 덕이라고 칭송했다. 그러나 아라크네는 그럴 때마다 자신이 잘 나서 그런 것이라고 자랑했고, 심지어는 아테나와 겨루기를 해도 뒤지지 않을 것이란 자신감을 보였다.

참다못한 아테나가 노파로 변신해 아라크네를 설득하려 했으나 결국 아라크네(내 말은 내가 책임지겠어요)는 아테나의 분노를 사고 만다. 여신과 인간은 각자 길쌈을 해 승부를 겨루기로 했다. 아테나는 신들의 위엄이 드러나는 모습을, 아라크네는 불손한 마음을 담아 신들의 추태를 주로 담아 오만함을 드러냈다.

모욕을 느낀 아테나는 아라크네의 천을 찢어버린다. 그제야 자신의 오만함을 깨우친 인간 아라크네는 부끄러움을 참지 못하고 스스로 목을 매 자살하고 만다. 아라크네를 불쌍히 여긴 아테나는 아라크네를 거미로 만든다.

Ex 1. ) 다이달로스와 이카로스
아테네 사람이자 헤파이스토스의 후손인 다이달로스는 뛰어난 장인이었다. 그의 기술을 능가할 수 있는 사람은 헤파이스토스 이외에는 없었다. 그의 제자 탈로스 역시 뛰어난 인물이었는데 생선의 등뼈를 보고 톱을 만들 정도로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러자 다이달로스는 이를 시기해 탈로스를 살해하고 만다. 죄를 지은 다이달로스는 크레타로 달아나 미노스왕의 아내 파시파에가 욕정을 품은 숫소와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커다란 로봇 암소를 만들어 주어 반인반수의 괴물 미노타우로스가 탄생하도록 했다. 은혜를 배신당한 미노스왕은 화가 나서 다이달로스와 이카로스를 가택 연금시킨다. 다이달로스는 탈출을 위해 날개를 밀랍으로 붙여 하늘을 날아오른다. 그러나 아버지의 오만함을 닮은 아들 이카로스는 아버지의 경고를 무시하고 너무 높이 날아올라 태양신에게 근접한 나머지 밀랍이 녹아 추락사하고 만다.

Ex 2. ) 바벨탑
창세기에 등장하는 바벨탑은 대홍수가 휩쓸고 지나간 후 노아의 후손들이 다시 시날(바빌로니아) 땅에 정착하여 세우기 시작한다. 이곳 사람들은 도시를 건설하고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탑을 세우기로 하였다는데, 이들의 바벨탑을 세우고자 한 목적은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탑을 쌓아올려 자신들의 이름(신의 이름이 아닌)을 떨치고 홍수와 같이 야훼의 심판이 닥치더라도 이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이미 야훼는 노아의 홍수 이후 다시는 물로써 심판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였고, 그 약속의 표징으로 무지개를 세웠으나 인간은 믿지 않았다. 바벨탑은 인간이 야훼를 불신한다는 증표이기도 했다.

이를 괘씸하게 여긴 야훼는 탑을 건축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언어를 혼동 시켜 멀리 흩어지게 하여 바벨탑의 건축을 중단시킨다. 그래서 이 지명을 바벨(Babel), 또는 바빌론(Babylon)이라 불렀는데 그 뜻은 ‘그가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다’(창세 11:9)는 내용이다.


2. 데메테르와 에리시톤
- 신의 사랑과 인간의 욕망

명부(冥府)의 왕 하데스에게 납치된 페르세포네의 어머니이기도 한 데메테르 여신은 인류에게 최대의 은혜를 베푼다 하여 올림포스의 신들 가운데서도 특히 숭배를 받는 대상이었다. (데메테르는 풍요와 곡물의 여신으로 전율과 기아의 신과는 대면조차 금지되어 있을 만큼)

그런데 인간 에리시톤은 신앙심이라는 것을 우습게 알고, 신을 업신여기는 인물이었다. 그는 데메테르에게 봉헌된 숲을 모조리 도끼로 제거하려 했고, 위엄 있는 나무를 찍어 없애라고 하인에게 명령하여 하인이 불복종하며 이를 가로막자 하인을 죽이고, 직접 도끼질을 한다.

분노한 데메테르는 기아의 여신으로 하여금 에리시톤에게 들어가도록 해 계속되는 허기로 모든 재산을 팔고, 마침내 딸까지 팔아치우려 들게 만든다. 에리시톤의 기아는 결국 자기 팔과 다리를 잘라 먹는 파멸의 과정에 이르러 목숨을 잃고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Ex ) 탄탈로스
리디아의 왕 탄탈로스는 올림포스를 드나들며 신과 교류하고, 신들과 함께 “넥타르와 암브로시아(신들의 음료와 음식)”을 즐길 수 있는 특권을 지녔다. 그런데 탄탈로스는 올림포스에서 신들의 음료와 음식을 훔쳐 지상으로 가져오거나 제우스의 비밀을 사람들에게 떠벌이고 다녔다. 스스로를 신과 유사한 존재로 생각했고, 그럴수록 더욱더 교만해졌다. 그는 자신을 초인적 능력을 지닌 인물로 생각했고, 신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 결과 도둑 판다레오스가 제우스에게서 훔쳐 온 황금 개를 제 집에 숨겨두고도 제우스의 이름을 걸고 황금 개를 숨겨두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한다. 심지어는 신들을 시험하기 위해 제 아들인 펠롭스를 토막내 음식으로 만든 뒤 신들에게 음식으로 내놓기까지 한다. 분노한 제우스는 그를 명부의 호수에서 목만 내밀고 있게 한 뒤 타는 듯한 갈증에도 불구하고 물을 마시기 위해 고개를 숙이기만 해도 호숫물이 빠져버리고, 나무에 과일이 주렁주렁 열려 그가 손을 내밀기만 해도 바람이 불어 가지를 높이 들어올리도록 하는 벌을 내렸다. 탄탈로스는 너무 많은 행복을 누렸으나 이를 겸허히 받아들이지 못한 죄로 더욱 가혹한 형벌을 받게 되었다.


3. 야훼와 욥
- 신의 결정과 인간의 의지

신실한 믿음을 지닌 욥은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악한 일은 거들 떠 보지도 않았다. 그는 많은 아들, 딸을 두어 가정이 화목하고, 동방에서 으뜸가는 부자였다. 야훼조차 사탄에게 욥의 신실함을 자랑할 정도로 그의 믿음은 두터웠다. 사탄은 하느님이 주신 넉넉한 것들 때문에 당연히 하느님을 칭송한다며 욥을 시험에 들게 하도록 한다. 야훼는 욥의 몸에 해를 가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시험을 허락한다. 사탄에 의해 모근 것을 빼앗기는 고통 속에서도 욥은 입술로 죄를 짓지 않는다.

욥의 세 친구들이 찾아와 위로하자 욥은 감히 신을 원망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저주한다. 엘리바즈, 빌닷, 소바르의 거듭되는 충고에 욥은 계속 자기 자신만을 저주(비난)하며 하느님께 기도한다. 세 친구들과 말(입)으로 논쟁하여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려는 욥을 괘씸하게 생각하는 엘리후는 하느님보다 옳은 체 하는 그를 비난하여 하느님은 온전하신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어떠한 일이건 (무조건) 옳다. 모든 것은 하느님이 주신 것이기에 하느님의 마음이라고 주장한다.

야훼 하느님이 나서 말하길 모든 것은 가치 판단(누가 옳고 그르고)의 문제가 아니다. "전능하신 이와 변론하는 자야, 어찌 물러서려느냐?"(40장 2절) 야훼는 욥의 친구들은 하느님의 이야기를 할 때 욥처럼 솔직하지 못했다며 욥에게 전 보다 더 많은 것들을 돌려준다. 인간(욥)이 무엇인가 소유하는 것은 인간의 결정이 아닌 신(자연)의 결정이다.

Ex ) 시쉬포스
시쉬포스는 타르타로스에서 엄청난 바위 덩어리를 그가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리면 다시 산 밑으로 바위가 굴러 떨어지는 무의미한 작업을 반복하는 영원한 형벌을 받았다. 물론 시쉬포스는 인간들 가운데 가장 교활한(지혜로운) 자라는 표현을 얻을 만큼 영리한 인간이었다. 그는 대도(大盜) 아우톨뤼코스보다도 영리해 잃어버린 소떼를 되찾고, 소떼 이외에 대도의 딸까지도 납치해 훗날 오디세우스를 낳는다. 그러나 시쉬포스는 프로메테우스, 탄탈로스 만큼 큰 죄를 지은 적은 없었다. 다만 그의 동생 살모네우스가 제우스의 모습을 변장해 말 네 마리가 끄는 마차를 타고 천지를 돌아다니며 여자들을 유혹하다 제우스의 번개를 맞아 죽은 적은 있었다. 물론 죄가 있다면 제우스가 강의 신 아소포스의 딸을 납치하려 했을 때, 이를 아소포스에게 알려줘 제우스의 욕망을 방해한 적은 있었다. 그의 영리함은 너무나 뛰어났기에 제우스는 시쉬포스를 타르타로스에 가둬두려고 죽음의 신 타나토스를 보낸다. 시쉬포스는 타르타로스를 속여 도리어 그를 쇠사슬로 묶어 두었다. 타르타로스가 묶여 있게 되자 더 이상 아무도 죽지 않게 되어 신들은 전쟁의 신 아레스를 보내 죽음의 신을 구출하게 만든다. 결국 시쉬포스는 죽어 저승으로 끌려가게 되었다. 그러자 시쉬포스는 아내에게 자신이 죽은 뒤에도 절대 장례를 치르지 말라고 말한다. 지옥에 내려간 시쉬포스는 하데스의 아내 페르세포네에게 자신의 아내가 장례를 치러주지 않으니 잠시 말미를 주면 아내에게 장례를 치르도록 야단치고 돌아오겠다고 말한 뒤 지상으로 올라갔으나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신들 가운데 가장 영리한 헤르메스가 나선 뒤에야 그는 지옥으로 끌려가 바위를 짊어지는 형벌을 받는다. 알베르 까뮈는 이런 시쉬포스에게서 인생의 부조리를 끌어내, 정당한 이유가 결여된 삶에서 모든 것의 의미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절망하지 않고, 항상 바위를 산 위로 밀어 올리는 과정에서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고 말한다.


4.  결론: 신화의 서사구조를 통해본 신과 인간

아도르노는 『계몽의 변증법』에서 “애니미즘이 사물을 정령화 했다면 산업주의는 영혼을 물화한다”고 말한다. “진보적 사유라는 가장 포괄적인 의미에서 계몽은 예로부터 인간에게서 공포를 몰아내고 인간을 주인으로 세운다”는 계몽의 목표를 추구해왔다. 노아의 홍수라는 자연 혹은 신의 징벌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인간은 바벨탑을 세우려 했고, 자신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죽음의 신 타르타로스를 쇠사슬로 묶었다. 자연으로부터 얻은 혜택을 망각하고, 끊임없이 숲을 개간하고, 자연으로부터 얻은 사랑(자원과 기술)을 망각하고 욕보였다.

스스로를 신과 대등한 존재로 생각한 인간은 로봇 암소를 만들어 짐승과 결합하도록 하여 반인반수를 만들어 냈고, 그 교만함은 하늘을 찔러 태양신의 영역까지 날아올랐다. 인간의 이성은 자연의 본성과 행복한 결합을 이룰 수 없도록 방해했다. 지식의 목표는 ‘방법’, 타인의 노동을 착취하고 좀 더 많은 자본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배우고 싶어 하는 것은 자연과 인간을 완전히 지배하기 위해 자연을 이용하는 법으로 변질되었다.

1) 신성이 깃든 자연(아테나와 야훼 등, 즉 신)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베풀어 주었으나 인간은 이를 겸손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2) 인간(아라크네, 다이달로스, 바벨탑의 인간)은 자연이 베풀어준 원료와 자연으로부터 깨우친 지혜를 통해 길쌈과 기술을 익혔으나 교만하여 신에게 저항하거나, 인간의 본성에 어긋나는 일을 저질렀고, 신과의 약속을 부정하고, 다른 인간의 은혜에 배반을 일삼았다. 3) 인간은 언어를 통해 지혜를 얻고, 무리를 지어 기술을 전수했으나 이것은 자연과 더불어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만의 사회를 일구고, 자연을 배신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계몽의 합리성은 초자연적인 현상들을 인간의 공포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고, 모든 초자연적인 현상들을 부정하는 탈신화화의 길로 나아가게 만들었다. 어쩌면 계몽의 제물이 된 신화도 이미 계몽의 산물이었다. 신화는 모든 가르침의 출발이었기 때문이다. 신화적 상상력에 반대하는 계몽의 원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신화가 되었고, 하늘 아래 더 이상 아무 것도 새로울 것이 없었던 인간은 자신들의 이성을 통해 이미 세상의 모든 진리를 깨우쳤고,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발견했으며,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태도를 취한다. 신화가 죽은 것을 산 것과 동일시한다면 계몽은 산 것을 죽은 것과 동일화한다.(신화의 세계, 자연, 사물을 생명을 지닌 대상으로 취급한다면 계몽은 자연을 죽은 것으로 취급하여 이용과 정복의 대상으로 대한다.)

제레미 리프킨은 『엔트로피(entropy)』를 통해 “인간이 살아가는 궁극적인 목적은 모든 물질적인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지리와의 합일을 도모하여 여기서 얻는 만족으로부터 비롯되는 인간적인 해방감을 체험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엔트로피는 열역학에서 말하는 ‘열역학의 제2법칙’을 말하는데, 제1법칙은 ‘에너지 보존의 법칙’으로 ‘외부와 에너지의 출입이 없는 경우 어떤 물리계의 전체적 에너지는 에너지가 다른 형태로 전환되더라도 변하지 않고 보존된다.’는 것이다. 제2법칙 ‘엔트로피의 법칙’은 ‘엔트로피는 언제나 증가하기만 할 뿐 줄어들지 않으며 물질과 에너지는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부터 사용할 수 없는 것으로만, 또한 질서화된 것으로부터 무질서화된 것으로만 변화한다.’는 것이다.

400여 년 전 베이컨과 데카르트, 뉴턴에 의해 구축된 ‘객관적 지식이 있으면 인간은 자연계를 지배할 수 있다.’는 세계관(패러다임)을 통해 산업혁명이 가능했고, 끊임없는 성장과  한계 없는 진보라는 신화가 만들어졌다. 리프킨은 이와 같은 세계관에 의한 과학기술문명의 발달은 엔트로피(entropy)를 증가시켜 각종 자원이 고갈되고,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 지구 온난화 현상과 지각변동에 의한 기후변화 등 심각한 문제들을 빚어내고 그 결과 자연은 회복 불능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고 비판한다. 리프킨은 문명비판을 통해 새로운 세계관을 구축할 것을 제의한다. “세상은 갈수록 혼돈의 와중으로 빠져들고 있다. 어떤 일도 제대로 되어가는 게 없어서 여기저기서 끝없는 수선과 짜깁기의 연속이다. 위기를 넘겼다고 생각하는 순간 또 다른 사건이 터진다. 거기에 관련된 사람들 모두를 몰아 붙여 탓해 보아도 사태는 갈수록 악화되기만 한다. 정치권의 리더나 누구 대단한 사상가라 할지라도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만연된 문제를 풀 수 있으리라는 전망은 보이지 않는다. 붕괴로 몰고 가는 냉혹한 기운이 세계를 잠식하는 오늘의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현존하는 세계관에 대해 냉철하게 따져 보아야 한다. 세상을 병들게 하고 그 속의 모든 것을 오염시키는 주범은 바로 우리들의 세계관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신화적 사고와 세계관이 중시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5. 질문들
1) 야만적 상태(자연에 대한 공포 등)를 벗어나고자 한 인간의 지식(기술)은 새로운 야만적 상황을 만들어내는가?

2) 인간의 욕망은 이성에 의해 통제될 수 있는가?

3) 자연의 본성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의지는 자연과의 합일을 해치는 방향으로만 나가는가?

4) 인간의 행복은 물질문명, 기술적 진보에 의해서만 가능한가?

-----------------------------------------------------------------------

* 얼마전 만난 이에게 신화를 과학과 결부시켜 설명하는 작업들을 해보고 싶단 이야기를 했는데, 많이 어려울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신화의 서사구조를 해체하고, 그 속에 담긴 의미를 끄집어내고자 하는 시도는 지금까지 많이 있었으나 대개는 예술과 결부시키거나 문화인류학적인 차원에서 보았는데, 나는 그것이 지닌 의미를 현대 사회와 문명 그리고 생태학적 사고와 더불어 물질문명에 대한 대안을 찾고자 하는 과학적 시도와 밀접한 연관을 맺은, 즉 세계관의 변환을 가져올 무엇으로 보고 싶었다. 물론, 지금 이 글은 발제를 위해 대충 쓴 것이긴 하지만... 그 분께 나의 대답 혹은 내가 신화를 공부하여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를 보여주는 글은 될 수 있을 듯 싶어서 올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