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공간의 실체 “근본부터 따져보자”
[한겨레 2005-06-30 17:42]

[한겨레] ‘물통실험’에 관한 300년 과학논쟁이 벌어졌다.

근대 과학혁명의 주인공인 뉴턴이 1689년에 제안한 ‘물통실험’ 모형은 후대 이론물리학자들이 공간의 실체 논쟁을 벌일 때 무수히 등장하는 논쟁거리가 됐다.

뉴턴은 뭘 제안했나. 여기 물이 가득 찬 물통이 있다. 물통을 밧줄에 매단 다음 물통을 한쪽 방향으로 돌려 밧줄이 배배 꼬이게 한다. 이제 물통을 잡은 손을 놓자. 밧줄이 풀리면서 물통은 꼬인 방향의 반대쪽으로 점점 빠르게 돈다. 회전이 빨라지면 물의 가장자리는 위로 올라가고 중심 수면은 아래로 파여 물통 속 수면은 오목해진다.

뉴턴은 뭐라 말했나? 그는 물통실험이 ‘절대공간의 존재를 입증했다’고 주장했다. 물이 물통과 함께 같은 속도로 회전하면 물통의 시각에서 볼 때 물은 정지한 셈이다. 그런데도 물의 중심 수면이 오목하게 파인 것은, 물이 물통이라는 상대공간에 대해선 정지상태이지만 어떤 ‘절대공간’에 대해선 운동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뉴턴은 이로써 절대공간의 증명이 끝났다고 선언했다.

그렇지만 논쟁은 끝나지 않았다. 라이프니츠와 마흐를 거쳐 아인슈타인은 우주와 공간을 정적인 절대공간이 아닌 역동적인 상대공간으로 새롭게 인식했고 상대론은 현재 과학이 됐다. 그리고도 여전히 남은 수수께끼는 많다. 시간과 공간은 과연 물리적 실체인가? 물통실험 이야기로 시작해 우리의 상식을 깨는 시간·공간과 우주에 관한 이야기를 푸는 재치 있는 이론물리학자 브라이언 그린(42·미국 콜롬비아대학 교수)의 2004년 작 <우주의 구조>(승산 펴냄)는 과학과 철학의 영원한 주제가 된 ‘시간과 공간’에 관한 교양과학서다. 시간, 공간, 빅뱅, 블랙홀, 암흑에너지, 끈이론 같은 말에 관심을 기울여온 독자라면, 또 그의 전작 <엘러건트 유니버스>(2002)를 읽으며 새로운 우주를 맛본 독자라면 읽어볼 만하다.

그린 교수의 물음은 ‘다시 근본으로 돌아가 묻자’는 식이다.

시간과 공간은 왜 지금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가? 그것은 실체인가, 아니면 인간이 만든 추상적 개념인가? 텅 빈 공간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공간은 존재하는 것인가? 시간은 정말 흐르는 것일까, 흐른다면 ‘무엇’이 흘러가는 걸까? 시간은 왜 ‘화살’처럼 언제나 과거에서 미래로 향하는 걸까, 과거는 왜 되돌릴 수 없는가? 아직도 ‘정글’속 헤매는듯한
시간 · 공간에 관한 과학 역사 정리통해
진리에 닿으려는 인간의 노력과
모든 힘의 자연법칙 통일하려는
현대 이론문리학의 시도 보여줘
이런 근본 물음은 우주의 근원을 좇는 현대 이론물리학이 고전역학, 상대성이론, 양자역학을 넘어 모든 힘의 자연법칙을 통일하려는 근본 탐구에 나서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 그런 근본 탐구에 시간·공간 실체의 새로운 발견이 더욱 중요한 과제가 되기 때문이다.

시간과 공간에 관한 과학의 역사를 조목조목 정리하는 그린은 “시간과 공간의 정체를 규명하려는 인간 노력의 역사…에는 깊은 통찰력을 발휘한 혁신적인 아이디어도 있었지만 모든 혼란스러움을 극복하고 유레카를 외칠 수 있는 단계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아직도 “정글” 속을 헤매고 있는 셈이다.

초끈이론가인 그린은 자연스럽게 초끈이론의 가능성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물체를 이루는 최소단위의 구성요소를 ‘점’ 입자’가 아니라 ‘끈’과 그 ‘진동’으로 설명하는 초끈이론은 초기 우주와 블랙홀 이론을 풀 때 언제나 만나는 일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충돌(모순)을 해결하고자 제시된 최신 이론이다.

초끈이론은 시공간을 어떻게 이해할까. 우리 우주는 ‘10차원 또는 11차원 시공간’이라고 제시하는 초끈이론은 우리가 경험하는 4차원(3차원 공간+1차원 시간) 이외 차원들은 너무 너무 작은 공간에 구겨져 있거나 너무 너무 넓은 공간에 퍼져 있기에 인식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 눈에 보이는 세계는 진정한 실체가 아니라 실체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남는 문제­ 이런 혁명적 가설은 어떻게 입증될까? 그린은 빅뱅 초기 우주의 에너지 상태를 흉내낼만한 초대형 입자가속기가 건설돼 입자 충돌실험이 이뤄지거나 머나먼 초기 우주의 시간에서 날아오는 원시 빛을 관측해 입증될 날이 올 것을 기대한다.

‘우주 삼라만상의 통일법칙을 좇는 탐구자이며 미지의 정글 속에서 상식과 통념을 버리고 모든 의문을 포용하는 사람’은 이 책에 스며 있는 이상적 과학자의 모습이다. 진리를 향한 투지와 창의력! 우주의 작은 한 점인 지구에서 100년도 살지 못하는 인간이 ‘마치 거대 규모의 우주 밖에서 우주를 관망하듯이’ 우주의 구조를 논하는 이 책은 우주적 호기심을 자극하면서도 진리 자체가 아니라 진리에 닿으려는 인간의 노력을 엿보게 한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시간·공간의 실체 인식’ 변천의 과학사
(<우주의 구조>에서 발췌·정리) ◇ 고전적 실체(뉴턴) 시간과 공간은 절대불변의 실체이며 이로부터 구성된 우주 역시 절대 변하지 않는 견고한 세계다. 시간과 공간은 이 우주를 지금의 모습으로 유지시켜 주는 절대불변의 구성요소가 된다.

◇ 상대론적 실체(아인슈타인)“시간과 공간은 절대적이지 않으며…관측자의 운동상태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보일 수 있으며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의 새로운 중력이론(일반 상대성이론)에 의하면 시간·공간은 한 객체의 부분적 특성에 불과하며, 우주의 진화과정은 시공간의 비틀림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현재 상태로 과거와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논리는 고전역학이나 상대성이론이나 다를 게 없다.

◇ 양자적 실체(양자역학)양자법칙에 따르면 어떤 물체의 지금 상태를 제아무리 정확하게 측정한다 해도 그 물체의 과거나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가 없게 된다. 다시 말해서, 양자적 우주의 과거와 미래는 현재의 순간에 각인되어 있지 않으며 일종의 확률게임을 벌이고 있다는 뜻이다.

◇ 우주론적 실체(빅뱅우주론)시간은 왜 과거에서 미래로 한쪽 방향으로만 흐르는 것일까? 우주진화론이 그 답을 찾아왔다. 빅뱅이론과 마찬가지로 인플레이션 우주론에서, 거대 물체에 대해선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이 들어맞지만 빅뱅 뒤 몇분의 1초 정도 지난 ‘작은 우주’를 다룰 때에는 양자역학이 도입돼야 했다. 그러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한데 섞으면 일대 모순이 발생하게 된다.

◇ 통일된 실체(초끈이론)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통합하려는 노력은 초끈이론을 탄생시켰다. 초끈이론은 모든 입자는 ‘점’이 아니라 핵자보다 100×10억×10억 배나 작은 가느다란 ‘끈’으로 이뤄져 있다고 주장한다. 또 우주의 시공간은 ‘9차원의 공간과 1차원의 시간’이라는 가정을 받아들인다.

초끈이론을 발전시킨 엠(M)-이론은 11차원을 가정한다. 초끈이론이 맞다면 그동안 우리가 믿었는 시공간의 실체는 우주의 복잡한 구조를 덮고 있는 얇은 천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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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싶다 2005-07-01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CG인줄 알았어요.

라주미힌 2005-07-01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회로판 같아요.. 어떻게 시작을 하는거지 흐흐..
 
 전출처 : 바람구두 > 약탈에서 과시적 소비에 이르는 여정(旅程)
유한계급론
토르스타인 베블런 지음, 김성균 옮김 / 우물이있는집 / 2005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베블런의 『유한계급론』 2005년 초판을 손에 쥐고 있는 감흥은 약간 남다르다. 이 책이 국내에 처음 나온 것은 지난 1978년 “정수용”이 옮기고, “광민사”에서 펴낸 것이었다. 출간되고 얼마 뒤 이 책은 금서(禁書)가 되었고, 1987년 해금되기까지 법적으로는 읽는 것이 금지 당했다. 오늘날엔 경제학 전공자들보다는 인문 ․ 사회학 전공자들에게 더 많이 읽히는 고전이 금서가 될 어떤 이유가 있었을까? 책을 읽는 내내 마음 한 구석을 찜찜하게 했던 것은 그런 부분이었다. 내가 너무 둔하여 혹시 이 책에서 금지될 만한 어떤 사유(思惟)들을 읽어내지 못한 것은 아닌가?

존 K. 갤브레이스는 『갤브레이스가 들려 주는 경제학의 역사』(2002년)에서 베블런의 생애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하고 있다. 노르웨이 이민 가정의 후손이었던 베블런은 부유했다고는 할 수 없으나 『유한계급론』에서 그가 유한계급(leisure class)에 대해 보이고 있는 냉소적인 독설과 상관없이 나름대로 경제적 여유를 누리는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다만 그의 부친인 토마스 베블런은 매우 검소한 사람으로 자식을 이웃한 칼턴 칼리지에 입학시키는데, 이것은 자식의 하숙비를 절약하기 위한 조처였다고 한다. 베블런이 유한계급의 “과시적 소비”“과시적 여가” 활동에 대해 보이는 냉소적인 태도는 이런 그의 경험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유한계급론』2005년판은 1980년판에 실렸던 존 K. 갤브레이스의 서문이 빠진 대신, 앨런 울프의 “『유한계급론』의 현대적 의미”가 새롭게 수록되어 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전세계 노동자들이 단결하여 자본가 계급을 타도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혁명적이기 보다는 훨씬 냉소적이었던 베블런은 부자들의 자화상을 신랄하게 묘파하고자 했다. 적어도 19세기부터 부자들은 자신들을 가치 있는 계급으로 믿기 시작했고 또 그들이 소유하고 있다고 믿은 - 가난한 자들은 소유하지 못했다고 믿은 어떤 - 대단한 가치는 근검절약이었다. <앨런 울프, 본문 8쪽>

위와 같은 이야기는 베블런과 동시대를 살았던 막스 베버(Max Weber)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통해 “오직 경건한 신앙심만으로 신의 영광을 추구했던 프로테스탄트들이 자본주의 혁명의 핵심 세력으로 부상”하게 되었음을 묘파한 이래 지속된 이데올로기였다. 베블런과 베버 보다 앞선 세대였던 고전파 경제학자 로버트 맬더스(Robert Malthus)는 그의 대표작인『인구론』에서 “빈민에게는 청결함을 권고하지 말고 그 반대의 습관을 기르도록 장려해야 한다. 도시의 거리는 좀 더 좁게 만들고 집집마다 더 많은 사람이 북적거리게 하고 전염병이 잘 돌도록 유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베버의 관점을 맬더스의 그것과 일치시킬 수는 없다. 다만 당시 자본가 계급이 자신들이 누리는 부의 원천을 신의 은총과 동일시하고, 빈민 계급을 선천적인 게으름과 나태함으로 인해 구제받을 수 없는 저주받은 계급으로 취급했던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이에 베블런은 『유한계급론』을 통해 자본가 계급, 그의 용어를 빌자면 풍요로운 소비와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유한계급”의 이런 근거 없는 도덕적 자부심에 대해 일침을 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베블런은 경제학자로 분류되지만 경제학자 계보 가운데 특정 학파에 속한다고 할 수 없는 특이한 인물이다. 『유한계급론』에서도 역시 경제학적 방법론 보다는 사회학적인 연구 태도를 드러내고 있는데, 앞서 말했던 것처럼 오늘날 경제학 전공자들보다 사회학 전공자들이 이 책을 더 많이 찾고 있는 이유도 그것이다. 다른 측면에서 베블런은 종종 마르크스주의자로 오인되곤 했는데, 그 까닭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유한계급제도는 봉건시대 유럽이나 일본처럼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발달했던 야만문화에서 가장 잘 발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사회에서는 계급간의 구별이 매우 엄격하게 지켜졌다. 그러한 계급적 차이를 결정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경제적 요인이었다. <본문 23쪽>

문화의 진화과정에서 유한계급제도와 소유권제도의 발생시점은 일치한다. 이 두 제도는 경제력이 동일한 상황에서 생겨나기 때문에 발생시점 역시 필연적으로 일치될 수밖에 없다. <본문 43쪽>

『유한계급론』은 제1장 「유한계급의 기원」으로부터 시작해 제14장 「금력과시문화를 표현하는 고등학문」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 당대 유한계급의 기원과 현시적 소비태도를 분석하고 있다. 그는 유한계급을 분석하기 위해 주변의 여러 학문들 - 인류학·역사학·심리학 - 로부터 여러 가지 방법론을 불러들이고 있는데, 이는 현재 문화연구(cultural studies)의 방법론과 매우 흡사하다. 어떤 의미에서든 베블런을 문화연구의 선구자로 본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어 보인다. 이 부분에 더해 베블런이 노동계급과 여성을 동일시하고 있다는 것은 이제 막 여성 참정권 운동이 시작될 무렵이었던 당시 상황을 염두에 두었을 때 그가 매우 진보적인 사람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여자에 대한 소유권은 좀더 원시적인 야만문화에서 여성 포로나 노예를 강탈하면서 생겨난 것이 확실하다. 여자를 강탈하여 전유하게 된 최초의 이유는 여자들이 전리품으로 유용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리품인 여자를 적으로부터 강탈하는 관행은 소유와 결혼을 동일시하는 관례를 낳았고, 그로부터 남성이 가부장 역할을 하는 가부장적인 가족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 과정은 여자들을 비롯한 다른 포로들이나 하층민들까지 노예화되는 과정, 그리고 적으로부터 강탈해온 여자들 이외의 다른 여자들에 대해서까지 소유 - 결혼 관례가 확대되는 과정을 동반했다. <본문 44쪽>

베블런은 유한계급을 분석하면서 이들의 행동 양식이 본질적으로는 과거 야만 시대의 약탈문화로부터 조금도 변화되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더 이상 공동체의 일상적인 삶이 약탈 활동에 의존하지 않게 된 뒤로도 축적된 금전이 약탈 활동의 명예와 우월함, 성공을 대표하는 인습적인 지표의 지위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공동체에서 존경받을 수 있는 어떤 위치에 서고자 한다면 필수적으로 일정한 부를 축적해야 하며, 명성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부를 획득하고 축적한 것 못지않은 소비가 필요해진다. 베블런은 이를 "금력과시문화(pecuniary culture)"라 불렀다. 그러나 재화를 개인의 단독 소유물로 인정하는 모든 사회에서 한 개인이 정신적 안정감, 만족감을 얻기 위해서는 친숙한 부류보다 더 많은 재화를 소유하는 것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그런 사회에서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이 최고의 기쁨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약탈과 사냥을 통해 자신의 우월함을 과시하는 것이 인습적인 지표의 지위를 차지하게 되자 약탈이 아닌 생산 활동, 육체노동은 상대적으로 비천하고 가치 없는 것으로 폄하되었고, 여성과 여성의 활동 역시 마찬가지로 취급을 받게 된다.

인권운동가 서준식은 『서준식의 생각』에서 “일찍부터 땀 흘리며 근육을 단련하는 일”이 “이 세상에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짓’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깨우치게 되었는지 이야기한다.

아버지께서 경영하시던 영세한 가내공장 직공들은 거의가 내일에 대한 희망도 인생설계도 없는 떠돌이들이었다. 그들은 월급을 받으면 그것을 며칠 사이에 술과 오입질에 탕진해 버렸고 월초의 일손 부족은 늘 악몽처럼 아버지를 괴롭혔다. 뼈가 다 굵은 아들들을 바라보시는 아버지의 애절한 눈길을 외면하지 못했던 나는 언제나 알아서 작업복으로 갈아입었지만 형이나 아우는 잽싸게 도망치기 일쑤였다. 땀과 먼지로 범벅이 되어 한나절을 보낸 나에게 아버지께서는 정말 고마워하시고 따뜻한 치하의 말씀도 잊지 않으셨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의 진짜 기대는, 고된 육체노동을 묵묵히 견딘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도망쳐 버린 아들들에게 있다는 것을 어슴푸레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근육’이 ‘입’이나 ‘잔머리’에 열등감을 느껴야 하는 사회, ‘근육’을 단련하면 할수록 손해를 보고 주변으로 내몰리는 사회에 대한 회의를 떨쳐내지도 못한 채 나는 고등학교 1학년말부터 근육단련 대신 지성 쌓기를 시도했다. 왠지 올바른 길을 포기하고 나 자신의 믿음을 배신한 것만 같았던 그때의 쓴맛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서준식(2003년), 「운동가의 글쓰기를 생각하며」, 『서준식의 생각』, 야간비행> 중에서

베블런은 남자들(유한계급)이 존경을 얻고 유지하려면 단순히 부와 권력을 소유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이를 증거로 제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문명화된 사회에서 여가를 즐기는 것, 낭비에 가까운 풍요로운 소비는 우아하고 고결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베블런이 주장하는 유한계급의 여가는 단순한 게으름이나 아무 일도 하지 않는(無爲)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비생산적인 용도로 소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혹은 물질적 소비를 동반한 과시적인 소비를 통해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의미한다. 훌륭한 예의범절은 인간의 탁월함, 가치 있는 영혼의 소유자임을 드러내는 방편에서 전도되어 허례허식으로 흐를수록 더욱 높은 사회적 지위와 권력을 누리는 유한계급의 상징이 된다.

『유한계급론』이 오늘날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직 IMF한파가 채 가시기 전이었던 2000년 2월 18일자 <한국일보>는 대우경제연구소의 「소득불평등의 심화에 따른 소비의 왜곡현상」란 보고서를 인용하여 “우리나라의 고소득층은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소비를 하며, 중산층은 이들을 「모방」하고 저소득층은 아예 「자포자기」심정으로 과소비 대열에 끼어든다.”고 보도하고 있다. 베블런은 필요(need)와 욕구(want)를 구분하고 있는데, 이를 명징하게 보여줄 수 있는 사례가 보석이다. 보석이 가치를 지니는 까닭은 그것이 결국 무가치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는 드비어스(De Beers)의 광고는 단지 투명하고 반짝이는 돌멩이에 불과한 다이아몬드를 그 무엇과도 대체될 수 없는 가장 로맨틱한 사랑의 상징(혼인 예물)으로 만들었다. 다이아몬드는 과시적 낭비라는 명예로운 목적에 이바지함으로써 아름다운 물건(명품)이란 명성을 획득한다.

이는 다시 명품(名品) 소위 “럭셔리 신드롬(luxury syndrome)”으로 이어진다. 베블런은 제5장 「생활수준을 결정하는 금력」에서 현대사회의 대다수 사람들이 육체적 안락에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소비를 하는 직접적인 이유는 “과시적 소비에 지출하는 비용을 늘리기 위한 의도적인 노력이 아니라 인습적인 체면치레의 기준에 맞추어 소비하는 재화의 양과 질을 높이려는 욕망에 있다.”고 말한다. 공동체가 인정하는 명예롭고 품위 있는 생활양식의 일반적인 수준이 최상류계급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의 명품 소비 열풍은 이렇듯 자기 자신을 - 실제 혹은 그보다 더 높은 지위의 인간으로 - 드러내보이고자 하는 우리들의 욕망에 의한 것이다. 개념미술가(conceptual art) 제니 홀저는 과시적 소비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공간인 도시의 한 전광판에 “Protect Me From What I Want(내 욕망으로부터 날 좀 지켜줘)”란 문구를 내보내는 실험적 작품을 전시한다. 홀저는 베블런과 마찬가지로 현대인의 삶, 그 핵심에 놓인 가장 중요한 키워드를 ‘필요(need)’가 아닌 ‘욕망(want)’이라고 생각했다. 베블런은 “습관적으로 비싼 물건을 찾게 되고 아름다움과 명성을 습관적으로 동일시할수록 아름답지만 비싸지 않은 물건은 아름답게 평가되지 않기에 이른다.”고 말한다. 압구정동의 모 백화점에서 가격을 올리자 물건이 좀더 잘 팔리더라는 일화가 이해되는 대목이다.

경제학자들, 『국부론』의 아담 스미스, 리카도와 같은 고전학파나 시카고학파 같은 신고전학파에 이르기까지 경제학자들은 인간을 합리적인 이기주의자로 간주하고, 이런 원리에 따라 소비가 이루어진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베블런은 고전적 경제학자들의 가정에 반하는 논리를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소비의 원인은 단시 필요만이 아니라 자신의 신분과 재력을 과시하여 현대 대중사회에서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자랑하고 싶은 이들에 의해 과시적으로 일어난다. 그들은 소비, 그것이 물질적인 것이든, 시간이든 낭비를 일삼는데, 이런 과시적 소비는 유한계급에 속하지 못하는 이들에 의해 다시금 모방된다. 이런 현상을 오늘날 우리는 “베블런 효과(veblen effect)” - “값이 비쌀수록 호사품의 가치는 커진다.”- 라 부른다. 즉, 경제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비합리적인 소비 행태가 나타나는 것이다.

역사학자들이 20세기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는 분명 사회주의 체제의 출현이었다. 어떤 역사학자들은 20세기를 러시아 10월 혁명과 함께 출발해 지난 1991년 무렵 구소 연방의 해체로 종결되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역으로 지난 18세기 무렵 서구 유럽이 제국주의를 통해 축적한 자본을 통해 본격적으로 가동된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을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뜻이다. 자본주의를 구성하고 있는 두 가지 중요한 축은 ‘물질주의와 상업주의’이며 이것을 가능하도록 한 토대엔 인간의 욕망이 잠재해 있다. 우리들은 자신의 몸에 새겨진 안락함의 기억이 얼마나 질긴지 잘 알고 있으며, 대부분은 그 기억에 맞서 싸울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20세기의 사람들은 기독교나, 이슬람교, 불교, 유교와 같은 종교적 가치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20세기의 인류는 이미 단일 종파, 단일 종교로 통합되었는데, 그 신의 이름은 바로 “물신(物神)”이다.

베블런은 인간의 소비 혹은 욕망을 합리적인 것으로 단정한 고전학파나 신고전학파 경제이론에 매우 날카로운 비판을 가했다. 그렇다고 이들의 경제이론을 완전히 부인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베블런의 비판이 날카롭긴 했으나 그가 경제학에 새로운 체계를 세운 것은 아니었고, 마크르스처럼 유한(자본가)계급에 대해 혁명을 주창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오늘날 우리가 베블런의 공적을 폄하하거나 무시할 필요는 없다. 그가 유한계급에 대해 던졌던 냉소는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니까 말이다. 베블런의 지적들은 이후 정치적인 측면에서 C.W.밀즈(『파워엘리트』), 사회학적인 측면에선 피에르 부르디외(『구별짓기 : 문화와 취향의 사회학』), 그리고 문화적인 측면에선 제임스 트위첼(『욕망, 광고, 소비의 문화사』, 『럭셔리 신드롬』)에 의해 오늘날 좀더 세부적인 측면으로 분화되어 풍요롭게 계승되고 있다.

『유한계급론』의 2005년판 역자는 베블런의 비판을 “슬픈 냉소”라 말한다. 나는 지난 한 학기 동안 “문화”를 공부하면서 “문화연구”란 학문이 현실 사회를 변화시킬 대안 혹은 새로운 패러다임(계몽의 기획)을 모색하는 학문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에 빠져들어야 했다.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물론, 본질적으로는 변화가 없다손 치더라도) 변하는데, 학문하는 자의 발걸음은 이리도 느리기만 한 현실 자체가 사회와 시대가 우리에게 보내는 냉소는 아닐까 라는 고민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친구여! 바로 보마!”란 다짐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은 느려터진 한 인간의 세상사는 법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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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원으로
살 수 있는 것은?
그 흔해 빠진 것 가운데 하나인 gum도 100원짜리는
찾기 힘들다.
그야말로 요즘 gum값은 gum값이 아니다.
10,000원
한 장 가지고 장에 가면 살 게 없다는 요즘...
어느 고등학교
앞 문구가게에서 파는100원짜리 과자들.
오늘처럼 100원이 이렇게
커 보인 적이 없었다.

 

100원짜리
100어치가 이만큼.
오징어 냄새, 오징어 맛 조금 그리고 매운
맛 조금
식품의 유형 : 스낵과자류(유처리 식품)
주성분 :
소맥분(미국산) 51%
- 미국산 보릿가루가 반 넘게 들었다는

 

팜유,
옥수수 전분, 오징어 엑기스, 백설탕
- 엑기스 ...아직도 이런
일본스러운 말을 쓰다니...

 

그냥
배 고프면 먹어 줄만한데 요즘 초등학생들도 이런 것은
안 먹을텐데
중고등학교 앞에서 이런 과자가 팔리다니...

 

이것은
널리 알려진 회사 제품, 상자에 몇 개씩 넣어 파는데
여기서는
그 상자를 뜯어서 낱개로 100원에 팔고 있다.
한쪽은 과자 다른
쪽은 Schokolade(chocolate)를 씌워 놓았다.
Schokolade 맛이
진해서 과자 맛은 잘 모르겠다.

 

대만에서
들여와 파는 것
유형 : 사탕 (젤리)
원료 : 과당, 코코넛,
설탕, 카라기난, 곤약 등, 합성 착색료

몇 해 전 이런 것을
먹던 아이가 이런 게 숨구멍을 막아 숨졌음.


세개로 나눌 수 있다.
수입품이라 그런지 불량식품스러운 분위기는
안 난다.
원료
밀가루, 식물성 유지(팜유), 설탕, 코코아
파우더, 소금, 탄산수소나트륨
이스트, 소야레시틴(대두), 초콜릿
향, 옥수수 시럽, 말트시럽.....
지나치게 달지 않아서 먹을만한데
화학약품 냄새가 좀 나는 듯.

 

팥 같기도 하고 옥수수 같기도 하고....
비둘기 모이로 쓰면 딱
좋을 것 같다. 이만큼이 100원
한 줌 입에 툭 털어 넣고 우물거리면
끝.....
이것은 밀가루를 기름에 튀겨 낸 것.

 

14g

주원료 : 가공 초코렛 (국내산), 설탕, 물엿, 퍼핑볼 스낵
먹을만
하다.

 

널리
알려진 회사에서 나온 것.
여러개가 한 상자에 들어 있는 것인데
상자를 뜯어서 낱개로
팔고 있다. 달큼, 짭짤....

 

오늘
산 과자 가운데 가장 맛 없다. 불량식품 등급
튀김기름냄새가
짙게 나며 양파가 들어있어 달착지근.
바삭거리지 않음.미국산
옥수수가루 65%

 

이름이
마음에 든다. 쌀대롱. 대롱이라는 말도 이제는 pipe나
horse
따위에 밀려 사라져 가는 듯.
그러나 쌀은 5%밖에 안 들었단다.대부분은
미국산 소맥분
생김새부터 먹음직스럽다. 맛도 그런대로 괜찮다.

 

소맥분
25% (미국, 호주 수입산)
프랑스풍의 고급과자라고 적혀있음.
싸구려,
불량식품 티는 안 남. 먹을만 함.
과자 사이에 발라 놓은 Schokolade
맛은 나지 않음. 너무 적어서.

 

Pizza맛이
나는 사탕이라는데 좀 시큼털털
불량식품등급에서 겨우 빠져
나옴.

 

12g,
28알, 빛깔만 좀 점잖다면 약으로 보기 쉬움.
백설탕과 포도당이
주성분, 구연산 첨가.복숭아, 사과향....
싱거운 듯, 자극적이지
않아서 그리 나쁘지는 않은 듯.

 

포장이
만만치 않다. 포도맛도 난다. 수업시간에 한 알씩 꺼내
먹으면
되겠다. 서른 알쯤 들어있다. 한 입에 다 털어 넣으면
알맞을만큼...

 

이건 가장 비싸다. 120원
포장도 제법 비싼 티를 낸다. 이것 또한
미국산 소맥분이 주 재료.
같은 종류 다른 과자들이 평균 12g인데
이것은 15g이나 된다.
3g 더 많아서 20원 더 비싼가보다.
그리고
이름...산도가 뭔가, 산도가....
sand를 제대로 읽지 못한 일본
사람들이 [산도]라고 읽었을테고
멋 모르는 어느 한국사람이
그대로 따라 한 것이 오늘 날 이렇게
널리 [산도]를 퍼뜨린 것이
아닐까...

 

지금으로부터
서른 해 전 쯤, 생각나는 물가는
연필, 문구용칼, 공책...10원
어지간한
문구는 100원 안에서 살 수 있었다.
쮸*바 50원, 부라*콘 150원,
라면 50원
건빵 30원, 오징어 다리 50원
설탕 녹여 먹는 것,
달고나 10원씩
옥수수 한 방 튀기는데 250원
gum 1통(5개
들이) 30원


이제
백원은 뷁원이 되어간다.
은행에서조차도 백원짜리는 골치거리라고
한다.
그러나 그 100원으로 행복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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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5-06-25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히 놀라운 솜씨입니다~아니 저 중간의 컵들은 뭘로 잡고 있는건지 놀라울 따름...그러고보니 컵이 12개나 되네요! 손가락으로 하나씩 잡기도 힘들텐데...@@;;

릴케 현상 2005-06-25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오...레스토랑 서빙 기술이 까다롭다고 하던데...맥주도 대단하군요
예전에 레스토랑에서 서빙한 적이 있는데 좀 하다가 잘렸어요. 저정도 기술이 돼야 일하겠더라구요-_-

인간아 2005-06-25 0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대단하네요. 얼마 전 우리나라에도 서빙의 달인 본 적이 있는데요, 저 정도의 무게를 다 합치면 20킬로그램이 넘는다는군요. 대단하죠. 흘리지도 않고 무게도 잘 견디고!! 표정은 좀 힘들어보이시는 듯!

2005-06-25 02: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주미힌 2005-06-25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2개 들수 있습니다. ㅡ..ㅡ;

아영엄마님/ ... 아? 자유인님이요? 찾아봐야겠네요 ^^

날개 2005-06-25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도대체 어떻게 든걸까요? 불가사의군요..+.+

마태우스 2005-06-25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네개가 한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