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기술 - 출간 50주년 기념판
에리히 프롬 지음, 황문수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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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소가 있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곳. 
막상 가보면 그것의 익숙한 풍경에 맥이 빠져버린다. 
원조는 박제가 된 신화에 머물러 있고, 새로운 신화가 되고자 하는 것은 다른 곳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신상'을 찾아나서야지. 기념사진 찍으러 그곳에 갈 필요는 없다.
이미 그곳을 다녀간 수많은 이들의 발자국만을 발견할 뿐이다.


고전이라는 것이 계속 팔리는 이유는 인간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인간은 변하지 않는 것을 선호한다. 이를테면 사랑 따위…
그렇지만, 변하지 않는 사랑은 없다. 변하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다. 그래서 인간은 사랑을 사랑한다. 잡힐 듯 잡히지 않고, 이해하기도 정의 내리기도 힘든 인간 내면 또는 정서 또는 관계에서 오는 균열과 열기의 덩어리는 그래서 매력적이다. 왠지 이해하면 알게 되고 그것에 대한 통제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망상에도 사로잡히고, 이별에 대한 불안은 죽음에 대한 공포만큼이나 끈질기다 보니, 수 많은 문학과 예술로 변주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이다.

에리히 프롬은 말한다. 사랑은 훈련을 필요로 하는 기술이며 이론과 실천을 아우르는 성숙한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거라고…

궁금증 하나. 성숙한 인간은 만능인가. 가능성은 높아질 것 같지만, 인간과 사회의 농밀한 관계 속에서 만능키란 결코 없다.
둘, 아는 것과 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우리는 알지 못해서가 아니라, 알고 있는 것을 하지 못한 것에서 문제를 찾아야 한다.
셋, 한 인간이 성숙하고자 했던 노력과 사고의 결과물을 단순히 읽는 행위로써 나의 것으로 과연 만들 수 있는가.

공감했다고 맞는 건 아니다. 공감을 이끌어내기란 어쩌면 쉬운 일이다. 가장 보편적인 존재를 상정하고 그것의 특성을 적절하게 나열하기만 하면 된다. 좋은 약도 처방에 맞아야 좋은 약이다.
참된 학습은 자신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것에 있으며, 훈련은 그것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노력에 있다.
책이 교과서일까. 수 많은 계발서에 성공의 신화를 갈겨놓아도 그것을 읽는 사람이 성공할 수 없는 이유는 명확하다. 책에 답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물며 사랑의 갈증을 해결하고자 책을 탐하는 것은 방향이 잘못 된 것이다. 모델은 각자의 내면에 이미 자리잡고 있다. 어떻게 다듬고 살을 붙일 것인가. 에리히 프롬은 자신의 고민과 성찰을 담은 것이지, 당신의 고민을 담은 것이 아니다. 시대를 초월해서 공감을 얻어낸 것은 책의 위대함이 아니라 해석의 위대함으로 가능해진다. 운세가 미래를 예견하는 기능을 못하고, 과거에 천착하고야 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내 생각에 사랑은 과정이다. 성공과 실패라는 단어의 용법이 끼어들 틈이 없다. 중요한 것은 문제 해결능력이지 능수능란이 아닌 것 같다. 속도가 아니라 계속 될 수 있다는 영속성의 동력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 하는 고민에 있는 것이 아닐까
이 책은 인간의 사랑만을 말하고자 하는 것 같진 않다. 1 2차 세계대전을 겪고, 핵무기의 파괴력을 경험한 인류는 문명의 위기에 노출되면서, 모든 것의 종말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주문을 외운다. 누군가는 정의를 평화를… 에리히 프롬은 사랑을…
인간과 사회의 긴밀한 연관성을 살펴보고서 인간의 회복과 구원의 가능성을 엿보려는 것만 같다. 사랑이 실존적 문제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건 문명의 위기와 맞물려 있음을 우리는 살면서 체험하고 있으니까. 어찌됐던 머리로 이해 할 수 없는 것들을 머리로 이해하고자 하는 어리석음을 책을 읽으면서 완벽하게 느꼈다. 좀 더 빨리 덮었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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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0-01-25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온지 오십년이 넘었으니, 이 책을 변주한 녀석들을 너무 많이 보셔서 김이 세셨나봐요 ^^

순오기 2010-01-28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시대와 세대를 초월해 '사랑'을 하는 이들이나 사랑을 하고자 하는 이들이 꼭 읽어야 할 교과서였어요. 이 책은 결혼 전과 후에 읽는 감상이 많이 다르긴 하더라고요.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게 사랑이지만, 사실 또 사랑을 해도 알 수 없는 게 사랑이기도 하지요. 현재의 사랑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만 아시면 될 듯해요.^^
 
테레즈 라캥
에밀 졸라 지음, 박이문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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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것들에 대한 근거 없는 믿음을 쫓아가다 보면, 기대했던 만큼의 붕괴를 보답 받게 된다. 피상적인 인식이 투과할 수 없는 영역이 있음에도 그 너머를 상상하는 것은, 상상하는 자의 책임이지 보여진 자에게 전적으로 죄를 묻기엔 억울한 면이 있다. 욕망하는 인간들이 보는 것은 자신의 욕망일 뿐이다. 라캥이 카미유를 보던 시선으로 테레즈를 보게 되면 심각한 오류가 난다. 비슷한 결과를 얻는다 해도 동기는 전혀 엉뚱한 것이므로 상황이 바뀌면 다른 것이 되어버리기 십상이다. 골골한 카미유는 동물적인 로랑의 욕망을 볼 수 없었으며, 굶주린 테레즈의 허기는 그 무엇으로도 채울 태세였기에 욕망의 구도는 지극히 비평형 상태에서 출발한다.

이들의 관계는 이기적 욕망의 먹이사슬 같은 것이다. 욕망은 채울 수 없어야 그대로인 것으로 남는다.
간통은 ‘간간히 통해야’ 하는 것이고, 불륜은 부적절해야 하는 것. 반숙으로 만들었어야 할 것을 완숙으로 완성시켰다는 것이 치명적인 문제였다.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니 공포와 불안, 죄의식이 그 자리를 메운다. 열에너지의 과잉이 급격한 팽창을 불러오고, 결핍으로 소멸하듯 인간은 극단적 상황에서 바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게 된다.

필요에 의해서 관계가 형성되었고, 이기적 욕망으로 유지할 수 있는 것들의 한계는 잔인하게 보인다.
인간 본성의 무엇인가가 걸려있기에 참혹함이 더 하다. 하지만 그렇게 평가를 내리려면 인간 본성의 복잡함을 설명해야만 한다.
욕망의 지위를 유지하는 것이 합리적일까. 그래도 그것의 끝에서 떨어지는 것이 나을까.

인간에게 무엇을 채워 넣느냐… 무엇으로 채워져 있느냐…
흡사 생체실험 같은 소설이다. 불륜과 살인을 있게 한 기질에 대한 연구가 아니다.
극단적 상황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인간적 성정의 민감한 섬모를 관찰하는 과학자의 시선이 느껴진다.
결국 이 소설은 작가의 욕망의 주물 안에서 태어난 셈이 아닌가.
서문이 가장 적나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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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10-29 0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무엇을 '욕망'하는지를 잘 모르니 그 욕망을 제대로 채우는 방법을 모르고, 뻘짓하고 그러면 갈망과 후회는 더욱 깊어지는 것이 삶이 아닌가 싶습니다.

잠깐 펼쳤을 때 읽었던 서문의 기세가 기억이 나네요.
11월 8일에 연극으로 대학로에서 하던데 관심있는 분들은 가보셔도 좋을 듯 ^^

다락방 2009-10-29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퍽 재미있게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었는데 11월 초에 연극도 보러 갑니다. (자랑질 ㅎㅎ) 히히히히

라주미힌 2009-10-29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햐.. 연극이라... 후기 올려주세용 ㅋ
 
고향 하늘 아래 노란 꽃
류진운 지음, 김재영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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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죽음의 퍼레이드, 혁명이냐 죽음이냐. 다 인간 밖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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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의 귀환 - 신자유주의의 우주에서 살아남는 법
김태권 지음, 우석훈 / 돌베개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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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가 말했다. "인간들은 이미 길들여진 것만 알아요. 그들은 무엇을 알 시간이 없어요.”

밥벌이에 길들여진 인간은 세상을 알 시간이 없다. 욕망은 커져만 가는데 세상에 침식되어 좁아져만 가는 영역에서 만족감을 찾으려니 삶이 고통이 된다. 서브프라임 사태로 한때는 휘청거렸지만, 경제의 장밋빛 전망이 꽃망울을 틔우니까 이전으로 돌아갈 태세다. 부동산 가격은 미친 듯이 오르고, 해고의 자유를 만끽하며 기업들은 노동자의 삶을 위협하고 빼앗고 있다. 땅을 가진 자의 권리는 땅을 빌린 자들의 생에 대한 권리마저도 가져가버린다. 흔하게 벌어지고 있는 일상의 테러에 익숙해지는 것만이 서민적 삶의 덕목이던가.
생태계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던 인간세계도 상위 몇 퍼센트의 인간들에 의해 균형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은 수치를 통해 알 수 있다. 포식자에 의해서 개체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 대표적인 것이 출산율 저하가 아닐까? 남의 먹잇감으로 살아가게 둘 수 없다. 아니 나조차 버틸 수 없는 이 세상에 어찌 자식에게 이 세상을 물려줄 수 있을까. 인간적 품위를 지킬 수 없는 계급의 인간들은 스스로 개체수를 줄이기 시작했다는 점은 체제의 종말 멀지 않았음을 느끼게 한다. 이론에 따르면 포식자들도 줄어들겠지만, 세계화라는 페러다임을 만들어 놓고 전 세계의 약자들을 먹어 치우고 있으니 당분간은 지속되겠지만…… 너희들의 종말도 멀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놔둘 수는 없다. 인간의 삶에 비해 너무 먼 미래의 일이다. 일단은 살고 볼 일이 아닌가. 할 수 있는 것은 뭐든지 해보자는 것. 우리의 한 발작이 다음 세대의 한 발작을 덜 수 있지는 않을까. 자본의 욕망은 모두의 욕망으로 치환된 지는 오래지만, 그 욕망에 백태클이라도 걸어야 하는 게 우리가 지닌 책임이 아닌가 한다. 욕망의 질을 바꾸던 체제의 상식을 바꾸든 진보는 필연적 운명에 앞서야 한다. 세상을 이해하고 고민하는 방식에 벽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 책에서는 대화를 이어가게끔 하는 친절함과 낮은 시선이 있다. 그것을 통해 삶과 인간에 대한 끈끈한 애정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가 취하고 있는 태도는 어떠한가. 우리의 고민은 계속 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며, 모두의 것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삶의 정치가 되어 힘이 되었으면 한다.

어린 왕자가 비정규직 왕자로 귀환하였다. 여우와 뱀이 스승이었고, 우주의 여러 별을 돌며 많은 것에 귀를 기울이며 성장하였던 왕자가 다시 우주를 떠돈다.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는 어린 왕자의 오마주가 되어도 어색하지가 않다. 너무 흔해져 버렸어. 세상은 흔해 빠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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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09-08-17 0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리뷰 올려야징~~~ㅎㅎ

Arch 2009-08-17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얼마나 오랜만의 리뷰인가요! 라주미힌님^^
오마주라기보다는 자화상에 가까운 것 같아요. 그런게 머큐리님이랑 전 라빠? ^^

머큐리 2009-08-17 20:35   좋아요 0 | URL
라빠? 나빠? ㅋㅋㅋ 난 라빠닷!!! (왠지 좀 챙피하다...흠)

라주미힌 2009-08-17 23:41   좋아요 0 | URL
헐 부끄럽습니당.. ㅋㅋㅋㅋㅋ
그럼 전 아빠? ㅡ..ㅡ; 머빠?;;;

웽스북스 2009-08-17 23:42   좋아요 0 | URL
웬빠 아니었습니까? ㅋㅋㅋㅋ
이책 괜찮구나. 김태권 좋아요 ㅋㅋㅋㅋ
 
불멸의 신성가족 - 대한민국 사법 패밀리가 사는 법 희망제작소 프로젝트 우리시대 희망찾기 7
김두식 지음 / 창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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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뻔한 이야기와 대안 없는 현상만을 말하는 가벼운 책이라 한다.

글쎄. 뻔한 이야기조차 가명을 써야 말할 수 있고, 하고자 했던 말을 거르고 걸러야 하는 현실을 이처럼 노골적으로 드러내놓는 책이 이전에 있었던가? 풍문으로 돌던 이야기들을 확인하는 차원에 머물러 있더라도, 당사자들의 말이 담겨 있다는 것 자체에 의의가 있다. 화자가 누구냐라는 부분은 중요하다. 제 3자에게서는 행동과 용기, 그리고 자기파괴적 고뇌를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경험해보지 못한, 할 수 없었던, 가질 수 없었기에 그래서 점유할 수 있었던 도덕적 우월성만 장착하고 있다면 누구나 무엇이든지 베어 넘길 수 있다, 단지 그 검의 위력만을 믿고 베어버리는 행위는 위력이 반감이 되며 경솔할 뿐이다. 좋은 요리를 만들려면 칼질부터 조심스러워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은 그들, 당사자의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본다. 그리고 비판 또는 비난의 칼을 먼저 꺼내기 보다는 우리가 안고 있는 현상을 면밀하게 더듬어 볼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 있어서 법을 둘러싼 우리 모두의 얼굴을 한 사람들의 참여가 돋보인다. 일단 입체적이다. 각자의 역할과 이해의 꼭지점을 선으로 연결하여 완성되는 모형은 ‘신성가족’의 실체를 그려낸다. 새로운 모습은 아니다. 우리의 일상을 움직이는 원리가 좀 더 견고하고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욕망의 문제이고, 인간의 문제임을 말한다. 시스템에서 해결을 찾기에는 너무나 근원적이며, 인간과 인간 사이의 권력과 관계의 모순은 치밀하게 엮여있다. 너무나 비슷한 그러나 그 크기는 우리 사회가 감당할 수 없는 선을 넘어서고 있었다. 우리 앞을 가로막는 ‘신성 가족’이 사는 담벼락에 틈이 있을까.

저자는 ‘희망적이게도’ 틈이 있음을 말한다. 툭툭 터져 나오는 비리 사건이나 로비가 세상에 공개된 것은 법조인으로써의 양심이 아직은 식지 않은 사람들에게서 나온 틈인 셈이다. 그 틈에 뿌리를 내려 거대한 균열을 만드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외부에서의 채찍질도 중요하고, 내부에서의 자발적 변화 또한 강력한 요구가 되어야 한다. 제도는 단지 제도적인 모순만을 양산하지 않은가. 오히려 합법적이고 그들의 일탈에 거름을 내리는 경우도 허다하지 않은가.

이 시대의 희망 찾기는 바로 틈을 찾아내고 균열을 키워 무너뜨리는 일이다.
이 책은 ‘법률사무소 김앤장’(임종인, 장화식) 처럼 수 많은 감시자와 참여자를 만들어 낼 힘을 가졌다. 물론, 가능성을 만들어 가는 것도 우리의 숙제이다. 하지만 너무 쉽게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정치는 정치인에게, 약은 약사에게, 법은 법률가에게…  

이 책에서 얻는 중요한 진실은 신성가족은 소통의 부재에서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특권은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쌓은 것이 결코 아니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더욱 더 대중과의 ‘거리두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알아 들을 수 없게.. 그리고 다가올 수 없는 후광을 쥐어짜내고 있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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