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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인의 책마을 - 책세이와 책수다로 만난 439권의 책
김용찬.김보일 외 지음 / 리더스가이드 / 2010년 8월
평점 :
리더스가이드에서 책을 냈다. 긴 산고 끝에 출산을 한 기분이랄까. 그곳 회원이 된지 거의 10년이 다 되어 만나는 이 책은 내 자식 마냥 신기하다. 한때 참여도 해 보다, 미뤄지고 어긋나다가 잊혀졌건만, 푹 익은 숙변 같은 프로젝트가 힘 하나 안들이고 갑자기 해결이 되다니!!(무관심의 힘). 소비자의 위치에서 생산자의 위치로까지 도약을 한 그들의 저력이 조금은 부럽다.
리더스가이드와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했다.
1. 먹어본 놈이 맛을 안다고 많이 읽어 본 사람들이 책을 잘 알 것이다.
2. 출판시장으로 쏟아져 나오는 책 들 중에서 (효율적으로) 좋은 책만 골라 읽고 싶다.
인적 네트워크의 가능성과 힘을 빌려보고자 했던 나름 적극적인 독자였던 셈이다. 온라인에 널려 있는 게 리뷰이고 소개글이지만, 신뢰와 권위를 쉽게 부여하기란 여간 쉽지 않은 일이다.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시장에 대한 불신이 긴 시간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 안목을 갖추도록 강요하니까 어쩔 수 없었다. 지금은? 괜찮은 책들을 고르는 것 같긴 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무슨 책을 좋아하는지 안다.’, ‘언제 읽어야 하는 지’, ‘왜 읽어야 하는지’ 정도는 아는 것 같다. 오로지 읽는 일만 남았으며, 이것은 매일 먹는 밥처럼 끊을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요즘은 다이어트 중 ^^;)
이 책에는 꼭지마다 얼굴이 있다. 목소리가 있고, 지문이 있다. 사실 그들이 무슨 책을 말하고 싶어하는지는 2차적인 문제이고, ‘그 사람’을 읽는다는 게 흥미롭다. 알게 모르게 이어지는 생각들, 삶을 대하는 태도를 통해 우리가 세상을 어떤 식으로 보아야 하는 지를 알 수 있다. 물리적으로 단절 되었지만, 맨탈을 확인하니 뭔가 유기적으로 연결 된 것만 같다. 민족, 성, 학연, 지연 따위는 인간을 그룹화하지만, 책 따위는 인간을 링크 해준다는 것이 또 다른 의미로 다가 온다.
삶의 마디마디에 새겨진 문신을 확인하는 것도 재미있다. 대화를 하다 보면 누군가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말을 피에르 부르디외가 했어’. 또는 홉스도 그런 주장을 했지. 레닌이 그랬어. 파울로 프레이리, 레비 스트로스… 솔직히 말하면 이 사람들의 책은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거나 읽은 적이 없다. 하지만 생각의 수염뿌리는 어느새 나에게까지 파고들었다. CSI가 조사하면 밝혀지는 범인을, 내 몸 여기저기에 묻어있는 책과 사람과 사상의 지문들… 추적하면 누가 나올 것인가.
이제는 흔한 래퍼토리가 된 책을 이야기하는 책… 이 책은 어떻게 요리를 할까. 다수의 저자가 써낸 글이 한 권의 책으로 얼마나 조화롭게 정리 되었을까. 조금은 우려했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 보다 퀄리티가 높다.
편집이 보기 좋다. 글에 담긴 책들이 서재에 꽂힌 책처럼 둘러보기가 좋다. 이 책의 어느 꼭지부터 읽어도 좋고, 오히려 문학성, 인문학성 보다 실용성에 더 가치를 둬도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재미는? 잘 모르겠다. 내 취향은 아니니까.
책 읽는 재미 말고, 사람 읽는 재미를 찾는 다면 어느 꼭지에선가 발견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추어지만 프로 못지 않은 글을 발견하는 재미는 나름 쏠쏠하다.
내가 이 책이 나오자마자 읽고 리뷰를 쓰는 이유는 아마도 부채의식이 있는 듯 하다. 딱히 받은 것도 없지만, 딱히 줄 것 없어서 생긴 나의 부채… 내게 의미 있는 사람들이기에 이 책도 의미가 있다.
책은 이렇게 인간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