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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의 배신 - 시장은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라즈 파텔 지음, 제현주 옮김, 우석훈 해제 / 북돋움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계급투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투쟁을 벌이는 쪽은 우리 부유층 쪽이며, 부유층이 투쟁에서 승리하고 있다. 워렌버핏
한 사람이 207일째 크레인에 올라가 있습니다. 올라간 시기는 명확한데 내려올 시기는 먼 미래에서 잃어버린 것만 같습니다. 나무 위에서 내려오지 않았던 남작의 이야기가 아니라, 부산의 영도에 있는 일입니다. 가장 추웠다던 지난 겨울이 지나 폭우와 폭염이 이어지는 날들의 연속적인 일기예보를 들을 때마다 그녀가 생각납니다. 1차, 2차, 3차… 함께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그녀의 무모해 보였던 투쟁이 모두의 투쟁으로 바뀌고서야 그녀가 느꼈을 외로움의 크기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외롭게 싸워왔던 수 많은 노동자들의 삶이 스쳐갑니다. 어렴풋이 우리가 가진 전부가 어떤 것인지, 무엇을 가지고 싸워야 하는지 답안도 보이는 듯 합니다.
왜 인간으로 태어났으면서도 인간답게 일하고 살아가는 일이 이토록 힘들게 되었을까요. 사람이 살게끔 하는 원리가 아니라, 사람들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사용하는가에 대한 매뉴얼이 넘쳐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상인 계급이 상업에 관해 새로운 법안이나 규제를 제안한다면, 언제나 채택하기 전에 최대한 경계심을 가지고 주의를 기울여 오랫동안 세심하고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 상인 계급의 사람들은 공공의 이익과는 다른 이해관계를 갖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공공을 속이거나 심지어 억압하려는 의도를 품고 있고, 많은 경우 실제로 그렇게 해왔다. - 애덤 스미스142p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며, 자본에 월계관을 씌워주던 전 대통령의 말이 떠오릅니다. 서울시장 출신들의 시장만능주의적인 정책에 의해 거래되는 수 많은 것들의 본래 가치가 무너지는 것을 목격합니다. 우리가 교환하고, 축적하고, 매겼던 그 가치들이 화폐로 귀결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이 노골적으로 우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화폐를 사회적 관계로 풀어낸 ‘돈의 본성’이 파헤치고 있는 부분은 불평등한 권력의 서열에 있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자가 있는 반면, 배당만 챙겨가면서도 더 큰 이윤을 쫓아다니는 자가 있습니다. 규칙을 항상 이기는 자들이 만든 것은 분명한데, 우리는 그것을 바꿀 힘이 없음을 한탄합니다. 아니 오히려 그 규칙에 더 적합한 능력과 자질을 갖추기 위해 노력을 합니다. 그에 대한 보상은 이미 정해져 있는데 말입니다.
시장에서 없어져야 할 것은 우리를 생태적 파국의 벼랑으로 내몬 영속적이고 압도적인 확장 및 이윤 추구의 욕구다. 우리의 마음에서 없어져야 할 것은 시장이 세상의 가치를 평가할 유일한 방법이라는 믿음이다. 289p
우리를 둘러싼 세상에 가격표를 붙이지 않고도 가치를 매길 방법을 이해하는 것은 인류 생존의 열쇠가 될 수도 있다. 241p
‘모든 개별 시민이 삶의 다양한 모든 측면에서 그 자신에 대한 정당한 지배자이자 주인으로 드러낼 수 있다’ 소포클래스
기업을 인격화하여 정신분석을 하면, 사이코패스나 소시어패스 같은 반사회적 정신 장애 소유자라고 합니다. 반복적으로 사회적 규범을 지키지 않으며, 사기를 치고, 충동적이고, 공격적이고, 타인의 안전에 개의치 않고, 무책임하고, 타인을 해치거나 학대한 후에도 이를 합리화하고 혹은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는 등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기업들이 유난히 많습니다. 하나 같이 이들 기업은 국가경쟁력과 시장경제의 발전을 담당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모두의 행복을 책임지는 것으로 스스로를 묘사합니다.
그런데, 왜 김진숙은 크레인에 올라갔을까요. 목을 매거나, 투신한 노동자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요. 그들과 함께 하고자 모인 사람들 때문에 길이 막혀서 불편하고 시끄럽고 지저분하다는 주민들의 날 선 비난에 빠진 것이 있습니다.
매 상황에서 힘 있는 자와 없는 자의 구도는 하나의 고정된 주체가 아니다. ~
4달러짜리 빅맥을 누리는 소비자도 ‘힘 있는 자들’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도 ‘힘 있는 자들’이었던 우리가 납세자가 되어, 도덕적 해이에 빠진 대주주 덕에 파산한 금융기관에 쏟아 붓는 세금을 짊어져야 할 때에는 약자의 자리로 몰리게 된다.
301p
스스로 그 불편함 이상을 감수하는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500km 이상의 거리와 5시간 이상의 시간, 생계를 위한 일당, 그 안에서 누릴 수 있는 기쁨을 기꺼이 포기를 고집하는 이유는 자본주의 멘탈리티로 이해 할 수 없고, 매길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와 동의어였던 평등(이소노미아 isonomia)와 공공의 문제에 관심이 없이 오직 사사로운 문제에만 몰두하다가 농락당하고 마는 고립된 개인(이디오테스idotes)이 상상할 수 없는 희망은 포기의 순간에 찾아오니까요.
아마도 희망은 행복을 동반하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맞이하기도 전에 다음 세대의 몫으로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과정 속에 있어야만 합니다. 이 책은 그 모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책이 가진 강력한 설득력과 유려한 문장으로 다시 한번 우리의 세계를 그려봅니다.
김진숙 동지와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있지 않더라도 우리를 감싼 세계를 의심하는 모든 사람들이 상상하던 그 세계로 가는 길을 꿈꾸게 합니다. 속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거기에 있기에 누군가는 그곳에 이르겠지요.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