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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사무소 김앤장 - 신자유주의를 성공 사업으로 만든 변호사 집단의 이야기 ㅣ 우리시대의 논리 10
임종인.장화식 지음 / 후마니타스 / 2008년 1월
평점 :
“정신노동을 하는 자는 남을 다스리고, 육체노동을 하는 자는 남에게 다스림을 받는다 (勞心者治人 勞力者治於人)”라는 맹자의 사상에 한국 사회가 질퍽하게 젖어 있어서 일까. 어렸을 때부터 ‘사’자 들어가는 ‘직업군의 인간’이 되라는 말을 여기저기서 많이 들었다. 선망의 전문직 중 대표격인 법조계에 입성하려는 노력들을 보면 조선의 과거제를 떠올릴 만큼 과열이다, 로스쿨법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을 보더라도 ‘고지 사수’에 대한 열망은 노골적이다 못해 치사스럽기까지 하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을 그들은 잊어먹고 있는 듯 하다. 사회적 지위와 재력을 그들이 쥘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의 책임과 사회적 역할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고시만 패쓰하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때부터가 진짜 시작인 것이다.
<변호사법>
제1조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
제2조 “변호사는 공공성을 지닌 법률 전문직으로서 독립하여 자유롭게 그 직무를 행한다.”
인권과 사회정의, 공공성을 위해 그들이 ‘달달 외운 법률지식’을 활용해야 할 텐데, 이 책을 보니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그럼 그렇지’를 연발케 한다. IMF때부터 로펌에 관한 기사가 종종 나오곤 했었다. 국내 기업이 외국에 팔릴 때면 어김없이 등장했던 것 같다. 금융개방의 충격에 취약했던 ‘부실 기업’들이 여기저기서 KO를 당하자 ‘법조계’에서 발벗고 나섰었다. 기업형 변호사 집단은 투기 자본에 기업을 팔아먹고 무럭무럭 자랐다. 이 책은 국내 로펌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규모가 큰데다가 ‘신비주의’를 추구하는 ‘김앤장’을 ‘사회 고발’하기 위해 출간되었다.
<두산 백과사전>
로펌 : 특정분야에서 전문가를 요구하는 사회현상에 따라 한국에서도 김&장,세종,태평양·광장 등 대형 로펌이 등장하였다.
그런데 김앤장은 로펌이 아니란다. 건물은 여러채 있는데, 간판이 없다. 비즈니스 할 때는 로펌이고, 문제 될 때는 법률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투명 보호막을 뒤집어 쓴다. 이 로펌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고 하니, 뛰어난 변호사 집단이라기 보다 전 판검사들 기수별, 연수원-고시원 동기 수 백명을 촘촘히 꿰어 만든 '막강 로비의 축’에서 나온다. 게다가 정부 인사들이 퇴직하면 엄청난 연봉을 줘서 자기 회사로 데려온다. 그리고 투기자본과 결탁하여 그들에게 국가 정책의 방향을 움직이는 임무를 부여한다. 은행의 해외매각, 공기업 민영화, 정부의 법률자문도 ‘돈벌이 비즈니스’로 전락한 이유가 있었다. 그런 식으로 나눠 먹으니까… 민영화를 강력하게 외치던 정부 관계자들이 괜히 그랬겠는가.
권력의 민영화, 사유화는 군사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냉전 이후에 민영화를 통한 군산복합체의 탄생은 전쟁을 생산하는 시대를 열었다. “군인들과 무기들이 공개 시장에 넘쳐 나게 되었다. 예를 들어 T-55 탱크 가격이 SUV 차량 값보다 싸고, 우간다에서는 AK-47 소총 한 정이 닭 한 마리 값이면 살 수 있을 정도”였다. 게다가 “냉전의 종식은 '안보 공백'을 낳았고 그에 따라 분쟁이 엄청나게 늘어나 1990년대 중반에는 냉전 종식 이전보다 5배나 많이 발생했다.”
"전 국방부 관료 출신들은 군수산업체 고문으로 영입되어 냉전시기의 무기체계를 유지하고 무기 수출을 촉진하고자 로비에 매달리고 있다. 퇴역 장성들은 외국 군대를 훈련시키는 회사를 차리고 미국의 군사 개입을 부추기고 있다. 미 정보기관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온 무기거래상들도 여전히 전세계를 떠돌며 때로는 정부가 주도하는 군사작전을 돕는다는 구실로, 때로는 철저히 상업적 목적에서 무기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들 '민간전쟁광'은 전쟁과 지역 분쟁을 통해 경제적 이익과 경력을 함께 쌓아왔으며, 미국의 국방. 외교 정책이 강경 노선을 유지하도록 긴밀한 유착관계를 통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냉전이 끝난 뒤에도 미국이 여전히 탈냉전적 세계 질서로 이행하지 못하는 데는 이들의 집단적 영향력이 커다란 원인이 되고 있다"
<전쟁대행주식회사> 피터 W.싱어 저/유강은 역 | 지식의풍경
이것은 사적인 이익을 위해 조직된 집단이 범죄 조직과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민간인은 공격 목표에서 제외되어야 한다는 전통적인 전쟁 법규가 무력해졌음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국가적 책임조차도 민영화 함으로써 기존의 질서와 책임은 공중분해가 된 것이다. 이것을 법과 경제 분야에 대입시키면 김앤장과 같은 괴물이 탄생한다.
사회 정의, 공공성이라는 본래적 책임은 내던지고, 오로지 사익 추구를 위해서라면 법을 뜯어 고쳐서라도 자본에 충성하는 권력의 카르텔은 막강하다. 권력을 쥔 자들이 '이해'라는 공통의 목적을 가지고 연대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돈이 궁했던 1999년에 만들어진) “지식의 부가가치를 능동적으로 창출”하는 ‘신지식인’ 일 수도 있겠다.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낸 신지식인. 사회적 약자들 편에 섰었던 고전적 지식인들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재벌들의 ‘탈법의 합법화’에 앞장서고, 사법질서는 물론 사회정의까지 비즈니스의 영역으로 만들어 버림으로써 그 책임과 피해를 사회와 시민이 떠안게 되었다는 점이 그들이 이룩한 업적이라면 업적. 이명박이라면 ‘선진금융기법’이라고 했을 '합법을 가장한 불법의 대가들’답게 심한 분노도 우리에게 선사해 주셨다. 그러나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될 부분은 과연 김앤장만의 문제인가 하는 점이다. 국익이라는 명제 하에 (완전한 것은 아니지만 일부분의 국민적 합의가 되었던) ‘미국의 침략전쟁에 파병’건을 보더라도 김앤장만이 추구하는 '사회적 논리'는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권력을 가졌건 가지고있지 않건 자본논리는 ‘자각하지 못하는 누구’에게나 언제든 기회만을 엿보고 있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재산권을 최고의 가치로 끌어올린 신자유주의가 삶의 곳곳을 파고들고 있다. 그것은 ‘보이지 않던 권력의 실체’가 아니라 ‘보이는 권력에 대한 자발적 복종’이다.
"오늘날에도 권력을 지닌 자들은 마구잡이로 불법을 자행하면서, 이른바 공공의 안녕, 인민을 위한 허울좋은 모델로써 그것을 은폐하고 있다. 이러한 짓거리는 옛날의 그것보다 심했으면 심했지, 결코 나아졌다고 할 수 없다."
<자발적 복종> 에티엔느 드 라 보에티
16세기 에티엔느 드 라 보에티가 18살 때 쓴 <자발적 복종>의 통찰력은 언제 봐도 놀랍다. 바퀴벌레의 생명력 만큼이나 질긴 것들이 언제나 우리 앞에 있구나. 여하튼 이제라도 김앤장이 신비주의가 벗겨지게 되었다는 점은 축하할 일이다. 책으로도 나왔으니 지들이 어디로 숨겠는가. 사회적 감시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