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공산주의자의 향기

[박노자의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지금 읽어봐도 예리하게 ‘이광수 파시즘’을 비판한 1930년대 논객 김명식
비판적 학문 업적에 비해 문집이나 평전 하나 없는 건 역사의 아이러니

글쓰는 사람에게 가장 큰 두려움이라면 ‘독자를 얻지 못하거나 잃는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조선의 19세기를 빛낸 다산 정약용(1762~1836)과 혜강 최한기(1803~79)는 생전에 세상에 별로 알려지지 못한 비주류였지만 지금은 조선 철학의 진취성과 잠재력의 상징이 되었다. 독일의 19세기를 빛낸 쇼펜하우어(1788~1860)나 니체(1844~1900)의 강의에 학생 몇명밖에 찾아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놀랍기만 하다. 글쟁이들의 가장 큰 두려움은 동시대인들에게 외면을 당하는 것보다는, 미래에 시대적 의미를 잃어버린 작가로서 역사 속에 묻히고 마는 것일 것이다.

정약용과 쇼펜하우어의 시대성

특히 특정 이데올로기의 범주에서 글을 쓰는 이들은 그 이데올로기의 퇴조 이후에 빨리 잊혀진다. 가령 지금 박은식(1859~1926)이나 장지연(1864~1921)의 글들을 애착을 갖고 찾는 독자들이 몇명이나 되는가? 그러한 독자들이 없는 이유는 당시의 개화주의적 주장들이 지금은 답답한 훈육주의로 보이기 때문이다. 가까운 1980년대의 ‘신식민주의’의 분석들도 더 이상 유용해 보이지 않는다. 한때에 소비됐다가 유효기간이 만료되면 폐기되는 것이야말로 글쟁이가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근대적 글쓰기의 조건인 것이다.

그런데 과거의 이데올로기적 범주에서 쓴 수십년 전의 글이 지금에 와서도 현 시대 논객들의 글보다 더 마음에 와 닿는 경우들이 있다. 대개 그러한 글들은 이데올로기에 맹목적으로 몰두하기보다는 그 틀을 구체적인 사회 현상의 분석에 적절히 이용하는 실사구시적 냄새가 나는 논저들인데, 오늘날까지 존재하는 현상에 대한 비판이라면 마치 오늘 쓴 것인 양 읽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요즘 전문가들도 잘 모르는 1920~30년대 공산주의적 사상가 송산 김명식(松山 金明植·1890~1943)의 ‘이광수 파시즘’에 대한 글을 읽어보면 70년 전에 쓴 글이 어떻게 오늘날까지 시의성을 과시할 수 있는지 혀를 내두를 정도다.


△ 김명식은 1999년에야 애족장 포상을 받았다. 1990년대 후반까지 공산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에게 포상 신청을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이광수의 파시즘이란 무엇인가? 1910년대에 ‘우매한 민중을 계몽할 사명’을 맡을 신지식인 엘리트의 역할을 강조했던 전형적인 부르주아 계몽주의자인 이광수는 <민족개조론>(1922)에서 ‘노동자의 파업과 반란을 낳아 위기로 치닫는 서구의 자유주의·개인주의·무정부주의적 경향’을 질타하고, ‘이기적이고 나태한 겁쟁이’인 조선 민중이 엘리트 지도자에 의해 집단에의 봉사정신을 익혀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한 조선 민중이, <우덕송>(牛德頌, 1925)에서 이야기한 ‘무거운 멍에를 지고 밭을 갈았다가 나중에 인간에게 살과 피, 가죽을 주면서 죽는 성인(聖人)과 같은 소’와 같이 지배자들을 위해서 살고 죽는 우민(愚民)이 되어야 함을 비유적으로 주장했다.

‘강력한 민족’을 만들기 위해서는 대중이 지도자에게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이광수의 <지도자론>(1931)은 공산주의 이론가 김명식에게서 비판의 화살을 맞는다. 김명식의 이광수의 비판(<삼천리>, 1931년 9월) 논리는 참으로 명쾌하다.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으로 구성된 사회에서 “민족 전체를 계몽·지도하겠다”는 사람은 결국 지배자를 위해 절대 다수의 이익을 짓밟을 텐데 그건 계몽·지도가 아니라 지배다. 피지배자들의 이해관계에 대한 관심도 없이 자본가 위주로 만들어진 ‘민족’의 미래를 들먹인다면 극히 폭력적인 지배 방식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경주에 가서 다르게 생각해보라

이에 이광수가 반박문을 쓰고 흥분했지만 몇 개월 뒤 김명식의 비판 제2탄(‘영웅주의와 파시즘’, <동광>, 1932년 3월)이 날아와 이광수의 정체가 더 확실히 드러난다. 이광수는 힘이 바로 정의라며 강력한 지도자를 중심으로 뭉친 초강력의 집단의 힘을 찬양했지만, 김명식은 역사적 진보의 논리를 따르는 힘만이 정당할 수 있으며 해방을 구하는 노동자들을 학살하고 인권·자유를 짓밟는 힘은 반역사적 폭력일 뿐이라 못박았다. 또한 유럽·일본, 조선의 부르주아들까지도 피지배민의 해방 투쟁에 맞서 폭력을 찬양하는 것은 그들에게 역사적 위기가 닥쳐왔음을 보여준다는 것이 김명식의 논리였다.

민중을 ‘지도자’ 중심의 재벌 집단의 ‘세계적인 성공’에 열광하고, 허울 좋은 ‘2만달러 소득의 동북아 허브’ 시대의 도래를 기다리는 소와 같은 존재로 만들려는 자들이 아직 많아서일까? 70년 전 그의 글은 매우 시사적이다. 이광수가 숭배한 이순신에 대해 과연 거북선 제조가 이순신의 천재성 덕분일까, 당대 조선의 기술적 수준의 반영이 아니었을까라는 김명식의 반문을 읽을 때, 수많은 조선 기술자와 병졸, 의병에 가담한 농민·노비 등을 외면한 오늘의 영웅주의가 부끄럽게 느껴진다.

김명식은 “이순신이 나타나지 않아 조선이 일본이나 명나라의 지배에 들어갔다 치자. 그렇다고 피착취 민중의 형편이 조선왕조가 지배할 때보다 크게 나빠졌을까”라고 되묻기도 한다. 민족주의적 통념으로는 거의 독신(瀆神)에 가까운 이야기다. 민족주의적 ‘상식’으로 민족 멸망 이상의 재앙은 없다. 그런데 농민의 눈으로 역사를 바라본다면 다르게 볼 수 있지 않을까? 김명식은 “경주의 화려함을 볼 때 신라 노예들의 생활이 얼마나 비참했을지 생각해보라”고 했다. 70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경주에 가서 무엇을 보고 생각하는가?


△ 이광수(오른쪽)는 근대문학의 창조자 반열에 올라 있는데 그를 비판한 김명식은 현재 좌파 지식인조차 잘 모른다. 김명식과 활동한 김철수(왼쪽)역시 최근에 서훈됐다.

그러나 역설 중의 역설은 파시스트 이광수가 지금 누구나 아는 ‘근대 문학의 창조자’ 반열에 올라 있는 반면, 그의 예리한 비판자 김명식은 현재의 좌파적 지식인들조차 잘 모른다는 것이다. 물론 예외는 있다. 제주도의 진보 인사들에게는 제주시 근처의 조천리에서 100년 전 양반 유지의 가정에서 태어나 1940년대에 낙향생활을 하다 고향마을에서 서거해 묻히게 된 김명식은 ‘제주 진보운동의 명사’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독립운동사를 배운 사람이라면 “조국 해방을 위해 신학문을 배우겠다”는 결의로 일본에 건너가 이광수 등과 함께 와세다대학에 다녔다가 국제주의적인 반제국주의 단체인 신아동맹단(新亞同盟團·1916)을 만들고 그 뒤 조선 최초의 본격적인 공산주의 조직인 사회혁명당(社會革命黨·1920)의 창립 멤버가 되었고 <신생활>이라는 잡지를 만들어 혁명 사상의 대중화에 뛰어들어 혁명적인 글들을 게재한 죄(?)로 일제 당국으로부터 식민조선 사상 최초의 ‘필화 재판’(1923)을 받아 형살이를 한 공산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 김명식을 알 것이다.

말년의 타협은 아쉬움 남겨

그런데 고문, 가혹한 감옥 노역, 말라리아로 1920년대 중반부터 거의 귀가 먹어버려 걸어다니기 힘든 병자가 된 김명식이 그 뒤 극단적인 가난 속에서 투병생활을 하면서 쓴 수십편의 당대를 떠들썩하게 한 뛰어난 논저들이 아직도 문집으로 묶이지 않고 있으며 김명식의 평전 역시 쓰인 일이 없다. 이제 안재홍(1891~1965)과 함께 1930년대의 최고 논객으로 꼽혔던 김명식에 대해 현대인들은 거의 모르게 되어버렸다. 이와 같은 무지가 강요된 것은, 그 사상이 지금도 불온하게 느껴질 만큼 이 땅의 지배자들의 이면을 잘 파고들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미 황천으로 떠난 김명식으로서 어쩌면 행복해할 일이다. 그 시대의 수많은 다른 글과는 달리 그의 글은 아직도 쓸모있기 때문이다.

물론 김명식에게도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 소련이 파시스트 독일과 야합해 그가 유럽의 조선이라고 여겼던 폴란드를 분할 점령함으로써 수많은 진보적 지식인들을 실망시키는 등 암흑의 상황에서 일제의 극심한 감시에 시달리던 말년의 김명식이 어려운 현실과 타협하기 위해 창씨개명의 필요성을 주장하는(‘氏制度 창설과 鮮滿一如’, <삼천리>, 1940년 3월) 등 쓰지 말아야 할 글을 쓴 일이다. 자신을 끝까지 마르크스주의자로 부르고 개인적으로는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죽으면서도 “해방될 때까지 내 사망신고는 하지 말라”고 하는 등 나름대로 지조를 지킨 그가 이와 같은 종류의 타협으로 얼마나 괴로워했을지 상상이 간다. 인간이었을 뿐인 그도 당연히 완전무결하지는 않았지만 극빈 생활과 투병의 고통 속에서 조선의 현실에 대한 진보적인 비판을 해온 그를 외면하는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요즘 좌파적 독립운동가들에게 서훈을 한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오지만 형식적인 서훈보다는 그들의 훌륭한 사상을 오늘의 입장에서 해석·이해하고 더 많이 알릴 수 있는 계기로 만드는 것이 더욱 중요하지 않나 싶다.

참고문헌

김철, 신형기 외 지음, <문학 속의 파시즘>, 삼인, 2001.
박종린, ‘한국의 사회주의: 인물(1) 꺼지지 않은 불꽃, 송산 김명식’, <진보평론>, 제2호, 1999.
박종린, ‘김윤식사회장 찬반 논의와 사회주의 세력의 재편’, <역사와 현실>, 제38호, 2000.
임경석, <한국 사회주의의 기원>, 역사비평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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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리더십의 폭력성

[강준만의 세상읽기]

대연정 제안을 반대한 것은 ‘제2의 민주당 분당’처럼 보였기 때문
언제부턴가 뚜벅뚜벅 걷는 법 잊은 대통령이 드라마 PD가 된듯

▣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노무현 대통령님, 안녕하시지요? 이 글을 올리기까지 많이 망설였습니다. 대통령에게 과부하를 주는 한국 사회의 ‘대통령 중독증’을 비판해온 사람으로서 저까지 그 ‘중독증’에 일조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지요.

강준만, 나는 누구인가

그런 망설임에도 불구하고 제가 대통령님께 글을 올리기로 한 건 소통에 대한 갈증 때문이었습니다. 대통령님을 비판하건 지지하건 대통령님에 대해 언급한 그 어떤 글을 봐도 상대편과의 소통을 위한 배려가 거의 없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면서 대통령님은 말할 것도 없고 국민 모두 참 답답하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저 자신 그간 대통령님을 꽤 비판해왔습니다만, 저의 비판 역시 소통을 위한 건 아니었다는 걸 인정합니다. 대통령님을 비판하거나 옹호하는 분들도 소통을 우선시하지 않는 건, 이유는 각기 다를망정 저의 경우처럼 그럴 만한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거라는 데에 생각이 미치더군요. 저는 모든 분들께 그 내면의 이야기까지 다 해보자는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물론 소통을 위해서입니다.

저부터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저의 대통령님 비판은 그간 대통령님의 열성 지지자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가장 많은 비판은 제가 감정적 대응을 한다는 것이었지요. 민주당 분당에 반대했던 사람으로서 그때의 ‘반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취지의 비판이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저는 그런 비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만, 좀 다른 이유에서 그런 비판에 일리는 있다고 봅니다. 제가 동의할 수 없는 건 “나는 누구인가?”라는 점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그런 비판을 저에 대한 과대평가라고 보았지요. 저는 그간 국가와 민족, 즉 전체를 위한 글쓰기를 해온 것이었을까요? 전 그건 아니었다고 봅니다.

대통령님에 비해 길지 않은 인생입니다만, 과거 제 인생에 이런 일이 있었지요. 어느 조직에서 어떤 사람이 왕따를 당하는 겁니다. 왕따당할 만한 일을 많이 했던 사람이었지요. 그런데 제가 보기에 그 사람에 대한 조직 성원들의 응징은 너무 가혹했습니다. 전 홀로 그 왕따를 당하는 사람의 편을 들었습니다. 그 당시 제겐 조직의 안녕과 번영 따윈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정의를 대변한다는 다수의 ‘폭력’에 대한 반감이 저의 모든 관심을 지배했지요.


△  대통령의 열성지지자들에게 선명한 개혁전선이 존재하지만, 실제로 일해야 하는 권력 엘리트층에 그 전선은 다분히 허구적이다. 지난 9월 노사모 전국대표일꾼 선거 출마자들의 토론회 모습. (사진/ 류우종 기자)

저는 평소 소심하고 여린 성격의 소유자인지라 정의감은 별로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연에 의해 선택을 사실상 강요당하는 상황, 또는 자신이 했던 일에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에서까지 내뺄 만큼 슬기롭지는 못합니다.

대통령님은 최근에서야 공개적으로 인정하셨습니다만, 대통령님의 뜻에 의해 이루어진 민주당 분당은 제게 매우 폭력적으로 비쳤습니다. 왜 그랬는지 자세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군요. 대통령님께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하는 게 앞으로의 국정운영에 큰 도움이 되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민주당이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정당이며 당연히 개혁 대상이라는 건 저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요. 그래서 전 “정당으로 쳐들어가자”는 선동을 하기도 했고 유시민씨가 깃발을 든 개혁당 당원으로 가입하기도 했지요. 제 딴엔 민주당의 대대적 개혁을 위한 대행진에 미력이나마 기여하고 싶은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님은 민주당 분당을 원하셨습니다. 좋습니다. 분당도 못할 건 없지요. 제가 폭력적으로 느꼈던 건 민주당을 ‘반개혁 정당’ ‘지역주의 기생정당’으로 몰아붙이는 전략이었습니다. 저로선 결코 동의할 수 없었지만, 모두 대통령님이 원하는 대로 되었습니다. 그게 다 이 나라의 개혁을 위하는 정의로운 일이었을 거라 믿고 싶습니다.

분열주의 전략은 얄팍하다

그렇지만, 대통령님! 모두 다 개혁의 화신이 되는 것도 좋겠지만 민주당이 그렇게까지 매도되어도 좋을 정당은 아니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극소수나마 남아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모두 다 자신도 가담했던 과거에 침을 뱉으면서 새 역사 창조에 줄을 서야 하고 꼭 국가와 민족이라는 전체를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런 전체 중심의 사고야말로 개발독재 시대의 유산이 아닐까요?

어디 그뿐인가요. 독재정권 시절에 탄압을 받으면 명예나마 얻을 수도 있었지만, 대통령님의 뜻에 반해 몰락하면 반개혁·지역주의 기생세력으로 전락해 영원히 불명예에서 벗어날 길이 없잖습니까. 설사 대통령님의 비전에 공감해 대통령님을 지지했고 여전히 지지하고 싶어도 방법론에 조그만 이견이라도 드러내 대통령님의 줄에 서지 않으면 그런 운명을 감수할 수밖에 없지요. 김영삼·김대중 대통령 시절엔 대통령에게 대들면 그래도 용감하다는 칭찬이라도 들을 수 있었지만, 대통령님처럼 탈권위주의의 화신으로 비쳐진 대통령의 뜻에 반하면 그런 혜택조차 주어지지 않지요.

대통령님! 전 이 모든 게 폭력적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런 상징적 폭력이 물리적 폭력 이상으로 무서울 수 있다는 것도 절감했습니다. 이는 제가 대통령님의 매력에 반해 지난 2001년 봄 <노무현과 국민사기극>이라는 책을 썼을 때의 그 심정입니다. 전 당시 개혁세력 내부에서조차 노무현을 왕따하는 것 같은 분위기에 분노해 그 책을 썼고, 몇년 뒤 그때의 심정으로 다시 대통령님의 줄에 서지 않는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박해에 분노해 대통령님을 비판하게 된 겁니다.

전 대통령님이 제안한 대연정에 반대했습니다만, 그 이유는 다른 분들의 반대 이유와 좀 다릅니다. 저는 그걸 ‘제2의 민주당 분당’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일관성은 대통령님께 있다고 믿습니다. 대통령님께서 대연정 제안에 대한 싸늘한 반응을 보고 의아해하시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봅니다.


△ 노무현 대통령이 수개월동안 국민들에게 연정을 ‘학습’시키려 했지만,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거부로 한발 물러났다. 10월1일 계룡대 연병장에서 만난 노 대통령과 박 대표.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그러나 저는 또다시 대연정 구상에서 폭력성을 발견합니다. 대통령님 못지않은 개혁 의지로 충만한 열린우리당 의원일지라도 죽어도 대연정엔 찬성할 수 없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통령님의 대연정 드라이브가 성공한다면, 그들은 또 반개혁 세력으로 찍히는 동시에 몰락하게 돼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대통령님의 열성 지지자들이 가만 놔두질 않지요. 제가 알기로 대연정의 참뜻은 ‘화합과 포용’인데, 대통령님의 일부 지지자들은 공격적인 적대감으로 무장해 대연정을 외치고 있으니 이걸 어찌 이해해야 할는지 모르겠습니다.

대통령 소용돌이 효과를 아십니까

대통령님! 저의 문제의식은 대통령님이 구사하시는 리더십의 폭력성에만 국한된 게 아닙니다. 새판 짜기를 위한 필요악으로서의 분열주의 전략은 새로운 정치 시장을 창출하는 것과 같은 엄청난 파워를 보여줄 수도 있지만 폭력성과 더불어 ‘얄팍함’이라는 치명적 결함을 안고 있다는 거지요. 문제의 핵심은 그건 ‘노무현 브랜드’와 전혀 맞지 않는 속성이라는 겁니다. 그건 일종의 부메랑 효과로 나중에 대중적 냉소의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간파하기가 쉽지 않으니 더 문제지요. 대통령 비판이 ‘국민 스포츠’가 된 것도 수구 기득권 세력의 음모 때문이라기보다는 바로 그 점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요?

대통령님은 언제부턴가 뚜벅뚜벅 걷는 법을 잊으셨습니다. 대통령님이 자꾸 드라마 PD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대통령님의 대통령 당선 자체가 드라마의 연속으로 가능했던 것인데, 그건 불가피한 게 아닌가 하는 이해를 해보려고 애를 쓰기도 했습니다만, 그렇게 해선 성공적인 국정운영이 어려워진다는 게 문제였지요. 노무현 브랜드의 정체성이라는 건 이념이나 정책노선보다는 오히려 노무현 개인의 행태적 특성과 관련이 있는 게 아니었을까요? 저는 이 점이 여론조사로는 결코 규명될 수 없는, 대통령님의 지지도 하락 이유 중의 하나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 국민들의 탄핵 반대는 대통령에 대한 지지라기보다 '대통령 소용돌이 효과' 때문이다. 노사모 회원들이 탄핵 기각을 기원하며 고양시 장항나들목 가로수에 매달았던 리본. (사진/ 한겨레 김태형 기자)

대통령님! 대통령직을 수행하시는 데에 생각하셨던 것보다 어려움이 많지요? 그 어려움엔 수많은 이유들이 있겠습니다만, 저는 무언가 빨리 이루려는 대통령님의 조급증과 더불어 과도한 자신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전 안희정씨가 역설했던 ‘386 역할론’에 주목했습니다. 안씨는 “젊은 세대가 정권의 주역이 된 것은 5·16 군사 쿠데타 이후 40년 만”이라며 “그때는 군인들이 총칼 들고 한강을 건너 정권을 장악했지만 우리는 노사모와 노란 목도리를 매고 한강을 건넜다”고 주장했지요. 전 처음엔 이 말을 수사적인 수준에서 받아들였습니다만, 그게 아니더군요. 대통령님도 공감하는 참여정부의 기본 신념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저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보며, 바로 그런 신념이 참여정부의 어려움을 초래한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님은 너무도 탈권위주의적이라 이해하시기 어려울 수도 있겠습니다만, 한국 사회의 숙명이라 할 ‘대통령 소용돌이 효과’는 독재정권 시절이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답니다. 절대다수의 국민이 대통령 탄핵에 반대했던 건 대통령님에 대한 지지 때문이 아니라 나라의 중심인 대통령을 흔들어 혼란을 초래하는 작태에 대한 분노 때문이었습니다. 민주당의 몰락도 호남인들의 개혁 의지 때문이라기보다는 대통령 권력에 의한 소용돌이 효과 때문이라고 보는 게 진실에 더 가까울 겁니다.

그 점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게 되면 참여정부 스스로 자신을 약자로 규정하는 함정에 빠지게 되며, 실제로 이는 대통령님은 물론 대통령님의 열성 지지자들에 의해 자주 발설되고 있습니다. 참여정부가 오랜 세월 누적된 수구 기득권 세력의 거대한 포위망에 갇혀 있으므로 오직 그들과 맞서 싸울 뿐 내부 비판을 할 겨를이 없다는 논리와 그에 따른 실천을 지금 우리는 목격하고 있거든요.

너무 겸손해 겸손을 잊어버리는 역설

대통령님! 그렇게 선명한 전선이 그어질 수만 있다면 그런 논리와 실천도 괜찮을 겁니다. 그렇지만 대통령님이 직·간접적으로 인사권을 행사한 500대 고위직 인사들을 놓고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그들 중 대통령님의 개혁 비전과 열망을 공유한 사람이 얼마나 되리라고 보십니까? 이건 정말 중요한 점입니다. 잘 생각해보십시오. 수많은 공기업에 수많은 대선 공신들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갔습니다만, 과연 어디에서 이렇다 할 개혁의 움직임이 일고 있던가요? 지금 저는 참여정부를 비판하려는 게 아닙니다. 이름 없는 대통령님의 열성 지지자들만 생각하면 선명한 개혁 전선은 분명히 존재합니다만, 실제로 일을 해야 할 권력 엘리트층을 놓고 보자면 그 전선은 다분히 허구적이라는 거지요. 고위 공직자들의 ‘부동산 투기(자)’만 놓고 보더라도 참여정부가 이전 정부들에 비해 큰소리칠 게 전혀 없다는 거지요.

실제로 부동산 투기 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대통령님부터 자꾸 기득권 세력의 저항을 강조하십니다만, 그게 그렇질 않습니다. 저항이 없다는 게 아니라 그 이전에 훨씬 더 중요한 정책 실패가 있었다는 뜻입니다. 혹 박태견 <프레시안> 논설주간이 최근에 출간한 <참여정권, 건설족 덫에 걸리다>라는 책을 읽어보셨습니까? 전 대통령님이 꼭 그 책을 읽으시길 바랍니다. 그 책의 모든 내용에 동의하시지 않더라도 부동산 투기 문제에 대해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쪽은 다름 아닌 대통령님 자신일 수 있다는 성찰을 해보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입니다.

대통령님! 지금 저는 뜨거운 개혁 열망을 자제하시라거나 자책을 먼저 하셔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려는 게 아닙니다. 지금 참여정부의 가장 큰 문제는 대국민 관계에서 ‘인식의 괴리’와 ‘소통의 부재’에 있다는 말씀을 드리려는 겁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에 “우리는 노사모와 노란 목도리를 매고 한강을 건넜다”는 신념이 작용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저는 대통령님에게서 역설을 자주 봅니다. 예컨대, 너무도 겸손한 성품을 갖고 계시기 때문에 겸손을 잊어버리는 역설입니다. 가수 조영남씨는 “돌아가신 울아버지 울어머니 겸손하라 겸손하라 하셨지만 지금까지 안 되는 것은 딱 한 가지 그건 겸손이라네”라고 노래했지요. 대통령님의 경우엔 늘 개혁을 생각하다 보니 도저히 겸손할 수 없는 경우가 많으리라 믿습니다만, 그래도 국민과의 소통을 염두에 두시고 입술을 깨물어가면서라도 늘 겸손하시길 빕니다. 마키아벨리는 지도자의 겸손은 무익할 뿐 아니라 해롭기까지 하다고 주장했습니다만, 그건 대통령님의 리더십 모델과는 다른 모델에서나 통하는 말이겠지요.

꼭 성공하셔야 합니다

저는 참여정부의 성공을 바랍니다. 참여정부의 실패는 대통령님이 상상하는 이상으로 한국 사회의 발전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치리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대통령님이나 대통령님의 측근 인사들이 행여 손 탁탁 털며 “우린 애초부터 잃을 게 없었다”고 가볍게 넘길 일은 아니라는 겁니다. 꼭 성공하셔야 합니다. 앞으로 자주 이런 편지를 올려 대통령님과 민심의 상호 소통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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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5-10-26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따 무지 기네..
 

 

구텐베르크와 조류독감

[편집장의 편지]

 

이윤삼 편집국장 yslee@sisapress.com

 

   
   
인쇄술 발명으로 유명한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정확히 언제 태어났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역사책에는 출생 연도를 ‘1400년?’으로 기록한다. 역사학자에 따르면 그는 1394년에서 1404년 사이에 태어났다. 그럼에도 세상에는 구텐베르크가 1400년 6월24일 태어난 것으로 되어 있다. 2000년 6월24일 독일에서는 ‘탄생 600주년 기념 행사’가 열렸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구텐베르크가 죽은 뒤 인쇄산업은 크게 발전했다. 당시 독일인들은 인쇄술이 독일적 기상과 창조성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여겼다. 1890년 구텐베르크 출생지인 마인츠 시장이 나섰다. 탄생일을 기념하는 국제 행사를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문제는 정확한 생년월일을 모른다는 점이었다. 학자가 동원되었다. 결론은 ‘탄생 연도를 알 수 없으므로 1400년으로 잡아도 무방하다’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날짜가 문제였다. 구텐베르크의 이름이 요하네스였으므로 세례자 요한의 축제일인 6월24일이 선택되었다. 1896년 마인츠 시장은 1400년 6월24일을 구텐베르크 탄생일로 삼아 국제적 축제를 열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언론은 보도를 통해 이 계획을 지지했다. 마인츠 시장과 학자와 언론과 인쇄산업의 이해관계가 결합해서 새로운 탄생일이 결정된 것이다. 이때부터 마인츠와 구텐베르크 박물관은 구텐베르크 연구와 관광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구텐베르크 사후에 그에 대한 평가도 세상의 이해관계에 따라 많이 바뀌었다. 그는 이재 감각이 탁월한 ‘사업가’였다. ‘면죄부’를 인쇄해 돈을 벌었고, 전 유럽 시장을 겨냥해 표준 성서를 인쇄했다. 일생 내내 보수파로 교황을 지원했다. 하지만 그의 의도와 달리 인쇄술은 종교개혁에 불을 붙였다. 결국 로마는 그를 ‘악마의 화신’이라고, 신교도들은 ‘신의 은총’이라고 불렀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그를 ‘뉴미디어의 선각자’라고 부른다.

비슷한 사례는 많다. 모차르트 음악이 동식물에게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모차르트 효과’는 공교육에 불안을 느끼는 학부모와 언론, 음반사업자의 합작품이라는 연구가 최근에 나왔다. <헬스의 거짓말>이라는 신간은 헬스운동의 효과가 헬스 산업과 언론의 이해관계와 결합하면서 부풀려졌다고 주장한다. 세계적으로 포도주의 새 효능을 강조하는 연구들은 상당수가 포도주 산업계에서 연구비를 지원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류독감에 대한 불안감이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위험성에 대한 대비와 치료제 비축량이 부족한 우리로서는 사전 예방을 위해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최악의 시나리오’를 통해 위험을 과장한 부분은 없는지, 외신의 대대적인 보도가 치료약을 생산하는 제약회사와 관계는 없는지 꼼꼼히 따져보아야 할 대목이 적지 않다. 오리 닭 따위를 기르고 있는 농가와 가공공장과 식당들의 타격을 보면서 드는 절실한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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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5-10-26 0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생충알이 나온 김치에도 음모가? ㅎㅎㅎ

돌바람 2005-10-26 0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저랑 같은 생각을... ㅎㅎㅎ

라주미힌 2005-10-26 0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밀레니엄 버그도 한참 시끄러웠었죠.. 다 그런거같아요...
짜고치는 고스톱... 돈 놓고 돈 먹기... 자 ~ 자 ~
 

부끄러운 짝사랑
박노자칼럼
▲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이번에도 노벨 문학상이 한국 작가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이 국내에서 큰 아쉬움을 자아냈다. 마치 신기루처럼 손에 잡히지 않고 멀리서 번쩍이는 듯한 노벨상에 대한 ‘짝사랑’을 지켜보면서 이해되는 구석도 있다. 한국학을 국외에서 가르치는 필자의 처지에서도 노벨상을 한국 작가가 탄다면 보탬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노벨 광풍’의 분위기는 괜한 집단적인 기력 낭비로 보인다. 폭약 장사로 번 돈이 주어진다 하더라도 사르트르처럼 거부하는 것이 더 작가다운 자세가 아닌가 하는 도덕적 문제는 제쳐두고, 한국 문학의 세계화 차원에서만 이야기해보자. 한국적 배경과 정서를 가지고 한국어로 창작을 하는 우수한 작가에게 이 상이 주어지기는 어렵고 그 어떤 국내 작가에게 주어진다 해도 이것을 한국 문학의 진정한 세계화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수상 결정을 좌우하는 서구의 ‘고급’ 지식인들이 비서구 문화를 감상하는 법은 무엇일까? 그 비서구 작품이 그들의 식탁에 오르기 위해서는 한편으로 접근이 쉬워야 하고 또 한편으로는 ‘매혹적 이질성’을 보여야 한다. 예를 들어 서구의 신비주의 전통에 잘 연결되는데다 ‘깨침’ ‘공안’ 등 ‘동양의 지혜’라는 오리엔탈리즘적 관념에 정확하게 들어맞는 이질적인 용어를 구사한 스즈키 다이세쓰(1870~1966)의 선불교 관련 저서들은 한때 구미를 풍미했으며, 지금은 그 비슷한 역할을 달라이라마가 맡은 듯하다. 물론 포교의 측면에서는 비록 ‘원형’과 많이 다르다 해도 머나먼 지역의 주민들이 불교를 쉽게 접할 수 있다는 면에서 좋지만, 과연 서구인의 구미에 맞게 만들어진 저서에서 계급사회의 모든 차별과 폭력에 맞서고 재물의 축적을 비판한 붓다의 혁명정신은 살아 숨쉬는가? 한국문화가 꼭 이러한 방식으로 ‘가공·포장’돼서 서구 소비자들에게 팔려야만 하는가?

귀하신 몸(?)인 서구 소비자들을 염두에 두고 한국 전통 등을 그들이 좋아할 만한 소비품으로 만드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한국 문학의 참된 보배들은 아무리 번역을 해도 저들이 쉽게 이해하리라 생각되지 않는다. 예컨대 현대 시인 김수영(1921~1968)의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라는 시구를 우리 세상의 쓴맛을 모르는 독자에게 설명할 수 있는가? “풀이 민초들이고, 동풍이 억압자들이고, 울고 눕는 것이 총구·밥그릇 앞에서의 굴복이다”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두발 제한에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복종한 경험이나 불심검문을 당한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이 시를 소화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필자의 개인적 생각으로 시인 김수영이 20세기의 시성(詩聖)이지만, 그의 시 세계를 이해한다는 것은 서구인에게서 찾아보기 어려운 실존적 경험이나, 적어도 이에 상응하는 깊은 고민을 요구한다.

가난뱅이의 체취가 묻은 작품을 부자가 좋아하기는 어렵다. 우리가 몸을 굽혀가면서 저들의 기호를 의식하고 거기에 맞출 필요가 있는가? 만약 김수영이나 김남주, 신동엽, 수많은 다른 민중·재야 시인들의 시를 우리와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는 중국이나 동남아·중남미 지식인들이 읽고 감동을 느낀다면 이것이야말로 그 어떤 노벨상보다도 귀중한 것이 아닌가? 황석영의 〈무기의 그늘〉을 서구인들이 읽어도 나쁠 게 없지만 서술의 대상인 베트남이나 미 제국의 새로운 침략의 무대인 아랍 세계에서 읽혀진다면 훨씬 자연스럽고 나은 일이 아닐까?

문학이라는 것이 인간에게 약이 될 수 있다면 그 약은 아픈 사람이 먼저 필요할 것이다.

박노자/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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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5-10-25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만에 추천^^

수퍼겜보이 2005-10-25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추천~~

라주미힌 2005-10-25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의 역사와 감성을 저 정도로 깊숙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한국사람'들 중에서도 드물다는 생각이 들어용... .
 

인터뷰 노회찬 의원 “민노, 소중한 시간 성과있게 못써”
서울시장 출마하라는 건
전교 1등에게 학교 관두라는 것
당내 경선으로 대선후보 뽑아야
이태희 기자

올해 국정감사 스타 가운데 한 사람으로, 당내에서 서울시장 출마 요구가 적지 않은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을 만났다. 노 의원은 서울시장에 나설 뜻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면서도, 2007년 대선에는 관심이 있음을 내비쳤다.

국회 의원회관 712호실에서 만난 노 의원은 “국정감사 기간 동안 각종 강연을 미뤘더니 벌써 32건이 밀려 있다”며 “최근 1년간 150차례 정도 강연을 한 것 같다”고 최근의 바쁜 일정을 털어놨다.

특유의 감칠맛나는 말솜씨 때문에 노 의원과의 인터뷰는 언제나 즐겁다. 이번에도 머리 속에 쏙쏙 들어오는, 포수의 글러브 속에 정통으로 꽂힌 스크라이크같은 말들이 쏟아졌다.

노 의원의 ‘말맛’나는 이야기를 옮겨본다. 인터뷰는 이른바 ‘삼성국감’으로 표현된 이번 국정감사와 당의 위기, 최근 많은 말이 나오는 서울시장과 대선 출마 등 여러 부분에 걸쳐 있다.

-최근 강연으로 바쁘신 것 같습니다.

=제일 기억이 남는 것이 요 며칠 전 봉은사에서 한 강연입니다. (서울 사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삼성동 코엑스 건너편에 있는 봉은사는, 강남 한가운데 있는 불당으로, ‘럭셔리’하다.) 처음에 초청을 받았을 때 고민했습니다., 어떻게 할 지. 봉은사에서 요식절차로 각 당마다 한명씩 초청한 것도 아니고, 저를 정식으로 초청한 것이라 내심 걱정했습니다.
강남쪽의 신도분들을 앞에 두고 정공법으로 부유세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랬더니 주최쪽에서는 “좋았다. 에둘러 피해가지 않고 정면으로, 구호로만 들었던 민주노동당과 부유세에 대해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하더라구요. 부유세의 취지가 부자들에게서 빼앗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좀더 나누자는 취지라는 것을 이해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강연은 얼마나 자주 나가십니까. 최근에는 경찰대학도 가셨던데.

=지금 국정감사 마치고 바로 해달라는 것이 32건이라고 하데요. 아마 (강연 스케줄이) 1년에 150개 정도 되지 싶습니다. 어떤 날은 하루 2개도 합니다. 가끔 “내가 보따리 장사(시간강사를 일컫는 말)가 아닌가”라는 생각도 합니다.

강연은 서울보다 지방이 많습니다. 힘들기는 하지만, 민주노동당의 경우는 완전히 알려진 당이 아니니까, 그래서 당을 알려야 하니까 갑니다. 우리 당의 생각을 알려야 하고, 우리가 민주노동당의 이름으로 내세우는 교육이나 주택, 의료에 대한 정책이 무엇이냐, 정치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할 말이 많은 사람들이 우리 민주노동당 사람들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할 기회를 가지는 것이니까 저야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얼마전에는 경찰대학에서 총경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했습니다. 무조건 갔습니다. 경찰들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과거 경찰이 공권력으로, 인권을 억압한 권력이었는데, 지금은 변하고 있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과거처럼 고문만 안하면 되느냐, 몽둥이 찜질 안하면 끝나는 것이냐. 그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인권은 먹고사는 문제도 해결되야 한다, 복지문제도 해결되야 인권도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경찰과 검찰의 수사권 문제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둘이 싸우는 판이 잘못됐다, 이 문제의 가장 큰 문제는 국민이다, 국민 편에서 보고 해야 풀린다고 말했죠.

-이번 국감 결과를 좀 평가해 주시죠.

=당장 중간결산을 하면 문제제기는 괜찮았지만, 아무 것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말이 나올 수는 있겠습니다. 성적이 나쁠 수도 있지만, 두가지 이야기를 하고 싶네요.

삼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한국사회에서 의미가 있었다고 봅니다. 작년 이야기를 하면 이학수(본부장)보다 계급 낮은 사람을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불렀는데, 결국에는 증인채택도 안됐습니다. 삼성 로비 때문이었죠. 옆에 있던 한나라당 의원들이 문자찍힌 것을 보여줬습니다. ‘노 의원이 주장하는 증인채택에 반대해 주시라’는 취지였습니다. 삼성이 끝까지 압력을 넣은거죠.

환경노동위원회에서도 증인 채택이 안됐고, 결국 국회가 삼성 직원 한 명도 부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불렀습니다.

삼성을 부른 것은 삼성이 가진 이중적 측면 때문입니다. 삼성은 우리 고도성장의 대명사, 일류기업의 대명사이면서 기업비리의 대명사이기도 합니다.

국민들에게는 삼성이 공공의 적일 수도 있다, 삼성 자체가 공공의 적은 아니지만, 삼성의 또다른 측면이, 잘못된 경영형태가 공공의 적일 수도 있다는 것을 공식화시킨 겁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국감이 끝나자 마자, 검찰에서 홍석현씨가 출두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을 언론에 흘리지 않습니까. 그러나 안 들어온다고해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사태는 진행 중입니다.

지금 삼성에 대해 문제의식이 있는 의원들이 많습니다. 청문회도 있고, 국정조사권도 있습니다. 이 문제는 이제 시작입니다. 1막1장이 이제 시작된 것이고, 이 무대는 계속될 겁니다.

-이른바 엑스파일 문제는 어떻게 처리할 복안을 가지고 계십니까.

=엑스파일 문제는 11월까지는 특검법에 대한 여야 합의가 이뤄져야 합니다. 국감 도중에 법사위 법안심사소위가 이 문제 때문에 열렸습니다. 이미 상당히 근접해 있습니다. 이번 국감에서 확인된 것은, 검찰이 법이 만들어지면 수사할 수 있다, 그러니 국민적 합의를 이뤄달라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기업을 하는 사람들도 공인이고, 사회적 책임이 있고, 자부심이 있습니다. 과거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엄정한, 합당한 대가를 치뤄야 합니다. 이런 것들이 발생하지 않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 겁니다. 부패정치에 대한 제도적인 방지대책이 필요한 거죠.

재벌 지배구조 개선에 대해서 국민이 학습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그간 우리 국민들의 머리 속에는 ‘어떻게 삼성에 취직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 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삼성의 영속을 위해 뭔가 풀어야 할 문제가 있구나’ 하는 것을 느낀 겁니다.

재벌개혁을 추진하는 동력을 얻은 겁니다. 그간 이 문제는 극소수의 학자들과 시민단체들의 주장이었는데, 이제는 국민적 의제가 됐습니다.

-얼마전에 민주노동당 중앙위원회에서 ‘당직-공직 겸직안’이라는 일종의 개혁안이 부결됐습니다. 민주노동당이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데, 이에 대해선 어떻게 보십니까.

(당직-공직 겸직 금지란, 공직을 맡은 의원은 당 대표나 사무총장 등 당직을 겸할 수 없다는 원칙으로, 민주노동당이 지난해 도입한 제도다.)

=민주노동당 내부의 대대적인 혁신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당직공직 겸직 문제는 그 필수적인 내용은 아니라고 봅니다.

국민들이 하시는 말씀을 듣는데, 의원을 하고 있는 사람이 듣는 것과 당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듣는 것이 차이가 납니다. 이 제도가 처음 도입될 때 나는 반대했습니다. 제가 지지한 것은 당대표는 최소한 의원이 겸임하도록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다릅니다. 제도를 제대로 운영해 보지도 않고, 1년만에 포기하면 바른 일이 아닙니다.

물론 대중적인 대표성과 당 대표성이 일치하며 좋죠. 동의는 합니다. 문제는 지난 1년간 민주노동당이 해온 일을 반성하고 새로운 대책을 세우는 것이 더 급하다는 겁니다.

김혜경 대표가 의원이 아니라서 당이 ‘개판’된 것은 아닙니다. 더 빨리 고쳐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당내의) 민주노총의 기득권을 인정하는 것, 할당제 등에 대해 반대해야 합니다. 당이 노동조직을 비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민주노총이 천만 노동자들을 대표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민노총은 5%의 대표성 밖에 없습니다.

경제적으로 더 어려운 노동자들, 비정규직들, 저소득층들의 (민주노동당) 지지율은 더 낮습니다.

더 대중적이고, 더 어려운 서민들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반성하고 개혁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그런 것에 대한 당내 논의가 활성화하기를 바랍니다.

-지난 4월의 민주노동당 원내 진출 1주년 평가 때 ‘민주노동당은 운동권 동창회’라고 비판하신 것이 기억납니다. 지금도 그 상태입니까? 개선이 좀 됐나요?

=교착상태라고 표현하겠습니다. 민주노동당을 둘러싼 조건은 냉탕온탕의 한가운데입니다.

민주노총이 부닥치는 현실이 어렵습니다. 내부의 비리나 반개혁적인 일들 때문에 도덕성도 훼손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전체 운동의 위기입니다. 운동하는 사람들의 도덕성의 위기이기도 하지만, 운동 자체가, 이제까지의 방식으로는 살아날 수 없는 위치에 있습니다.

해결 대안이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정권과 자본의 탓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말도 안되는 상대방 때문에 운동이 활성화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민주노동당에겐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 비전을 못보여 주는 상황에서 유리한 점이 있습니다. 민주노동당 자체로 보면 저는 지난 1년간은 숨가빴고,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는 것이 아쉽습니다. 굉장히 소중한 시간을 성과있게 쓰지 못한 것을 반성합니다. 민주노동당은 과감해야 합니다. 50~60년대 정당처럼 움직여서는 안됩니다.

자기가 부닥치는 현실에 대해 통렬한 자기 의식화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경계해야 하는 것은, 선험적으로 우월하다고 보는 겁니다. 진보주의자들의 선민의식이 문제입니다.

나 자신을 위해 운동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희생한다고 보는 것에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덜 비판적이고 덜 가혹합니다. 그게 이번에 문제로 드러난 것입니다.

권력은 썩을 가능성이 있고, 우리도 예외는 아닙니다. 딴 놈이 썩으면 우리도 썩을 수 있다, 그래서 다른 쪽보다 더 가혹하게 자기검열을 해야 합니다.

운동 방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런 효과도 없는 운동권 집회, 이건 우리 내부행사입니다.

주택문제에 대한 불만이 쌓여서 올 5월~6월은 민란 수준으로 됐는데, 그런 불만들을 정치적으로 조직하고, 그런 사람들을 공공의 광장으로 나오게 해서 여론을 조직하고 정책대안을 만들고, 그래서 관철하는, 뜨거운 대중들의 요구를 바탕으로 관철시켜야 하는 것이 민주노동당의 방식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들끼리 모이는, 정해진 집단만 모이는, 일반인은 한명도 모이지 않는 집회가 문제입니다. 구태의연한 운동권의 운동방식에 대한 고찰이 없습니다. 교통방해만 하고, 그게 뭡니까.

우리의 열기가 얼마나 일반인들에게 퍼지느냐, 반성적인 고찰이나 운동 변화 노력이 없습니다.

대중을 대표한다면서, 대중에게 우리에게 오라고 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먼저 깨우쳤으니, 덜 깨우친 대중들은 우리 쪽으로 와라, 이건 우리끼리만 하겠다는 겁니다.

자본주의에서 하는 마케팅 방식보다 더 피드백을 못하고 있습니다. 피드백을 초콜릿 파는 회사보다 더 못하고 있습니다. 여론 수렴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게 운동권들의 교만, 경직성으로 외화되는 겁니다.

-이제 개인에 대한 질문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당내에서 서울시장에 출마하라는 요구가 높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이 이슈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유일한 후보라는 논리인데요.

(이 문제를 제기하자, 노 의원의 얼굴은 조금 상기되는 듯 듯했다.)

=선거는 과학입니다. 종합적인 판단이 필요합니다. 서울시장 누구가 더 좋으냐, 제가 그걸 하면 다른 것을 못하게 됩니다. 저도 많이 생각했습니다. 냉정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제가 서울시장으로 나가서, 다른 후보를 이길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것이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 당 전체로 봤을 때 서울시 의회 의원들이 얼마나 더 당선될 거냐, 단지 분위기상 도움되는 것 이외에는 없습니다.

오히려 의정활동을 더 할 경우에, 지금 현역 국회의원 중에 가장 상위권으로 평가받는데, 왜 전교 1등보고 학교를 그만 두라고 하느냐는 겁니다. 그것을 가지고 당에 기여하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저는 국회의원으로 할 수 있는 것을 절반도 하지 못했습니다. 아직 초보이고, 국민들에게 정치란 무엇인지, 정치인이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겠구나 하는 것을 아직 주지 못했습니다.

정치가 국민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 정책이 국민을 감동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정책에 목숨을 바치는 정치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국민들 속에서의 정치지형을 바꿔야 합니다. 적지 않은 몫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의원직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나라 정치에서 주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은 현직이 아니면 안됩니다. 현역이 아니면 정치적 발언권이 없는 것이 독특한 한국의 문화입니다.

정치적 발언권을 포기하면서, 당선 가능성도 없는 선거에 뛰어들어, 단지 분위기 진작하자는 것이 과연 맞습니까.

민주노동당도 다시 한번 따져 봐야 합니다. 전두환 노태우 구속시킨 박계동(의원)이 선거에서 3등했습니다. 냉엄한 현실을 감안해야 합니다.

민주노동당도 진보진영의 인물을 만들어 내는데 투자해야 합니다. 다음 세대의 인물을 발굴해야 합니다. 이 인터뷰를 계기로 논란이 종식되기를 바랍니다.

-일부에서는 대선 출마론도 나오고 있습니다. 권영길 의원이 다시 나서실 수도 있지만, 그럴 경우 ‘대선 3수’가 되니까 부담스럽다. 그래서 다른 대안이 필요하다는 주장인데요.

=선거에 실무책임을 맡은 사람으로서는 2008년 총선이 아주 중요합니다. 민주노동당의 의석이 중요합니다. 총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2007년 대선입니다. 대선과 총선이 4개월 밖에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제가 주장하는 것은 민주노동당도 다른 당처럼 국민적 관심을 가지는 대선후보 내부경선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당내에) 사람이 이제는 많습니다. 국민들의 선호도가 다를 겁니다.

민주노동당의 대선 후보는 당원들의 지지, 국민적인 지지가 종합적으로 판단돼 선출될 겁니다.

경선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민주노동당에서는 제대로 된 경선, 국민적 경선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다음 대선의 경우는 민주노동당 후보가 300만~500만표를 받을 것입니다. 대선에서 얻은 표는 당의 정치적 발언권이 됩니다.

민주노동당으로서도 득표가 중요합니다.

포스트 3김 시대, 3김 이후 시대의 특징이 드러납니다. 준비된 지도자들이 없기에 어디나 선수가 없어요. 고건(전 총리)의 등장은 고건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도 있겠지만, 주요 양당의 대선 후보가 제대로 없어서 그 공백이 표현된 겁니다.

저는 그렇게 봅니다. 그런 점에서 민주노동당은 어떤 후보인가 보다 어떤 정책이냐, 어떤 정부가 되느냐가 중요합니다.

노무현(대통령)은 매력있는 사람이었지만, 노무현 정부는 특징없는 정부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지금 나오고 있는 소위 대선후보를 보면 국민들이 희망이 없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율이 매우 낮은데, 그러면 누가 되도 이보다는 좋아질 것으로 봐야 하는데, 누가 되도 좋아질 것으로 보지 않는 겁니다. 우리 정치권에서 깊은 고민을 해야 합니다.

-그럼 민주노동당 대선 경선에 나설 의사는 있으십니까?

=어떤 의원도 지금 대선 경선에 나가겠다고 한 사람이 없습니다. 지금 제가 다음 대선에 안나서겠다고 하면 사람들이 의아해 할 겁니다. 반대로 나간다는 이야기도 생뚱맞습니다. 지금 말할 시기가 아닙니다. 적절한 시점은 아니죠. 생뚱맞은 상황이죠. 지금 이야기할 상황은 아닙니다.

민주노동당이 다음 대선을 통해, 2008년에 지금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 진출을 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민주노동당은 목표가 집권당이라고 하는데, 그 목표가 현실성이 있습니까?

=현실성이 있는 목표죠. 제가 보기에는 2007년 대선이 중요한데, 2007년 대선을 고비로, 우리가 40~50년간 익숙했던 정치, 영호남 대결구도를 정당시스템으로 보장해 왔던 정치지형은 바뀔 겁니다.

이제는 정책 이념 중심의 선진정치 구도로 바뀌고 있습니다. 2007년에 변화가 상당히 이뤄질 겁니다.

이제는 보수-진보 양당 체제로 가는 거죠. 민주노동당은 진보로 남는 거죠. 민주노동당의 창당은 다른 나라에 비해 늦었지만, 굉장히 빠르게, 창당에서 집권까지 가는데 가장 짧은 세월이 걸린 당이 될 겁니다.

2012년은 집권을 눈앞에 둔 진검승부를 하는 해가 될 것입니다. 이 문제와 관련해 집권을 불온시하는 당 내부의 좌파 경향과, 집권을 허망하게 보는 시각은 교정되어야 합니다.

민노당의 꿈과 이상은 집권으로 이뤄지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집권은 민노당이 궁극적으로 꿈꾸는 세상바꾸기를 위한 고지 확보입니다.

(인터뷰 도중 보좌관이 비행기 시간이 다 됐다고 자꾸 재촉을 했다. 강연 스케줄 때문에 더 이상 끌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물어볼 질문은 남았지만, 다음 번을 기약할 수 밖에 없었다.

인터뷰를 하다 150번이 넘는 강연을 다녔다면, 강연료 수입도 쏠쏠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회찬 의원이 떠난 뒤 보좌관들에게 물어봤다. 노 의원의 일정관리를 맡고 있는 박권호 보좌관은 “강연료 평균치가 20만원 정도”라고 했다. 그러면 의원과 보좌관 2명의 비행기삯과 밥값이면 끝이라고 했다. 가끔 1박을 해서 저녁 술자리라도 할 상황이면 오히려 손해라고 했다. 최고로 많이 받아본 것은 어느 경제연구소에서 강연료로 내민 150만원이었다고 했는데, 이런 경우는 드물다고 했다. 강연을 청하는 쪽이 주로 노조나 총학생회, 아니면 노동단체들이 많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초청자의 스펙트럼이 다양해 지고 있는 상황이라 언젠가는 ‘쏠쏠한’ 수입원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노 의원과 민주노동당의 인기가 유지된다는 전제에서.)

<한겨레> 정치부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 사진 이종찬 기자 r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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