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없는 이혼의 상처!

양육비 체불에 아이 숨기기 등 준비 없는 협의이혼이 부르는 또 다른 파경
당사자들의 매너, 주변인들의 매너, 법과 제도의 매너까지 총체적으로 필요하다

▣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경기도에 사는 고교 3년생 유선(가명·18)이는 지난 10월 서울에 있는 한 대학의 수시모집 농어촌 특례입학에 지원하려다 포기했다. 유선이의 학교와 집은 특례입학 대상지역에 속했고 성적도 맞춤했던 터라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지원자격에 부모가 고교 3년 내내 같이 살고 있어야 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유선이 부모는 5년 전 이혼했다. 부모가 이혼했다면 친권이 있는 부 또는 모가, 친권과 양육권이 경합한다면 양육권이 있는 이가 같이 살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유선이의 농어촌특례입학 무산된 사연

엄마와 살아온 유선이는 당연히 엄마가 자신의 양육권자인 줄 알았다. 엄마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주민등록등본만 내면 될 줄 알았는데 혹시나 해서 학교에 전화해보니 “양육권자 지정 증명서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유선이 엄마는 이혼하면서 구두로만 합의하고 양육자 지정을 해놓지 않았다. 별도로 하지 않으면 유선이 아빠가 갖고 있는 친권에 자동으로 포함된다. 합격한다는 보장도 없고 마음도 심란해 유선이는 지원을 접었다. 엄마 박정심(가명·45)씨는 속만 태웠다. 대학 당국에 사정을 말하거나 법원에 양육자 변경 신청을 하고 사정을 설명해 빠른 처리를 요청할 수도 있었겠지만, 둘 다 유선이 아빠의 동의서가 있어야 했다. 이런 일조차 제대로 해놓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박씨는 몹시 우울했다.


이혼한 이들은 박씨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는 박씨 처지에서 법원에 갈 시간도 빠듯했으리라는 것이다. 법원에서 빨리 일을 처리해주리라는 보장도 없다. 대학 당국도 이들의 처지를 배려해줄지 의심스럽다고 한다. 살얼음판 걷는 기분으로 살아오다 보니, 당연한 권리를 찾는 일에도 주눅 든다는 게 모녀의 사연을 들은 이혼 경력자들의 공통된 얘기였다.

한 광역시에 살고 있는 윤아무개(33)씨는 아이를 유치원 보낼 때마다 난감하다. 수위 아저씨가 “○○이 아빠는 왜 안 보이세요?” 거듭 묻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예, 같이 안 살아요” 그랬다. 그러면 알아들을 줄 알았는데 그 뒤로도 “해외에 계신가요? 다른 지역에 계신가요?” 꼬치꼬치 캐물었다. “저 사람이 알면서도 저러나” 싶다. 꼭 아이가 친구들과 나란히 서서 유치원 차를 기다릴 때마다 쫓아나와 말을 걸기 때문이다. 수위 아저씨뿐만이 아니다. 친지들은 친지들대로 만날 때마다 “빨리 새 출발 해야 할 텐데… 만나는 사람은 없어?”라며 측은한 눈길을 던진다. 선의의 호기심일지라도 윤씨 처지에서는 ‘악의적 호기심’ 같다. 이혼한 게 죄도 아니고 이혼해야 철든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세상에 이혼자들이 넘치는데 왜 가만두지 못해서 안달일까. 엄마 아빠가 건재한 가정만이 ‘정상 가정’이라고 보는 편견, 방송이나 신문 보도에 등장하는 ‘결손 가정’이라는 표현, 툭하면 ‘부모님의 날’이라는 이름의 행사를 기획하는 유치원의 ‘오버’까지 세상은 이혼자에게 정말 너무 ‘매너’가 없다는 게 윤씨의 항변이다.

윤씨의 말대로 이혼이 놀랄 만한 뉴스는 아니다. 지난 한 해 하루 평균 850쌍이 혼인했으나 하루 평균 381쌍이 이혼했다. 이 수치는 결혼한 사람 대비 이혼한 사람의 비율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게 아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에서 배우자가 있는 유배우 인구와 이혼·사별자의 비율은 대략 7 대 1꼴이다. 재혼한 사람들의 수치가 유배우 인구에 포함돼 있으므로 이혼자, 구체적으로 이혼 경력자만을 추려내기는 기술적으로 어렵다는 게 통계청의 설명이다. 대신 올해 처음 작성해 발표한 2004년의 유배우 이혼율(유배우자 1천 명당 이혼 건수)은 5.8건으로 나타났다. 결혼한 사람 1천 명당 12명꼴로 지난 한 해에 이혼했다는 얘기다. 누적 수치를 짐작할 만하다. 인구 1천 명당 이혼 발생 건수를 보여주는 조이혼율은 2003년 3.5건(7명)으로 피크를 기록했다가 지난해 2.9건(5.8명)으로 주춤했지만, 이는 결혼 인구가 줄어든 추세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또 갈라선 부부의 절반 이상(65∼72%)이 미성년자 자녀를 두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통계청, 2005년).

양육비 안 줘 감치처분까지 내렸지만…


△ 협의이혼은 빠르고 간소하다는 장점이 있으나 사전에 법적 정보를 갖고 양육 문제 등을 꼼꼼히 합의하지 않으면 휴유증을 남긴다.

높은 이혼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혼은 상처다. 이혼율의 증가 속도에 견줘 이혼을 대하는 세상의 변화는 더디다. 당사자와 주변인들의 태도, 사회문화적 시선, 법·제도적 장치는 이혼을 곧 가족 해체로 여긴다. 이혼만로도 심리적인 고통이 크지만, 준비 없이 이혼해 후회하거나 법을 몰라 법적 권리를 침해당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이 상처를 입는다.

지난해 협의이혼 수치는 전체 이혼의 84.4%를 차지하고 있다. 양육권·양육비·면접교섭권·재산분할 및 위자료 등을 ‘구두’로만 합의하고 이혼하는 이들의 비율이 그만큼 높다는 뜻이다. 재판이혼에서는 조정이나 조사 단계에서부터 일일이 확인·검토를 하지만, 오전에 신청해 오후에 도장을 찍을 수 있는 협의이혼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검토가 생략된다. 판사가 “아이는 누가 키우시나?” 등을 묻고, 이에 답하면 도장을 찍을 수 있다. 특별히 공증을 받아놓지 않는 한 구두 합의는 법적 효력을 발휘하지 않는다.

아이가 있다면 가장 문제되는 게 양육비와 면접교섭권이다. 약속을 안 지키면 강제할 방법이 없다. 별도의 소송을 내어 지루한 싸움을 해야 한다. 한때 살 비비고 살았던 상대방의 ‘매너’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형편이다. 이혼의 매너를 당사자와 공동체가 함께 지키고 살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10월28일 이화여대 이화삼성교육문화관에서는 눈에 띄는 강연이 열렸다. 독일의 가족법학자 라이너 프랑크 교수의 초청 강연이었다. 강연 제목은 ‘독일의 경험에 비추어 본 부부재산제와 양육비 이행확보 제언’. 독일에서는 전업주부라도 결혼 과정에서 생긴 재산에 대해서는 절반의 권리를 갖는다. 또 양육비를 내지 않는 부모 한쪽에 대해서는 국가가 일정 액수를 미리 내주고 뒤에 그 부모 한쪽에게 청구권을 갖는다. 이날 참석자의 눈길을 끈 것은 사례로 소개된 40대 안아무개씨의 사연이었다.

세 아이를 둔 안씨는 2001년 남편 문아무개씨의 이혼소송 제기로 파경을 맞았다. 둘째와 셋째아이의 양육비를 받기로 조정했다. 1년 동안은 잘 지급됐으나 그 뒤로는 감감무소식이었다. 이행 명령 소송을 냈으나 상대방이 참석하지 않아 기일이 계속 미뤄졌다. 2004년 9월에 신청한 이행 명령이 2005년 1월 말에야 내려졌다. 밀린 양육비를 몇 달간 분할 지급하라는 내용이었다. 재판부는 “정당한 이유 없이 명령을 위반하면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할 수 있으며 정기적 의무를 3기(월별 지급할 경우는 3달) 이상 불이행하면 30일 범위 내에서 감치에 처할 수 있다”고 주의를 줬다. 그러나 아이들 아빠 문씨는 이 이행 명령도 지키지 않았다. 게다가 세무사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어 밀린 양육비를 못 줄 형편이 아니었다. 결국 안씨는 문씨에 대한 감치 처분을 요구했고, 법원은 20일 감치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법적 시효인 3달이 다 되도록 제대로 감치 처분이 됐는지도 확인하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시효 하루 전날 감치시켰다는 말을 들었다. 감치 처분까지 1년이 걸렸지만 양육비는 여전히 받지 못하고 있다. 안씨는 “최선을 다했지만 상대가 빠져나갈 구멍이 많았다. 너무 지쳤다”고 말했다.


“매는 내가 맞고 돈은 국가가 벌다”

그나마 안씨는 법적 절차를 밟았지만, ‘수많은 안씨들’은 그럴 형편이 못 된다. 양육비를 계속 주지 않으면 월급을 차압하는 등 강제집행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홀로 아이를 키우며 생계를 해결하는 처지에서는 엄두를 못 낸다. 또 청구를 할 때에도 일정한 수입이 상대에게 있다는 것을 청구자가 증명해야 한다. 그마저도 상대가 연락을 끊거나 거처를 모르면 속수무책이다. 아이를 빼앗겼다고 여기거나 이혼한 상대에게 고통을 주려고 일부러 양육비를 주지 않는 일도 많다. 지난해 가정법률상담소가 주최한 양육비 이행 공청회에서 발표된 한 젊은 엄마의 사례를 보자.

“결혼 초부터 시작된 남편의 폭력과 외도를 견디지 못해 임신 8개월 무렵부터 별거생활을 하다 아이가 태어난 직후 이혼해 친정으로 왔다. 이혼 전부터 아이 아빠는 교묘하게 재산을 빼돌렸다. 자기 명의의 아파트를 시아버지가 근저당 설정하고 시어머니가 매입하는 식으로 겉으로 드러나는 재산을 모두 없앴다. 아이가 자폐증이라 특수교육이 필요했다. 살림은 노모가 돌봐줬지만 아이 병원비와 생활비까지 혼자 감당하기는 버거웠다. 양육비 청구를 했고 판결을 받았지만 아이 아빠는 돈이 없다고 버텼다. 명의를 바꾼 그 아파트에서 여전히 살고 차도 더 좋은 것으로 바꿨으면서도 그랬다. 웃지 못할 일은 돈이 한 푼도 없다면서 폭력 때문에 선고받은 벌금 200만원은 얼른 납부한 것이다. 매는 내가 맞았는데 돈은 국가가 벌었다….”


가정법률상담소 곽배희 소장은 “양육비 지급 판결이 났는데도 이행하지 않으면 법정모독죄를 적용해 형사처벌 하는 강제규정을 둘 수 있다”면서 “각종 면허를 압류하거나 국가가 우선 지급한 뒤 의무자에게 청구하는 외국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고 말했다.

양육비 문제 못지않게 이혼 뒤 아이 양육을 둘러싼 중요한 다툼 중의 하나는 면접교섭권이다. 많은 부모들이 이혼 뒤 아이를 볼 수 있는 권리(동시에 의무)에 대해 제대로 모르고 있다. 상대방이 미워서 일부러 아이를 안 보기도 하고, 일부러 아이를 안 보여주기도 한다. 이혼 4년차인 김아무개(37)씨는 이혼 뒤 두 딸의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아이들 엄마가 다른 남자가 있었고 이혼을 원했다. 어차피 살 수 없으니 ‘깨끗하게 갈라서자’고 했고 두 딸은 아무래도 엄마인 자신이 맡는 게 좋겠다고 했다. 나중에는 처가에서까지 나서서 이혼을 종용했다. 애초부터 재력에서 특히 차이가 나는 결혼이었지만 허무하게 쫓겨나다시피 했다. 딸들은 엄마랑 사는 게 좋을 것 같아 친권과 양육권을 모두 포기했다. 그런데 아이들 엄마가 주소를 바꾸고 거의 잠적하다시피 해버렸다. 딸들을 볼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는 아이들 엄마가 의도적으로 피한 게 분명하지만 그런 ‘의도성’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면접교섭권을 되찾기 위해 소송을 낼까 고민했지만 소송을 통해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고 해도 또다시 교묘한 방법으로 피하면 속수무책이라고 했다. 돈이 오고 간 ‘증거’가 분명한 양육비 지급과는 달리, 면접교섭권은 여러 핑계로 어길 여지가 많다. 심지어 아이를 ‘세뇌’해 만나지 못하게 하는 사례도 있다. 아이가 만나기 싫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힐 경우 재판부도 강제할 방법이 없다.

이혼숙려제도 법제화의 딜레마

한국가정법률상담소의 이혼과정 실태조사(2004년)를 보면 기혼자의 57.1%가 이혼을 심각하게 고려해본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전국 20살 이상 성인남녀 1210명 조사). 이혼을 고려했거나 이혼한 사람들의 숙고 실태를 분석해보니, 이혼 뒤 자녀 양육대책(37.2%), 주변 사람들과 상의(30%), 가족 및 대인관계 검토(29.4%), 이혼 뒤 심리적 문제(28.2%), 이혼 뒤 생활대책(25.4%) 등은 비교적 충분히 고려했으나, 정작 이에 필요한 법률적인 지식과 객관적인 정보를 얻는 데에는 게으른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 상담기관을 찾은 비율은 17.5%, 이혼관련 법률 확인은 16%, 이혼 관련 정보 수집은 8.8% 등에 그쳤다. 심리·법률 상담도 전문가를 찾기보다는 주변 사람들과 상의하는 정도인 것으로 나타났다. 속앓이를 하며 고민했다 해도 객관적으로 숙고하지 않고 이혼을 결정하는 비율이 상당히 높다는 뜻이다.

또 이혼 과정에서 부부 쌍방의 합의 정도도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쌍방이 완전하게 합의한 내용은 친권과 양육권의 경우 46%, 위자료와 재산분할은 20.1%에 그쳤다. 반면 양육비는 45.6%가 전혀 합의되지 않았고, 면접교섭권은 40%, 위자료와 재산분할은 39.7%가 합의되지 않았다. 친권과 양육권이 전혀 합의되지 않은 비율도 17.4%에 이르렀다. 합의되지 않은 이유는 친권과 양육권의 경우 상대방의 거부와 강압(44.8%), 본인 스스로 포기(32.8%), 이혼이 급해서(14.9%)의 순서로 꼽혔다. 양육비와 면접교섭권은 생각할 여지도 없는 셈이다. 그래서일까. 전체 이혼자 가운데 이혼을 후회하는 사람의 비율은 22.9%인 것으로 나타났다. 결혼생활 3년 이내에 조기이혼을 했거나 협의이혼을 한 사람들의 후회율이 더 높았다.

이혼 경험자들은 준비 없는 이혼으로 후회하거나 법적 권리를 제대로 찾지 못한 이들을 위해 일정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가정법원과 법무부 등에서 추진하고 있는 이혼숙려제도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이혼숙려제도는 협의이혼의 경우 이혼신청 뒤 일정 기간 숙려기간을 두는 것이다. 지난 5월까지 활동한 서울가정법원 산하 가사소년제도개선위원회는 이혼 신청 뒤 결정 전까지 3달가량의 숙려기간을 두고 상담을 의무화하는 특례법안을 제안했다. 가정법원을 이를 위해 지난 3월부터 1주일의 숙려기간을 시범적으로 두어 ‘이혼율을 줄이는’ 일정한 효과를 거두었다고 자평한다. 반면 법무부가 준비 중인 민법 개정안은 자녀가 있는 경우 3달, 자녀가 없는 경우 1달가량의 기간을 두고 상담은 권고사항으로 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10월28일 이화여대에서 열린 독일의 이혼제도 강연. 개인의 선택권은 존중하되 후유증을 예방하는 데 국가가 적극 개입한다. (사진/ 박승화 기자)

상담 의무화에 대해서는 여성계의 의견이 다소 엇갈린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는 ‘상담 필수’에 무게를 두고 있고, 한국 여성의전화연합 등 여성단체에서는 ‘상담 권고’에 손을 들어주는 상황이다. 그러나 ‘상담 필수’ 진영의 의견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는 이혼 당사자들이 현명한 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정보를 주고 이혼 전후 프로그램을 활성화하는 등 ‘제대로 이혼하기 위한 방안’으로 상담 제도를 강화하자는 쪽이지만, 가정법원의 특례법안은 ‘이혼을 예방하는 것’에 일차적인 목적을 두고 있다. 또 특례법안은 외부 유료 상담을 포괄하고 있어 논란의 소지가 있다. 이에 따라 가사소년제도개선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자격으로 법안을 넘겨받은 한명숙 열린우리당 의원은 선뜻 발의를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캐나다의 ‘공부하는 이혼’을 보라

한국여성의전화연합 신연숙 국장은 “당사자의 선택권을 존중하되 이들을 돕기 위한 방향으로의 상담 활성화와 이혼 냉각기를 두는 것은 찬성하지만, 이것이 이혼을 줄이는 목적으로 쓰이는 것은 곤란하다”면서 “특히 상담만이 이혼 냉각기에 필요한 공적 지원의 전부로 이해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숙려기간에 동거를 할지 별거를 할지, 생활비와 양육비는 어떻게 할지 정해지지 않으면 ‘힘있는 배우자 일방’에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우려를 덧붙였다. 신 국장은 현재의 법원 무료 가사상담실을 활성화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또 협의이혼 과정에서의 구두 확인을 쌍방의 합의 내용이 올바른지 판단하도록 하는 절차로 강화할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서울가정법원 이강원 부장판사는 “‘충동 이혼’을 줄이기 위해 제3자에게 객관적으로 상담을 받는 것을 목적으로 하므로 형편이 어려운 사람을 위한 무료 상담을 두되, 양질의 서비스를 받을 기회를 차단할 필요는 없다”면서 “우선 시작한 뒤 필요한 부분을 보완하는 게 낫다”고 특례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강조했다.


△ 서울가정법원의 이혼 신청 서류대. 친권자 지정 외에는 현재의 협의이혼에서는 그 밖의 합의 내용을 명시하는 절차가 없다.

나라마다 이혼 제도와 절차는 제각각이다. 캐나다는 ‘이혼 뒤 자녀 양육’에 대해 이혼 결정 전에 꼼꼼한 합의 내용을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이혼 뒤 부모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하며 지속할 것인가 △누가 어떤 이유로 자녀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가 △부모의 감정과 정신적 충격이 자녀에게 미치지 않도록 도울 수 있나 △양육에 필요한 법적 절차는 얼마나 알고 있고 도움을 어떻게 받을 수 있는가 등 ‘철학적’인 내용까지 미리 생각하고 합의해야 한다. 합의서를 내지 않으면 이혼 전에 이런 내용을 담고 있는 6시간의 의무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합의서를 내도 판사가 내용이 불충분하다고 판단하면 교육을 받아야 한다. 이 교육증명서가 첨부돼야만 별거나 이혼이 법적 구속력을 갖는다. 이런 ‘공부하는 이혼’이 어느 정도 실효를 거둘지는 알 수 없으나, 시민권자인 부모의 결정에 따라 또 다른 시민권자인 아이들이 피해를 입는 것을 최대한 예방한다는 뜻에서 국가의 적절한 ‘개입’으로 평가받는다.

이혼 제도에서 중요한 것은 형식보다 내용이다. 우리 사회가 ‘이혼 전 상담’을 둘러싼 초보적인 논의로라도 이혼에 대한 ‘법과 제도의 매너’를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그나마 다행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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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폭력주의자, 그러나 최후의 순간 무기를 들 수 있다”

[인터뷰] 버마학생연합동맹 외무위원회 대변인 쵸쵸테인(Kyaw Kyaw Thein·아래사진) 


버마 민주화 운동을 주도해 온 버마 청년학생운동진영은 크게 세 그룹으로 분류된다. 영국 식민시절인 1936년 3월 아웅산장군 (아웅산수지 아버지)과 학생운동가들에 의해 결성된 버마학생연합(All Burma Student"s Union)의 후신 버마학생연합동맹(All Burma Federation of Student Unions), 1988년 민중항쟁을 거치며 버마-타이국경에 몰려든 무장학생조직인 버마학생민주전선(All Burma Student"s Democratic Front) 그리고 정당운동을 펼치는 새사회민주정당(Democratic Party of a New Society). 이중 버마학생연합동맹 외무위원회 대변인 쵸쵸데인을 만나 버마민주화에 대한 전망을 들어보았다. <필자 주>


-전국버마학생연합동맹은 어떤 조직인가.

△전국버마학생연합(ABSU)을 모태로 1951년 재 결성된 버마 학생운동의 대표조직이다. 몸통은 버마 내부에서 지하로 활동하고 있고 1996년 12월과 1998년 9월 군사정권의 대대적인 검거열풍속에 빠져나온 활동가들이 버마 타이 국경에서 외무위원회를 구성 "지상" 활동을 하고 있다. 국경을 통해 버마내 몸통과 비선으로 연결되고 있다. 현재 20년째 수감중인 민코나잉(Min Ko Naing)이 여전히 우리의 의장이다.


-비폭력 노선이라고 들었는데.

△그렇다. 우리 조직이름아래 무장투쟁 노선을 채택한 적은 없다. 그러나 1988년 항쟁이후 수많은 학생들이 국경으로 빠져나가 무장 소수민족 세력들과 함께 무장투쟁에 참여했다. 버마학생연합(ABSU) 시절인 1942년에는 일부 학생운동가들이 버마 공산당 (CPB)에 참여, 무장투쟁을 벌인 것으로 알고 있다.

-무장투쟁노선을 걷고 있는 버마학생민주전선(ABSDF)와 관계는 어떤가?


△우리는 많은 사안을 두고 서로 협력한다. 버마학생민주전선뿐 아니라 새사회민주정당(DPNS), 민주개발네트워크(NDD), 버마여성연합(BWU),  정치범원조위원회(AAPP)등. 우리는 다른 조직의 전술을 비난하지 않는다. 버마 민주화와 민족화해라는 목표가 같기 때문이다.


-지난 2월 "버마민주화를위한포럼"(Forum for Democracy in Burma)이 결성된 것으로 알고 있다. 전술의 차이를 넘어선 협력인가.


△바로 그거다. 포럼은 8888 (1988년 항쟁을 말함)세대가 한 자리에 모인 거다. 인터넷을 통해 잦은 대화와 토론을 갖고 있으며 향후 몇 년간의 중단기적인 전망도 세우고 있다. 아직까지는 느슨한 형태다.


-여전히 무장투쟁노선과 비폭력 노선이 협력하는데 한계가 짐작된다.


△실제로 6-7년 전 서로의 노선에 대해 논쟁과 비판이 오고간 바 있다. 그러나 그것이 소모적이라는 걸 깨달았다. 연대하고 협력해도 모자랄 판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무장투쟁만으로 버마민주화를 현실화하기 어렵다는 입장이고, 그건 정말 최후의 선택이다. 그러나 다양한 전술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그 노선을 존중한다.


-태국은 버마 운동의 본고장 같다. 그러나 당신들 모두 불법 신세여서 불안할 것 같은데 


△국경을 포함 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활동가들 모두 안전하지 않다. 특히 버마난민과 단체가 집중되어 있는 국경도시 매솟(Maesot)에서 우리는 언제든지 체포될 수 있는 상황이다. 최근 태국 정부의 방침이 점점 강경해지고 있다.


-서구권으로 떠난 동지들도 있지 않나?

△여러가지 동기에서 그쪽 나라들을 선택하는 동지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의 투쟁방식을 존중하듯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는 동지를 비난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에게 그곳에서 할 수 있는 임무를 주고 그들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활동한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지금 버마의 교육수준과 환경은 정말 열악하다. 그 동지들과 2세가 좀 더 좋은 교육환경에서 배운다면 그건 버마의 미래를 위해서 긍정적이지 않겠는가.


-그쪽도 최근 난민정책이나 이민정책이 점점 강경해지고 있다


△그래도 상대적으로 비교하면 여전히 나은 편이다. 노르웨이, 미국, 호주... 시민권을 얻는 경우나 난민인정 사례도 그렇고 ... 그런데 한국은 정말 쉽지 않은 나라 중 하나다.


-현재 진행중인 전민족대표자 회의에 대해서는 전해듣는 바는?  


△들려오는 정보에 의하면 참여자들 대부분 어떠한 토론과 표현의 자유도 없다고 말했다더라. 다만 소수민족그룹 중 참여한 몬족 일부가 자유롭게 토론했다고 하는데, 별로 신빙성 없는 얘기라 본다. 군부가 자신들의 원칙을 고수하는 한 자유로운 토론은 불가능하다.


-군부의 원칙?


△버마 정치에서 군부가 핵심적 역할을 하겠다는 게 그들이 내세우는 핵심원칙이다.


-버마민주화를 위해 버마학생연합동맹이 가장 중점에 두는 것은? 


△국제적 압력이다.


-버마운동진영이 국제사회에 대해 너무 기대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다. 국제사회라면 구체적으로 어느 진영을 말하는 건가?


△오해가 좀 있어 보인다. 우리는 UN의 이름을 통한 국제사회의 개입을 요구하고 있다. 어느 개별국가에 "개입"하라고 호소하지 않는다. 핵심요구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버마안건 상정이다.


-UN은 미적거리고 있지 않은가. 버마군부는 유엔특사도 추방했고.

△안건상정이 주 목표지만, 이를 위한 캠페인 과정을 통해 우리 문제를 국제사회에 버마 문제가 얼마나 절박한지 알리는 효과가 있는 한 소모적이지만은 않다.


-경제제재를 통해 버마민중이 당하는 고통에 대해서는 어떤 견해인가?


△남아프리카 공화국, 소말리아, 이라크 등 몇 몇 국가에 대한 경제제재가 국민들을 힘들 게 한 걸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 지금 버마 사람들은 군사정부로부터 수십년째 충분한 고통을 받아왔다. 아마 그보다 더한 고통은 없을 거다. 현실론이다. 아울러 우리는 국제사회의 개입이 현실적 대안과 제언을 수반되길 바란다.


-아시아 국가들은 어떤가?


△UN을 중심으로 한 서방세계를 한 축으로 본다면 (물론 중국이 UN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지만), 또 다른 한축이 아세안 국가들을 포함한 아시아다. 사실 버마 주변국인 아시아 축이 더 중요한 외세다. 그중에서도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이 가장 중요하다는 판단이다.


-아시아 국가들은 지금 비즈니스에 정신이 팔려있는 것 같다. 아님 무관심하거나...  


△그렇다. 그들은 언제나 경제적 이익이 먼저다. 그러나 최근 움직임을 보면 아세안과 중국 모두 정치적 안정 없이 경제적 이익을 얻기 어렵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현재 버마의 불안한 정치상황을 반기지 않고 있다. 청신호다.


-아시아 중 어디가 가장 중요한가. 그리고 한국은 어떤가?


△시민사회의 관점에서 바라보자면, 동남아 국가연합 소속 국가들이 매우 중요하다. 이들 국가내에 시민사회가 나름대로 자리를 잡고 있고, 대안적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들이 벌이는 각 정부에 대한 압력 등은 긍정적 흐름이다. 정부의 관점에서야 이들 국가들은 버마사태에 책임을 져야 하지만. 그 다음은 지정학적으로 가까운 중국과  인도인데....정부차원에서는 중요한 위치에 있는 국가들이지만 시민사회의 힘을 받기는 어려운 곳이다. 중국은 아예 그 공간이 없고. 중국정부는 버마정부형태가 군부독재건 뭐건 관심이 없어 보인다. 다만 주변국의 안정적인 정치상황을 바라는 것 같고 그런 측면에서 최근 버마 군사정부에 변화를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다소간 변화가 있다면 10년전만 해도 우리는 중국의 어디와도 접촉 할 수 없었다. 최근에는 중국 내 야세력과 낮은 단위의 접촉이 가능하다. 인도는 내부 문제로 정신이 없어 보인다. 그리고 한국? 버마내 한국 비즈니스가 늘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최근 한국과 호주 단체들의 버마 민주화 지지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다. 며칠전에도 한국에서 참여연대 활동가가 다녀갔다. 한국내에서 버마민주화에 대한 관심과 행동이 확대될 것이라고 들었다.


-국제연대와 국제적 압력이 지속되면 버마민주화는 청신호인가?


△우리는 한때 무장투쟁을 벌였고 정부 전복을 얘기했다. 그리고 90년 선거를 통해 정권 이양을 기대했다. 사실 1962 군부 쿠데타 이후 우리는 단 한 번도 선거를 한 적이 없다. 투표행위 자체에 대해 모르고 어색했다. 나조차. 그런데 전국민주동맹(NLD)가 80% 이상의 지지를 얻은 건 정말 놀라운 승리였고 정권이양을 요구했다. 그러나 군사정부는 끄덕도 안한다. 급기야 우리는 지금 대화에 나서라고 요구하고 있다.


-계속 후진 아닌가?


△당분간 계속 잃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지금 버마의 상황은 너무 절박하다. 아웅산 수지는 대화에 나설 준비가 되어 있고, UN과 국제사회가 모두 나선다면...희망이 있다. 지금의 상황에서는 그게 실질적이고 현실적이다.


-그래도 안되면, 정말 최후의 선택이 필요하다면?


△나는 비폭력주의자이지만 최후의 순간...나는 무기를 들 수 있다.


이유경 통신원
penseur21@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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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소요사태, 우리에게도 '강건너 불' 아니다 
  [기고] 시대변화 못 따라간 '사회통합 정책'의 한계


  프랑스의 소요사태가 극한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십여 일 이상 계속된 소요사태로 차량 5천 대가 불타고 천 명 이상이 체포되었다. 7일 밤에는 소요사태 후 첫 사망자가 발생했고, 일부지역에서는 야간통금까지 내려진 상황이다. 평등과 사회통합을 국가적 이념으로 내걸고 추구해온 프랑스에서 이런 통합의 위기 상황이 발생한 것은 분명 충격적이다.
 
  프랑스의 소요사태는 정부당국의 발표처럼 '도시민감지역'에서 벌어진 극단적 폭력사태일 뿐인가. 아니면 근본적인 사회적 모순의 표출인가. 우리는 우리의 입장에서 이 사태를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외면당한 채 회색빛 삶을 사는 젊은이들이 무슨 희망을 갖겠는가"
 
  "영혼이 없는 거리에서 태어나 지저분한 주위환경에 둘러싸인 더러운 건물에서 회색빛 벽과 풍경을 보고 회색빛 삶을 사는 젊은이들이, 평소에는 외면하다가 화를 내거나 금지시킬 일이 있을 때만 자기를 쳐다보는 주류사회를 보면서 무슨 희망을 가질 수 있겠는가."
 
  프랑스 최고의 지성지 <르몽드>는 도시교외 빈민가에서 폭동이 계속되던 지난 7일 사설에서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1990년에 했던 '사회통합 연설' 속에서 위 구절을 다시금 인용했다. 15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 미테랑의 분석이 여전히 옳다는 것이다.
 
  미테랑이 묘사한 '영혼이 없는 거리와 더러운 건물로 둘러싸인 환경'은 다름 아니라 프랑스 대도시 주변의 외곽지역, 즉 방리유(Banlieue)를 말한다. 프랑스의 내무장관과 도시장관의 최대 숙제는 언제나 '방리유 문제의 해결'이었다.
 
  대부분의 프랑스인들에게 방리유는 도시의 소외계층 그 자체로, 또는 범죄의 온상으로 인식되고 있기까지 하다. 프랑스 정부당국은 방리유를 '도시민감지역(ZUS)'이라고 부르고 있다. 사실 방리유의 폭력사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의 이야기처럼 '범법행위' 차원의 일시적인 사회폭력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ft.com
 

  사회통합 정책의 '실패'라기보다는 그 '한계'를 노정한 것
 
  이번 프랑스 폭동사태는 빈민문제와 이민문제, 계급갈등과 민족문제, 무슬림문제와 도시정책 등 복잡한 요인들이 얽혀 분출된 사건이다. 10대 젊은이들이 숨어서 경찰에게 총기를 발사하고 떼 지어 몰려다니며 자동차에 방화하는 폭력행위는 누적된 불만의 표출이지, 한두 가지의 감정적이고 즉흥적인 요인에 의한 것은 아니다.
 
  이번 소요에는 사회통합 정책의 한계와 치안정책의 실패, 그리고 이민정책에 대한 불만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도시빈민들의 폭동이란 관점에서 보면 빈부격차에 의한 계급문제이고, 폭동 참가자들이 주로 아프리카나 아랍계 2세라는 점에서는 민족문제일 수도 있다.
 
  이번 소요는 물론 모순의 폭발이고 불만의 표출이겠지만, 좀더 냉정하게 본다면 정책실패의 결과라기보다는 정책한계의 결과에 가깝다. 도시정책과 이민정책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지 자유, 평등, 연대의 이념을 추구하는 프랑스적 이념정치의 파탄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과거 식민지시대의 연장선에서 오늘날 아프리카계와 아랍계 이민자가 끊임없이 프랑스로 밀려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이런 상황에서 그동안 꾸준히 추진되어온 이민정책이 이제는 '이민세대가 프랑스사회에 통합되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낸 것이라고 보는 게 적절하다.
 
  주지하다시피 프랑스는 자유, 평등, 박애의 나라다. 또한 보편적인 인간평등 사상을 배태한 속지주의의 조국이기도 하다. 적어도 사회통합의 관점에서 보면 프랑스만큼 앞서가는 나라도 드물다. 프랑스는 역사적으로 진보적인 이념과 보편적인 가치들을 선도적으로 만들어온 나라다. 이는 프랑스 사회가 모든 사회적 모순들은 표면으로 드러내고 사회문제화시키는 역동적인 사회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 모순의 표출이 때로는 폭력적인 소요로, 때로는 혁명으로 표출되어 왔던 것이다.
 
  '방리유'에 대한 지원이 오히려 격리효과를 발생시켜
 
  프랑스 사회는 똘레랑스와 솔리다리떼라는 양대 사회이념을 축으로 건설되어왔고 역대 정부는 부단히 많은 사회통합 정책들을 추진해왔다. 도시정책도 통합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되어왔다. 하지만 오늘날 그러한 정책들이 한계에 봉착한 것이다.
 
  역대 정부가 추진해온 도시정책이 이번 소요의 원인 중 큰 부분이란 점은 이미 많은 전문가들에 의해 지적되어왔다. 가령 좌파 사회당 정부의 도시정책을 살펴보자. 사회당이 집권했던 시절에 프랑스 정부는 도시빈민 문제를 가장 중요한 국정의제 중 하나로 올려놓았었다. 방리유 지역에 HLM(아쉬엘엠)이라는 국영 서민임대주택을 대대적으로 건설했고, 서민층을 지원하고자 이 지역에 공공복지시설, 스포츠센터, 상업단지도 많이 지었다.
 
  하지만 이런 대규모 지원은 정책입안자들의 기대와는 반대로 방리유 문제를 개선하기보다는 방리유의 자급자족 체제를 만듦으로써 그들을 방리유에 가두어버리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대도시 메트로폴리스에 속하면서도 그들은 도심으로 나오지 않았으며, 회색의 시멘트 환경에 갇힌 채 살아온 것이다. 소외계층에 대한 지원이 결과적으로 소외지역의 게토화를 가져왔고, 그 지역을 도시민감지역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문제는 이런 소외지역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프리카와 아랍 출신이며 무슬림이 많다는 것이다.
 
  소요나 폭동이 프랑스 사회에서 그렇게 충격적인 것은 아니다. 프랑스인들은 프랑스 혁명 때 국왕의 목을 단두대로 베어버렸고, 20세기에 들어서도 1968년에 기성 질서와 권위를 송두리째 부정하며 사회를 근본적으로 뒤바꿔놓은 다혈질의 민족이다. 언론은 이번 소요사태가 68년 시위 이후 최악이라고 대서특필하고 있지만, 방리유라 불리는 도시외곽 지역은 언제나 불씨를 안고 있었던 지역이다.
 
  또한 극단적인 총파업, 대규모 소요나 폭력사태도 프랑스 사회에서는 빈번한 일이다. 1990년대에는 공무원을 포함한 공공노조가 두 달 동안 총파업해 우편물이 배달되지 않고 교통이 완전히 두절되는 등 도시기능이 전면 마비된 경우도 있었고, 경찰노조가 자신들의 안전문제를 내걸고 파업을 벌인 적도 있다. 끊임없는 파업과 소요사태는 오히려 프랑스 민주주의의 이념과 가치의 정당성을 실험하며 강화시켜온 요소였다는 점에 우리는 주목해야만 한다.
 
  국내거주 외국인까지 포함한 폭넓은 사회통합의 필요성
 
  또 한 가지, 우리는 프랑스의 소요사태를 우려하는 다른 외국의 경우 프랑스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는 점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독일의 경우 스킨헤드들이 외국인 이민자의 집을 방화를 하고 외국인 이민자를 기차에서 밀어내 떨어뜨려 살해하는 사건도 일어났지만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사회적인 소요로까지 확산되지 못했을 뿐이다.
 
  우리나라도 결코 예외일 수는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정부당국이 불법노동자 단속을 대대적으로 실시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수 명이 자살했다. 단속과정에서 발목이 부러지는 사건들이 속속 일어났으며, 조선족 동포가 불법단속을 피해 다니다 차가운 거리에서 얼어 죽은 사건도 있었다.
 
  만약 이런 사건들이 프랑스에서 일어났다면 아마도 프랑스에서는 혁명이 몇 번씩은 일어났을 것이다. 프랑스의 소요사태는 진정한 사회통합의 어려움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소중한 계기이다. 사회통합은 그 사회에 살고 있는 다양한 계층, 계급, 외국인 이민자까지도 포함해 포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역사적 교훈이다. 이런 점에서 프랑스 사회의 이번 소요사태는 우리의 미래사회를 비쳐주는 거울일 수도 있다. 
   
  
  최연구/본지 기획위원,프랑스 마르느 라 발레 대학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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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5-11-08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에 달린 리플...

한국은 걱정없다.
시골 / 2005-11-08 오후 4:42:41

수십년간 도시재개발을 통해 서울과 대도시내의 달동네를 다 정리했기 때문에 극한적인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모여서 세력을 형성할 공간이 없다.

숨은아이 2005-11-08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시골"이라는 분은 모르시는군요. 용산에는 아직도 쪽방촌이 있다는 걸, 삼선동에는 아직도 달동네가 있다는 걸, 서울 외곽의 공단에는 외국인들이 거주하는 슬럼가가 형성되고 있다는 걸.

라주미힌 2005-11-08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

panda78 2005-11-08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리플이 참으로... ;;

라주미힌 2005-11-08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뉘앙스가 비꼬는 거긴 한데, 서울시의 재개발 정책에 대하여...

balmas 2005-11-09 0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갑니다. 감사.^^

로드무비 2005-11-09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리유, 그렇군요.
 
 전출처 : 숨은아이 > ㅍ/크레인에서 내려오면 물을 먹여주겠단다

정부의 비정규직 방치가 사태 불렀다
[기고] 김성희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오마이뉴스(news)   
현대 하이스코 비정규 노동자의 크레인 농성이 벌써 열흘을 넘어섰지만 좀처럼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이번 농성 사태는 우리 시대 비정규직 노동자가 겪고 있는 불합리한 고용형태의 본질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사태가 발생하게 된 구조적인 요인은 무엇이고 또 해법은 무엇인지 김성희 한국비정규직센터 소장(경제학 박사)으로부터 들어봤다. <편집자 주>
▲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농성을 벌이고 있는 순천공장 벽면에 '해고자복직 투쟁'이라는 문구가 적힌 펼침막이 내걸려 있다.
ⓒ2005 시민의 소리
순천의 현대 하이스코 공장에서는 B급 노동자들의 처절한 생존권 투쟁이 진행되고 있다. 현대 하이스코 하청업체 소속의 61명 비정규노동자들이 15m 상공의 크레인에 올라 공장가동을 멈추게 하고 열흘째 점거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기본급이 80만원이 채 안 된다. 일주일을 꼬박 8시간씩 일하고 잔업까지 해야 120만원을 받을 수 있다. 한 달에 두 번 쉬는데 이나마도 특근수당을 벌기 위해 일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이렇게 해서 받은 연봉은 정규직의 절반인 1700만원이다. 비정규직의 차별대우는 외형적인 노동조건을 넘어 식당 이용 제한과 같은 인격 차별로 이어진다. 무엇보다 매년 하청업체와 계약 갱신을 해야 그나마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

이런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 이들은 올해 6월 13일 비정규직 노조를 건설하고 교섭을 요구했다. 그러나 현대 하이스코사는 교섭엔 응하지 않고 오히려 4개 하청업체를 폐업하여 120명의 노동자들을 해고했다.

그후 이들은 5개월 가량 삼보일배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해 교섭을 요구했지만 현대 하이스코는 "우리 직원이 아니다"는 말로 교섭 요구를 일축했다. 비정규노동자들은 마지막 수단으로 공장 크레인 점거농성에 돌입한 것이다.

8시간씩 일하고 잔업해야 120만원, 이것은 생존권 투쟁이다

▲ 현대하이스코 순천 공장 입구에 바리케이드가 세워져 진입 자체가 불가능하다. 사진은 쇠사슬로 묶어버린 바리케이드와 그 뒤에서 외부인의 진입을 차단하고 있는 사측 고용 용역.
ⓒ2005 시민의 소리
현대 하이스코는 정규직이 약 300명에 비정규직은 약 500명인 '비정규직 공장'이다. 연속생산방식이 특징인 철강산업 생산공정에 비정규직이 더 많이 투입되어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원청인 현대 하이스코의 지시감독으로 하청 인력이 직접공정에 투입되는 것은 불법파견의 혐의가 짙다. "하청업체 직원이라 교섭에 응할 수 없다"는 사측 주장에 결정적인 허점이 있는 것이다.

현대 자본의 이런 '강짜 수법'은 비단 이 회사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하이닉스매그너칩 등은 이미 '불법파견인력 활용' 판정을 받았다. 판정에 따라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해야 함에도 현대 자본은 전혀 시정을 하지 않고 있다. 노동부 역시 행정수단 허점을 이유로 아무런 제재나 시정조처를 내리지 않고 있다.

현대 자본은 정부의 책임회피를 빌미로 불법파견 인력의 정규직 전환 요구를 무시하고 오히려 비정규노동자들의 농성을 폭력으로 탄압했다. 이 때도 현대 자본의 논리는 "너희들은 우리 직원이 아니므로 내 땅에서 나가라"는 것이었다. 비정규 노동자들은 후안무치한 현대 자본을 탓할지, 말리는 척 팔짱만 끼고 있는 정부를 더 미워해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불법파견 판정이 내려진 사업장에서도 적반하장격의 태도를 보인 현대 자본이 불법파견 진정이 제기되지 않은 현대 하이스코에서 보일 태도는 충분히 짐작이 가는 바이다. 하지만 이제 그 도를 넘어서고 있다.

고공크레인을 점거한 노동자들에게 물을 공급하는 대가로 회사쪽은 '공장 정상화'를 걸었다. 크레인에서 내려오면 물을 주겠다는 것이니 이걸 사람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해야 하나? 현대 자본은 '불법파견의 대표 주자' '비정규직 착취공장의 주역'에서 나아가 '비인간적·야수적 자본의 대명사'가 되고 있다.

비정규직이 더 많은 공장... "우리 직원이 아니니 나가라"고?

▲ 물과 음식물 반입 요구를 현대 하이스코 사측이 거부하자 현대 하이스코 농성 노동자 가족들이 "사람을 살려야 할 것 아니냐"고 호소하며 울부짖고 있다.
ⓒ2005 시민의 소리
현대 하이스코는 자동차의 필수자재인 냉연강판을 계열사에 납품하여 매년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 안정적인 생산과 납품이 보장되므로 정규인력 중심의 고용 유지가 가능한 회사인데도 1년짜리 파리 목숨 헐값 노동자 위주로 비정규직 착취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불법의 냄새가 진동하는데 오히려 목청은 더 높다. 여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첫째, 불법으로 규정된 제조업 직접공정에서의 비정규직 활용은 현대 계열사에서만 문제되는 게 아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GM대우 등 모든 재벌 대기업의 제조업 사업장에서 만연되어 있다. 한국의 파견업계에서는 정식파견은 면허유지용이고 불법파견으로 돈을 벌고 있다는 것이 상식처럼 되고 있다.

연속생산 공정인 자동차, 철강 등의 산업에서 불법파견 혐의가 확연히 드러나는 데다가 비정규노동자의 조직화가 앞서있어 문제제기의 주체가 있고, 여기에 현대 특유의 정면돌파식 대응도 현대 자본이 도드라지는 데 한 몫을 하고 있다.

그래서 현대 자본은 "나만 하는 게 아닌데, 어쩔래"라고 되물으면서 "제조업 경쟁력 유지는 비정규 활용으로부터"라는 신자유주의 슬로건을 온 몸에 두르고 앞장서 나가는 고독한 자본의 영웅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둘째, 정부는 불법파견 판정을 내리고도 아무런 제재 조처도 내리지 못하면서 형식적인 시정계획서 제출 얘기만 우물거리고 있다.

정부가 제출해 국회 계류 중인 비정규직 법안에 대해 "'경쟁력을 위해서는 노동유연화 즉, 비정규직 활용이 필요하다'는 생각과 '과도한 비정규직 남용, 차별은 시정되어야 한다'는 판단이 조화를 이룬 모범 답안"이라는 주장이 있다. 불법파견에 대한 정부의 애매한 태도와 꼭 닮았다.

하지만 '활용 확대+남용 억제'라는 절묘한 묘책-한쪽에서 풀고 한쪽에서 담는다?-이 '헛소리'라는 것은 현대 하이스코 사태에 대해 입도 벙긋 못하는 정부의 처지에서도 알 수 있다. 아니, 오히려 경찰력을 동원해 현대 자본의 방패막이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은가?

현대 자본은 정부의 이런 애매한 처지를 잘 알고 초지일관 막무가내로 나가고 있다. 현대 자본이 스스로 제동장치를 달 의지와 능력이 없다면, 이 일은 사회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 첫 출발의 책임은 일단 법제도 실행의 책임당사자인 정부에게 있다.

비정규법안에 불법파견 시정조치는 없었다

▲ 현대하이스코 하청업체 해고 비정규직 노동자 61명이 순천 B동과 Q동 크레인 7대를 점거농성에 들어간지 5일째인 28일 오후 하이스코 관리직으로 보이는 50여명이 공장 진입을 시도했다. 농성 노동자들의 저항을 막기위해 A동 옥상에서 직원들이 소방호스를 이용해 계단에 물을 뿌리고 있다.
ⓒ2005 광주드림 안현주
이제 노무현 정부에 물을 때다. 현대 하이스코의 불법적인 비정규활용, 위장폐업을 통한 해고, 비정규직노조의 교섭요구 불응에 대해 어떤 조처를 내릴 것인가?

플랜트노동자들의 상경투쟁을 중재하고 파장을 수습한 뒤 돌아서서 대량구속을 자행한 것처럼 이번에도 기껏해야 미봉책으로 봉합하고 나중에 비정규노동조합을 무력화시키는 방식을 택할 것인가?

정부가 제출한 입법안에도 불법파견에 대해서는 아무런 해결책이 제시되지 않았다. 법안을 대대적으로 손질해 불법파견에 대한 명확한 시정·제재 조처를 담아야 할 것이다. 그 시험대로서 현대하이스코 사태의 중재에 성실하게 임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과거의 생존권적 투쟁은 정당했지만, 지금 노동운동은 집단 이기주의에 불과하다"는 요지의 말을 한 바 있다. "노동운동단체들은 비리집단인 데다가 '비정규직과 연대'라는 노동자 정신을 망각하고 있는 세력"이라는 주장이 검찰 수사로 뒷받침된 바 있다. 그러면 비정규직과 연대하겠다는 현대 하이스코 정문 앞의 노동자들은 또 누구인가?

현대 하이스코 정규직들은 고용을 위협할 만한 사안이어서 연대투쟁이 어렵다고 한다. 정규직이 연대투쟁에 나설 경우 사측는 모든 권한을 동원해 큰 싸움판이 벌어질 것이다. 정문 봉쇄와 연대투쟁 저지에만 주력할 뿐 '법제도 제정과 실행'은 방치하고 있는 태도로 볼 때, 정부가 그런 사태를 전향적으로 조정할 리 만무하다.

어쨌든 가장 가까이 있는 정규직 노동자는 연대하지 못하고 있지만, 지역의 노동자들은 정규직, 비정규직을 불문하고 함께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외통수에 걸린 노무현 정부, 비정규착취공장을 멈춰라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더라도 노동운동에 대한 대통령의 실망과 분노는 '시대 지체 증상'으로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최소한의 삶을 보장하라는 생존권적 투쟁만 수십년간 계속되고 있는 이 사회의 개탄스런 불평등한 현실에 대해 처방을 제시하지 않으면서, 또 그 중심에 비정규직 문제가 있는데 애매한 말만 늘어놓으면서 기존 노동운동에 책임전가하는 것만으로는 현실은 개선되지 않는다.

'먹고 살만한 사람들이 입으로 연대를 외쳐도 통하던 시대'가 아니다. 현대 하이스코 비정규직의 투쟁은 생존권적 요구이다. 이 정당한 투쟁에 현 정부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현대 하이스코 자본의 방패막이 역할만 하고 있지는 않은가?

"비정규직을 확대하는 노동유연화 정책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노동경제정책과 사회통합을 부르짖는 사회정책, 그리고 비정규직 보호를 표방한 비정규정책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지점, 아니 허점 한가운데에 현대 하이스코 비정규 착취공장이 서 있다.

▲ 김성희 소장
노무현 정부는 지금 외통수에 걸려 있다. "불법이니 시정해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하라"고 하자니 자본이 정면으로 반발할 것이고, 그렇다고 "경쟁력 확보를 위해 비정규직 활용은 불가피하다"고 하자니 현행 법률로는 불법이다.

노무현 정부는 민주개혁을 달성할 수도 있는, 지지할 만한 정부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비정규직의 양산과 착취에 눈을 감고, 확대되고 있는 불평등에 대해 눈을 돌리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추종자임은 분명히 드러나게 될 것이다.

다시 묻는다. 노무현 정부는 현대 하이스코 비정규 착취공장을 멈춰 세울 의지가 있는가?
  2005-11-02 20:21
ⓒ 2005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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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에게,

   네 개 선거구에서 열린 10·26 재선거가 한나라당의 전승으로 끝났습니다. 한나라당은 노무현대통령의 대연정 논란을 통해서도, 강정구 교수의 ‘통일전쟁’ 발언 소동을 통해서도 이득을 본 듯합니다. 한나라당의 박근혜 대표는 강정구 교수 발언과 관련된 논란 속에서 국가정체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는데, 그것이 긍정적 효과를 보았다고 믿기 때문에 앞으로도 거듭 제기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소년은 부디 잊지 말기 바랍니다. 우리나라의 국가정체성은 반공이 아니라 헌법 제1조 제1항이 규정하고 있듯이 ‘민주공화국’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역설이 관철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유신독재체제로 민주주의를 압살한 사람의 후광을 업고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민주주의를 기본정신으로 갖는 우리나라의 국가정체성을 거론하는 역설을 보기 때문입니다. 이를 두고 ‘적반하장’이라고 말합니다. “무지는 죄악인가?” 연전에 프랑스 대학입학자격고사 철학시험에 나왔던 논제 중의 하나인데, 무지는 그 자체로 죄악이 아닐 수 있어도 뻔뻔함의 토양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만 ‘국가정체성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 구하기’에 나선 게 아닙니다. 조중동도 대한민국 구하기에 나섰습니다. 동아일보는 “대한민국 자살을 강요하는 숭김파의 ‘체제 물타기’ 공세는 멈출 조짐이 아니다”라고 열 올렸고, 중앙일보는 “적화는 됐고 통일만 남았나”라는 제목의 시평을 실었습니다. 대한민국이 곧 공산화될 듯한 위기감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동아와 중앙은 역시 조선일보에 미치지 못합니다. 조선일보는 10월18일치 류근일 칼럼 “‘대한민국 세력’의 불가피한 선택”을 통하여 “가만히 앉은 채 당하느냐, 혼신의 힘으로 결사항전을 하느냐가 ‘대한민국 세력’에 닥친 불가피한 선택일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못 비장감마저 느끼게 합니다. 곧 총이라도 들고 뛰쳐나갈 듯합니다. 그 총구가 어디를 겨냥할지, 즉 ‘결사항전’의 대상이 누구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런데 이런 글이 실리는 신문이 한국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신문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1948년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나라의 정체성을 규정했다면, 그 날 이후 대한민국의 공교육의 일차적 소명은 민주공화국의 구성원을 길러내는데 있습니다. 공교육 과정을 통하여 사회구성원 모두 민주적 시민의식과 공공성의 가치를 갖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소년은 지금 학교에서 그런 교육을 받고 있나요? 불행하게도 그런 교육을 받은 사회구성원이 없었고 지금도 거의 없습니다. 우리 학교는 오랜 동안 어린 사회구성원들에게 반공, 안보 의식을 갖게 함으로써 민주공화국의 기본 정신을 배반하도록 해왔습니다. 그 결과 사회구성원들은 우리나라의 국가정체성을 민주공화국이 아닌 반공이나 안보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국가정체성에 관한 역설이 관철되는 이유입니다.

   소년은 국가정체성을 배반한 세력이 국가정체성을 제기하는 역설과, 그런 역설이 관철되도록 앞장선 세력들의 뻔뻔함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뻔뻔함은 대중의 무지 위에 피어나는 독버섯입니다. 글은 기록으로 영원히 남는 것인데, 신문 칼럼이나 시평을 쓰는 사람들이 그런 글을 쓰는 용감성은 사익 추구의 추동력을 빼면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광신자들이 열성을 부리는 이유가 광신 그 자체에 있다면, 사익을 추구하기 세력이 열성을 보이는 것 또한 사익 추구 그 자체에 있습니다.

   “광신자들이 열성을 부리는 것이 수치스런 일이라면, 지혜로운 사람들이 열의를 보이지 않는 것 또한 수치스런 일이다.” 볼테르의 말을 빌려 다음 말로 이번 주 수요편지를 마칩니다.

   “사익추구 집단이 열성을 부리는 것이 수치스런 일이라면, 공익과 사회정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열의를 보이지 않는 것 또한 수치스런 일이다.”

   남대문이나 서울시청 건물이 작아 보인 것은 ‘성장의 그늘’처럼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한겨레 제2창간 독자배가추진단장 홍세화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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