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의 국민은 일반적으로 농민들이 왜 여의도에 와서 대모를 하는지에 대해 이해를 못한다. 자신이 농사짓다가 가격이 내리면 자기가 면적을 줄이던지 가격하락에 따른 손실을 자기가 책임지는 것이지 왜 정부가 대책을 세워 줘야 하는지에 대해서 다수의 국민은 물론 경제전문가들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칸쿤 각료회의장에서 왜 참신한 농민후계자였던 이경해씨가 하나뿐인 목숨을 버려가면서까지 저항할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깊은 고뇌와 이해가 우리 사회에는 없는 것 같다.
왜 그럴까? 왜 농민들은 그토록 처절한 투쟁을 벌여야만 하는 것일까? 무엇이 농민들을 죽음으로, 거리로, 고속도로로, 높고 위험한 곳으로 자기들의 주장을 알리기 위하여 몸부림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왜 언론은 침묵하고 있으며 간과하는 것일까. 더군다나 정부는 또 왜 그리 미적거리기만 하고 있는 것일까?
농민들이 정부에게 무언가 대책을 요구할 수 있는 가장 큰 첫 번째 이유는 토지(농지)문제로부터 파생된다. 정부는 국토의 관리와 효율적 이용이라는 측면에서 농지의 이용과 사용을 제한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어느 나라도 마찬가지이다. 문제는 이렇게 제한할 수밖에 없다면 이에 따른 정부의 보상은 당연히 주어 져야 한다. 우리의 경우 농지의 약 48%, 논 면적의 약 87%를 농업진흥지역으로 묶어 두어 소유권과 사용권을 제한하고 있고, 준농림지도 상황은 진흥지역과 유사하다. 그런데 지금 당장에라도 자기 소유의 농지를 처분하거나, 타용도로 활용하고 싶은 농민은 얼마든지 있다. 생산요소인 농지는 묶어두고, 그 농지에서 생산된 생산물만 시장기능에 맡기자는 논리는 모순이며 이치에 맞지 않는다. 환언하면 토지(농지)를 전적으로 자유시장기능에 맡길 수 없기 때문에 소유와 이용을 제한 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농민들은 이러한 보상과 대책을 정부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수십 년간 정책에 개입하여 통제해 온 것을 어떻게 일 순간에 놓을 수 것인가의 문제이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쌀 시장에는 정부의 각종 통제와 개입이 이루어져 왔다. 쌀 수매제도를 통하여 농민도 보호하였지만 궁극적으로는 국민 전체를 보호한 것이다.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쌀이 늘 부족한 나라였다. 2001년에는 쌀이 남아돈다고 법석을 떨었지만 올해에 10%정도 감산이 되자 쌀은 겨우 수급을 맞출 수 있을 뿐 남아돌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의 시장개입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개방이라고 하여 농민들에게 지나친 자율과 책임을 강조하는 것은 무리이기 때문이다.
셋째, 식량안보의 논리다. 식량안보는 세계화 시대에는 맞지 않는 구시대적 발상이라고 폄하해서는 안 된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세계적인 홍수와 가뭄은 식량생산의 미래 안정성을 담보할 수 없다. 이는 사실 생산자인 농민보다는 절대다수인 소비자가 걱정해야할 문제이다.
WTO 체제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WTO 체제는 시장지향의 자유무역을 통해 인류 전체의 후생을 증대시키고, 농산물시장의 개방과 자유화를 통해 식량문제와 기아·빈곤문제를 해결하며, 관세와 가격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보조금(Amber Box)은 없애거나 축소하는 등 농산물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으로만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WTO체제 하에서도 농가소득이 큰 폭으로 감소하거나 농업의 다원적 기능에 대한 보조(Green Box)와 생산감축을 통한 보조(Blue Box)는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는 사실은 국민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미국, EU, 캐나다 등 선진 수출국들은 가격보조도 아직 사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막대한 소득 보전 직접지급(Direct Payment)을 시행하고 있다. 예컨대 농업예산 중 직접지급비중을 보면 미국은 20.0%(2000), 캐나다 43%(1996), 스위스 57%(1996), 영국 62%(1997), EU는 77%(1998)에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는 4%(2002)에 불과하다. 또한, 농업소득 중 직접지급 비중을 보면 EU 35%(1996), 캐나다 38%(1996), 미국 47%(1999), 스위스 평야지대는 55%(1996), 그리고 영국은 123%(1999)에 이른다.
특히 미국은 '2002 농업법'에서 1996년 농업법에서 도입하였던 생산자율직접지급제를 유지함은 물론, 1996년 농업법에서는 폐지되었던 목표가격(Target Price)제를 부활하여 시장가격(융자단가)과 직접지급단가를 합한 금액이 목표가격을 밑돌 경우 그 차액을 직접지급하는 경기대응직접지급제(CCP: Counter-Cyclical Payment)를 신규로 도입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신규로 49억 불(약 6조 원)을 추가로 직접지급예산으로 잡아 놓고 있다.
이와 같이 미국을 비롯한 선진 농산물 수출국들은 과잉생산구조가 수십 년 전부터 지속하는 대도 불구하고 막대한 규모의 각종 보조금을 투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시장기능을 얘기한다면 과잉생산구조 하에서 가격을 지지해 주고 소득을 유지시키기 위해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은 경제논리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그리고 WTO정신에도 배치된다. 시장의 효율성과 시장기능의 중요성을 몰라서 수십 년, 아니 수백 년 동안 이들 국가들은 농업부문에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했고, 앞으로도 지급하려하는 것인가.
미국을 비롯한 식량수출국들은 자국의 농업과 농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강구하고 있는데 반하여, 우리의 경우는 WTO체제를 틈타 농업의 시장기능만을 강조하려는 사회적 분위기와 철학은 극복해야할 과제이다. 농업의 축소와 해체는 식량의 생산만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농민과 농촌이 파괴된다는 사실이고, 그것은 농민이 살아갈 공간이 해체된다는 의미에서 '농민적 권리'의 박탈이기도 하며, 농업의 축소와 해체는 농업의 다원적 기능이 축소된다는 의미이고, 이는 나아가서 국가와 민족 전체에 큰 재난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우리의 농정은 WTO체제나 자유무역협정(FTA)이 난무하는 세계경제의 틀 속에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러한 세계경제의 흐름을 빌미로 하여 농업·농촌·농민문제를 지나치게 간과하고 있는 사회분위기 조성을 정부가 앞장서고 있는 듯 하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제는 농업도 시장이고 경쟁력이며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된다는 주장을 정부가 앞장서서 외치고 있기 때문이다. 농업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 즉, 토지(농지)문제, 식량안보, 다원적 기능 등 경제적인 안목만을 가지고는 해결되지 않는 독특한 농업문제를 너무나 잘 알면서도, 그것을 국민들에게 이해시키고 설득하기는커녕, 정부가 오히려 앞장서 여론을 오도하고 있지는 않는지 곰곰이 따져볼 일이다.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은 우리 정부와 의회, 그리고 일부 학자 및 국책연구기관의 농업문제 인식이다. WTO 규정의 해석을 미리 우리에게 불리한 쪽으로 한다든지, WTO 규정이 무슨 대단한 진리라도 되는 양 툭하면 규정이 어떻다느니, 이제는 시장기능에 맡길 수밖에 없다느니 하면서 정작 WTO 체제 아래서도 할 수 있는 소득지원정책에 대해서는 극히 소극적이거나 규정 탓만 하고 있는 좁은 시각이 문제다. 미국처럼 WTO의 틀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자유롭게 사고하고 행동할 때다.
농정방향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바야흐로 한국농업은 안팎으로부터 거센 파고에 시달리고 있다. 이경해씨의 죽음이 상징적으로 보여 주듯 대외적으로는 DDA협상과 내년에 있을 쌀 재협상, 그리고 자유무역협정(FTA)의 체결 등 어느 것 하나 녹녹하지가 않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 농업강대국들의 무차별적 개방압력은 우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제3세계국가들과 개발도상국의 농업·농촌을 피폐화하려는 저의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의 언론과 시장론자들은 개방대세론이니, 불가피론이니 하면서 구조조정을 하고 경쟁력을 높이면 WTO체제 하에서도 한국농업·농촌은 얼마든지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는 국적 없는 주장을 서슴지 않고 있다. 우리가 어찌 개도국이라 할 수 있느냐며 한국농업의 사활이 걸려 있는 개도국 지위문제를 언론은 일방적으로 매도하고 있다.
한국농업의 돌파구는 먼저 이러한 개방대세론이니 불가피론이니 하는 패배주의적 발상을 하루빨리 버리고, 구조조정을 하면 한국농업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는 안이한 현실인식부터 바꿔야 한다. 그래야만 한국농업·농촌 문제의 해법이 보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재 일반적으로 주장되고 있는 농정방향은 대체적로 시장기능에 의한 수급조정, 생산비절감 및 품질개선을 통한 경쟁력제고, 그리고 구조조정이다. 물론 이러한 정책방향이 원론적으로는 타당성이 있으나 그것 자체가 정책이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시장기능의 중요성만 해도 그렇다. 최근 정책당국은 시장의 중요성만을 새삼스럽게 강조하고 있는데 한국농업은 이미 30여 년 전부터 상업농으로 전환되어 시장기능이 작동되어 오고 있다.
쌀의 경우는 오히려 정부가 시장기능을 축소하거나 억제해 왔다. 수매제도도 따지고 보면 농민은 물론 궁극적으로는 우리 국민 모두를 위하여 시장에 적극 개입하여 가격을 억제하고 시장기능이 작동되지 못하게 한 것이었다. 이제 와서 쌀의 시장기능을 강조하려면 지금까지 수십 년간 지속하여온 쌀 정책을 되새겨 보고 시장기능을 강조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들을 해결해 내려는 노력이 정책의 주요 골자가 되어야 한다.
경쟁력 제고도 원론적으로는 타당성이 있다. 그런데 쌀의 경우 생산비절감을 통한 가격경쟁력제고에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이다. 생산비 중 약 50%가 토지용역비인 상황에서 쌀 생산비의 절감이 몇%나 가능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토지용역비만 하더라도 중국은 우리의 10%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에 생산비절감을 통한 경쟁력제고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책은 경쟁력제고라는 원론적 방향제시가 아니라 경쟁력을 제고시키려 했을 때 발생하는 문제점 즉, 토지용역비문제라든지, 품질경쟁력제고문제라든지 하는 문제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정책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구조조정이라는 방향도 원론적으로는 타당성이 있다. 그런데 구조조정이라는 것이 농민과 농지를 축소조정하고, 경쟁력 있는 농산물만 살아 남으라는 것이라면 이 또한 원론적 정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구조조정을 했을 때 발생 가능한 문제점들 즉, 축소되는 토지와 농민(사람)은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 축소하면 과연 경쟁력이 생기는가의 문제 등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대책이 정책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한국 농정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농업의 본질적 가치 창조에 두어야 한다. 즉, 농업의 다원적 기능 제고, 지속 가능한 친환경 농업, 양질의 안전한 농산물(쌀) 생산 및 유통, 쾌적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농촌공간의 정주화, 정부의 소득지원 정책 강화, 저소득 영세농과 노령농민에 대한 사회보장정책의 도입, 통일에 대비한 농정의 비전 설정에 두어야 한다.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농정을 수행해야만 농민의 분노를 다소나마 사그라뜨릴 수 있고, 현재 우리에게 닥치고 있는 농업·농촌·농민 문제를 해결해 낼 수 있는 길이 보일 수 있지 않을까?
한·칠레 FTA는 또 무엇인가
정부는 한·칠레 FTA가 우리나라경제 전체에 무슨 큰 이익이라도 주는 양 국민을 우롱하며 오도하고 있다. 예컨대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수출은 6억 달러(약 7,200억 원), 수입은 2억 달러(약 2,400억 원)가 증가하여 4억 달러(4,800억 원) 정도의 무역수지 흑자가 발생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그러자 언론은 1조 원 가량의 무역이익이 발생하는 것처럼 보도하기도 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추정치는 모든 관세가 일시에 무관세화했을 경우의 예측치에 불과하여 현실에 부합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2001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대칠레 수출총액이 5억7천만 불(6,840억 원) 정도인데 갑자기 수출액이 두 배로 늘어난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이 아니더라도 우리나라의 주요공산품은 이미 칠레에 많은 물량을 수출하고 있지 않은가.
뿐만 아니라 현재 대 칠레 연간 총수출액 5억7천만 불(6,840억 원) 정도인데 이는 우리나라 총 수출액의 0.3%에 불과한 것이다. 설사 대외경제연구원의 예측대로 수출이 6억 불 늘어난다 하더라도 총수출액의 0.6% 즉, 1%도 안 되는 액수에 불과하다. 이 정도의 이익을 얻기 위해 한국 농업과 농민의 생존권이 걸려 있는 자유무역협정을 아무런 대책 없이 체결하려 한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으며 농민들을 분노케 하는 것이 아닌가. 정치적·외교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농민의 생존권과 도덕성마저도 저버리고 국민을 오도해도 되는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최초의 자유무역협정 대상국을 칠레로 선정한 것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애초부터 칠레와의 자유무역협정은 면밀한 계획과 준비 없이 양국 정상들이 3년 전에 약속해 버린 상황이었고, 이것이 짐이 되어 정부는 3년여를 끌면서도 그토록 집착하였다. 경제적 효과도 미미하고, 국민총생산은 우리의 10분의 1에 불과하며, 인구도 1,500만 명에 불과한, 그럼에도 과수부문은 세계 최고의 경쟁력이 있는 칠레를 자유무역협정 대상국으로 선정한 것은 잘못된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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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농업·농촌·농민문제의 본질과 과제> 에서 퍼왔음.
저자는: 윤석원 경실련 농업개혁위원, 중앙대 산업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