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쓰는 유서
- 이해인
소나무 가득한 솔숲에
솔방을 묻듯이 나를 묻어주세요
묘비엔 관례대로
언제 태어나고
언제 수녀가 되고
언제 죽었는가
단 세마디로 요약이 될 삶이지만
'민들레의 영토' 에서
행복하게 살았다고
남은 이들 마음속에
기억되길 바랍니다
영정 사진은
너무 엄숙하지 않은 걸로
조금의 웃음이 깃든 걸로
놓아주세요
시를 쓰지 않아도 되는 지금
나는 이제 진짜 시가 되었다고
믿고 싶어요
갚을 길 없는 사랑의 빚은
그대로 두고 감을 용서하셔요
생각보다 빨리
나를 잊어도 좋아요
부탁 따로 안 해도 그리 되겠지요
수녀원의 종소리
하늘과 구름과바다와 새
눈부신 햇빛이
조금은 그리울 것 같군요
그동안 받은 사랑
진정 고마웠습니다.
나도 써볼까나...
깔끔하게 화장해주세요.
절 기억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슬퍼도 하지 마세요.
당신을 더 이상 볼 수 없어도
당신과 함께 한 이 세상에 미련도 후회도 남지 않습니다.
순간의 불빛처럼.
스쳐가는 바람처럼,
흘려 보낸 삶이었습니다.
저의 실수, 저의 잘못, 제가 남긴 상처
저에게 돌려주십시오.
모든 기억을 안고 떠납니다. 빠이빠이.
ps. 절도, 사기, 강도, 폭행, 살인, 방화 같은건 생각해 본적 없으니
나름대로 착하게 살았다고 자부해요. 므흣.
가는 길 외로우니,
복돌이님, 판다님, 로드무비님, kelly님, 스텔라님, 물만두님, 자명한 산책님, 이매지님 동행하실라우?
(무슨 행운의 편지같네 ㅡ..ㅡ;)
뜨인들 출판사의 해바라기 읽다가 그냥 죽음 앞에서의 '참회'라는게 떠올라서리...
쓰고보니 유서같지가 않구랴. 으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