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두희에게 많은 걸 배우고 있다. 

이제 제법 나이가 들어 눈도 침침해지고 몸도 쇠약해진 두희지만  

초롱초롱한 눈망울은 노안이라도 사랑스럽다. 

 

두희랑 있으면서 내가 두희에게 준 사랑보다도 

두희에게 받은 사랑이  

비교도 못할만큼 훨씬 더 크다는 걸 이제야 깨닫고 있다. 

 

내게로 와줘서 정말 고맙다. 

사랑해, 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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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국내 출간 도서는 모두 다 읽었다고 하는 내 말을 듣고 당시의 신간이었던 이 책을 누군가 내게 건넸다. 농담반으로 책은 빌려주면 못받는데? 라고 하자 그냥 읽고 가져도 상관없다며 웃어보였다. 휘리릭 빠르게 설레는 마음을 애써 눌러가며 하루키의 생생한 목소리가 담긴 이 책을 읽은지도 꽤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그때의 농담은 현실이 되어 여전히 이 책은 내 책꽂이에 꽂혀 있었다. 

이 책이 다시 눈에 들어온건 하루키의 신작을 예약구매하려다 불쑥, 그러니까 정말 불쑥 생각이 났기 때문이었다. 아, 그 마라톤.. 하루키의 달리기 책.. 그게 어딨었지? 책은 거실 책꽂이도 아닌 내 방 책꽂이 중에서도 최근에 증설(?)한 눈에 잘 띄는 곳에 얌전히 웅크리고 있었다. 늘 거기 있었건만 못봤던 셈.  

달리기, 라고 해봐야 아주 최근에 KTX 놓칠까봐 눈썹 휘날리며 달린것 빼고는 이렇다할 기억이 없다. 걷기도 아주 가끔씩 했던지라 달리기와는 정말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다.  

어려서는 천식 때문에 늘 오래달리기를 기권했고 아무리 기록이 늦어도 완주하는 아이들이 부러웠었다. 중학교때는 한번 무리해서 달렸는데 얼굴은 시뻘개지고 목에서는 쇳소리가 나고 혀 끝에서는 피맛이 나는 등 아주 난리였다. 그나마 기록은 차마 기록이라고도 할 수 없는 수준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완주도 달려서 완주가 거의 걸어서 들어왔던 기억이 있다.  

달리기, 특히 오래 달리기는 나와는 거리가 멀고도 먼 그런 단어였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런데 새삼 하루키의 책을 다시 집어들고 보니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가장 오래 달려본 거리는 3000 미터가 조금 넘는게 전부다. 대학생 때 친구가 4.19 마라톤 대회 나간다고 연습하는데 옆에서 따라서 뛰다가 최장기록을 세운게 마지막이었다.  

그러니 내 도전이라고 해봐야 그 시작은 참 민망한 길이부터여야 할 것 같다. 날도 쌀쌀하고 점점 더 바빠질텐데 언제 달리나 싶지만 일주일에 한번씩은 꼭 달려볼 생각이다. 욕심 부리지 않고 천천히 그러나 가능한 오래. 조금씩 늘려가다 보면 어느새 나도 놀랄 거리를 달릴 수 있으리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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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11-15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리기, 라고 해봐야 아주 최근에 KTX 놓칠까봐 눈썹 휘날리며 달린것 빼고는


--세상에서 가장 절박한 달리기 중의 하나이지요.

이리스 2010-11-15 11:16   좋아요 0 | URL
전 제가 그렇게 힘이 넘치는 줄 몰랐습니다. -_-;;

Mephistopheles 2010-11-15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제 더이상 신호등 깜빡일때 달리지 않습니다. '뭐 다음 신호에 건너지...' 억지로라도 일상에 여유를 끼워넣는 일종의 절박함일지도 모르지만요...^^

이리스 2010-11-15 11:17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래요.(사실 숨차서 ㅎㅎ) 메피님 근황 보니 참 뭐랄까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당~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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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라는 직업에-적어도 나의 경우라는 전제하에 하는 말이지만-이기고 지고 하는 일이란 없다. 판매 부수나, 문학상이나, 비평을 잘 받거나 못 받거나 하는 일은 뭔가를 이룩했는가의 하나의 기준이 될지는 모르지만, 본질적인 문제라고 할 수 없다. 자신이 쓴 작품이 자신이 설정한 기준에 도달했는가 못했는가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며, 그것은 변명으로 간단하게 통하는 일이 아니다. 타인에 대해서는 뭐라고 적당히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을 속일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을 쓰는 것은 마라톤 풀코스를 뛰는 것과 비슷하다. 기본적인 원칙을 말한다면, 창작자에게 있어 그 동기는 자신 안에 조용히 확실하게 존재하는 것으로서, 외부에서 어떤 형태나 기준을 찾아야 할 일은 아니다.-26쪽

소설을 쓴다는 것이 불건전한 작업이라는 주장에 나는 기본적으로 찬성하고 싶다. 우리가 소설을 쓰려고 할 때,다시 말해 문장을 사용해 이야기를 꾸며 나가려고 할 때는 인간 존재의 근본에 있는 독소와 같은 것이 좋든 싫든 추출되어 표면으로 나온다. 작가는 다소간 그런 독소와 정면으로 마주하고, 위험을 인지해서 솜씨 좋게 처리해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그와 같은 독소가 기재되지 않고 참된 의미의 창조 행위를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148,149쪽

실제 인생에 있어서는 만사가 그렇게 자기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우리가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필요에 쫓겨 명쾌한 결론 같은 것을 구할 때, 자신의 집 현관문을 똑똑똑 노크하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나쁜 소식을 손에 든 배달부이다. -221쪽

혼신의 힘을 다했다, 참을 수 있는 한 참았다고 나 나름대로 납득하는 것에 있다. 거기에 있는 실패나 기쁨에서, 구체적인-어떠한 사소한 것이라도 좋으니, 되도록 구체적으로-교훈을 배워 나가는 것에 있다. 그리고 시간과 세월을 들여, 그와 같은 레이스를 하나씩 하나씩 쌓아가서 최종적으로 자신 나름으로 충분히 납득하는 그 어딘가의 장소에 도달하는 것이다. 혹은 가령 조금이라도 그것들과 비슷한 장소에 근접하는 것이다. -2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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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까지 마감해야 할 원고를 쓰기 위해 놋북을 켜놓고는 온갖 딴짓 -_-;을 일삼다가 

정신차리고 이제는 정말 써야지.. 라고 생각할 때 아이폰이 부르르 떨렸다. 

원고 감사하다며 와인을 쏘시겠다는 **님 메신저의 알림이었다. 패션을 전공하신 멋진 여사장님. 엊그제도 일 관련 미팅 중에 내게 힘이 되는 말들을 듣고 조금은 기운을 차렸는데 작은 메시지 하나가 날 일으켜 세운다.  

내가 제대로, 잘 사는 것이 주변에 민폐 안끼치는 일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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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절기마다 겪는 일이지만 매번 참 괴롭다. 올해도 예외는 아닌데, 재채기와 훌쩍임으로 여는 아침이라니. 코 안이 말라서 피딱지가 앉는것도 고역. 또 병원가서 코 안에 뿌리는 스프레이 약을 받아와야 하나?  

중2때 처음 알러지성 비염 진단을 받을때 의사가 한 말이 당시의 나에게 상당히 충격이었다. 어떻게 하면 낫냐는 내 물음에 의사는 체질이니 앞으로 평생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했었다. 그땐 뭐 저런 의사가 다 있어.. 하며 어이 없었건만.  

한약 먹고 비염이 싹 나았다는 이야기도 들어본 것 같은데 뜬소문인가?  

비염은 불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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