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쿠와 우키요에, 그리고 에도 시절 - Art 020
마쓰오 바쇼 외 지음, 가츠시카 호쿠사이 외 그림, 김향 옮기고 엮음 / 다빈치 / 2006년 3월
절판


먹고 누워서 소가 된들 어떠하리, 복사꽃 피었네
- 부손 -54쪽

타버린 숯이여, 예전엔 흰 눈 쌓이 나뭇가지였겠지
- 다다토모
-290쪽

에도 시대의 미술은 도시라는 공간과 서민, 특히 쵸닌들의 문화라는 환경을 중심으로 매우 역동적으로 전개되었다. 미술이라는 현상은 시대의 정치, 사회, 문화적 지형을 바탕으로 형성되는 것이지만, 에도 시대는 그 생동감과 참신성에서 일본의 다른 시대를 뛰어 넘는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우키요에와 당시의 문예에 대한 관심과 출판의 성행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마도 에도 시대의 이러한 자생적인 역동성이 일본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유럽의 미술 문화로까지 연결된 측면이었을 것이다. -34-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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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아니지만 어제의 회식은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게 했다.

1. 일과는 별개로 놓고 보면 다들 꽤나 재미있는 사람들이로구나.

2. 아옹다옹하며 사이가 좋지 않았던 사람들 조차도 음식과 술 앞에서는 최소한 같이 어울릴 줄 아는구나.

3. 저마다 개목걸이(직딩인생)이 너무나도 싫어 미치겠는데 그걸 참 잘도 참아내는구나.

홍대앞 블루스 하우스에서 와인을 마시면서 신청곡을 적어내고는 각자의 신청곡이 나올 때 함께 흥겨워해줄수 있는 사람들이란 그렇게 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보통 나는 그곳에서 보드카나 양주를 마셨으므로 와인이 제법 싸고 안주도 꽤 괜찮다는 것을 어제 알았다. 앞으로는 블루스 들으며 와인마시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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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4-22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회식에서 까지 눈치보인다면 그건 회사생활이 끝난거나 마찬가지죠 . 함께 술마시며 즐길 수있다는 건 그래도 행운이에요

비로그인 2006-04-22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동감. 회식때마다 만담쇼를 보는 기분으로 앉아있는지라, 참 저 세가지를 골고루 느낍니다. 특히 첫번째, 세번째.

이리스 2006-04-22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바람님 / 회식에서도 눈치보는 경우도 많았는데요.. --;
쥬드님 / 와우, 만담이라니.. 근사한데요? ^^

Koni 2006-04-22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술은 좋아하는데, 정작 술자리 회식은 많이 싫어했어요. 특히 고위간부가 끼는 큰 회식.

마태우스 2006-04-23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와인을 못먹는다는....

이리스 2006-04-23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냐오님 / 그쵸, 그런 분들이랑 마시면 난감하죠. -_-;;
마태님 / 오, 님은 온리 소주를요? ^^
 

“엄마라는 큰 나무 아래서 내가 컸지요”
[조선일보 2006-04-22 02:58]    
소설가 박완서 맏딸 호원숙씨 첫 수필집 ‘큰 나무…’ 출간
엄마 “내 존재 부담될까 걱정” 딸 “소설가 엄마 원망하기도”

[조선일보 김태훈기자]

“책을 낸다는 말은 들었지만 도와주지 않았어요. 글이란 게 원래 혼자 쓰는 거잖아요?”(소설가 박완서)

“원고도 보여드리지 않았죠. 어제 해외여행에서 돌아오셨고, 오늘 아침 제 책을 보셨어요.”(맏딸 호원숙·수필가)

소설가 박완서씨의 맏딸 호원숙(52)씨가 첫 수필집 ‘큰 나무 사이로 걸어가니 내 키가 커졌다’(샘터)를 내고 지천명에 이르러 문인의 이력을 새겼다. 1992년 박씨의 문학세계를 다룬 ‘행복한 예술가의 초상’에 ‘모녀의 시간’이란 글을 실었고, 2002년에는 ‘우리 시대의 소설가 박완서를 찾아서’란 공저(共著) 책에 필자로 참여한 바 있지만 호씨는 “이전의 글들은 모두 ‘박완서의 딸’로서 쓴 것들일 뿐”이라고 말했다.

평생을 어머니와 딸로만 지내온 두 모녀가 20일 오후 경기도 구리시의 박씨 자택에서 ‘문단의 정식 선·후배’로 첫 만남을 가졌다. 책을 낸 이는 딸인데 박씨가 내내 쑥스럽게 웃었다.

“쉰을 넘기도록 가정주부로 살아 왔지만, 한글을 익히기 전부터 文學(문학)이란 한자는 알고 있었어요.” 호씨는 “어린 시절, 집안 책장에 꽂힌 수많은 책 제목 가운데 가장 빈도 높은 단어가 ‘文學’이란 한자였고, 나는 그 분위기에 빠져 문학을 꿈꿨다”고 말했다.

호씨는 2003년 모교인 경기여고가 운영하는 경운박물관 운영위원으로 봉사하며 인터넷 동창회 사이트에 글을 썼다. 100편 넘게 연재가 이어졌고, 그녀의 글은 주머니 속 송곳처럼 도드라져 소문이 났다. 이번 수필집이 그 결과물이다.

“원숙이가 내게 보여주지 않았지만, 인터넷에서 딸애의 글을 진작부터 봐 왔어요.” 박씨는 그 글들이 “엄마가 아닌 작가의 잣대로 봐도 잘 쓴 글이었다”고 조심스레 평했다. “책으로 안 내길래 ‘발표 욕심은 없는 애로구나’ 생각했어요. 그러나 한편으론 ‘내 존재가 부담이 되어서 그런가’ 싶어 미안해 하기도 했죠. 친구가 인터넷에서 딸애 글을 읽고 ‘너보다 잘 쓰는 것 같다’고 평했는데, 쉰 넘은 딸애 글 칭찬이 어찌나 듣기 좋던지….”

이번 책에서 호씨는, 소설가의 길로 들어선 어머니를 원망했던 어린 시절의 마음을 고백했다. ‘우리 가족의 어머니가 아니라 어머니만의 세계로 날아가 버려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은 서운함에 마음이 저려와 밥도 물도 먹을 수 없는 시간이 있었다.’(213쪽)

호씨는 “독자와 딸 사이에서 거리조절을 못하다가 어머니를 작가로서 존경하게 된 것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읽고 난 뒤”라고 했다. ‘그 산이 정말 거기에 있었을까’와 ‘너무도 쓸쓸한 당신’은 “작가에 대한 존경과 어머니를 향한 사랑을 겹쳐 읽었다”고 말했다. 박씨는 자신의 책을 정리할 때마다 “지겹게 많이 썼네”라고 했지만, 딸은 “운명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나서 이겨낸 어머니의 모습과 작품은 말할 수 없는 겸허와 존엄에 차 있어 저리도록 아름다웠다”고 어머니를 평했다.

“실은 어머니께 먼저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책 제목의 ‘큰 나무’는 그늘이 아니었어요. 내 키가 커진 것 같아요.”(딸)

“나도 도와 주고 싶었단다.” 책을 낼 때 도와주지 않은 박씨였지만 앞날의 조언은 잊지 않았다. “내가 글을 쓸 때 곁에서 지켜봤으니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지? 좋은 반응이 있더라도 남발하지 말아라.”(어머니)

(김태훈기자 [ scoop87.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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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스 2006-04-22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뜻한 정이 느껴진다, 저 두분 사이. 그런데 어쩌지? 따님이 더 나이가 들어보이는 것은.. -_-;;; 그런데 이 기사를 보고서는, 딸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나는.. 과연 나이가 들긴 든 모양이다.

세실 2006-04-22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지난번 박완서님 뵐때 옆에 계시던 분이예요~~ 아 그때 알았더라면 사인 받는건데. 쿄쿄쿄
실제 뵈면 40대 중반으로밖에 보이지 않으세요~ 와 50대시라니....

라주미힌 2006-04-22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 사진 보자마자 옛날 그 광고 카피문구가 생각나더라구요.

어느 것이 하늘빛이고, 어느 것이 물빛인가?(대충 이런거)

누가 딸이고 누가 박완서님인가...ㅎㅎㅎㅎ

이리스 2006-04-22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실님 / 오호~ 그런가요? 사진이 좀 못나온건가요.. ^^
라주미힌님 / 하하핫... ^.^
 

‘백사난’ㆍ‘사비타’ 도대체 너희들 누구냐
[세계일보 2006-04-22 14:39]    

백사난? 사비타? 정체불명의 인터넷 용어가 아니다. 이름모를 정력제나 약물은 더더욱 아니다.

그들은 다름아닌 한국의 순수 창작 연극과 뮤지컬을 각각 대표하는 작품들의 줄임말,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이하 백사난)와 ‘사랑은 비를 타고’(이하 사비타)의 또다른 이름이다.

이들 작품명이 줄여서 호칭되는 이유는 단순히 부르기 길어서라기보다는 연극ㆍ뮤지컬팬들에게 그만큼 친숙해졌기때문. 애칭의 표현에 더 가깝다. 백사난은 이미 2001년 초연 이후 지난해까지 1천여 회 공연을 통해 40만 관객을 동원한 보석같은 흥행작. 사비타 또한 10년이 넘었음에도(95년 초연) 아직까지도 매회 공연때마다 객석 점유율 80%를 넘기며 이젠 특별한 수식어가 사족이 될 정도로 ‘뮤지컬의 전설’로 자리매김했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이들의 매력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것일까.

▲ 보편적 정서의 승리

백억대가 넘는 초대형 공연도 아니며 웅장한 스펙터클이나 현란한 음향과 무대장치 역시 등장하지 않는다. 소재 또한 백설공주 이야기와 형제간 우애라는 상투적인 모티브에다 5분앞의 내용을 미루어 짐작케 하는 단순한 스토리 라인. 하지만 이속에 눈시울을 뜨겁게 하고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는 포근함이 있다. 백사난은 모든 것을 던져 백설공주를 향해 한결같은 사랑을 춤추는 난장이 반달이의 모습에, 사비타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비오는 밤 형을 위한 생일파티를 클로즈업, 사랑ㆍ슬픔ㆍ웃음을 적절히 혼합해 관객을 서서히 사로잡는다.

언뜻 평범해보이지만 평범하게 느껴지지 않는 까닭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상황을 딱 재밌게 인지할 만큼 무리없이 변화를 준데다 그 표현방식이 편안하고 따뜻하기 때문이다. 특별한 기교를 부리지 않았어도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보편적 정서를 공연 요소요소에 심어놓아 객석마다 ''애착의 끈''을 공유하게 한다. 크게 드러나지 않는 쉬운 음악과 내용을 가진 세계최장기 뮤지컬 ‘판타스틱스’가 26년만에 막을 내린다고 하자 공연 중단에 반대하는 편지를 세계도처에서 쏟아낸 관객의 마음과 같은 이유다. 사랑을 돈으로 살 수 없듯이 감동도 돈으로 억지로 만들 순 없다. 백사난과 사비타는 소규모 공연이 가진 장점을 최대한 끌어내며 ‘평범속의 비범’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 팀워크의 승리

백사난의 무대에 등장하는 인물은 7명. 그러나 주인공 반달이를 포함, 나머지 조연들은 시시각각 1인 다역을 펼치며 극의 흐름에 뛰어든다. 백사난은 사실 반달이에 많은 부분이 할애된 연극이지만 그것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나머지 조연들의 눈부신 희생이다. 특히 커다란 파란 천 하나로 폭풍과 파도를 표현한 부분과 왕비의 저주를 풀기 위해 먼 이웃나라 왕자를 찾아 목숨을 건 여행을 떠나는 반달이를 묘사하기 위해 연출된 절묘한 팀워크는 백사난의 또다른 백미. 공연이 끝난후 퇴장하는 관객들을 맞이했던 그들 이마의 땀방울은 완성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일치된 노력을 말해주고 있었다.

사비타 또한 형과 동생의 갈등 구조를 우연히 찾아온 도우미 아가씨가 적절히 이완시켜주며 3인 호흡의 절묘한 하모니를 이룬다. 작은 무대에 3명이라는 제한된 인원은 개별배우들의 성량이나 연기가 더욱 확연하게 노출되기 마련, 3개의 축 중 어느것 하나가 무너지면 사비타는 크게 허물어질 수 있는 뮤지컬이기에 배우들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지만 삼각구도는 상호 보완의 묘를 살리며 오히려 안정감을 더한다. 최고령 유미리로 열연하고 있는 노현희를 비롯, 출연 배우들은 적절한 애드립에 베테랑다운 노련한 연기를 발휘하며 시간이 갈수록 청중을 깊게 빨아들인다.

▲ 고난을 넘어 환희로…아름다운 해피엔딩의 승리

인간은 언제나 어려움을 이겨내고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기쁨과 성취감을 느낀다. 백사난과 사비타 역시 역경과 고난을 넘어 마지막에 극한의 환희를 관객에게 전달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환희는 그속에 슬픔을 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모든 갈등이 일거에 사라지는 고전적 해피엔딩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이루어지지 않은 짝사랑, 그 사랑을 말하지 못하고 몸짓으로 표현할 수 밖에 없는 아픔(이상 백사난), 40살 노총각, 피아노를 칠 수 없는 손부상과 꿈의 포기(이상 사비타), 이러한 요소들은 사실 극이 끝날때까지도 완벽하게 해소되었다고는 보기 어렵다.

하지만 이것을 떠안은채 30만송이의 안개꽃 속에서 반달이가 죽고 거울속에서 환생하는 마지막 장면에서(백사난), 비소리 속에 흐르는 두 대의 피아노 선율을 타고 형제간의 사랑을 확인하는 ‘사랑’의 엔딩넘버가 흐를때(사비타) 관객들은 아픔이 있기에 더욱 애절하게 느껴지는 감동의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된다. ‘극복과 성취’는 사실 표현하기 가장 손쉽고도 어려운 모든 예술작품의 공통 화두. 사비타와 백사난은 이것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며 가슴속 아름다운 정서를 끌어내는 연극과 뮤지컬의 양대 수작이다.

스포츠월드아이닷컴 심현석 기자 (hss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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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스 2006-04-22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아직 두 공연 다 못봤다. 주변에는 위의 공연을 여러번 본 사람도 있는데, 글쎄. 이번 마감폭풍 지나면 한번 보러갈까? ^^

이매지 2006-04-22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사비타만 봤는데 좋았어요^^ 또 보러 갈까 생각중^^

해적오리 2006-04-23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백사난만 봤는데요, 보다가 울었사옵니다. 꼭 보시와요.

이리스 2006-04-23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매지님, 날나리님 / 오호, 역시 보시분들은 강추군요. ^.^
 

스타벅스를 나와서 발걸음을 옮긴 곳은 하이퍼텍 나다였다. <꿈꾸는 카메라>는 시간대가 맞지 않아서 대신에 <데브라 윙거를 찾아서>를 보기로 했다. 큰 기대를 한 건 아니었지만 영화가 중반을 지날 즈음 슬슬 하품이 나오기 시작했다.



시도는 좋았으나 반복되는 같은 이야기에 짜증이 났던 다큐멘터리. 그러니까 40대를 맞이한 여배우들의 밥그릇 쟁취에 대한 이야기랄까? 좀 더 나아가야 할 부분에서는 멈칫거리고 한두번 이야기해도 충분한 것은 끊임없이 반복하는 영화였다.

아이들을 돌보아야 하는 엄마라는 역할과 동시에 배우라는 타이틀을 어떻게 다 놓지 않고 잘 해낼수 있을까에 대한 이야기가 주구장창 이어졌는데, 결론적으로는 그래서 뭐? 라는 생각뿐이었다. 잔뜩 부풀려 놓고는 피식 바람만 빠진 격이랄까? 다같이 이야기하고 풀어보자는 것은 좋았으나 그냥 수다로 그친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유명 여배우들을 한 화면에서 본다는 것은 즐거웠고 우피 골드버그는 단연 돋보였다. 샤론 스톤은 거만하기 이를데 없었다.

늦은 점심은 포호아에서 월남쌈으로 마무리! ㅎㅎ 돌아오는 길에는 근사한 치마 두벌과 블라우스 한벌까지 착한 가격으로 구입하였으니 참으로 알찬 토요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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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06-04-23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이 영화 기대했었는데! 생각보다 별로였던 모양이네요. ;; 흠흠. 근사한 치마 두 벌과 블라우스 한벌이란 말씀에 귀가 솔깃. 착용컷을 올려주심이. ^^;

마태우스 2006-04-23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관과 신사를 본 이후 데브라 윙거를 한동안 좋아했었지요...

이리스 2006-04-23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나잇님 / 중언부언해대는 통에 졸립고 지루했어요. --; 착용컷은.. 으음.. -_-;;
마태님 / 데브라 윙거가 화면에 나오는 동안은 영화가 괜찮았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