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신의 세계]독신은 이제 평범한 삶이다
[주간조선 2006-04-25 10:53]

독신자에 입양 허용 추진도... 서구와 달리 결혼 자체에 부정적인 독신은 적어
"싱글로 사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력"... 사교모임·자기 관리에 적극적

혼자 사는 한 30대 여성은 최근 은행 대출을 받아 강북에 아파트를 한 채 구입했다. 그는 “애인이 생겨도 이렇게 행복할까 싶다”며 “사랑이야 불타오르다가도 사그라들게 마련이지만 아파트는 영원하지 않느냐”고 했다. 그는 “경제적인 안정감이 이렇게 심리적인 안정감까지 가져다 줄지 몰랐다”며 기뻐했다.

40대 초반인 여고 동창생 네 명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였다. 그 중 유일하게 독신인 한 여성이 말했다. “너희들은 남편도 있고 아들, 딸도 있고 가정도 있고…, 없는 게 없구나.” 그랬더니 다른 친구가 말했다. “넌 그 모든 것을 합쳐도 가질 수 없는, 더 큰 걸 가졌잖아. 자유 말이야, 자유.” 독신 여성은 “그 말은 맞지. 그런데 자유를 얻으니까 외로움도 한 세트처럼 따라 오더라고”라며 웃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05년 기준으로 1인 가구 수는 268만명으로 추산된다. 올해엔 275만 가구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중 20대 초반에서 30대 중반인 독신자 가정은 전체 가구의 37%로 약 98만명에 이른다. 이렇듯 1인 가구 수로만 따지면 국내 싱글 수는 300만명이 좀 안 된다. 하지만 부모와 함께 사는 미혼남녀나 부모와 함께 사는 ‘돌아온 싱글’, 배우자 없이 아이를 키우는 ‘싱글 맘’ ‘싱글 대디’까지 합치면 전체 독신자 수는 500만명이 넘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LG경제연구소의 이연수 상임연구원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고 개인주의, 결혼관의 변화 등으로 독신자가 늘어나고 있다”며 “하지만 독신이 하나의 가족 형태로 뿌리 내린 서구사회와 달리 한국의 독신 중엔 ‘언젠가는 결혼해야겠다’고 여기는, 가족중심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비교적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6월 조선일보와 리서치플러스가 30~40대 싱글 328명을 조사한 결과, 이들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건강’(44%)과 ‘돈’(19%), ‘자아실현’(14%)을 꼽았다. ‘가족’(12%)과 ‘결혼’(7%)은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앞으로 결혼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남성 응답자의 65%와 여성 응답자의 40.5%가 “결혼 계획은 없지만 결혼할 것”이라고 답했다. 반면 남성 응답자의 11.7%와 여성 응답자의 33.1%는 “전혀 없거나 회의적인 편”이라고 답했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독신자는 어쩌면 한결같이 재테크를 잘하고 자신의 미래에 과감히 투자하는지 모르겠다. ‘초라한 싱글’은 간 데 없고 ‘화려한 싱글’만 있다. 업체들은 ‘싱글을 위한 제품’이라면서 싱글족의 지갑을 열기 위한 마케팅을 펼치고 있고 은행권에서도 ‘화려한 싱글의 재테크 방법’이라면서 경제력 있는 독신자를 잡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다.

가히 ‘독신 시대’가 열렸다고 할 만도 하다. 이쯤 되니 ‘독신 가구의 입양을 허용한다’는 내용을 담은 법안 개정까지 추진 중이다. 한나라당 박찬숙 의원은 지난해 말 “2020년이 되면 1인 가구가 전체 가구 수의 21.5%가 될 것”이라며 “혼인을 해야 입양할 수 있다는 규정은 아이가 없는 독신 가구가 확산되는 현재의 추세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싱글 시대’가 열린 것은 우리나라만의 상황이 아니다. 프랑스의 시사주간지 ‘렉스프레스’는 최근 ‘독신자 1000만 시대’란 특집 기사에서 “지난 30년 사이 프랑스의 독신자 비율은 두 배로 늘어나 3가구당 1가구가 독신자 가구이고, 파리 시내에선 2가구당 1가구가 독신자 가구”라고 했다. 2004년 기준으로 프랑스 인구는 6200만명으로, 그 중 배우자 없이 혼자 사는 25세 이상의 독신자 수는 960만명(남자 520만명, 여자 440만명)에 달한다는 것이다.


중국도 최근 인구 통계조사 결과, 베이징과 상하이에 사는 싱글족이 100만명에 달한다고 했다. 중국에선 독신을 ‘제3차 단션주(單身族·싱글족)’라 부르는데 연령대가 28~38세로, 수입이 높고 자신의 일과 취미를 갖고 있으며 독신 인생을 즐기는 층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런 싱글에게 삶의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요즘 싱글의 최대 화두는 돈이다. 돈 없이는 ‘화려한 싱글’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지난해 6월 조선일보와 리서치플러스의 조사에서도 싱글들은 ‘경제력’(63.7%)을 싱글로 사는 데 필요한 가장 중요한 것으로 꼽았다. ‘일’(29%)이 그 뒤를 이었고 ‘친구’(4.3%), ‘취미’(2.4%),‘종교’(0.6%) 등은 미미한 수준이었다.

싱글은 기혼자와 달리 누군가를 돌보아야 할 책임이 없다. 대신 자기 자신을 돌보는 데 전력을 다한다. 병원에 가서 건강을 체크하고 헬스클럽에 가서 몸을 만들고 보다 지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어학 등을 끊임없이 배우고 익힌다. 그렇다 보니 자기 몸값을 높이기 위해서라면 주저없이 지갑을 여는 편이다.

잡지사 편집장인 한 40대 남성은 “내 몸뚱이 하나 챙기는 것 말고는 할 게 없다”며 “혼자 사는 남자가 없어 보인다는 말까지 들을까 봐, 부지런히 헬스클럽에 다니고 패션에도 신경을 많이 쓴다”고 말했다. 광고대행사에 다니는 한 30대 여성은 일주일에 두 번은 요가 개인레슨을 받고 일주일에 한 번은 4시간씩 중국어를 배우고 있다. 이러니 “유지 관리비가 많이 드는 사람만 독신(獨身)시장에 남았다”는 말도 나온다.

독신은 더 이상 고독하고 외로운 집단이 아니라 새로운 트렌드와 유행을 주도하는 집단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렇다 보니 기업체 입장에서 이들은 최고의 타깃이 된다. LG애드는 지난해 말 보고서에서 “2033세대(20~33세)가 가장 역동적인 소비자층”이라면서 “이들은 결혼에 얽매이지 않는 ‘행복한 싱글’로서 데이트 친구를 두고 독신 생활을 즐기며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미술대학 강사인 김모(34)씨는 “남편이 돈을 잘 벌어다 줘도 살림하고 아이를 키우다 보면 스타벅스 커피 한잔 마시기도 아깝다”면서 “그런데 싱글 친구들은 주말이면 비싼 곳에서 브런치 먹고 필라테스를 배우면서 삶을 만끽하더라”고 했다.

언뜻 보면 싱글의 삶은 자유롭고 화려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의 시트콤 ‘프렌즈’나 ‘섹스 앤 더 시티’에서처럼 사교파티를 즐기는 ‘화려한 싱글’만 있는 건 아니다. 근사해 보이는 삶 뒤에는 처절하고 현실적인 생활이 있다.

싱글들이 “외롭고 고독하다”고 말하면 기혼자들은 “결혼하고 아이 낳고 살아도 외롭기는 마찬가지”라며 핀잔을 준다. 하지만 싱글이 느끼는 외로움은 훨씬 현실적이다. 얼마 전 결혼해서 10년 넘는 싱글 생활을 청산한 한 공무원(35)은 “퇴근한 뒤 어두운 집에 들어가 불을 켜야 한다거나 주말 저녁에 갈비탕이 먹고 싶은데 혼자 가야 할 때 불현듯 가슴이 서늘해졌다”며 “이제 그럴 일은 없어진 것 같다”라며 웃었다.


혼자서도 즐겁게 사는 방법을 찾기 위해 싱글은 노력한다. 파티 같은 사교 모임에 부지런히 따라다니고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독특한 놀이 문화를 만들어간다. 프리챌이나 네이버, 다음 같은 포털 사이트엔 ‘멋지게 사는 30대 솔로들의 모임’ ‘싱글 카페’ ‘30대 러브 하우스’ ‘낭만 30 클럽’ ‘베스트 솔로’ 같은 카페가 수도 없이 있다. ‘클럽 프렌즈’ ‘세이큐피드’ ‘파티즌’처럼 싱글족을 위한 사이버 사교클럽을 운영하는 사이트들도 있다.

스포츠나 문화생활을 즐기는 데다 동지 같은 친구들까지 옆에 든든하게 버티고 있을 경우 그들은 혼자 사는 것을 은근히 즐기게 된다. 전남 나주에 사는 40대 여고 교사는 “여름방학이면 한 달씩 해외 여행을 다닌 지 10년이 다 됐다”며 “이따금씩 심하게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있지만 아이들을 가르치고 여행다니다 보면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아예 안 든다”고 했다.

싸이월드 미니홈피 같은 것을 통해 친구들과 소통하고 관계를 맺는 것에 열중하는 사람들도 늘어난다. 물론 이 모든 것 이전에 경제적으로 자립해야 건강한 싱글로 살아갈 수 있다고 이들은 말한다.

국민대학교 사회학과의 김선영 교수는 독신자 증가에 대해 “현대사회를 ‘독신자 사회’라고 하는 말도 있듯이 삶의 행복을 개인적인 자아실현에서 찾게 되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다만 독신이 ‘고립’을 의미해선 안 되고 사회적인 연계망과 상호 작용을 계속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황성혜 주간조선 기자 (coby0729@chosun.com)

*본 기사 작성에는 이정은(caroline84@empal.com) 인턴기자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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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스 2006-04-25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싱글로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것이 경제력이라고 되어 있는데 결혼해서 살려면 돈이 더 필요하지 않나? 즉, 싱글이고 더블이고 간에 우짜든동 살려면 경제력은 그냥 기본이다, 기본. ㅜ.ㅡ

mannerist 2006-04-25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결혼만 하면 한쪽은 놀고 먹으면 된다는 스토리가 골수까지 박혀있는데 어쩜까. 그나저나. 84년생이 저런 기사 친 거 보니 참-_-

2006-04-25 14: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늘바람 2006-04-25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정말 싱글들이 너무 부러워요

이리스 2006-04-25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너군 / 그런가? 그럼 내가 이상한건가? 흠흠..
속삭님 / 그러게 말이오.. ㅠ.ㅜ
하늘바람님 / 근데 늘 남의 떡이 더 커보이잖아요. ^^
 

반세기 영문학의 숨은 공로자를 ‘그대로 못두죠’
[헤럴드 생생뉴스 2006-04-25 08:32]

‘지하철 정거장에서’로 유명한 시인 에즈라 파운드는 유능한 편집자이기도 했다. 그가 무명시절의 제임스 조이스를 발굴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젊은 예술가의 초상’과 ‘율리시스’를 만날 수 없을 거다. ‘황무지’의 엘리어트도 에즈라 파운드와 함께 작업했다. 에즈라 파운드의 삶 속에 당시 문학가들의 동향이 흐른다. 출판사 ‘열린책들’이 출판 편집 총서 세번째 책으로 내놓은 ‘그대로 두기’는 20세기 영국 출판계 최고의 편집자 다이애나 애실의 자서전이다. 애실이 출판 편집자로 활동한 반세기의 삶 곳곳에는 당시 손꼽히는 영미권 작가들의 예술과 인생이 그대로 박혀있다. 에즈라 파운드처럼. 게다가 당시 지성들의 성격도 살짝 공개된다.

‘달려라 토끼’의 저자 존 업다이크의 대부분 저작이 애실의 손을 거쳤다. 애실은 업다이크를 “절대 스타 행세를 하지 않았고 한 번도 우울해 한 적이 없는 완벽한 저자”라고 소개한다. 필립 로스의 처녀작이자 대표작 ‘콜럼버스여 안녕’도 애실과 합작품이다. 초기작 두 권을 내고 애실의 안드레 도이치 출판사를 떠나긴 했지만.

노먼 메일러와 관련된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소개했다. 메일러의 첫 작품인 전쟁소설 ‘벌거벗은 자와 죽은 자’는 런던의 유명 출판사 여섯 군데에서 퇴짜 맞고 애실에게까지 흘러왔다. 소설은 탁월했으나 문제는 작품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속어였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영국의 분위기는 고리타분하고 보수적이었기 때문이다. 완고한 문학담당 기자는 출간 반대 기사를 1면에 쓰고 법무장관은 출간 금지를 고려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다행히 장관이 출간을 허가해 애실과 출판사는 노먼 메일러의 이후 작품을 독점하는 성과를 거뒀다.

책 제목 ‘그대로 두기’는 편집자가 교정지에서 삭제하려 했다 되살리고 싶은 부분을 표시하는 용어다. 저자는 “축적한 경험의 일부를 고스란히 되살리려는, 즉 ‘그대로 두기’ 하려는 목적”이라고 자서전 출판의 이유를 밝혔다. 애실이 활동했을 당시엔 유명했으나 지금은 잊혀진 작가들,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소개되지 않은 작가들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아 일반 독자에게는 이 책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전후 50년간 영미권 문학사에 관심을 가진 독자라면 일독할 만할 가치가 있을 정도로 다이애나 애실의 ‘50년 편집자 인생’은 넓고도 깊다.

이고운 기자(ccat@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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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4-25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가져갑니다
 

섹스, 거짓말, 그리고 스파이
[조선일보 2006-04-25 09:37]    

음모자들
샨사 장편소설|이상해 옮김|현대문학|314쪽|9000원

[조선일보 박해현기자]

프랑스어로 창작활동 하는 중국 작가 ‘샨사’

스파이 소설 통해 인간관계의 진실게임 추적

1989년 중국 천안문에서 학생 시위대를 이끌었다가 홍콩을 거쳐 프랑스로 망명한 37세 여성 아야메이는 현재 중국 정부를 위해 비밀 공작을 펼치는 에이전트다. 무술의 고수이기도 한 아야메이는 프랑스 총리의 보좌관인 유부남 마틀로를 유혹해서 애인관계로 만든다. 아야메이·마틀로의 루트를 통해 중국은 극비리에 프랑스로부터 무기를 사들이고, 그 대금은 프랑스 정계에 검은 자금으로 흘러 들어간다.

어느 날 파리의 룩상부르 공원이 내려다 보이는 아야메이의 아파트에 미국 CIA의 요원인 조나단이 접근한다. 바로 이 대목이 소설의 시작이다. 에펠탑 꼭대기에 있는 고급 레스토랑으로 저녁을 초대한 조나단이 다시 아야메이를 유혹하면서, 소설 속에 인물 삼각형이 꼭지점을 형성한다.

이 소설에서 세 인물의 삼각 관계는 21세기 지구촌의 강대국인 미·중·불 3국이 벌이는 국제 정치 게임의 축소판이 된다. 미국과 중국은 서로를 미래의 적으로 보지만 현재의 이익을 위해 우호 관계를 유지한다. 프랑스는 중국의 인권 탄압을 겉으로 비난하는 척 하면서 뒤로 무기를 판매해 중국을 미국과 경쟁할 수 있는 호랑이로 키운다. 물론 그 틈바구니에서 국익을 챙긴다.

샨사는 스파이 소설 형식을 빌려 인간 관계의 진실 게임을 그리려고 했다. 세계를 지배하는 네트워크 속에서 각 개인들은 꼭두각시에 불과하기 때문에 ‘누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고, ‘누가 누구를 사랑하는가’라는 의문에 사로잡히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이 소설은 지난해 프랑스 추리 소설계에서 이런 평가를 받았다. “사랑이 지나치게 중요한 주제 중 하나지만, 서스펜스를 놓치지 않았다. 속임수도 교활했고, 문체의 순도가 대단했다. 오늘날 (국제 사회의) 암투에 대해 새로운 접근을 보여준 작품이다.”


오늘날 유럽에는 프랑스어로 창작 활동을 펼치는 중국인 작가들이 여럿이다. 동서양 문화 교류에 대한 공로로 아카데미 프랑세즈 정회원이 된 프랑수아 쳉, 유럽 정신 분석학을 중국인의 해몽과 비교한 소설 ‘D의 콤플렉스’로 2003년 페미나상을 수상한 다이 시지에, 그리고 소설 ‘측천무후’ ‘바둑두는 여자’ 등으로 국내에도 고정팬을 확보한 샨사다. 문학성과 대중성의 조화를 이룬 작가로 꼽히는 샨사가 이번 신작 ‘음모자들’을 통해 하위 장르로 불리는 스파이 소설의 형식을 본격 차용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작품에서 아야메이의 정체는 독자들에게 소설을 지탱하는 비밀로 남아 있어야 하기 때문에 작가는 다른 인물의 관점에서 그녀의 내면까지 묘사한다. 결국 타인과 타인끼리의 시선만 남아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모호해진다.

흥미로운 성격의 스파이 조나단은 독특한 상상력을 가진 남자다. 마치 작중 인물을 창조하려는 작가의 그것과 닮았다. 그는 비밀리에 상대의 아파트로 침입하면서 ‘각 자물쇠는 축소형 미로, 철학자의 두뇌, 여자의 성기’라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그런가하면 아야메이가 중국 경제 발전의 부작용을 비판하는 것은 마치 작가 샨사의 입장을 반영한 듯 하다. ‘상품들로 가득찬 백화점들은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안마시술소와 이발소에서 매춘을 하는 소녀들의 비참함을 감추고 있어. 오염된 구름들 아래 타워들이 키재기를 하는 땅, 피상적인 쾌락을 찾아 로봇처럼 돌아다니는 사람들.’

작가는 현실 발언에 그치지 않고 궁극적으로 “삶이 모습을 드러낼 때 우리가 새기게 되는 소리, 냄새, 희망의 설렘, 낙담의 한숨들은 어떤 것일까?”라는 생의 원초적 질문을 던진다. 독자들은 마치 비누거품을 닮아 손에 잡히지않는 그런 디테일들을 찾아 나선다. “끊임없이 유전하는 이 세계의 유일한 관객”으로 남아 그것들의 순간적인 광채를 포착할 때까지.

(박해현기자 [ hhpar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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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신간 같은 리메이크 출간 많다
[주간조선 2006-04-25 10:53]

콘텐츠 좋은데 묻혀진 책이나 절판된 유명 서적을 화려한 이미지로 보강해 재출간

영화와 음반에도 리메이크가 있듯 출판에도 리메이크가 있다. 리메이크가 될 정도라면 일단 품질은 믿을 만하다. 그래서 리메이크된 책을 보면 우선 반갑다. 최근 국내 작품으로는 최인호씨의 소설 ‘겨울 나그네’ ‘지구인’, 이청준씨의 소설 ‘눈길’ 등이 리메이크됐고, 번역서로는 허브 코엔의 ‘협상의 법칙’, 쇼펜 하우어의 ‘토론의 법칙’ 등이 리메이크돼 눈길을 끌었다.

재미난 건 1993년 2월 ‘출간저널’이 ‘묵은 책 리바이벌, 왜 붐 이루나’라는 제목으로 재출간 현상의 유행이유를 짚어본 적이 있을 정도로 리메이크란 주기적으로 유행한다는 것이다. 개정작업을 이유로, 혹은 절판되었기 때문에 진행되는 리메이크는 5년이나 10년 주기로 독자의 세대변화 혹은 감각변화에 맞춰 반복되고 있다.

최근 이뤄지는 리메이크 중 가장 빈번한 예는 ‘낡은 옷’을 갈아입는 경우다. 옷이나 장신구도 유행을 타듯 책도 유행을 탄다. 요즘의 대세는 화려하게 치장한 이미지 중심의 책이다. 사실 출판계에서 이미지를 올 컬러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몇 년 되지 않는다. 따라서 풍부한 그림과 사진 자료 등이 필수적인 책은 감각적으로 디자인하고 사진 역시 올 컬러로 교체하여 개정판을 내는 것이 유행을 타고 있다.

1999년 건축잡지 ‘이상건축’에서 초간됐던 ‘한국건축의 재발견’이 돌베개에서 ‘김봉렬의 한국건축 이야기’로 개정 증보판이 나온 것이 좋은 사례다. 한국 건축의 전반을 충실하게 다룬 고전이었으나 초간본 출판사 사정으로 책은 절판상태였다. 이번에 다시 출간된 ‘김봉렬의 한국건축 이야기’는 내용을 수정, 보완하고 편집을 요즘 감각에 맞게 다시 했다. 무엇보다 사진을 올 컬러로 교체해서 읽기뿐만 아니라 보기에도 아름다운 고전으로 다시 선보였다.

‘교과서에서 배우지 못한 미국사’는 1990년대 초에 고려원미디어에서 출간 후 절판됐으나 2004년 ‘미국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미국사’로 재출간됐다. 원서의 개정판이 나온 것이 재출간의 첫째 이유였지만 책도 다시 만들다시피 했다. 원서에는 한 장도 없었던 사진을 출판사에서 360컷이나 구해 책에 실어 한국판 ‘미국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미국사’를 만들어낸 것이다.

10여년 전 고려원에서 나왔던 ‘미국 대공황’은 ‘공황’에 초점을 맞춰 경제경영서 느낌으로 출간됐던 책이다. 이번에 ‘원더풀 아메리카’라는 제목으로 다시 완역 출간하며 무한한 가능성과 낭만이 공존했던 미국의 1920년대를 비주얼하게 복원해냈다. 편집자가 ‘사진자료 없이 독자가 책을 이해하기는 어렵다’는 판단을 했고, 결국 원서에는 한 컷도 없었던 사진을 일일이 찾아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결과다.

만드는 이가 품을 팔아 오늘의 입맛에 다시 맞춘 책이 있는가 하면 독자의 간절한 욕망이 리메이크 서적을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재발견되는 책은 과거 동시상영관을 전전했던 영화 ‘아비정전’처럼 일종의 ‘저주받은 걸작’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1994년 ‘영화보기의 은밀한 매력-비디오드롬’으로 출간됐던 박찬욱 감독의 책은 2005년 ‘박찬욱의 오마주’로 다시 태어났다. 지금은 ‘올드보이’로 거장의 반열에 올랐지만 ‘영화보기의 은밀한 매력-비디오드롬’을 펴낼 당시 박 감독은 불우한 청년이었다. 글은 곧잘 쓰는데 영화는 실패하는 불가사의한 인물로 여겨졌지만, ‘JSA공동경비구역’ 이후 그 시절은 박찬욱 감독의 신화화에 적절한 장치가 된 것도 사실이다.

박 감독은 ‘글만 잘 쓰는 감독지망생’이 아니라 ‘글도 잘 쓰는 유명 감독’이 됐고 영화기자, 영화학도, 영화 매니아가 박 감독의 책을 찾기 시작했다. 결국 독자의 바람을 알아챈 출판사 마음산책에서 개정판을 냈고, 더불어 글 잘 쓰기로 유명한 감독이 쓴 에세이, 셀프 인터뷰, 제작일지 등을 모아 박찬욱이 말하는 자신에 관한 책 ‘박찬욱의 몽타주’가 함께 출간되는 의외의 결과를 얻기도 했다.

페터 회의 ‘눈에 대한 스밀라의 감각’ 역시 독자가 헌책방을 뒤지며 애타게 찾던 책으로, 2005년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으로 재출간됐고 출간 후에도 인터넷 서점 독자들의 열렬한 홍보 덕을 봤다.

KBS TV ‘책을 말하다’에서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가 소개된 후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알랭 드 보통의 책들 역시 마찬가지다. 알랭 드 보통의 책은 1990년대 중반 이미 몇 권의 책이 소개됐다. 그러나 대개의 저주 받은 운명이 그러하듯 당대의 독자에게 사랑 받지 못한 죄로 길거리 좌판에서, 변두리 서점에서 종이 값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격으로 덤핑 처분되는 신세를 이어왔다. 그런데 왜 제목을 ‘섹스 쇼핑 그리고 소설’로 지었을까 하는 독자의 볼멘소리를 들으면서도 책은 입에서 입으로 읽히기 시작했다. 또 고급 에세이 ‘여행의 기술’이 9000부 가깝게 팔려나갈 정도로 이제는 국내에 충성도 높은 알랭 드 보통의 매니아들이 생겨났다. 2005년에는 매니아 사이에서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와 더불어 최고라고 평가 받는 ‘우리는 사랑일까’ 역시 리메이크 출판됐다.

한미화 출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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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ryticket 2006-04-25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저도 낭패 본 일이 많아요,,제목도 틀리고, 출판사도 틀리고,,마치 새로 나온 책인냥...

해적오리 2006-04-26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그렇군요. 책 살때 좀 더 신중해야겟네요.

이리스 2006-04-26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리브님 / 그럴때는 정말 열받죠. -.-
날나리님 / 그러게 말이어요.. ^^
 

화려한 옷 갈아입은 ‘순교의 땅’
[한겨레 2006-04-25 10:06]    

[한겨레]

투르크메니스탄과 이란의 국경을 이루는 코페트 산맥을 넘어섰다. 민둥산의 삭막함은 어느새 사라지고 푸르름 짙은 초원이 펼쳐진다. 양떼들이 풀을 뜯는 모습이 평화롭다. 약 165만㎢(한반도의 7.5배)에 달하는 이란 국토는 절반 이상이 산악지대다. 평지의 4분의 1 또한 황야와 사막이다보니, 경작 가능한 땅은 국토의 4할도 채 안된다. 그런 땅마저도 주로 변두리 산맥들 언저리에 몰려있다. 남북으로는 메마른 루트 사막과 카비르 사막이 한가운데의 이란 고원을 에워싼다. 불리한 자연환경이지만, 슬기로운 이란 사람들은 박토(薄土)를 옥토로 일구고, 페르시아 문명을 꽃피워냈다. 우리는 그 향훈을 맡고자 불원천리를 찾아온 것이다.

국경에서 한 시간 반쯤 달려 쿠찬이란 소읍에 도착했다. 점심 때가 지났는데도 식당은 붐빈다. 알고 보니, 오늘은 쥼아(금요일)라 정오예배를 마치고 가족끼리 회식을 즐기는 날이다. 주 메뉴는 첼로케밥이다. 짐승들의 먹이풀이 좋아 케밥이 유명한 고장이라 한다. 이란말로 ‘첼로’는 ‘쌀’이고, ‘케밥’은 ‘꼬치구이’다. 꼬치는 소고기, 양고기, 닭고기 가운데 고를 수 있다. 양고기 케밥을 청했다. 녹진녹진한 케밥 맛은 일품이다. 쌀밥 말고도 ‘넌’(혹은 눈)이란 이란식 빵이 나왔는데, 이스트를 넣어 부풀리지 않고, 얇게 노릇노릇하게 구운 것이다. 넌에 모든 음식을 싸서 먹는데, 이란인들에겐 주식 중 주식이다.

8대 이맘 레자 순교 뒤 성지로 매년 1200만명 순례객 발길


다시 두 시간쯤 달려 이란 첫 목적지인 마슈하드에 도착한 뒤 라레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라레’는 ‘꽃’이란 뜻이다. 호텔을 꽃처럼 아름답게 꾸민다는 데서 나온 이름이라고 한다. 마슈하드는 이란 28개주의 하나인 호라산주의 주도다. 인구는 200여만명을 헤아려 이란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다. 마슈하드는 이슬람 시아파 3대 성지의 하나로, 이란어나 아랍어로 ‘순교의 땅’이란 뜻의 보통명사로도 통한다. 이곳에 시아파 주류인 12이맘파의 8대 이맘 레자의 묘당이 있기 때문이다. 흔히 이곳을 ‘마슈하드 무깟다사’, 즉 ‘신성한 마슈하드’라고 부른다. 한해 나라 안팎으로부터 1,200여만 순례자들이 몰리는 세계적인 시아파 순례지다. 매해 200여만명의 순례객이 모이는 메카보다 몇 배나 큰 규모다.

매해 6~8월은 순례가 한창이어서 우리는 때맞춰 온 셈이다. 8월 6일, 이른 아침부터 거리는 순례객들로 물결친다. 이맘때면 밤낮 없이 순례객을 맞는다. 시아파 성지라서 비무슬림들은 참배를 불허했으나, 지금은 개방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외국 관광객들이 눈에 많이 띈다. 현지 안내원은 전날부터 단정한 옷차림과 정숙을 거듭 당부했다. 아니나 다를까 들머리에서 소지품은 물론, 옷차림부터 단속한다. 남자라도 반바지 착용은 불허된다. 여자는 더욱 엄격해서 차도르(외국인은 스카프) 위에 옛날 우리네 장옷 비슷한 검은 겉옷으로 얼굴 외의 전신을 가려야 한다. 외국인은 여권까지 맡겨야 하니, 어이없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렇지만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지켜야 하는 터라 따를 수밖에 없었다.

75㏊나 되는 터에 자리잡은 성소는 일괄해 ‘성역광장’(聖域廣場:팔라케이 하라메 무탓하르, 약칭 ‘하람’)이라고 칭하는데, 하나의 복합 문화도시 같다. 중심부 레자 묘당을 비롯해 나디르 샤 묘당, 의학자 샤이크 하킴 모멘 묘당(일명 곤바데 삽즈, 즉 녹색돔), 고하르 샤드 마스지드(사원), 3개의 박물관(꾸르안 박물관, 중앙박물관, 융단박물관), 아스탄 고드스 중앙도서관, 라자비 신학대학 등 어마어마한 종교 교육 시설이 어우러져 있다. 크기나 화려함은 이슬람 세계에서 보기 드물 정도다. 더 놀라운 것은 이들 시설이 계속 확장하고 화려함을 보태간다는 사실이다.

시 중심부 하람은 동서남북 큰 거리와 연결되어 교통이 사통팔달하다. 주 입구는 서남쪽 메카 방향으로 나있는 이맘 레자 거리에서 들어오는 정문인데, 남녀 통로는 다르다. 영내 시설물들 사이에는 또 자그마한 5~6개 광장이 있다. 일단 들어서면 영상실로 안내되는데, 15분간 건물 복원 연혁 등을 영상물로 소개하는 홍보교육을 받는다. 마슈하드는 817년 레자의 순교를 계기로 성지로 부상했다. 이후 순니파와 몽골 침략군의 파괴, 티무르 군의 유린을 당했으나, 번번이 복원을 거듭했으며 16세기 사파비 왕조시대 수도가 되자 성지로서 지위를 굳혔다. 천도의 촉발제가 된 것은 샤 압바스1세가 당시 수도 이스파한에서 1,300㎞ 떨어진 이곳까지 걸어서 순례한 장거와 뒤이어 시아파가 국교화하면서부터다. 20세기 초 영국과 러시아의 틈바구니 속에서 러시아군의 포격을 받은 적도 있으나 곧바로 회복되고, 30년대부터 현대도시로 건설되었다. 1979년 이슬람 혁명 뒤 위상이 더욱 높아져 현재 대대적인 증축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성역광장 화려함·크기에 놀라 지금도 대대적 증축공사 진행

먼저 들른 곳은 고하르 샤드 마스지드다. 티무르의 맏며느리 고하르 샤드 여왕의 명에 의해 1405~1418년 사이 지어졌다. 부지만도 16㏊에 달한다. 예배 방향을 알리는 미흐랍(벽감)이 벽 아닌 땅에 움푹 패여 있고, 순결과 경외를 상징하는 흰색 문양과 푸른 빛의 돔 천장이 이채롭다. 중요성으로 치면 레자 묘당을 우선 찾아야겠지만, 비무슬림들에게는 접근이 허용되지 않아 건너뛰었다가 돌아 나오는 길에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찬란한 황금돔 아래 놓인 그의 관은 촛불 속에 희미한 모습을 드러낸다. 순례객들은 울타리 쳐놓은 주위를 돌면서 순교자의 원혼을 달래고 축복을 기원한다. 여럿이 흰 천으로 덮은 주검 한 구를 운구해 와서 묘당 앞에 내려놓고 장례기도를 하는 모습도 보였다. 건물 벽장식에서는 여덟 닢의 꽃문양을 가끔 발견하게 되는데, ‘여덟’ 숫자는 레자가 8대 이맘이었음을 상징한다. 그만큼 성인에 대한 소망과 추앙은 간절하다.

들머리에 몰린 박물관 3곳 중 가장 큰 것은 중앙박물관이다. 눈길을 끈 것은 16세기 황금판에 돋을새김해 만든 레자 묘당의 문짝과 ‘신성한 7개 도시 융단’이다. 이 대형 융단은 메카, 메디나, 예루살렘, 나자프, 가르발라, 마슈하드, 곰 등 시아파 성지 7개 도시의 이름으로 짠 것인데, 코만도 무려 3천만 개에 달한다고 하니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옛부터 후라산 지방은 융단 등 모직물로 유명한 고장이라 그럴 법도 하다. 하람 주변에는 레자 바자르를 비롯해 주로 순례행사용 물품들을 파는 여러 바자르(재래시장)가 성황이다. 이색 물품 중에는 시아파들이 예배 때 땅바닥에 놓고 이마를 맞대는 ‘모후르’란 자그만 돌이 있다. 돌에 이마를 맞대는 것은 돌 같이 굳은 신앙심을 다지는 의미라고 한다.

황금돔 아래 레자 묘당 주위 원혼의 씻김 같은 기도들이…

이 모든 성역화 작업의 장본인은 이맘 레자(765~818)로 알려진 이맘 알리 알 리다이다. 그의 순교에 관해서는 설들이 엇갈린다. 어쩌면 그 엇갈림 때문에 전설적 성인으로 회자됐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는 압바스조 5대 칼리파 하룬 라시드의 아들로 메디나에서 태어나 35살 때 8대 이맘으로 지목되었다. 그러다 6대 칼리파 마문이 시아파의 저항을 잠재우기 위해 돌연 그를 후계자로 지명한다. 그의 부름을 받고 바그다드로 가는 도중 급사했다는 게 정통사의 기록이나 시아파는 독살되었다고 믿고 있다. 사실이라면 레자는 당시 정권을 잡은 순니파와 재야 시아파 사이에 벌어진 치열한 교권 다툼의 희생양인 셈이다. 오늘날도 이라크에서 ‘순니’와 ‘시아’의 이름으로 재현되는 또 다른 패권 다툼의 일그러진 현장을 착잡하게 그려보면서 하람 광장을 나섰다.

약 30분간 달려 도착한 곳은 민족시인 피르다우시(940~1020)의 고향 투스다. 시인의 대리석 영묘는 아담해 보인다. 그 옆에 유품 전시관이 있다. 묘비 면은 그의 민족적 대서사시 <왕서(王書)>(샤흐나메) 의 책장들로 촘촘히 부조되었다. 영묘는 1933년 지었는데, 너무 허술해 증축했으며, 이슬람 혁명 때 그가 이슬람에 거슬리는 정서를 지녔다는 이유로 일부 파괴당하기도 했지만, 곧 되살렸다고 한다. 피르다우시는 신화시대~아랍 정복기의 이란 역사를 35년간 무려 6만 편의 시로 엮어 책에 실었다. 그는 당시 가즈니조 술탄 마흐무드의 소외에 불만을 품고 풍자시를 썼다 추방되기도 했다. 시인은 가도 시는 영원하다. 오늘날도 꽃다발 든 추모객들이 영묘 앞에 줄지어 서있었다.


시아-수니파의 뿌리와 교리

시아파- 4대 칼라파만 적통 인정 신비주의적 색채 짙어
수니파- 다른 칼리파도 계승자로 현세적·합리적 신관 취해

이슬람 시아파는 이란 인구의 98%, 이라크 인구의 60%를 넘지만, 전체 이슬람권에서는 5분의 1 정도에 불과한 소수파다. 주류 순니파와 함께 중동발 외신에 자주 나오는 시아파는 흔히 과격파로 비춰지지만,지나친 이분법적 구분이다. 두 교파의 분열은 역사적·신학적 뿌리가 깊은 까닭이다.

순니, 시아파의 대립은 7세기 이슬람교를 일으킨 예언자 무함마드의 정치적 후계자(칼리파)를 둘러싼 논란에서 싹텄다. 무함마드는 아들이 없었고, 후계자도 정하지 않은 채 급서했으므로 적통 다툼이 일어난 것이다. 그의 사위인 4대 칼리프 알리 이븐 탈리브를 정통으로 보고, 그의 후손들만 후계자로 인정해야한다고 주장한 이들이 바로 시아파의 원조다. 반면 1~3대 칼리파, 알리 사후 등극한 무아위야 1세 등 우마이야 왕조, 압바스 왕조 칼리파들의 적통도 인정한 세력이 수니파가 된다. 이후 제국의 정권을 잡은 것은 주로 수니파 칼리파들이었고, 이란·이라크에 기반한 알리의 후손들은 반란을 꾀하다 학살·처형당하는 비운을 맞는다. 알리가의 비극을 시아파는 적통을 회복하려는 성전, 순교로 해석한다.

교리면에서 현세적이고 합리적 해석을 중시하는 수니파와 달리 시아파는 신비주의 교단인 수피즘과 연관을 맺어 영성 체험을 강조하는 등 신비적 색채가 짙다. 칼리파, 예언자와는 별개로 알라의 메시지에 숨은 신비스런 뜻과 지식(바띰)을 전하는 종교 지도자 ‘이맘’을 중시하는 것이 특징이다. 시아파는 4대 칼리파 알리의 자손을 대대로 이맘(교주)으로 추앙했으나 7대 이맘을 6대 이맘의 차남 무사로 할 것을 주장하는 주류 ‘12이맘파’와 요절한 장남 이스마일의 아들 무하마드를 주장하는 비주류 ‘7이맘파’(이스마일파)로 다시 갈렸다. 12이맘파 신도들은 873년 12대 이맘이 갑자기 사라지면서 이맘의 대가 끊어졌지만, 말세에 다시 세상을 구하러 나타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있다.

실크로드 역사에서 시아파는 종종 전란의 격동을 일으킨 주역이었다. 11~13세기 맹위를 떨친 극단주의 시아파 집단인 아사신파는 무자비한 암살활동으로 1253년 몽골 장군 홀레구의 아랍 대원정을 촉발시킨 요인이 된다. 반대파 살해를 성스런 의무로 삼은 이들은 이란 북쪽 알라무트에 요새를 지어놓고 암살단을 보내 유럽 십자군과 몽골 관리 등을 닥치는대로 살해하면서 공포의 대상이 됐다. 이런 소문이 몽골제국 대칸의 귀에까지 들어가 아사신파 소탕이 원정 구실이 되었고, 그 결과 아사신파는 물론 압바스 왕조까지 몰락하게 된다. ‘암살자’‘자객’을 뜻하는 영 단어 어새신(Assassin)의 말뿌리는 바로 이 교파의 이름에서 나온 것이다. 서구 언론들이 시아파를 과격집단으로 폄하하는데는 이런 역사적 피해의식이 깔려있다고도 볼 수 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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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임종업 blitz@hani.co.kr,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김경호 jijae@hani.co.kr,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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