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시원해졌다고 생각했다. 그 고요함과 맑은 공기. 온통 초록빛인 세상.
하지만 우습게도 긴긴 시간 달려서 도착한 서울. 매캐한 공기와 가득한 빌딩을 보자 마음이 편해졌다. 서울 톨게이트, 분당이 가까워질 때 느끼는 그 기분. 아, 다왔다. 이제 집이다.
보성의 펜션에서 나는 같이 묵었던 포토 그래퍼가 심하게 코를 고는 소리에 쉽게 잠을 청하지 못하고 케이블 채널의 <CSI 마이애미 시즌2>를 보며 맥주를 마셨더랬다. 나에게 바다가 보이는 풍경이나 산과 들, 맑은 공기는 일상이 아닌 일탈이다. 일상은 여기, 이 복잡한 도시. 도시의 밤이 포근하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에겐 여기가 고향이다. 그러니 온갖 나쁜 것들이 가득한 환경이라 해도 나에겐 우습게도 포근하고 정든 고향이 여기 서울이라는 도시다.
자주 연락하지 않는 몇몇 사람들에게서 느닷없이 출장지에 있을 무렵 문자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그것은 지난 시간의 나로부터 내가 얼마나 달라졌으며 지금 나는 어디 있는지 생각하게 했다. 내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느낀건 잠을 이루지 못한채 뒤척이던 밤이었고, 한 낮의 이동 시간 중에 멍하니 눈 앞에 펼쳐진 푸른 녹차 밭을 보던 짧은 순간이었다.
덜컹거리는 낡은 열차칸처럼 그렇게 흔들거리고 삐그덕 거리겠지만 그래도 아마 철로를 벗어나는 일은 없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위안을 삼았다.
생각해보면, 나는 변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