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퇴근 시간 무렵, 편집장의 황당한 업무 분담 방식에 수긍하지 않고 항의했고, 내가 요청한 방식대로 진행하기로 했으나 기분은 녹아서 줄줄 흘러내리는 아이스크림을 손에 든 것 마냥 찝찝했다. 내가 매일 바치는 물리적인 시간과 나의 노력, 사생활도 없이 매달리는 이런 회사생활이 나에게 가져다 주는 건 뭘까. 알량한 월급? 그리고 몇가지 부수적인 것. 그런 생각들로 또 다시 늦은 시간까지 잠을 청하지 못했다.

낡은 에어컨은 소리만 요란하고는 그다지 시원하지 않다. 갑자기 무더위, 한여름이 되어 있는 날씨. 저 낡아빠진 에어컨 같구나, 나는. 언제나 소리만 요란할뿐 좀처럼 제 구실을 다 못하고 있다. 스물의 내가 비웃던 그런 삼십대가 되어 있는 것 같다.

로베르네 집에서 카프리 한 병으로 목을 축이고 나자 더는 무엇도 하기가 싫어졌다. 그리고 발길을 돌려 돌아온 토요일 저녁. 호주에서 사온 제법 값나가는 와인을 땄으나 2잔 마시고 더는 못먹겠어서 마개를 다시 막아놓고 중국과 스위스의 충구 경기를 틀어놓은 채로 잠이 들었다.

끔찍한 지경이 된 방을 치워야겠다. 칠이 다 벗겨진 손톱을 관리해야겠고, 다음주 인터뷰 예정인 ##의 책을 미리 읽어두어야 겠다. 월요일에 업무 과부하를 피하려면 내가 처리해야 할 기획안 두 개 중 하나는 오늘 어느정도 마무리 해두는게 좋겠다.

이런 식으로 나는 충직한 개가 되어 가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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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라 2006-06-04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끝없이 쳐내야하는 일, 지쳐가는 몸과 마음.... 어제 드시다만 와인이 조금은 힘을 북돋워주었으면 좋겠네요.

전 딸기케이크로 구두님께 안부를 전할게요. 힘내세요~^^





 


이리스 2006-06-04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로라님 / 으흣. 감사합니다. 딸기케이크! @.@
 

모든 눈물은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계시록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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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6-06-05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멘!

sweetrain 2006-06-05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멘!!!

비로그인 2006-06-05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담아갈래요.

이리스 2006-06-05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리브님, 배꽃님, 단비님 / ^.^
쥬드님 / 넵. ^^
 

몇몇 대기업은 제도가 갖추어져 있어서, 아래와 같은 경우 직원들을 배려하는 제도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몇몇 대기업에 불과하지 않을까. 아니면 정말 인간성 좋은 사업주의 소규모 회사들. 그것은 온전히 사업주 부담으로 직원을 배려하는 것일 터.

부모의 간병을 하게 된 내 지인들 이야기를 하려 한다. 그들은 최선을 다해 자식된 도리를 다하려 했으나 결론적으로 직장과, 오래 일하왔던 아르바이트 자리를 잃게 되었다.

A. 잡지사 기자로 일하고 있을 무렵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병원에 입원하셨고 두 차례 대수술을 받으시느라 몹시 위중하셨으나 고비를 넘겼다.

매월 마감을 쳐내야 하는 잡지사 기자에게 부모의 위중함과 그에 따른 간병을 해내는 것은 참 힘든 일이다. 게다가 A의 경우 그다지 인복이 없었던 탓인지 편집장과 기타 선후배 기자들이 영 업무를 나눠하지 않으려 했는가 보다. 의례적으로 묻는 안부조차 묻지 않았다고 한다. A는, 위중한 아버지의 병실을 지키다가 잠도 거의 못자거나 간이 침대에서 잠다가 깨어 사무실로 뛰어가고, 촬영장을 오갔다.

긴박하게 빨리 일을 처리해냐야 하는 월간지 잡지사 기자로서 꽤 긴 시간(그냥 며칠이 아니었다) 간병에 시간을 쏟느라 일을 제 때 처리하지 못해 상당히 미운털이 박히고 이로 인해 냉대를 받았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스스로 사표를 던지지 않고는 못견딜 분위기를 만들었을 것도 뻔한 일이다. 이렇게 부모의 급작스런 건강의 악화는 자식의 직장을 잃게도 한다.

그리고 B. 다행히 직장인은 아니고 학생이다. 하지만 아르바이트로 학비와 용돈을 스스로 조달해야 하기에 시간이 그리 여유롭지 못하다. B의 아버지는 위중한 정도는 아녔으나 (어머니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을 하고 계심),B가 아버지의 병원 진료와 검진을 보살펴 드려야 했다. 누나는 결혼해서 두살 된 아이가 있어 움직이기 힘들다.

역시 근 한달 반 정도를  병원을 오가며 아르바이트와 학교를 다녔다. 강의는 여러번 듣지 못했고 아르바이트도 시간을 지켜 하기 힘들게 되었다. 강의를 여러번 빠지게 되어 몇 과목은 시험을 포기해야 할 상황이었고, 결국 아르바이트는 해고 되었다. 또한 초기에는 학교와 아르바이트 모두 놓치지 않으려고 심하게 무리를 한 탓에 아버지 간병이 끝나고 얼마뒤에 B가 크게 아파서 병원에 일주일 간 입원하기도 했다.

먹고사는 일에서 자유로운 누군가가 아니라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이런 문제에서 자유롭다고는 못할 것이다. 아내가 아이를 낳으러 가도 일하느라 못보러 가기도 하고, 부모가 아파서 병실에 누워 있어도 일 때문에 못가보고 발을 구르기도 한다.

그런데 어쩌랴, 일을 안하면 그나마 아내의 출산에 따르는 병원비를 낼 수 없고, 병든 부모의 병원비와 약값을 댈 수 없는게 현실이니 참으로 아이러니 하다.

국가가 가난한 탓이 아마 제일 크지 않겠나 싶다. 여전히 대한민국의 수많은 회사는 여름휴가 5일 쓰는 것 조차 쉽지가 않다. 3일 쓰면서도 눈치 봐야 하는 회사도 있다. 매월 월차라는 것도 꼬박꼬박 쓴다면 아마 엄청나게 욕을 먹게 될 것이며, 그러니 부모의 간병 같은 핑계는 먹히지 않는다.

국가에서 기업에 지원을 하여, 위와 같은 일들이 생길 때 직원들이 이중으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있게 임시 휴직을 하게 하거나 최소한 남편에게도 출산휴가를 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규정에는 분명히 휴가가 있지만 누구도 그것을 쓰지 못하는 그런 유명무실함이 가득하다. 연차가 있고, 출산휴가가 있지만 주어진 휴가를 쓰지 못하는 환경이라면..

우리의 근로 환경은 전태일 열사가 몸을 불사르던 그 시기에 비해 얼마나 앞으로 나아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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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6-11 0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가 불평등하게 분배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무상의료와 환자에게 휴업급여가 지급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리스 2006-06-11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유 / 그렇죠. 점점 양극화 현상이 너무 심해지고 있으니 끔찍해요. 아래로 내려갈수록 인간적인 대우는 못받게 되는 거죠. -_-;;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욥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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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스 2006-06-04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아, 이렇게 곧 6월이 시작되는구나. 문득 1년전 여름이 생각나 사진을 뒤져봤다.

그리워라, 작년 여름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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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6-05-31 0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6월의 싱그러움이 느껴집니다.
사진 속의 주인공도 더할 나위 없이 그렇구요 ^ ^
노란 신발이랑 목걸이가 눈에 띄네요.

라주미힌 2006-05-31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광채가 나요... ㅎㅎㅎ

플레져 2006-05-31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이쁘세요~~

플로라 2006-05-31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 투명한 피부...부럽슴다~^^ 웰컴투코스메틱월드의 내공, 다 이유가 있었군요...^^
여행의 약발이 떨어지기 전에 냉큼 감행하세요... 어디든!! ㅋㅋㅋ

moonnight 2006-05-31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흠다우십니다. +_+;

해적오리 2006-05-31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름 프랑스에 딱 맞는 자태를 가지고 계시는군요. 부럽습니다.

이리스 2006-06-01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치 나인님 / ㅋㅋ 감사합니다~
플레져님 / ^,.^
플로라님 / 그러게요.. 어디든 가고 파요~~~
문나잇님 / 잇힝~~~
날나리님 / 앗, 그런 과찬을.. ^^;;;

치유 2006-06-09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이거 놓쳤었어요..너무 너무 감각적인 (낡은 구두)그녀 모습그대로네요.
너무 이뻐요..어쩌면 저렇게 이뻐요??????
사진한장만 퍼가요..
밑에 잘 보이는 걸루다가..
제 비밀페퍼에 올림니다..공개는 언제 할지 아무도 모르구요..허락해주실꺼지요???
오늘도 멋지게 아름답게..

프레이야 2006-06-17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밝고 어여쁜 낡은구두님~~ 프랑스에 가면 미술관들을 다 둘러보고 싶어요. 고흐의 이름이 보이네요..

이리스 2006-06-17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꽃님 / 으흣.. 감사합니다. ^^ 근데 공개는 하지 말아주셔요.. -.-
배혜경님 / ^,^ 조만간 여행길에 오르시길 바랄게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