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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the Road -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
박준 글.사진 / 넥서스BOOKS / 200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왜 사니?’ 라고 물어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웃어넘기거나 아니면 경직된 표정으로 침묵을 지킨다. 별다른 고민 없이 몇 초 이내에 ‘나는 이러저러해서 살아.’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역으로, 아니 그러면 ‘왜 사느냐?’는 물음에 답도 못하면서 사는구나, 우리들은. 서글퍼진다. 출근시간 러시아워의 신도림역을 경험해 본 적이 있는가? 아침 일곱 시만 되어도 벌써 사람들이 가득하고 여덟시 경에는 거의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끔찍해진다. 대체 왜?
태어나고, 교육을 받고(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원)) 그리고 직업을 갖는다. 그 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 어떤 기본적인 공식과 같은 삶의 궤적이다. 그리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고들 한다. 우리의 육체가 노화하는 시점에 맞추어 학습하고 번식해야 한다는 뜻이다. 저 거대한 룰에 납작하게 짓눌려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억누르면서 틀 안에 갇혀서 시무룩한 표정으로 늘어뜨린 어깨에 불만을 쌓은 채 걷고 또 걷는다.
어느 날 갑자기 사고를 당해서 죽게 된다면 그 때 당신에게 가장 안타까운 건, 혹은 억울한 건 무엇인가? 부모님께 더 잘해드리지 못한 것? 애써 모아놓은 돈을 손도 대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것? 해보고 싶은 것을 제대로 못해보고 언젠가는 해보겠지 싶어서 참고 참으며 살아온 것? 안타까울 게 하나도 없다면 당신은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만족스러운 삶을 살았거나 아니면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왔다는 것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온 더 로드>는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사실은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여행은 그것을 이야기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고 소재일 따름이다. 하던 일을 접어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생활을 위하여 1년 이상의 여행을 떠나야만 나 자신을 더 잘 알게 되는 건 아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여행은 무슨. 그냥 나 사는데서 뒹굴 거리며 살 거야.’ 이래도 그만이다. ‘내 방 여행’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고 세상과 소통할 수 있으며 나 자신에 대해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다면 말이다.
이 책은 소심하고 또 소심한 대다수의 사람들의 가슴에 불을 지르기도 하고, 괜찮다며 다독이며 따뜻하게 안아주기도 한다. 내가 바라던 삶이 정말 이런 거였나? 어느 날 아침 피곤에 절은 몸을 억지로 일으켜 간신히 출근(혹은 등교) 준비를 하며 울컥 가슴에서 뭔가 뜨거운 응어리가 느껴졌던 경험이 있는 당신이라면 어쩌면 이 책을 읽다가 펑펑 울어버릴지도 모르겠다. 장차 무슨 일을 하고 싶은 건지 알 수가 없어서 진학도 하지 않고 학교도 접어버린 당신에게도 마찬가지.
당신의 직업이, 살고 있는 공간이, 소유하고 있는 물건들이 당신을 규정하는가? 그 모든 것에서 오로지 당신 자신만을 떼어 놓으면 당신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가? 대체 ‘나 자신’이라는 건 무엇인지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드는 이 인터뷰 모음은 가벼운 듯 보이지만 그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물음을 계속 던진다.
# 기억에 남는 것 몇가지.
여행을 정의한 수많은 말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말은 역시, <달과 6펜스>에 나온 말.
‘자기가 살아야 할 곳에서 태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살고 싶은 곳을 찾아 여행을 하는 것.’
끔찍한 한국의 노동시간을 다시 한 번 상기 시켜준 어느 독일 여행자의 말.
‘주당 40시간을 일했 더랬죠. 인생의 대부분을 일하는데 바치고 살았던 거예요.’
-_-; 주당 40시간씩 한 달만 일하면 인생이 풍요로워 질 거라고 입 모아 이야기하는 우리 부서원들이 떠올라 눈물이 날 것 같았다.
# 그 밖에..
책의 판형이 꽤 독특한 편인데 세로가 상당히 길지만 의외로 손에 잡고 읽기에 편하다. 판형 때문에 종이가 상당히 소모되었을 법 하지만 이만하면 성공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