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사전
김소연 지음 / 마음산책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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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심:자존감
자존심은 차곡차곡 받은 상처들을, 자존감은 차곡차곡 받은 애정들을 밑천으로 한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를 지켜내는 것이 자존심이 되고 누군가가 불어넣어주는 것이 자존감이 된다. 자존심은 누군가 할퀴려 들며 발톱을 드러낼 때에 가장 맹렬히 맞서고, 자존감은 사나운 발톱을 뒤로 두고 집으로 돌아와서 길고 긴 일기를 쓰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나쁜 결과 앞에서, 자존심은 어차피 모든 걸 예감했던 듯 독해지며, 자존감은 모두들 어디로 갔을까 하며 세상이 독하다는 사실을 난생처음 깨닫고 만다. 자존심이 강한 자는 이기심이라는 커다란 호주머니를 달게 되고, 자존감이 강한 자는 자기애라는 목도리를 목에 감게 된다. 호주머니는 무엇을 채워 넣으려는 속성을, 목도리는 온기를 주고자 하는 속성을 예비한다. 자존심의 결말은 신문지라도 덮고 추운 겨울밤을 견뎌야 하는 노숙의 운명이라면, 자존감의 결말은 행복한 왕자의 동상과도 같이 어깨에 시린 눈발이 쌓여가도 허리를 펴고 서 있느라 다리에 쥐가 날 운명이다. -193쪽

그러나 이 진짜와 가짜는 서로의 내왕을 허가한다. 난관을 이겨내기 위하여 자가발전 플래시를 손에 들어, 탐정이 되거나 탐사단이 되는 일에 협력하기도 한다. 게다가 그렇고 그런, 거기서 거기인 것으로 만들기 위한 위장술을 쓰기도 하지만, 같은 먹빛임에도 사약과 보약이 재료부터 다르고 용도 또한 다른 것과 비슷한 이치로, 코를 킁킁거려 지나치게 보약만을 감별하려 해봤자 구별되지 않을뿐더러, 큰일이 벌어지지 않는 한 이 둘은 모두 무고하다.-1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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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8-03-09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며칠전 제가 읽은 책이지만 우리가 밑줄을 그은 부분은 다르군요.

이리스 2008-03-10 01:36   좋아요 0 | URL
우리.. 라는 말에 먼저 밑줄 그었으니 다르.. 다는 말은 보이지 않아요.
오호홋.. ^^;;

L.SHIN 2008-03-09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 좋은데.

이리스 2008-03-10 01:36   좋아요 0 | URL
아힝힝.. ㅎㅎ

잉크냄새 2008-03-10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존심과 자존감을 참 잘 표현한것 같네요.

이리스 2008-03-10 21:42   좋아요 0 | URL
두가지가 모두 저에게 무척 절실한 시기에요.. -_-;;

nekomamang 2008-04-18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를 존중한다는 기저는 같지만 상황에 따라 존심이 되기도 하고.. 존중감이 되기도 하고.. 그러는 것 같아요.. 알량한 존심..ㅋ
 
가만히 좋아하는 창비시선 262
김사인 지음 / 창비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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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의 깊이

바람 불고
키 낮은 풀들 파르르 떠는데
눈여겨보는 이 아무도 없다.

그 가녀린 것들의 생의 한순간,
의 외로운 떨림들로 해서
우주의 저녁 한때가 비로소 저물어간다.
그 떨림의 이쪽에서 저쪽 사이,
그 순간의 처음과 끝 사이에는 무한히 늙은 옛날의 고요가,
아니면 아직 오지 않은 어느 시간에 속할 어린 고요가
보일 듯 말 듯 옅게 묻어 있는 것이며,
그 나른한 고요의 봄볕 속에서 나는
백년이나 이백년쯤
아니라면 석달 열흘쯤이라도 곤히 잠들고 싶은 것이다.
그러면 석달이며 열흘이며 하는 이름만큼의 내 무한 곁으로
나비나 벌이나 별로 고울 것 없는 버러지들이 무심히 스쳐가기도 할 것인데,

그 적에 나는 꿈결엔 듯
그 작은 목숨들의 더듬이나 날개나 앳된 다리에 실려
온 낯익은 냄새가
어느 생에선가 한결 깊어진 그대의 눈빛인 걸 알아보게 되리라 생각한다.

김사인 <가만히 좋아하는 中>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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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8-01-14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때늦은 사랑


김사인


내 하늘 한켠에 오래 머물다
새 하나
떠난다

힘없이 구부려 모았을
붉은 발가락들
흰 이마

세상 떠난 이가 남기고 간
단정한 글씨 같다

하늘이 휑뎅그렁 비었구나

뒤축 무너진 헌 구두나 끌고
나는 또 쓸데없이
이 집 저 집 기웃거리며 늙어가겠지

이리스 2008-01-14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여기 헌구두가 나오네요. ^^;;

다락방 2008-01-14 23:16   좋아요 0 | URL
네. 헌구두를 진하게 표시할까 하다가, 그러지 않아도 알아차리시겠지 싶어 그냥 두었는데요. 헤헷 :)
 
Italian Joy - 이탈리아 스타일 여행기
칼라 컬슨 지음 / 넥서스BOOKS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호주의 성공한 여성 사업가는 어느날, 자신의 인생이 겉보기만 화려할 뿐 속빈 강정이며 진심으로 행복한 인생을 살고 싶다고 결심한다. 금전적으로 상당한 이득을 주었던 사업을 정리하고 여행가방 두개와 카메라 하나를 들고 이탈리아 피렌체로 떠난다. 그곳에서 서른다섯살의 여자는 처음으로 사진을 배우기 시작하고 낯선 이탈리아어를 배우기 시작한다. 문장으로 이렇게 정리를 해보았으나, 저 간단한 몇 문장을 실제로 행동에 옮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동안 고민하고 갈등했을까. 막상 결심을 실행에 옮기기 직전 그 망설임은 또 어떻고...

사실, 이렇게 인생의 전환점을 찾아 새로운 인생의 지도를 그리는 일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남들이 보기엔 무모한 일, 맨땅에 헤딩하는 일 같은 그런 일들. 그녀는 용기가 대단했고., 열정이 넘쳐나는 그녀는 그렇게 노력한 끝에 사진작가가 되어 세계 유명 패션지의 화보를 찍는 사진작가로 우뚝 섰다. 게다가 깊고도 깊은 외로움을 떨쳐 줄 사랑하는 이탈리아 남자도 만났다.

이런 일은 결코 자주 일어날만한 일이 아니다. 용기와 노력만 있어서도 안되고 운도 따라줘야 한다. (하긴, 모든 일에 운이 필요하지 않은 경우는 거의 없다.)

책의 내용과 사진은 꽤 마음에 들었다. 그럼에도 별을 두개나 뺀건 편집이 마음에 안들어서다.

챕터는 대체 왜 저렇게 나눈 것이며, 내용을 읽을만 하면 양면으로 사진이 팍팍 들어가질 않나. 스토리 전개도 시간상의 전개와 상관없이 배열해놔서 앞에서 이미 결론이 나 있는데 그 이후의 챕터에서 뒷북을 치기도 한다. 정말, 이해할 수가 없는 구성이다. 덕분에 사진과 글이 한덩어리 반죽처럼 뭉개져서 여기저기 흉하게 붙어 있는 꼴이 되었다.

안타까워라, 심지어 이 책의 원고와 사진을 가지고 재편집하는 상상마저 해보았다.

이런...

덧붙여, 책의 내용에서 이탈리아 남자를 말한 상당 부분은 과장이 지나치다. 미녀가 나타났다고 해서 길거리가 갑자기 교통 정체에 혼란이 일어나고, 멋진 여자만 나타나면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노골적으로 작업을 걸고.. 이게 마치 대부분의 이탈리아 남자들이 그런것 마냥 이야기 하는데.. 그리고 이 책뿐 아니라 꽤 많은 책에서 이탈리아 남자들이 어쩌구 저쩌구 이렇게 쓰여 있는데, 실제로 가본 이탈리아에서 내가 느낀 것은 다르다. 물론 그런 성향이 강한 것은 맞지만 말이다.

로마에서도 피렌체에서도 시칠리에서도 저렇게 원색적이고 노골적인 모습은 못봤다. 낮의 카페에서도 한밤의 펍에서도 말이다. 그러니까 책에서 본대로 상상하며 이탈리아에 갔다가는 낭패란 말씀!

오히려 내가 이탈리아 여자들의 멋진 몸매 감상하느라 정신을 못차렸다. -.,-

단, 그녀의 연인처럼 이탈리아 남자들이 상당히 다정다감하고 정열적으로 사랑하는 것은 맞는듯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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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the Road -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
박준 글.사진 / 넥서스BOOKS / 200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왜 사니?’ 라고 물어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웃어넘기거나 아니면 경직된 표정으로 침묵을 지킨다. 별다른 고민 없이 몇 초 이내에 ‘나는 이러저러해서 살아.’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역으로, 아니 그러면 ‘왜 사느냐?’는 물음에 답도 못하면서 사는구나, 우리들은. 서글퍼진다. 출근시간 러시아워의 신도림역을 경험해 본 적이 있는가? 아침 일곱 시만 되어도 벌써 사람들이 가득하고 여덟시 경에는 거의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끔찍해진다. 대체 왜?

태어나고, 교육을 받고(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원)) 그리고 직업을 갖는다. 그 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 어떤 기본적인 공식과 같은 삶의 궤적이다. 그리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고들 한다. 우리의 육체가 노화하는 시점에 맞추어 학습하고 번식해야 한다는 뜻이다. 저 거대한 룰에 납작하게 짓눌려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억누르면서 틀 안에 갇혀서 시무룩한 표정으로 늘어뜨린 어깨에 불만을 쌓은 채 걷고 또 걷는다.

어느 날 갑자기 사고를 당해서 죽게 된다면 그 때 당신에게 가장 안타까운 건, 혹은 억울한 건 무엇인가? 부모님께 더 잘해드리지 못한 것? 애써 모아놓은 돈을 손도 대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것? 해보고 싶은 것을 제대로 못해보고 언젠가는 해보겠지 싶어서 참고 참으며 살아온 것? 안타까울 게 하나도 없다면 당신은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만족스러운 삶을 살았거나 아니면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왔다는 것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온 더 로드>는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사실은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여행은 그것을 이야기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고 소재일 따름이다. 하던 일을 접어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생활을 위하여 1년 이상의 여행을 떠나야만 나 자신을 더 잘 알게 되는 건 아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여행은 무슨. 그냥 나 사는데서 뒹굴 거리며 살 거야.’ 이래도 그만이다. ‘내 방 여행’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고 세상과 소통할 수 있으며 나 자신에 대해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다면 말이다.

이 책은 소심하고 또 소심한 대다수의 사람들의 가슴에 불을 지르기도 하고, 괜찮다며 다독이며 따뜻하게 안아주기도 한다. 내가 바라던 삶이 정말 이런 거였나? 어느 날 아침 피곤에 절은 몸을 억지로 일으켜 간신히 출근(혹은 등교) 준비를 하며 울컥 가슴에서 뭔가 뜨거운 응어리가 느껴졌던 경험이 있는 당신이라면 어쩌면 이 책을 읽다가 펑펑 울어버릴지도 모르겠다. 장차 무슨 일을 하고 싶은 건지 알 수가 없어서 진학도 하지 않고 학교도 접어버린 당신에게도 마찬가지.

당신의 직업이, 살고 있는 공간이, 소유하고 있는 물건들이 당신을 규정하는가? 그 모든 것에서 오로지 당신 자신만을 떼어 놓으면 당신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가? 대체 ‘나 자신’이라는 건 무엇인지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드는 이 인터뷰 모음은 가벼운 듯 보이지만 그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물음을 계속 던진다.

# 기억에 남는 것 몇가지.

여행을 정의한 수많은 말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말은 역시, <달과 6펜스>에 나온 말.

‘자기가 살아야 할 곳에서 태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살고 싶은 곳을 찾아 여행을 하는 것.’

끔찍한 한국의 노동시간을 다시 한 번 상기 시켜준 어느 독일 여행자의 말.

‘주당 40시간을 일했 더랬죠. 인생의 대부분을 일하는데 바치고 살았던 거예요.’

-_-; 주당 40시간씩 한 달만 일하면 인생이 풍요로워 질 거라고 입 모아 이야기하는 우리 부서원들이 떠올라 눈물이 날 것 같았다.

# 그 밖에..

책의 판형이 꽤 독특한 편인데 세로가 상당히 길지만 의외로 손에 잡고 읽기에 편하다. 판형 때문에 종이가 상당히 소모되었을 법 하지만 이만하면 성공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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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9-06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함께 일하던 스페인쪽 회사 직원이, 어느날 `너네 몇시부터 몇시까지 일하니? 휴가는 얼마나 돼?' 하고 묻더니 `세상에 이런 일이' 컨셉으로, `너네 아주 떼돈 벌겠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어요. 아주 황망하게 웃으며 'show me the money, plz'라고 말했건만 그 순간에야말로 `내가 웃어도 웃는 게 아니야'였죠.
달과 6펜스 식의 정의라면, 저는 동유럽에 태어났어야 했을 거에요. 서평단에 뽑히지 못해 그냥 지나갈까, 하던 책인데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냥 지나갈까, 하던 마음은 아무래도 `저 포도는 맛이 없을거야'하는 마음에서였지요. 더불어 읽어버린 책이 내 마음에 먼 북소리를 둥둥, 울리면 그 때엔 어쩌나,하는 마음도.

플로라 2006-09-07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 구두님의 뜨거운 필력에 저야말로 감동~ㅜ.ㅜ

이리스 2006-09-07 1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쥬드님 / 그쵸, 첫번째 반응이란 힘은 들겠지만 오버타임 수당 받으면 돈이 상당하겠다.. 여요. ㅋㅋ 남의 속도 모르고 말이죠. 하지만 사정을 설명하면 무척 딱하다는 표정을 지어주더군요. -_-;; 쥬드님은 동유럽이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저는 솔직히 아직도 제가 어디에 어울리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지구가 아닌가 --;)

플로라님 / 어머, 낯뜨겁사옵니다. ^^

2006-09-14 1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리스 2006-09-14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 / 네, 그럼요. 감사합니다. ^^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 - 일기 쓰기부터 소설 쓰기까지 단어에서 문체까지
안정효 지음 / 모멘토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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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려면 무언가 말을 해야 하는데, 젊어서 지혜로운 명상이라고 생각했던 생각은 모두가 헛된 언어적 희롱이라고 여겨지기 시작하고, 마흔이 넘은 다음 주변을 둘러보니, 내가 했던 모든 말과 하려던 모든 말은 이미 다른 사람들이 오래전에 모두 했기 때문에 낡아버렸고, 젊었던 과거시대에 새롭다고 생각했던 모든 경험 또한 다른 사람들이 모두 나보다 먼저 겪었으며, 타인들의 사랑이 나의 사랑보다 훨씬 아름답고 낭만적이었는가 하면, 내가 누리거나 갖지 못한 모든 것을 다른 사람들은 이미 모두 거친 다음 벌써 오래전에 내버렸다는 현실을 뒤늦게서야 알게 된다. -515~5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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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6-08-21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안정효씨는 글 쓰잖아요. 역시, 직업으로서의 글쓰기 라는 것은 무서운 일이에요 ^^;

이리스 2006-08-22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인님 / 뭐든 직업이 되면 무서워집니다. ㅎㅎ

마태우스 2006-09-25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땡스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