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어갈 수록 어떤 변화, 그것도 아주 큰.. 급격한 변화는 줄어들거라 생각했는데 그건 잘못된 생각인 듯 하다.

공부할 것 많고, 하고 싶은 것 많고, 만나고 싶은 사람 많던 그는..

결국 결혼을 하고, 얼마전엔 아빠가 되었다.

수화기 너머의 그는, 당분간은 아이 때문에 꼼짝 못할테니 보기 힘들겠단다.

보헤미안 같던 그는 결국, 아내에게 시집살이를 시키고 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지금까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문득, 변화란 이런것이군.. 싶어서 끄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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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1년 전 쯤, 나는 시드니에서 돌아와 여행의 기억 언저리를 더듬고 있었다.

꽤 많은 시간이 지나간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데,

지금의 나는 아주 많이, 그러니까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만큼 달라져 있다.

앞으로 1년 뒤의 나에 대해 아무런 것도 예측할 수 없다는 건 불행일까 다행일까.

나는 정말로, 그 시간이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놀라울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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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이라는 거창한 표현을 쓰지 않는게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말로 하는 것보다는 글로 보여주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서 자판을 한껏 열심히 두들겼다. 하지만 쓰다보니 너무나 장황해졌고 읽다가 지칠 것 같았다.

그래서 결국, 말로 했다.

혼자서 끙끙 거리는 고질병을 고쳐보고자 큰 맘 먹고 말을 꺼냈다.

역시, 이야기를 하고 난 한결 더 편해졌다.

이 말은 언제나 틀림없다. 말 하지 않으면 아무도(제대로) 알지 못한다.

비 갠 오후 처럼 마음이 깨끗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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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조금씩 내 영혼이 부식되어 서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떨어져나가는 저 영혼의 조각들.

전체가 다 부서져내리기 전에 팔짱 낀 손을 풀어야 할텐데.

나는 여전히 팔짱을 낀 채 신음소리만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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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삶이, 살아가는 것 자체가 형벌이 되어버리는 순간이 있다.

때로는 아무렇지 않고 멀쩡하다는 것이 너무 끔찍해지기도 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살아간다는게 대체 뭐길래 이렇게 모든걸 다 누르고 이렇게 멀쩡할 수 있는거야.

본능적으로 삶을 추구하고, 그저 살아서 숨쉬는 것을 원하고, 단지 닥쳐올 죽음이 두려워서 삶을 움켜쥐고 헉헉거리는 자신이 짐승같이 느껴지는 그런 순간,

바로 그 때 삶이 형벌이 된다.

<올드보이>에서 오대수가 써내려간 잘못을 기록한 두툼한 악행 노트 몇 권. 나는 그보다 더한 악행을 저질러왔던 것은 아니었을까. 고운 마음들을 모른 척하고 때론 밟으면서 지금의 나를 만들어왔던 것이 아니었을까. 살아야 한다는, 비록 절대적인 이유일지라도. 그렇게 나를 지켜온 것이 아니었을까. 지금의 나로 서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가도 누군가의 희생으로 서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형벌로서의 삶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포기해서는 안되는 까닭은 그것이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이고 최소한의 도리를 다하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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