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을 즐긴다는 것도 한두번이지, 사람이 너무 외롭게 되면 이성을 잃게 될 소지가 있다. 타지에서 외롭게 홀로 유학생활을 하다보면, 누군가 외로움을 달래주는데 홀딱 넘어가서 나중에 내가 왜 그랬을까 싶은 선택을 해버리기도 하듯.

청춘은 스러져가고 밥하는 기계로 전락하여 외로움이 뼈에 사무칠 때 20살 아래의 누군가와 데이트를 즐기고 그러다 위험한 사랑에까지 이르면, 그게 누구 탓일까? 얼간이 같은 남편 탓일까, 아니면 외로움을 주체 못하고 줄줄 흘려버린 아내 탓일까. 그도 아니면 결혼한 여자에게 데이트를 신청한 그 젊은 사내 탓일까.

무조건 여자에게만 비난을 퍼붓던 시대는 슬슬 사라져 가고 있다. 하지만  예전에는 덮어놓고 여자 탓만 했으니 이제는 이 모든게 다 남편 탓이라고 한다는 건 억지다. 관계란 상호작용이거늘, 결국 원인은 셋 모두에게 있다고 본다.

소설과 영화가 좀 다르긴 했지만 <도쿄 타워>에서 요시다는 자신의 엄마와 바람이 난 동급생인 코우지에게 분노의 감정을 삭이지 못하면서도 이상한 말을 한다. 코우지는 미혼이므로 상대를 선택할 자유가 있으니 죄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딸인 자기도 있고 남편도 있는데 그러면 안되는 거였다며, 엄마만은 결코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한다.

난 속으로 그게 말이 되나? 아주 이상한 논리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혼이면 상대를 선택할 자유가 있다는 데에는 동감한다. 하지만 상대가 결혼 사실을 속인것도 아니고 주부이고 더구나 동급생의 엄마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코우지가 먼저 유혹해 시작된 관계인데, 그런 코우지에게는 잘못이 없다니. 미친게 아닐까?

코우지와 요시다의 관계는 그저 동급생일 뿐이었으니 코우지에게 느낀 분노 보다는 엄마에게 느낀 배신감이 훨씬 컸으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런 식의 결론은 어이가 없다.  

사랑이란 것이 이성을 배제하고 너무나도 감정적으로만 치닫게 되도 문제가 생기지만 또 마찬가지로 여기에 이성이 지나치게 개입하면 그건 더 이상 사랑이 아닌 것이 되어 버린다. 서로에게 얻게 되는 이해득실을 따지고 그것이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중심이 될때 이미 그건 철저히 비즈니스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어린 연인과 데이트를 즐기다가도 밥 때가 되면 저녁 밥을 해야 한다며 서둘러 돌아가는 주부의 모습은 그나마 가정에 충실하기 위해 노력한다기 보다는 결혼의 룰을 지키면서, 전업주부니 최소한 남편 귀가전에 저녁 밥은 지어놔야 한다는 그것에 따르기 위한 것일 뿐이다. 거기에 사랑이란 건 없다. 아울러 그런 룰을 지켜야만 지금과 같은 데이트가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고급스런 셀렉트 숍을 열게 해주고, 안락한 집과 편안한 생활의 바탕을 제공해준 남편 대신에 이제 겨우 대학생일 뿐인 어린 남자를 선택할 수 있는 건 무모함이나 한 때의 열정으로 치부되기 쉽다. 하지만 그 반대는 현명함인가? 그런 남편을 선택한 건 정말 잘한 일이고 그래서 그런 결혼 생활을 어떻든 잘 이끌어 나가는 것이 현명한 일인가?

<해피엔드>가 나왔을 때, 아줌마들끼리 모여서 영화를 보며 극장에서 온갖 욕을 해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기가 있는 유부녀 역할의 전도연이 주진모와 애정행각을 벌이는 장면에서 저런 쳐 죽일X, 미친X 라고 욕을 해댔다는 이야기. 그러고 보니 좀 궁금해졌다. <도쿄 타워>를 보면서 일본의 아줌마들은 어땠을까. 주인공이 애 엄마가 아닌 건 아마 그녀들의 격분을 좀 누그러뜨리기 위한 장치였나?

전에 외국인 친구가 일본에 갔다가 아내가 남편에게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면서 한국도 그러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일본에서는 남편이 아내를 부르는 말에 사실 '어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잘은 모르지만 아마 일본에서도 젊은 부부들은 서로 그렇게 부르지 않는 경우가 많을 거라고 답했고 한국에서는 주인님이라고 부르지 않지만 여전히 남편은 윗사람이라는 개념이 바탕에 깔려 있긴 하다고 했다.

시집 식구들에 대한 호칭은 도련님, 아주버님, 아가씨, 형님 이런 식인데 처가집 식구에 대한 호칭은 처형, 처제 이런 식이라고.  그리고  도련님이나 아가씨라는 호칭은 사실 예전에 종들이 양반 주인어른 자제를 부를 때 쓰던 호칭이었으니 주인님이란 개념이 그렇게나마 남아 있긴 하다고 설명했던 것 같다.

이런 개념이 여전히 남아 있는데, 종이 주인을 배신한 것도 모자라 저런 불륜 행각까지 저지르다니 이는 입에 거품물고 소리소리 지르고도 남을 일이지 싶다.

흠, 그러니까 결론은 시작이 잘못된거였다고 말하고 싶다. 그녀들이 시작이, 결혼 생활의 시작부터 잘못이었던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았다면 20살 아래의 연인이 결혼 생활에 끼어들 틈이 없었을 것이고, 설사 그렇게 되었다 하더라도 탄력이 좋은 고무줄 처럼 그들은 곧바로 원래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을 걸고 선택하게 된 사랑은 처음의 선택이 아니었다. 그러니 그 선택 자체가 잘못이었다고 할 수 밖에.  아울러 지금 그녀의 선택의 결과가 어떨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인생은 공평하다고 여겨진다. 내일 너의 마음이 변한다 할지라도 지금 나는 너를 사랑해. 이보다 더 완벽한 말이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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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05-11-27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도쿄타워>때문에 얘기들이 많군요. 솔직히 연상녀에는 예전부터 별로 관심이 없는지라 20살차이라는 설정이 너무너무 비현실적으로 보이지만.
재미있게 읽고갑니다. ^^

이리스 2005-11-27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와 같이 영화본 사람도 그러더군요. ㅎㅎ 근데 그건 남자들 생각이지 여자들 입장에선 그렇게 비현실적인건 아니랍니다. *^^*

하늘바람 2005-11-27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20살차이 도쿄 타워 함 봐야겠어요

마태우스 2005-11-27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클님/40대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될 날이 있을 겁니다^^
구두님/추천하고 갑니다. 어떻게 미모와 훌륭한 글솜씨를 모두 갖출 수 있었는지요?

이리스 2005-11-28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바람님 / 넵 ^^
마태님 / ㅡ,.ㅡ
 

<당신이 사랑하는 동안에>를 보았다. 휴일의 종로 모처 극장. 사람 없고 한산하고 좋았다. 극장에서 사람에 이리저리 부딪히는게 너무 싫다. 조그만 스크린의 아담 사이즈였지만 뭐 나쁘진 않았다.


 현대무용을 하는 여자친구.. 그리고 사진가인 남자친구.. 흠.. 잘어울린다. ^^ -

이 영화에서 구두를 빼놓을 수는 없다. 내 닉네임이 낡은구두라서 그런게 아니다. 아, 정말이라니까.

<라빠르망>을 본지가 하도 오래라 나와 동행은 서로 우리가 <라빠르망>을 봤다는 사실을 아예 무시해버리고 새로운 기분으로 이 영화를 봤다. 사실 내 기억력은 하루가 빠르게 그 감퇴 속도가 가속도를 더해가고 있다. 지금도 이러니 애라도 낳고 나면 어떨까 주변에서 걱정이 대단하다. 쩝..

조쉬 하트넷, 딱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해본적은 없다. 그냥 뭐 괜찮네.. 정도였달까? 근데 왜 이렇게 살이 빠진걸까. 너무 수척해보이니 눈보라 휘날리는 그 을씨년스런 공원 광장에서 혼자 오지 않는 여자 친구를 기다릴때는 내 뼈마디가 다 시려운듯 했다. 아무래도 이 영화에서 조쉬.. 이 남정네가 가장 돋보였던 장면은 상처받고 눈물 흘리던 장면이 아닐까 한다. 아무런 이유도 듣지 못한채 연인에게 버림받은 한 마음 여린 남자의 울분 그리고 눈물. 나는 남자가, 저렇게 울 때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다. 엉엉 소리내어 우는것이 아니라 그 울음 소리를 꾸역꾸역 밀어넣으며 눈물을 줄줄 흘리는 모습. 사실, 그게 조쉬 하트넷이니 멋진게 아니냐고 한다면.. 음.. 그런것도 같다. -_-;;;

이런, 구두 이야기를 아직도 하지 않았군. 쿨럭..

구두는 그러니까 이 둘을 엮어주는 매개체가 된다. 주인공은 구두 가게에서 서로 처음 대화를 나누고 또 만날 약속을 잡는다. 그것도 구두 상자에 메모를 전해서. 난 이 여자가 구두를 신겨달라며 발을 쭉 뻗어 남자 무릎에 올릴때 마치 내가 그남자라도 되는냥 흠칫 놀래서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주책인거 안다. ㅠ.ㅜ) 여자는 빨간 바닥이 보이는 검은 힐을 고른다. 멋쟁이들은 구두 하나를 고르더라도 그냥 고르지 않는다. 그 누군가 패션은 구두에서 완성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구두도 이런저런 것 다 보고 바닥의 색깔또한 잊지 않는다. 걸을때 보이는 구두의 바닥이야말로 진정 패션의 완성이라 할 수 있으므로.

헤어지고, 또 다시 만나게 되는데 구두는 정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왜 그런지 다 말하면 영화보는 재미가 없어질테니 이쯤에서 접는게 좋겠다.  둘의 만남을 기념하는 이 특별한 구두. *^^* 말안한다고 해놓고 다 말해버렸군. 흠.. 뭐 원작도 있는 영화인데 크게 문제될것이 없겠지? 호호.. 여하튼 구두가 사랑의 메신저가 된다니 좋군.

영화는 주인공이란 것이 명확하게 있다. 하지만 가끔은 그게 싫고 불편할 때도 있다. 바로 이런 관계에서 누군가 하나는 계속 바깥에 머물게 된다. 누구의 시각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느냐에 달린 문제이지만 나는 그래도 그 바깥의 여자, 그 여자의 심리가 조금 더 드러났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났다.

그리고, 영화의 교훈은 이거다.

자기의 일은 스스로 하자!

기다리겠다는 말, 많이 사랑하고, 그립다는 말 등 매우 중요한 말이 담긴, 그 시점에서 정말 이것 하나로 인연이 왔다갔다 하는 일을 절대 다른 사람 손에 맡겨서는 안된다! 중요한 일일수록 스스로 하자!

# 혹시 자기랑도 잘 안될거 알면서 심술나서 누군가의 관계를 억지로 끊어놓으려 하는 사람, 웬만하면 그러지 말기를 바란다. 역경이 닥쳐올수록 사랑은 더 돈독해지는 법. 공연히 사랑을 더욱 뜨겁게 불타오르게 하는 격이 된다. 내 밥이 안될거 같다고 남의 밥에 돌 심어놓으면 곤란하다는 말씀.

 ## 난, 그 공원의 핫도그 가게에서 핫도그 하나와 뜨신 커피 한 잔을 먹고 싶었다.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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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5-10-24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의 일은 스스로 하자~ 알아서 척척척 스스로 어린이~
이거 무슨 학습지 광고 씨엠송이 떠오르는군요 ㅎㅎ
라빠르망, 무지 분위기 있는 영환데, 모니카 벨루치가 그저 황급히 공중전화 박스에서 나오는 장면만 떠오릅니다...-_-;

이리스 2005-10-24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도 그 씨엠송을 따라부르며 같이 본 동행에게 저 말을 해줬어요. ㅋㅋ
<라빠르망>도 근시일내에 다시 보고 싶네요. ^.^
 

<그녀는 요술쟁이> 이거 너무 기대를 하고 봐서인가?

생각보다 너무 재미없었다.

사실 니콜 키드먼의 매력에 넘어가 이 영화를 골랐건만 뭐 그냥 그랬다.

또한 남자 배우가 멋져야 영화가 빛나거늘(나에게는!!) 그것도 전혀 아니올시다였고.

오히려 이 영화에서 멋진 사람들이란 니콜 키드먼의 아버지가 아닐까 싶다.

그 능글맞으면서도 매너 좋은, 게다가 딸까지 염려하는 바람둥이 아버지라니!!

아무데서나 불쑥불쑥 나타나 니콜을 놀래키는 모습이 참 재밌다.

그리고 내가 요술쟁이가 되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더 재미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요령피우며 -.- 사는게 사실 더 재미없지 않나?

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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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9-18 14: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옛날 미국 드라마였잖아요. 전 그때 본 기억이 있어요^^

마늘빵 2005-09-18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하나 보셨네요? ㅋㅋ

이리스 2005-09-18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님 / 오오, 예전에 보셨군요. 영화에서도 드라마 장면이 계속 나와요.
아프락사스님 / ㅠ.ㅜ

panda78 2005-09-18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TV에서도 해 줘요. 그녀는 요술쟁이.. ^^;; 근데 그 남자 배우는 대런 역 했던 옛날 배우랑 닮아서 캐스팅 된 거 아니었어요? 영 매력없긴 하더라구요.

이리스 2005-09-18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그렇군요. 하지만 별로 보고싶지 않아졌어요. 웅...
매력이 없다못해 볼때마다 화가나요. >.<
 


<웰컴 투 동막골>은 눈부신 스코어를 장식하며 극장가를 휩쓸고 있다. 장진이 제작한 이 영화는 장진이 감독을 맡은 <박수칠 때 떠나라>와 함께 나란히 1, 2위를 차지하며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개봉을 앞두고 집중 조명을 받았던 <친절한 금자씨>는 이제 국내 박스오피스 10위권에서도 물러남으로써 조금은 쓸쓸하게 물러났다. 결국... 친절한 금자씨는 박수칠 때 동막골로 떠난 셈이다. 금자씨가 이렇게 맥없이 물러날 줄 몰랐던 사람들도 또한 그럴거라 여겼던 사람들도 있겠지만 박찬욱 감독에 대한 믿음이 있었던 나로서는 어쩐지 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 없다. 사실 나는 아직 <웰컴 투 동막골>을 보지 못했다.

주변의 누군가는, 이 영화가 내가 보면 딱 좋아할 영화라면서 아직도 안봤다고 하니 빨리 가서 보라고 성화다.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 개봉 타이밍을 놓친지 오래라서인지는 몰라도 가서 보고 싶은 마음이 불같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자꾸만 이런 저런 핑계를 대가면서 극장에 가지 않는 것이다. -_-;

<친절한 금자씨> 시사회를 마감 때문에 놓치고 결국 개봉 첫날 극장에 가서 봤는데, 보고 나서는 입이 쑥 나와서 계속 투덜거렸다. 이미지를 마음껏 주무른것은 좋았으나 그것의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고 봤기 때문이었다. 지나친 기대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주변의 의견은 딱 반으로 나뉘었다. 기대 이하다, 역시 박찬욱이다.. 이렇게.

허진호 감독의 <외출>에 대한 반응도(내 귀에 들어온것에 한해) 별로 좋지는 않다.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본 사람들의 평이 그렇다는 말이다. 일단 배용준, 손예진은 내가 전혀 호감을 갖고 있지 않은 배우들이다. <봄날은 간다>를 10번 이상 본 나로서는, 허진호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들의 캐스팅이 꽤나 못마땅했고 그러던 와중에 들려오는 평도 좋지 않자 샘통이다.. 하는 생각과 동시에 --; 아쉬운 마음이 크다. 

<외출>마저.. 곧바로 정말 극장가에서 외출해버리면.. 에휴..

두 감독에 대한 이 큰 섭섭함은 뭘로 채울꼬.

# 난 장진의 똘망똘망함을 존중한다. 하지만 그 안에서 마음놓고 감탄하고 즐기지는 못한다. 어딘지 모르게 불편하고 그것은 영화에 몰입하려는 데 대체로 방해가 된다. 

아래는 지난 주 국내박스오피스 분석 기사 중 일부 발췌한 것이다. (출처 - 맥스무비 )

'올 초 극장가의 관심사는 온통 <말아톤>에 집중되었다. 실존 인물에 대한 감동 이야기인데다 ‘조승우’의 열연에 의해 극장가는 사람들이 붐비었다. 그러나 지금은 온통 <웰컴 투 동막골>이야기뿐이다. 개봉 이후 각종 기록들을 교체하더니 결국은 장거리의 <말아톤>을 단 4주 만에 주파하며 4주 연속 1위를 지켜나갔다. 영화관계자의 말을 인용하면 <말아톤>의 최종집계는 518만 명, 하지만 <웰컴 투 동막골>은 개봉 24일째인 8월 27일에 529만 명을 넘어서 ‘올해 최고의 흥행작’으로 등극하였다.

<말아톤>이 8주 개봉 만에 518만 명의 기록을 세운 반면 <웰컴 투 동막골>은 4주도 채 되지 않아 <말아톤>의 기록을 넘어선 것이다. 더군다나 <웰컴 투 동막골>의 ‘예매점유율’은 30일 16시를 기준으로 50.85%라는 기록으로 2위인 <박수칠 때 떠나라>의 15.33%의 세 배 이상의 차이를 보이며 꾸준히 상승가도를 달리고 있다. 이런 추세를 추석까지 이어간다면 ‘전국관객 천만’이란 목표가 ‘일장춘몽’이 아닌 ‘Dream’s Come True’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한 영화에 관객이 몰리는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이도 있다.

2주 연속 2위를 차지했던 <박수칠 때 떠나라>는 3주 째도 굳건히 2위의 자리를 지켰다.
<웰컴 투 동막골>의 독주와 기대작들의 개봉 속에서 <박수칠 때 떠나라>는 고군분투하며 ‘2위 행진’을 한 주 더 이어나갔다. '

이범수표 ‘불량 코미디’ <이대로, 죽을 순 없다>는 2위를 노렸지만 <박수칠 때 떠나라>의‘건재함(?)’에 눌려 2주 연속 3위를 차지하였다. ‘서울관객’에서는 5위, ‘지방관객’에서는 3위를 차지함으로 <이대로, 죽을 순 없다>는 ‘코미디 영화는 지방에서 강하다’는 속설(?)을 증명하였다.

상위 1~3위를 한국영화가 독식하였다면 4~6위까지는 할리우드 영화가 차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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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05-08-30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들리는 바에 의하면 금자씨가 박수칠 때 낡은 구두를 신고 동막골로 떠났다지요? ^^

이리스 2005-08-30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하하하~ ㅋㅋ
 



프랑스에서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펭귄>.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는 큰 반응을 얻지 못해 극장에 걸리자마자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내려와버렸다. 프랑스에서만 450개의 스크린을 확보하고 관객 200만명을 동원하는 기염을 토해냈던 작품인데..  내셔널 지오그래픽과 워너브러더스의 미국 배급이 결정되면서 더 큰 화제를 낳았다고 하니 많은 사람들이 보게될 것이다.

사실 펭귄은 우리에게 그저 우스운 농담속에 나오는 대상이거나 귀여운 만화 캐릭터 정도? 뒤뚱뒤뚱 걷는 모습이 우습다는 이유때문일 것이다. 실제 영화에서도 이들은 엄청난 거리를 걷고 또 미끄러지며 이동한다. 온통 하얀 남극의 거대한 얼음 위에서 펭귄의 무리들이 걸어서 이동하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그 실루엣만 보면 마치 사람들 같다.

이들이 한 쌍을 이루어 서로 짝직기를 하는 과정은 참으로 아름답다. 암컷이 알을 낳기까지 이들은 함께 하고 알을 낳고 난 암컷은 알을 수컷에게 맡기고 허기를 채우고 아이에게 먹일것을 가져오기 위해 바다로 사냥을 나선다. 암컷이 돌아오기까지 장장 4개월 동안 수컷은 알을 지키고 보호하며 매서운 눈보라와 추위에서 암컷을 기다린다. 암컷은 사냥 중에 천적인 바다 표범 등에게 잡아 먹히기도 한다. 추위를 이기지 못한 수컷은 암컷을 기다리다 새끼와 함께 얼어죽기도 한다.

암컷은 돌아오자마자 자신의 몸 안에 넣어온 먹이를 입을 벌려 아기 펭귄에게 먹인다. 아기 펭귄이 추위를 이기고 혼자 지낼 수 있을때까지 다시 암컷이 이들을 품어 돌본다. 4개월을 기다린 수컷 펭귄은 먹을 것을 먹고 또 아이에게 줄 것을 가져오기 위해 바다로 떠난다.

간혹 어떤 아기 펭귄은 무리 중에서 엄마를 잃게 되어 추위에 노출되어 얼어죽기도 한다. 제 새끼를 잃은 어미 펭귄은 아주 슬프게 운다. 그리고는 돌발 행동을 하기도 하는데.. 다른 어미의 새끼를 뺏으려고 난동을 부리기도 한다. 휴... 새끼들은 도둑갈매기의 공격으로 잡아먹히게 되기도 한다.

다리 아래 주머니 속에 새끼를 품은 펭귄 엄마와 아빠는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아이가 커서 혼자 독립할 수 있게 되면 엄마와 아빠는 헤어진다. 헤어지는 장면마저도 참으로 멋지다. 자식을 위해 목숨을 걸고 혼신의 힘을 다하는 펭귄 엄마와 아빠의 모습. 동물의 타고난 본능이라 하더라도 이것은 충분히 감동적이다.

이 다큐멘터리를 찍기 위해서 스텝들은 펭귄이 그들을 가족이라 여길정도로 -.- 그들과 거의 함께 생활했다고 한다. 아기 펭귄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최대한 근접 촬영 하기 위해 카메라에 스케이트를 장착했다고도 하니 이들의 노고가 미루어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아, 정말이지 이렇게 순수하게 연출 없이 다큐멘터리 작업 하시는 분들은 언제나 존경스럽다.

(다행히 내가 입수한 정보로는 촬영중 사고를 당한 스텝은 없는 것 같아서 그나마 마음이 편하다.)

# 1. 문득, 추악한 인간의 모습이 저들이 순수한 모습에 오버랩되면서.. 부끄러워졌다. 짐승만도 못한놈이 그렇게 큰 욕도 아닌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대체로 짐승만도 못한점이... 생각해보니 참 많았다. 반성하자!

2. 더불어 미래의 내 아이에 대한 상상을 해보았다. 므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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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5-08-28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런건 어디서 개봉하나요? 아님 비디오? 티비?

이리스 2005-08-28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게 아마도 거의 극장에서 내려오지 않았나 싶은데요. -.-
조금 기다리시면 디비디로 출시될것 같아요.

2005-08-29 1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