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받아 죄송합니다
[조선일보 2006-04-20 03:23]    

공연 ‘초대권’ 관객 1142만명… 유료관객 991만명 앞질러
잘나갔던 ‘노트르담 드 파리’도 알고보니 26%가 공짜 손님
“자리 채우려면 어쩔 수 없어” “시장 스스로 축소시켜” 논란도

[조선일보 김성현기자, 박돈규기자]

지난 2월 막 내린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뮤지컬 대작(大作)이 격돌한 올해 초에 수익을 거둔, 몇 안 되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이 작품이 기록한 성적표도 실상은 초라했다. 전체 관객은 9만6035명. 이 가운데 2만4188명(26%)은 초대권을 갖고 들어온 ‘공짜 손님’이었다. 14만4000여 석을 팔아야 했던 전체 48회 공연 가운데, 돈을 내고 입장한 유료객석 점유율은 50%에 그쳤다. 팔아야 할 좌석 가운데 절반만 판매된 것이다.


지난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소프라노 바바라 헨드릭스의 재즈 콘서트. 관객 200여명이 초대권을 받고서도 공연장에 입장하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이 공연의 티켓을 사전에 구입한 관객은 불과 74명. 당초 예상보다 티켓 판매율이 너무 떨어지자 공연 주최측은 초대권을 외부 협찬사와 인권 단체 회원들에게 뿌렸고, 결국 초대권을 좌석과 교환하지 못한 관객들이 발길을 돌려야 했다.


두 사례는 2006년 한국 공연계를 둘러싸고 있는 고민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뿌리 깊은 ‘초대권 문화’다.

문화관광부가 지난 2월 발표한 ‘2005년 공연예술 실태조사’를 보면, 2004년의 경우 클래식·뮤지컬·연극·국악·대중 가요까지 공연장을 찾은 총 관객 가운데 무료 관객이 1142만명으로, 유료 관객(991만명)을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소문으로만 나돌았던 우리 공연계의 급소를 들춰낸 자료였다. 실제 공연 업계에서도 “아무리 인기가 높은 공연이라도 보통 좌석의 20% 안팎은 초대권 관객”이라고 말한다.

초대권이 공연계에 ‘독(毒)’이 되고 있는지, ‘약(藥)’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객석에 손님은 자신뿐이라는 걸 확인한 관객이 배우들에게 “그만 하시고 소주나 한잔 하러 갑시다”라고 권했다는 말이 전설처럼 남아 있는 대학로 연극 동네. 극소수 히트작을 빼면, 극장을 찾은 관객 두 명 중 하나는 ‘초대 관객’이라는 게 정설이다.

공연기획사 이다의 오현실 대표는 “그렇게라도 객석을 채우지 않으면 배우들의 사기가 떨어지고 공연을 못하는 상황까지 벌어질 수 있다. 포스터 말고는 입소문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초대 마케팅’은 필요악”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초대권은 장기적으로 유료 관객을 늘리고 공연 시장을 키우는 데 도움이 안 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지난 2000년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서 문을 연 LG아트센터. 개관 6년 만에 ‘초대권 없는 공연장’이라는 이미지를 굳혔다. 이현정 공연기획팀장은 “개관 1~2년까지는 저항이 심했다. 국회의원부터 정부 공무원까지 관행적으로 표를 요청했다”며 “공연장 운영 자체가 어려울 것 같아 고민 끝에 ‘초대권은 없다’고 선언했는데, 관객의 집중력도 높아지고 다른 극장과의 차별성이 뚜렷해졌다”고 했다.

최근 정부가 일정 비율을 넘는 초대권에 대해서는 기업 접대비로 간주해 중과세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공연계의 초대권 논란은 가속화하고 있다. 음악 칼럼니스트 정준호씨는 “불법 음악 파일에 길들여지면 돈을 내고 음원(音源)을 구입하려 하지 않는 것처럼, 관객들이 초대권에만 익숙해지면 자칫 유료 관객 부재(不在)와 공연 시장 축소라는 악순환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성현기자 [ danpa.chosun.com])

(박돈규기자 [ coeur.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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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스 2006-04-20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돈내고 영화보고, 공연보는 기자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는... 이야긴데.. 쿨럭~

2006-04-20 12: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리스 2006-04-20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 오호~ 그렇군요. *^^*
 

꽃피는 오월…대학로도 꽃핀다
[조선일보 2006-04-20 03:23]    

미리 보는 서울연극제

[조선일보 박돈규기자]

연극 ‘숙희, 돌아오다’를 보고 ‘닭집에 갔었다’. ‘엠뻬르 리베라’와 ‘아름다운 남자’가 ‘줄리엣을 위한 바이올린 소곡’을 연주했다. ‘리어왕’과 ‘지상의 모든 밤들’을 ‘여행’하며 ‘달의 소리’를 듣고 싶어졌다.

올해 서울연극제(5월 2~21일 아르코예술극장, 서강대 메리홀 등) 공식참가작 9편의 제목으로 만든 문장들이다. 제목은 드라마를 압축하고 드라마는 시대상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요즘 연극계의 관심을 읽을 수 있다. 극단 성시어터라인의 ‘숙희, 돌아오다’(김성제 작·연출)는 아버지를 찾고 싶어 20년 만에 귀국한 숙희가 주인공이다. 그녀에겐 정신장애자인 스물한 살 딸과 6개월 된 혼혈 아들이 딸려 있다. 극단 오늘의 ‘닭집에 갔었다’(강은경 작·위성신 연출)는 남편을 지하철 사고로 잃은 것도 억울한데 아들마저 살해 용의자로 몰리게 된 닭집 주인 제천댁의 이야기다.

극단 가변의 ‘엠뻬르 리베라’(연출 송형종)는 유명한 스페인 배우 엔리케 리베라의 여동생 엠뻬르에 초점을 맞춘다. 외로움과 질투 같은 감정을 중심으로 현대인의 삶을 해부하는 번역극. 연희단거리패의 ‘아름다운 남자’(이윤택 작·남미정 연출)는 고려시대의 세 학승(學僧)이 혼돈의 세상을 어떻게 건너갔는지 보여주고, 극단 작예모의 ‘줄리엣을…’은 죽은 로미오와 줄리엣이 물리학자 아인슈타인과 발레리나 이사도라 던컨 등을 만나는 코미디다.

올해 30주년을 맞은 극단76단은 황우석 사건 등 인간의 오만함을 ‘리어왕’(연출 기국서)으로 비판한다. 염소·노새 같은 가축도 등장시킬 계획이다. 극단 죽죽의 ‘지상의 모든 밤들’(김낙형 작·연출)은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업소 아가씨들을 추적한다. 극단 파티는 친구의 장례식장에 간 40대 남자들의 허허롭고 흔들리는 모습을 작품 ‘여행’(윤영선 작·이성열 연출·사진)에 담았다. 극단 풍경의 ‘달의 소리’(김명화 작·박정희 연출)는 음악으로 세상을 견딘 마한(馬韓)의 악사들을 불러내는 시대극이다.


올해 축제 슬로건은 ‘함께 즐기는 기쁨’. 그러나 18일 밤 대학로에서 열린 기자간담회 자리는 침통하게 시작됐다. 집행위원장을 맡은 평론가 한상철씨가 “연극이 존망의 위기에 처했다. 관객이 없어서가 아니라 연극하는 사람들의 의식이 그렇다”고 개탄했기 때문. 90년대까지 수작을 내놓다 침체에 빠졌던 서울연극제가 올해는 긍정적인 예감을 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아르코예술극장 앞에서는 월간 한국연극 30주년을 기념해 책을 열람하며 차를 마실 수 있는 카페가 운영된다.

(박돈규기자 [ coeur.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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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스 2006-04-20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전히 연극, 하면 떠오르는 것은 궁핍 이라는 단어다...
 

“편집자 집요함 꼼꼼함 없으면 책도 없다”
[한겨레 2006-04-19 23:18]    

[한겨레] 지은이들이 편집자 위해 마련한 ‘특별한 출판기념회’

“이진경 선생님 원고를 읽는데 문장 하나가 두가지 뜻으로 읽히는 게 있었어요. 저 혼자 1시간 넘게 낑낑대고 고민하다가 늦은 밤인데도 불구하고 전화를 드려서 무슨 뜻인지 물었어요. 그랬더니 선생님이 ‘응, 그거 그냥 빼버려’ 하시는 거에요. 어찌나 허탈하던지….”

18일 저녁 7시, 종묘 뒷담 골목속 자리잡은 ‘연구공간 수유+너머’ 강의실. 출판사 그린비의 김현경 편집주간의 이야기에 청중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옆에 앉은 지은이 이진경 교수도 함께 웃었다. 하지만 웃음을 자아내는 이 이야기속에는 편집자들의 집요함과 고생스러움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편집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아니, 편집자는 어떤 사람들인가?

책을 직업적으로 접하는 이들이 아니라면 일반 독자들에게조차 편집자는 낯선 존재들이다. 그 이름은 책의 앞이나 맨뒷장 서지사항속 조그맣게 ‘편집 아무개’라고만 적힐 뿐이다. 그나마 요즘에는 이마저도 적지 않기도 한다. 그만큼 편집자는 뒤로 숨는다.

하지만 책에 있어서 편집자의 존재는 저자 못잖다. 때로는 저자 이상일 때도 있다.

지은이가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면 그 원고를 읽기 좋게 가다듬고, 보기좋게 모양새를 잡고, 그리고 제목을 다는 것. 이 모든 것이 편집자의 몫이다. 오탈자를 잡는 교열, 교정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는 기본 일거리다.

책 자체를 기획해서 걸맞는 저자를 선정할 경우 그 책은 저자의 것이기 이전에 편집자의 것이다. 걸출한 편집자는 세상을 제대로 읽고, 그런 세상 흐름을 반영하는 책을 기획한다. 책이란 것에는 오롯이 지은이의 창의성과 노력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지은이의 책’이 있는가 하면, 출판사 대표가 탁월한 교섭력을 발휘해서 유명한 필자와 출판계약을 따내 성공하는 ‘펴낸이의 책’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 ‘편집자의 책’이 있다. 꼼꼼한 편집과 세밀한 정성으로 만들어내는 책이다. 처음 책을 접어들 때는 알아차리가 어렵지만, 읽고나면 독자들이 가려워하는 곳을 긁어주듯 다양한 배려를 담뿍 담아놓은 책. 바로 그런 책들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출판계의 주인공들인 편집자들은 관심의 바깥에 있다. 책이 성공하면 관심은 온통 지은이에게 쏠리기 마련이다. 책이 성공하면 벌어들인 수익은 출판사로 돌아간다. 그 사이에서 편집자들은 분명 ‘푸대접’을 받고 있다. 아무리 눈밝은 독자라도 편집자까지 확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좋은 책의 뒤에는 반드시 편집자가 있다. 다만 드러나지 않을뿐이다. 편집자들은 조용히 책 뒤에서 책의 성공에 감격하고, 책의 실패에 눈물흘린다.

18일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열린 출판기념회는 그런 점에서 무척이나 특별한 출판기념회였다. 이날 출판기념회는 이진경 서울산업대 교수의 새 책 <미래의 맑스주의>(그린비 펴냄)와, 인문학 연구자 고미숙씨의 책 <나비와 전사>(휴머니스트 펴냄) 출판기념회로, 두 사람이 함께 몸담고 있는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마련한 자리였다. 출판기념회라고 하면 으레 지은이가 평소 친한 이들에게 익숙한 감사말을 하며 식사를 대접하는 모습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이날 출판기념회는 달랐다. 두 책을 편집한 편집자들인 김현경 그린비 편집주간과 선완규 휴머니스트 편집주간이 함께 주인공으로 참석했다. 지은이 두 사람이 “나는 이렇게 책을 썼다”고 설명하고, 편집자 두 사람이 “나는 이 책을 이렇게 만들었다”고 설명하는 출판기념회였다. 책의 숨은 주인공 편집자가 전면에 나섰다는 점에서 보기 드문 출판기념회였다. 실제 이날 출판기념회의 진정한 주인공은 두 편집자였다. 그리고 편집자는 무엇으로 사는지, 그리고 어떤 존재들인지를 청중들에게 보여주었다.

첫 발표자는 <미래의 맑스주의>를 쓴 이진경 교수. 이 교수는 “사회주의 붕괴 이후의 마르크스주의와 혁명을 어떻게 다시 사유할 것인지, 그리고 마르크스의 기본 가정들이 될 공리들을 다시 살펴보고 마르크스주의의 경계를 넘어섬으로써 그 경계선을 확장시켜 보려했다”고 책의 집필 취지를 설명했다. 그리고 ‘휴머니즘’에 대해 도발적인 문제제기를 했다. “휴머니즘이란 것은 무서운 것, 끔찍한 것이다. 인간이 존엄한만큼 인간이 아닌 모든 것의 존엄함이 망각될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에서도 나타나는 휴머니즘의 이런 지점들을 넘어보려 했다.”

이는 곧 새로운 세상의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재정의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이 교수는 설명했다. 미래사회 등장할 로봇이 인간이란 주인에게 지배받고 존엄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프롤레타리아트라고 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인간을 위해 실험되고 희생되며 착취당하는 동식물들도 마찬가지로 넓은 의미, 새로운 의미의 프롤레타리아트란 것이다.

이 책을 편집한 김현경 주간은 “편집자가 만나는 책에는 크게 두가지가 있는 것같다”는 말로 발표를 시작했다. 하나는 ‘편집자가 저자의 원고에 깊숙이 개입해 전체 구성부터 세세한 원고 배치와 부속물까지 함께 만들어 나가는 책’, 또다른 하나는 ‘구성과 내용에 깊이 관여하기보다는 그 원고의 내용을 어떻게 하면 독자들에게 정확하고 보기 쉽게 전달해줄까에 초점을 맞추는 책’이라는 것이다. 고미숙씨의 책 <나비와 전사>가 전자에 가깝다면, 자신이 편집한 이진경 교수의 <미래의 맑스주의>는 후자에 가까운 책으로 정의했다.

김 주간은 <미래의 맑스주의>가 쉽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스타일의 글이 아니기 때문에 조금아라도 더 많은 독자들과 만나게 하기 위해 여러가지 신경을 썼다고 밝혔다. 그가 밝힌 다음 네가지 편집적 연출은 10년 이상 편집에 종사한 베테랑이 책을 만드는 요령이란 점에서 후배 편집자들이 귀담아들을만한 ‘노하우’이기도 했다.

우선 원래 원고의 각주에는 인용주와 내용주의 두가지 종류가 있었는데, 내용주는 본문을 이해하는 데 필요했기 때문에 각주처리를 했고, 인용주는 시선을 분산시켜 읽어나가는 흐름을 방해할 우려가 있어 후주처리를 했다고 한다.

두번째로는 앞으로 이 책이 연구자들에게 필요하게 될 것이라고 보아 저자 원고에 따로 정리되어 있지 않던 참고문헌 목록을 인용주들과 본문에 언급된 책들 모두를 뽑아 정리해 뒤편에 실었다고 한다.

세번째로는 이 책이 저자의 사유를 집중해서 따라 읽어가는 것이 좋다고 보아 본문 안에 그림을 따로 배치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림이 너무 없으면 독자들이 책에 담긴 강한 사유를 쉴틈없이 맞닥뜨려야하기 때문에 쉴 여유공간을 두려고 각 장의 시작 부분에 그림을 넣고 각장의 문제의식을 관통하는 문장을 지은이에게 부탁해 수록했다.

네번째는 정확한 정보전달을 위해 책 본문에서 인용하는 책들을 모두 구입 내지 입수해서 모든 인용구를 대조했다고 한다.

이날 이 네번째, 책 본문에 인용되는 모든 책을 실제 구입내지 입수해 대조했다는 대목은 청중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편집자가 얼마나 꼼꼼하고 수고스러운 일을 하는지 극명하게 보여준 작업이기 때문이다. 김 주간은 인용되는 책들 가운데에는 절판된 것들도 많아 온 출판사 직원들의 친구며 후배며 동생을 동원해 각 대학 도서관을 샅샅이 훑었다고 한다. 김 주간은 “책을 기획하는 것은 무척이나 즐거운 일이지만, 교열과 교정은 고된 노동이자 글자 하나, 문구 하나하나와 대결하는 전쟁”이라고 비유하고, “좋은 원고를 만나면 고정교열이란 노동은 어느새 나 자신을 다른 것으로 변화시키는 마주침과 생기넘치는 활동이 된다”고 말했다. “더 많은 불온한 사유와 만나 그것을 독자들이 가장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의 형태로 만들어내는 일, 그것이 바로 편집자로서의 제 꿈이고, 역할이고 행복입니다.”(당연히 터져나오는 청중들의 박수)

다음은 또다른 책 <나비와 전사>의 지은이 고미숙씨의 차례였다.

고씨는 책의 편집자 선완규 주간의 ‘지독함’을 ‘까발리는 것’으로 감사의 말을 대신했다. “선완규 주간은 지금까지 내가 만난 사람 가운데 가장 집요하게 물고늘어지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내가 안보낸 원고도 자기가 입수해서 밑그림을 그려서 보내줘요. 원고를 보내주고 나면, ‘이 부분은 에전 선생님이 쓴 다른 글과 비슷하다’며 일일이 다 지적해서 다시 연락이 와요. 그러니 이러이러한 내용을 덧붙여 달라, 여긴 이러면 좋겠다… 그런 주문이 이어지는거지. 그래서 원래 1500매였던 원고가 2000매로 늘어났어요.”

고씨로부터 ‘집요한 편집자’란 애정어린 힐난을 듣고 발표에 나선 선 주간의 설명은 고씨의 말이 오히려 선씨의 집요함을 덜 표현한 것임을 느끼게 만들 정도였다.

선 주간은 이 책 <나비와 전사>가 “5년을 기다린 끝에 나온 책”이라고 설명해다. 그리고 2001년 6월12일자로 작성한 애초 출판기획안을 직접 가져와 이번 기획안과 함께 보여주기도 했다. 선 주간이 이 책을 기획했던 것은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열린 고씨의 강연을 들었던 것이 계기였다고 한다. 당시 ‘한국의 근대성’이란 주제의 강연을 듣고 책으로 펴내면 좋겠다고 느낀 고씨가 강의안을 토대로 기획안을 작성해 고씨에게 보냈고, 책을 펴내기로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이후 고씨의 바쁜 일정 때문에 책 출판은 계속 늦춰졌다고 한다.

책을 편집하는 과정에서 선 주간은 원래 강의때 고씨가 한 말들을 꼼꼼히 기록해두었던 것을 활용해 원고에 빠진 내용이 있으면 연락해서 집어넣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역시 이 대목에서 청중들 박수.

선 주간은 “책은 어느 한 사람의 땀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으로 발표를 마쳤다.

지식인들이 책을 써 새로운 지식과 담론을 생산할 때 가장 중요한 파트너가 바로 편집자들임에도 불구하고 그 역할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점 때문에 두 편집자 모두 이날 행사에 자신을 초청한 연구공간 수유쪽에 무척이나 감사하다는 뜻을 밝혔다. 사실 이처럼 저자와 편집자가 함께 책을 설명하는 행사를 기획할 수 있었던 것은 연구공간 수유만의 성향탓일 것이다. ‘대학’으로 대표되는 기성 아카데미즘에 반기를 들고 도발적이고 새로운 사유의 모험을 떠난 젊은 연구자들의 코뮨이자, 가장 왕성하게 대중적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펴내는 저술가들이 대거 참여한 수유이기 때문에 가능한 기획이었다.

고병권 수유 대표는 “올해는 수유의 여러 회원들의 책이 그 어느 해보다도 많이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이 책들이 과연 어떤 편집자들과 만나 대중들의 곁으로 다가갈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글·사진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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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스 2006-04-20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알라딘 서재 주인장들께서는 '편집자가 뭐하는 사람이지?' 라고 하시진 않으시리라 바라며.. --;

라주미힌 2006-04-20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빡센 작업이군요 ^^;

해적오리 2006-04-20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편집자들의 역할을 막연하게만 알았었는데, 참 대단하네요. 그냥 감탄만 나올뿐..

이리스 2006-04-20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주미힌님 / 그러게요.. ^^;;
날나리님 / ^.^
 

NHK ‘외딴방’을 찾다… 한국 작가로는 첫 신경숙 특집
[동아일보 2006-04-20 04:15]    
[동아일보]

소설가 신경숙(43·사진) 씨가 일본의 대표적인 서평 프로그램인 NHK위성2채널 ‘주간 북리뷰’에 출연한다. 이 프로그램에서 한국 작가가 소개되기는 처음이다. 아시아 작가 중에서는 ‘붉은 수수밭’을 쓴 중국 작가 모옌(莫言)이 1996년 인터뷰한 이후 두 번째다. 신 씨가 ‘주간 북리뷰’에 출연한 것은 지난해 6월 일본 슈에이샤(集英社)에서 장편소설 ‘외딴 방’이 출간된 것이 계기가 됐다.

NHK 제작진은 19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신 씨의 자택을 방문해 녹화를 진행했다. 대담자는 이 프로그램의 진행자인 작가 오사다 나기사 씨. 오사다 씨는 신 씨에게 작품의 전반적인 내용에 대해 물어보는 한편 1990년대 이후 한국 문학의 변화가 어디에서 왔는지 등 한국 소설의 흐름에 대해서도 질문했다.

신 씨는 ‘외딴 방’에 대해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본에 소개된 한국문학은 분단문학이나 4·19세대 문학에 멈춰 있다면서 “한국 소설의 다양한 변화가 일본에 잘 알려지지 않아 아쉽다”고 밝혔다.

신 씨는 올해부터 일본 작가 쓰시마 요코와 함께 양국의 문예월간지 ‘현대문학’과 ‘스바루(すばる)’에 교환 편지 에세이를 연재하고 있다. 이날 대담에서 에세이 얘기가 나오자 신 씨는 “서로의 개인적인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일 양국 사회의 모습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변화가 문학의 힘”이라며 “문학적 교류는 영상이나 드라마보다 깊이 있는 사귐을 가능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외딴 방’은 1980년대 서울 구로공단의 한 전자업체 ‘여공’으로 일하면서 문학의 꿈을 키웠던 신 씨의 10대 체험을 담은 자전소설이다. 이 프로그램은 일본에서 5월 7일 방영된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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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스 2006-04-20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깊은 슬픔> 개정판이 나오더니...
 

여성작가들이 펼친 유쾌한 콩트
[오마이뉴스 2006-04-18 15:56]    
[오마이뉴스 위창남 기자]
 
▲ 겉그림
ⓒ2006 정음
사랑과 결혼에 대한 유쾌한 상상이란 부제가 붙은 <저 마누라를 어쩌지?>(정음). 책을 펼치니 날개 부분에 작가들 이름이 있다. 그 중에 무게감이 느껴지는 작가도 보인다.

곽의진, 구혜영, 김이연, 김정례, 김지연, 김지원, 김채원, 김향숙, 노수민, 노순자, 박완서, 서영은, 안혜숙, 오정희, 우선덕, 유안진, 이경자 이렇듯 17명의 작가들이 채 5페이지가 되지 않는 두 편씩의 짧은 단편을 실어 총 34작품을 맛볼 수 있는 책이다.

여성작가들이 펼친 유쾌한 콩트 같기도 한데, 콩트라고 해서 가벼운 듯하지만 그 안엔 삶이 있고 눈물과 감동이 있으며 용서가 있고 작은 반란도 있다. 작가들의 힘인지 보는 재미도 의외로 쏠쏠하다.

여자에게 나이란 어떤 것일까? 여자는 나이와 함께 아름다워 진다는 말도 있지만 늙으나 젊으나 한 살이라도 젊게 보이고 싶은 것이 모든 여자의 마음일 것이다. ‘여자의 나이’를 쓴 김지원은 그런 여자의 속성을 여성 작가의 눈으로 살며시 그리고 예쁘게 풀어나갔다.

마흔이 되어서야 문단에 등장해 중년여성 특유의 섬세하고 현실적인 감각으로 사소한 일상과 인간관계를 안정된 감각으로 풀어 나가는 작가 박완서는 ‘궁합’과 달나라의 꿈’을 실었다.

▲ ‘궁합’과 달나라의 꿈’을 쓴 박완서
ⓒ2006 위창남
누구라도 생각지도 않던 돈이 갑자기 생기면 무슨 횡재라도 한 기분이 된다. 중견 여류 작가 우선덕의 ‘보물찾기’에서는 그런 돈을 발견한 주인공이 남편이 몰래 비상금을 숨겨 두었을 것이라 생각해 괜스레 부아가 치민다. 또 있을까 해서 이리저리 뒤져 보는데 돈은 정말 하나씩 발견된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고민 많던 주인공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오늘 당신 생일이잖아. 월급날 당신 은행에 안 가 봤구나. 당신 생일인데 해 줄게 있어야지. 그래서 월급 온라인으로 안 넣고 현금으로 받아와 숨겨 놨는데, 찾으면서 기뻐하라고 말야. 아직 못 찾았으면 이거 큰일이다. 편지함에도 넣어뒀다구! 당신 매일 거기 들여다보잖아.”

전화를 끊고 대문을 향해 달리며 아내는 남편의 그 마음에 눈물이 핑하고 돈다. ‘가난한 남편이여, 당신의 마음이 진짜 보물입니다’는 마지막 구절에 따스함이 가득하다.

<지란지교를 꿈꾸며>며 유명한 중견 작가 유안진.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수성이 느껴지는 작품들을 주로 발표한 그녀는 소비자아동학부에서 발달심리학을 가르쳐 온 아동학 교수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는 ‘개미와 베짱이’, ‘고쳐 써 본 개미와 베짱이’ 두 편을 실었다.

최근 무당에 관한 소설 <계화>를 발표했고 <절반의 실패> <혼자 눈뜨는 아침>으로 페미니즘 소설가로도 알려진 이경자는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저 마누라를 어쩌지?’를 썼다.

작은 애가 학교에서 가져온 가정환경조사표에 직업란이 있었다. 엄마의 집안 일을 두고 무직이라는 말이 나오자 엄마는 벌컥 화를 낸다. 그녀의 조심스런 반란이 시작된 것이다.

“당신은 직업을 가졌잖아. 시달리는 만큼 돈을 벌고 진급도 하잖아. 퇴직금도 받구. 집에는 당신을 위해 존재하는 아내와 자식이 있어. 그렇지만 나는 뭐야?”
“그럼 당신한테 월급 줄까? 그리고 남남으로 지내?”

나는 화가 났다. 마누라는 입을 꽉 다물었다. 그러나 내 말에 승복한 눈치는 아니었다. 무얼 몰라서 참고 있는 것이었다. 저 마누라가 ‘깨달으려고 하는 건’ 대체 무엇일까.
골치 아픈 시대다!


글 말미를 읽고 그 남자의 고민이 눈에 보이는 듯해 저절로 미소가 나온다. 이경자 페미니즘의 진수를 이 짧은 단편으로 느낄 수 있다.

물론 여성들은 만족하지 않겠지만 주부가 하는 집안 일을 월급으로 따지면 111만원이란 수치가 나왔다고 한다. 그만큼 이제 주부도 당당한 일로 인정받아야 하는 것이다. 12년 전에 초판을 찍어서인지 지금과는 다를지도 모르지만 아직도 주부가 하는 일을 정당한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는 곳도 태반이다. 이제 아이가 가져오는 엄마의 직업란에 당당히 써야한다. 주부라고.

요즘 출판시장에서 ‘문학이 죽었다’는 얘기들을 많이 한다. 그렇지만 작가 마루야마 겐지는 <소설가의 각오>라는 책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문학이 쇠퇴하였다는 말들을 많이 하지만, 기존의 문학이 쇠퇴했을 뿐 문학 자체가 쇠퇴한 것은 아닙니다. 또한 기존의 작가들이 쇠퇴한 것이지 문학의 광맥이 고갈된 것은 아닙니다. 새로운 문학에 도전하겠다는 각오만 확고하다면, 문학의 광맥은 얼마든지 우리들에게 그 가능성을 열어 보여줄 것입니다.

개정판이기도 한 <저 마누라를 어쩌지?>. 책의 인세는 서울 YMCA 청소년쉼터에 기부된다고 하니 좋은 일을 한 작가들을 위해서도 흔쾌히 읽어 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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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스 2006-04-19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딴소리, 박완서 그림.. 실물보다 못해도 너무 못한거 아닌가?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