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가 피를 토하고 죽었는데도 누군가의 장난이라 굳게 믿던 수위가 죽었을 때도 위험한 분위기는 전혀 없었다. 많은 수의 쥐들이 죽은 뒤에는 이제 사람들이 동일한 증상으로 죽어가고 있었지만 여전히 아이들이 뛰어놀고 저녁때면 변함없이 영화관 앞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시에서조차 아직은 큰일이 아니라며 공식화하지 말고 상황을 지켜보자는 쪽으로 리외를 설득하는 지경이었다.
"게다가 입방아를 찧어대는 바람에 모든 게 과장되었어요. 지사가 날더러 '원하신다면 빨리 서두릅시다. 그러나 말이 안 나게 조용히 해야 돼요'라고 하더군요. 어쨌든 지사도 공연히 놀라서 법석을 떠는 거라고 굳게 믿고 있어요."
>>> page 065 밀려드는 죽음의 공포 중에서
책을 읽다 보면 의사 리외가 요즘 우리들을 위해 애써주시는 의료진분들 같다.
전염병의 위험을 누구보다 빠르게 감지하고 병든 사람들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직접 발로 뛰며 의사로서의 사명을 다한다. 전염병의 시대에 누구보다 필요한 존재지만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되는 리외.
그런 리외가 있었기 때문에 오랑시에도 희망의 날이 올 수 있었을 것이다.
민간인 중심으로 보건대가 조직되어 구호를 돕는 것도 지금 상황과 다르지 않다.
마스크를 철저히 쓰고 방역 수칙을 지키며 가족조차도 만나지 않고 1년이 넘도록 사회적 거리 두기에 힘쓰는 사람들이 오랑시의 보건대인 것이다.
이렇게 [페스트]의 모든 상황이 지금 우리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알베르 카뮈가 위대한 작가이고 이 책이 걸작이구나. 감탄하면서 읽었다. 내가 2020년을 겪은 그대로 썼어도 이보다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 실제 존재하는 오랑시의 이야기를 쓴 것이 아닐까 했었다.
매일매일 중대본에서 전해주는 코로나 현황을 보는 우리들의 모습까지.
이제 곧 첫 저차 소리에 잠이 깨어, 그들은 도시의 거리마다 흩어져서 '페스트'라는 글자가 커다랗게 눈에 띄는 신문들을 팔 안에 끼고 다닐 것이다.
'페스트는 가을까지 이어질 것인가? B교수는 아니라고 말한다'
'하루 동안 사망자 124명. 페스트 발생 94일째 현재의 집계.'
>>> page 154 드디어 봉쇄된 오랑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