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 - 인류의 재앙과 코로나를 경고한 소설, 요즘책방 책읽어드립니다
알베르 카뮈 지음, 서상원 옮김 / 스타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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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은 역사 속에 어떻게 기록될까.

유럽의 흑사병에 대해서 책 속에서, 어느 영상 속에서 봤을 때 말로는 끔찍하다고 했지만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전혀 실감이 나질 않았다. 마치 어느 날 사라져버린 고대 문명처럼 사실이지만 전설 같은 느낌이어서 '정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전염병으로 죽을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늘 그랬다.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 사스나 메르스와 같은 전염병들, 시리아나 에디오피아 등에서 일어나는 내전들. 많은 사람이 죽고 있는데 너무나도 먼 이야기였다. 그랬는데...

 

2020년에 시작된 코로나 공포는 2021년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이제서야 실감이 난다. 죽음의 공포,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자유의 박탈, 보이지 않는 적.

 

그래서 바로 지금 읽어야만 하는 책. 페스트.

 


1947년에 발간된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

 

워낙 유명한 소설이지만 코로나 영향으로 방송에서도 다뤄서 최근에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한다. 그래서 홍보 효과를 위해 띠지에도 그 프로그램 제목이 큼지막하게 적혀져 있다. 가끔 이렇게 띠지에 TV 프로그램명이 크게 쓰여 있으면 어쩐지 맛집 벽에 걸려있는 프로그램 출연 사진처럼 느껴져서 기대가 되면서도 어색한 웃음이 나온다.

자꾸 방송에 나온 도서 위주로 책을 읽는 것 같아서 이래도 되나 싶어서 그런가.

 

 

 

차례만 봐도 알겠지만 페스트균으로 인한 전염병이 발생 -> 발병 지역의 봉쇄 -> 봉쇄 지역 안에서의 아비규환 -> 페스트를 대하는 인간 군상 -> 모든 죽음이 지나가고 봉쇄가 풀림의 순서로 흘러간다.

 

아마도 코로나가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고 전염병의 상황을 겪지 않았다면 오랑시를 왜 봉쇄까지 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모두가 힘을 합쳐서 쥐를 없애고 아직 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들은 이 도시로부터 탈출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모두가 오랑시의 시민은 아닐 수도 있다.

 

오랑시의 시민이 아닌 신문기자 랑베르도 리외에게 그렇게 외친다.

 

"나는 이 도시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 page 111 드디어 봉쇄된 오랑시 중에서

 

"어쨌든 나는 이 도시에서 나가고 말 것입니다."

"... 선생님은 남의 일은 생각해 보지도 않으셨군요. 생이별을 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도 않으셨어요."

>>> page 114 드디어 봉쇄된 오랑시 중에서

 

전염병을 대할 때. 누구나 나는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괜찮겠지. 나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고 나는 전염병에 걸릴 이유가 전혀 없으니까. 예측불가하며 이유 불문인 전염병이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우리들이 중국 우한 지역에서 의문의 호흡기 질병이 발생했다고 했을 때처럼 말이다.

 

오랑시에게 죽은 쥐들이 발견되었을 때 그곳의 분위기도 그랬다.

페스트 책을 검색하면 항상 나오는 부분, 의사 베르나르 리외가 죽은 쥐를 처음 발견하는 장면이다. 그저 쥐 한 마리가 죽었을 뿐이다. 그 뒤로 길거리에서 죽은 쥐들이 발견되어도 더러운 곳에서 사는 쥐의 죽음은 눈살을 찌푸리게 할 뿐 인간에게도 죽음이 다가올 것이라는 징조로 보이는 않았다. 도시는 여전했다.

 

 

 

쥐가 피를 토하고 죽었는데도 누군가의 장난이라 굳게 믿던 수위가 죽었을 때도 위험한 분위기는 전혀 없었다. 많은 수의 쥐들이 죽은 뒤에는 이제 사람들이 동일한 증상으로 죽어가고 있었지만 여전히 아이들이 뛰어놀고 저녁때면 변함없이 영화관 앞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시에서조차 아직은 큰일이 아니라며 공식화하지 말고 상황을 지켜보자는 쪽으로 리외를 설득하는 지경이었다.

 

"게다가 입방아를 찧어대는 바람에 모든 게 과장되었어요. 지사가 날더러 '원하신다면 빨리 서두릅시다. 그러나 말이 안 나게 조용히 해야 돼요'라고 하더군요. 어쨌든 지사도 공연히 놀라서 법석을 떠는 거라고 굳게 믿고 있어요."

>>> page 065 밀려드는 죽음의 공포 중에서

 

책을 읽다 보면 의사 리외가 요즘 우리들을 위해 애써주시는 의료진분들 같다.

전염병의 위험을 누구보다 빠르게 감지하고 병든 사람들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직접 발로 뛰며 의사로서의 사명을 다한다. 전염병의 시대에 누구보다 필요한 존재지만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되는 리외.

그런 리외가 있었기 때문에 오랑시에도 희망의 날이 올 수 있었을 것이다.

 

민간인 중심으로 보건대가 조직되어 구호를 돕는 것도 지금 상황과 다르지 않다.

마스크를 철저히 쓰고 방역 수칙을 지키며 가족조차도 만나지 않고 1년이 넘도록 사회적 거리 두기에 힘쓰는 사람들이 오랑시의 보건대인 것이다.

 

이렇게 [페스트]의 모든 상황이 지금 우리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알베르 카뮈가 위대한 작가이고 이 책이 걸작이구나. 감탄하면서 읽었다. 내가 2020년을 겪은 그대로 썼어도 이보다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 실제 존재하는 오랑시의 이야기를 쓴 것이 아닐까 했었다.

매일매일 중대본에서 전해주는 코로나 현황을 보는 우리들의 모습까지.

 

이제 곧 첫 저차 소리에 잠이 깨어, 그들은 도시의 거리마다 흩어져서 '페스트'라는 글자가 커다랗게 눈에 띄는 신문들을 팔 안에 끼고 다닐 것이다.

'페스트는 가을까지 이어질 것인가? B교수는 아니라고 말한다'

'하루 동안 사망자 124명. 페스트 발생 94일째 현재의 집계.'

>>> page 154 드디어 봉쇄된 오랑시 중에서



 

예전에 이 책을 읽고 누군가에게 추천을 해준다고 하면

'상상해봐. 우리에게 이렇게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면 어떻겠어.'라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말하고 싶다.

'지금 우리들의 이야기와 다를 게 없어. 어서 읽어봐. 우리에게도 곧 희망의 날이 올 것 같더라.'

 

결국 인간은 살아남을 것이다.

세균으로부터, 바이러스로부터, 자연재해로부터, 이기적인 인간으로부터.

그렇지만 다시 또 다른 공포가 다가올 것이다. 그때도 어떻게든지 살아남겠지.

어떠한 죽음의 공포가 다가와도 인간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또 다른 인간의 도움뿐이다. 지식이든 손길이든.

상상의 도시에서든 현실에서든 우리에게는 리외가 필요하다. 우리들은 보건대를 조직해야 한다.

나를 위해서 타인을 위해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그러면 기쁨으로 환호하며 마침내 문이 열리는 날이 오게 될 거다.

 

이 책을 읽고 있는 우리들은 지금 코로나로 인한 아비규환의 끄트머리이자 백신으로 희망의 날을 열고 있는 아마 정도에 있지 않나 싶다. 그러니 조금만 더 참자.

 

 

** 띠지에 쓰인 프로그램을 찾아서 봤는데 책을 읽고 봐서 그런지 보다 말아버렸다.

** 표지가 책 내용과 너무 잘 어울리는데 쥐가 조금 귀여움..

 

 

 


※ 위의 글은 도서리뷰단에 선정되어 해당 출판사가 무상으로 제공한 책을 읽고 쓴 개인적인 소감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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