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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았다, 네가 술래야 - 경계성 성격장애로부터 내 삶 지키기
폴 T. 메이슨 외 지음, 김명권.정유리 옮김 / 모멘토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1 의학적 자가진단은 전문가가 아니고서야 함부로 할 것이 못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나 자신에게 다소간 경계성 성격장애의 가능성이 있지 않은가 의심해왔다. 비록 20대 초중반 무렵만큼 그 빈도와 강도가 심각한 수준은 아니지만 지금도 감정이 폭발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면 그런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을 가족이나 친구로 둔 주변인에게 도움될 만한 조언과 지침들을 담고 있지만, 경계성 성격장애를 지닌 당사자(혹은 나처럼 그 가능성이 심히 의심되는 자)에게도 유용하겠다. 내 안의 분노와 폭력성에 대해 나 스스로 어떻게 이해하고 이성적으로 대처할 것인가, 하는 물음을 안고 읽어보면 한시적이나마 자기분석 혹은 자아성찰하는 데 도움이 된다. (물론 이 책이 자기분석이나 자아성찰의 기회 못지않게 제공하는 것은 당혹감이다. 나 자신이 낱낱이 해부당하는 기분이다.)
2 경계성 인격 장애가 있는 사람은 늘 정신적 버팀목이 될 만한 무언가를 갈구하지만 이런 사람일수록 유일 신앙은 차라리 독이 아닐까 싶다. 근원적인 허무감을 절대자의 옷자락으로 덮어 씌워버리는 짓은 편리하고 달콤한 도피 행위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닐 것이다. 경계성 성격장애 유형이 스스로 구제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모호하고도 진부한 얘기지만 부단히 수행하는 길 밖엔 없을 듯하다. 직면과 응시와 수용이야말로 이들에겐 일생토록 연습해야 할 과제가 아닐지. 다행히도 호르몬의 효과인지 뭔지 통계적으로 사십대 이후에는 대체로 증상이 호전된다고 하니 그나마 희망이 보인다고 해야 하려나.
3 눈길 가는 대목은 정체성 장애(현저하게 불안정한 자아상이나 자아감을 지속적으로 갖고 있음)와 만성적인 공허감이 상호 연관되어 있다는 부분. 만성적인 공허감을 유발하는 주요 원인인 정체성 혼미의 문제에 대해 로버트 월딩어가 한 말을 재인용하면 “정체성 혼미란 경계성 인격 장애가 있는 환자들에게서 보이는 증상으로서,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는 느낌, 뿌리 깊으며 종종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느낌을 의미한다. 보통 우리는 다른 환경 속이나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도 자신을 일관성 있게 경험하는데,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은 그런 자기의 연속성을 경험하지 못한다. 대신, 경계성 성격장애 환자들은 통합시킬 수 없을 만큼 서로 모순되는 자기 이미지들로 가득 차 있다. (...) 그들의 내적 공허함과 혼미 때문에 그들은 어떻게 행동하고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존재할지를 결정하는 데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반응에 의지하게 된다. 누군가가 옆에 없으면 자신이 누구인지 인식 못하거나, 아예 자신이 존재한다는 느낌조차도 가지지 못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