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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다. 슬픈 걸 슬프다고 말하는 순간 슬픔이 돌연 우스운 것으로 전락하고 마는 이런 사태에 대해 속수무책이면서도 어쩔 수 없이 슬프다. 슬픔은 꼭 이빨이 날카로운 미친개 같다. 내가 모퉁이를 돌거나 할 때 느닷없이 덤벼들어 나를 맹렬하게 물어뜯는다. 그러면 나는 언제나 무방비 상태에서 갈가리 찢겨나간다. 비명이 신음으로 잦아들 때까지 굴욕적으로 봉변을 당한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역시 또 우습고, 아마도 나는 일부러 내 슬픔을 욕보이고 싶었나 보다. 그리하여 내 사나운 슬픔이 온순하고 다루기 쉬운 종류로 길들여지길 바랬나 보다. 하지만 슬픔을 욕보이는 일은 또 다른 슬픔이 되고, 그래서 이제 나는 완전히 절망적으로 슬프고, 아무래도 이 거칠고 어설픈 조련은 이쯤에서 관두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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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벼락 밑에 한참을 앉아 어린 담쟁이들이랑 봄볕 쬐다 들어왔다. 바람 불어 머리칼이 이파리처럼 나부낄 때 봄철에 움트는 것들이 무슨 마음인지 알았다. 그것은 실컷 낮잠자다 깬 얼룩무늬 고양이의 마음이다! 그리고 또 알았다. 드디어 우리에게도 긴 계절이 졌다는 것을. 짐승 같던 계절이 다시 오지 않을 계절이 졌다는 것을. 애달프고 그리워할 것도 없이 누구의 잘못도 아니게 졌다는 것을. 그러나 시절은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쌓여가는 것이라 우리는 서로에게 좋은 무늬가 되었더라. 암팡진 꽃씨처럼 흩어져 양지바른 곳에 뿌리 내리고 또 한 철을 그렇게 살아가겠더라. 봄이다. 거역할 수 없는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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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동해가 아니어도 좋았다. 한 번도 방문하지 않은 미지의 소도시라면 굳이 동해가 아니라도 별 상관은 없었다. 그러나 청량리발 동해행 무궁화호 열차표를 끊고 나자 어쩐지 이번 여행의 목적지는 반드시 동해 여야만 할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비 개인 다음 날이었으나 하늘은 여전히 우중충했고 보도블럭이 꺼진 자리마다 물웅덩이가 복병처럼 숨어있었다. 배낭을 지고 카메라를 목에 맨 나는 누가 보아도 주5일제의 특혜를 얻은 여행객의 차림이었겠지만 나는 어쩐지 나 자신이 유배지로 향하는 유생이나 근신할 곳을 찾아 유랑하는 난민처럼 여겨져서 설레기보담은 그저 담담하고 약간은 헛헛한 기분이었다.

미놀타와 몇 판 남지 않은 일회용 카메라 두개, 샴푸, 린스, 로션 등속을 챙기고 기차간에서 읽을 책으로 이문구의 <관촌수필>과 프리조프 카프라의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을 넣었다. (후자는 아무래도 동해 여행보다는 정독 도서관이 어울린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였으나 읽던 책이라서 미련을 못 버리고 챙겨 넣었다. 여행지에서 그다지 많은 페이지를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번연히 알면서도 굳이 들고 간 까닭은 시험 전날 동아전과를 베고 자면 올백 맞는다는 어린 시절의 미신이 아직도 유효하기 때문일까) 그리고 욕심 많게도 CD를 여섯 장이나 넣었다. 버리려고 떠난 여행인데 등짐만 한가득 이어서 여간 볼썽사나운 꼴이 아니었다.  

저녁 여덟 시 쯤에 동해역에 내렸더니 추암 바닷가 가는 버스가 벌써 끊긴 모양이었다. 택시 타고 십분 정도 가니 바닷가였다. 나는 방 하나에 2만 5천 원에다가 대전엑스포 기념 자수가 박힌 초록색 수건을 서비스로 제공해주는 민박집에서 하루를 묵었다. 민박집 바깥쪽은 구멍가게랑 연결되어 있었는데, 으슥한 가게 안에 골동품 가구처럼 박혀있던 주인 할머니가 날더러 혼자 왔느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하였더니 혀를 끌끌 차셨다. 측은해서 그러시는지 한심해서 그러시는지 종시 짐작할 수 없었다. 내가 묵은 곳은 말하자면 남신의주 유동 박씨봉방 같은 방이었다. 이 작고 괴괴한 낯선 방이야말로 나의 본질에 다름없는 것 같다는 기묘한 기분 때문에 나는 몹시 뭉클했다. (너무 길어져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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