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은 연애해볼 기회가 좀처럼 안 생기거나 별거 중이거나 사별했거나 이혼한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권면하고 싶다. 특히 탱고. 탱고 오래 춘 사람들은 탱고야말로 위로와 치유의 춤이라고들 하니까. 그리고 일반적인 편견과 달리 춤판 사회는 의외로 보수적이다. 보수적이다 못해 고리타분할 지경으로 심지어는 바로크 궁중사회 같다. 결국, '제스처'인 것이다. 전혀 민주적이지 않은 사회가 민주주의를 헌법에 대대적으로 명시하고 있듯이. 유교 이상에 반하는 일이 다반사였던 조선 왕실의 역사가 겉으로는 언제나 유교 사상에 근거하였듯이. 거대한 역설이 체제를 굴러가게 한다는 점은 춤판도 마찬가지여서, 춤 자체가 실질적으로는 섹스의 승화된 형태이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춤판 사회의 법도는 과도하게 엄격할 수밖에 없다. 아무튼 요는, 춤이라는 게 생각보다 건전하므로 무람없이 권할 만 하다는 것.

 

그러나 춤은 근본적으로는 지극히 쓸쓸하고 허망한 것 같다. 극도로 강한 자극과 희열을 느낄 수 있는 데 대한 냉정한 대가일까. 세계의 실체가 어느 소설가의 주장대로 도넛 같은 거라면, 나는 춤(정확히는 소셜댄스겠지만)이야말로 도넛의 한가운데- 그러니까 무(無)를 감각적으로 온전히 체험해 볼 수 있는 심오한 신체 활동이라고 장담하련다. 그런 면에서 춤 역시 일종의 구도의 여정인지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생을 완성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춤을 권하고 싶지는 않다. 생을 완성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섹스를 권하지는 않듯이. 춤은, 늙기 전에, 그러니까 기력이 어느 정도 있어서 제 몸의 움직임을 스스로 컨트롤 할 수 있는 시기에 해볼 만한 근사한 활동임에는 틀림없지만 자신의 전부를 걸기에는 너무도 덧없다 슬프게도. 영혼의 의지처는 될 수 있을 지라도 구원까지 기대하는 건 무리다. 내 생각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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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7 1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27 14: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30 16: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와 철학과 춤은 곧장 간다. 그런 게 좋다. 우회하지 않고 곧장 가는 것. 본질을 향해 직행하는 것. 정수만을 취하는 것. 우주는 광대오묘하고 생계는 시급하고 수명은 유한하니, 우회할 겨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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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스컴을 통해 소개되는 일반적인 스윙댄스(린디합)의 모습은 기예적인 요소를 특징으로 하는 신나고 경쾌한 복고풍 커플댄스 정도인 것 같다. 항상 그게 아쉽다. 그렇게밖에 비춰지지 못하는 게. 스윙댄스는 단지 기운이 넘치고 신나기만 한 춤이 아니다. 이 춤의 곳곳에는 촌철살인의 유머와 재치가 번뜩이고, 낭만과 에로스가 넘쳐 흐른다. 정신이 달아날 만큼 역동적이지만 느린 템포에서는 더할 나위없이 우아하고 품위있고 서정적인 춤이기도 하다.

 

스윙댄스야말로 니체적 의미에서 진정한 그리스인들의 춤이자 강자적인 춤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춤이 온몸으로 표현하는 것은 오로지 자유와 기쁨, 해방과 발산이다. 이 춤 어느 구석에도 한恨이나 원한감정 같은 건 없다. 스윙댄스는 승화시킬 응어리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비장미라든가 심오한 정신성 같은 걸 보여주지는 않지만, 역설적이게도 깊이랄 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바로 그 점이 곧 이 춤의 지극한 건강성을 입증한다고도 할 수 있겠다.

 

살사가 교미를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 같다면, 스윙댄스는 그 어떤 초자아로부터도 짓눌려본 적 없는 천진무구한 아이들의 유희 같고, 절도와 엄숙함이 느껴지는 탱고는 중력의 영靈에 짓눌려 내면이 비대해진 문명인들의 제의祭儀 같다. 물론, 언젠가 탱고를 배우게 되면 순식간에 표변하여 탱고야말로 인류가 창조해낸 모든 춤의 종착역이라 예찬할 지도 모를 일이므로 이런 인상평은 함부로 내뱉을 것이 못 되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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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20 10: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8-20 14: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스윙판에서 흔히 쓰이는 용어 가운데 하나로 '스윙감'이라는 게 있다. 댄서가 스윙댄스 특유의 탄성력을 온몸으로 발휘하게 되면 마치 탱탱볼이나 젤리처럼 그의 육체적인 물성이 전적으로 바뀌게 되는데, 이같은 상태에서 댄서의 탄성운동이 스윙 음악의 리듬과 선율 그리고 파트너의 움직임과 완벽한 삼위일체의 조화를 이루면 소위 그 '스윙감'을 느끼는 상태가 된다. 스윙감이 최고조에 달할 때의 느낌은 가히 무당이 접신했을 때의 순간과 견줄 만 하다고 여겨져 스윙판 사람들은 이런 상태를 스윙신과 접신했다고 혹은 스윙신이 강림했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엄밀히 말하면 스윙감을 느끼지 못하는 춤은 춤이라고 할 수가 없다. 춤의 흉내만 내고 있는 기계적 운동일 뿐. 그러나 춤 실력이 일정 고도에 오르고 커넥션이니 모멘텀이니 하는 춤의 물리적 운동 기술에 대해 이론적으로 조예가 깊어진다 해도 스윙감을 영구적으로 획득할 수 있느냐 하면 또 그런 것은 아니다. 아무리 날고 기는 춤판의 고수라도 스윙감이 떨어져 오랫동안 슬럼프를 겪기도 한다. 다른 모든 '감'들처럼 스윙감 역시 노력하는 자에게 어느 날 문득 축복처럼 찾아왔다가 또 그렇게 예고 없이 달아나버리고 마는 것이다.

 

플로어에서 파트너와 정신없이 춤추다가 어느덧 스윙감이 최고조에 달하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그러니까 마침내 '접신'하게 되었을 때의 그 황홀한 기분, 일순간 춤의 진리를 터득한 듯한 그 짜릿한 기분은 결코 영구 소장할 수가 없다. 감동적인 책이나 진귀한 물건은 금전적으로 각혈을 해서라도 어떻게든 입수하여 소장할 수가 있는데, 춤판에서 느끼는 절정의 순간은 소유의 차원을 넘어선다. 마치 무수한 광선 입자들의 끊임없는 운동 속에서 홀로그램이 비로소 하나의 상으로 떠오르듯이, '이것이 진정 춤이다'고 말할 수 있는 바로 그 접신의 순간은, 오로지 부단한 발동작과 현란한 춤사위 속에만 일시적으로 찾아올 뿐이다.

 

그래서 내가 느끼는 춤은 존재하는 게 아니라 현상한다. 철저히, 가차없이, 냉엄하게 그러하다. 아무리 아름다워도 결코 지닐 수가 없다는 것. 그저 일시적으로 체험하거나 추억할 수 있을 뿐이라는 것. 너무나 찬란하면서도 영원히 손아귀에 잡히지 않는 환영 같은 그런 속성 때문에 춤은 그토록 황홀하고 또 그토록 허무한 것이리라. 춤에 관해 이런 생각이 들면 나는 정말로 마음 한구석이 푹 내려앉는 것만 같고, 내려앉아버린 그곳이 뭉근하게 아려오고, 그럴수록 더욱 더 춤에 열광하게 된다. 손아귀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를 어떻게든 움켜 쥐어보려고 안달하는 아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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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아르헨틴 탱고를 배울 참이었다. 스윙하고는 체력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인연이 다한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오랜만에 다시 스윙빠를 찾았던 건 순전히 스윙 특유의 텐션 감각을 좀 기억해두면 앞으로 탱고 배울 때 유용하지 않을까 해서였다. 당초에는 이런 불순한 마음 뿐이었는데, 다시 추는 스윙이란 이럴 수가, 일 년 넘게 어둠 속에 처박혀 있던 스윙슈즈 앞에 눈물의 회개라도 하고 싶을 만큼 감격적이다. 그러니까 늘 이런 식이었던 거다. 이렇게 습관적으로 몇 년에 한 번씩 스윙과 극적인 재회를 하게 되면, 2~3년마다 물이 완전히 갈리는 동호회와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소원한 관계가 되고 만다. 동호회 활동을 하지 않아 사람들과의 언어적 교류가 거의 없고 오로지 플로어 위에서 춤에만 몰두하는 데 따른 부작용이라면, 춤 스타일이 곧 그 사람의 성격뿐만 아니라 인격과 됨됨이 그리고 성품까지도 보여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는 점이다.

 

춤이 마치 총체적인 인간성을 반영하는 듯한 착시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데는 이유가 있다. 춤을 추다 보면, 단지 상대방의 춤 실력 뿐만 아니라, 상대가 낙천적이고 쾌활한 사람인지 예민하고 섬세한 사람인지 저돌적이고 성질이 급한 사람인지 등을 가늠할 수가 있고, 지금 이 춤을 영혼을 담아 추고 있는지 아니면 타성에 젖어 기계적으로 추고 있는지도 분간이 되고, 얼마나 긴장해 있는지 또 얼마나 허세를 부리고 있는 지도 알 수 있으며, 파트너를 전적으로 혼란스럽게 하지는 않았지만 스스로 느끼기에 약간은 미흡했다고 판단된 방금 전의 리딩 때문에 순간적으로 자책하는 기색마저도 눈치 챌 수가 있다. 말 한 마디 나누지 않고도 춤을 통해 상대방의 전반적인 성격이나 내외향적 기질 뿐만 아니라 춤을 대하는 자세와 태도, 춤으로 한 곡을 완성하는 데 있어서의 진정성, 스스로에 대한 엄격함, 파트너에 대한 책임감과 배려 및 충실함의 정도까지도 감지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글과 삶이 일견 서로를 투명하게 비추는 듯해도 실상 그 둘 사이에는 언제나 도저한 간극이 존재하며 심지어 때로는 글이 삶의 알리바이가 되기도 하듯이, 그래서 순진한 독자들은 때로 결정적인 순간에 배신감과 당혹감을 느끼기도 하듯이, 춤과 삶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춤판에 오래 머무른 사람이라면 으레 한 번쯤 난데없는 순간에 예상치 못한 누군가에게 뒤통수를 맞고 혼란을 겪었거나 춤 자체의 속성과는 전혀 다른 춤판 사회의 냉혹한 생리에 쓰라리게 실망했던 경험 한 두 가지 쯤은 갖고 있지 않을까. 확실히 춤으로 한 인간의 품성과 인격마저 판단할 수 있다는 생각은 편협하고도 위험한 발상임에 틀림없다. 닉과 카라 같은 챔피언들이 성인군자라서 그토록 춤을 근사하게 추는 건 아닐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착각을 멈출 수 없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춤의 효용 가운데 하나이자 춤이 지닌 신비로운 마력이 아닐지.

 

바운스가 과도하지 않고, 리딩은 부드러우면서도 적당히 강하고, 자세는 안정감 있고, 지금 춤추는 이 순간에 집중하는 눈빛을 보이는 리더, 허세 부리지 않는 리더, 관성적으로 추지 않는 리더, 도공이 도자기를 빚듯 온 영혼을 담아 심혈을 기울여 춤추고 있는 것이 느껴지는 리더, 나르시시즘적 재간이 아닌, 다정하고 따듯한 유머를 구사할 줄 아는 리더, 웃음을 넘어 감동을 주는 리더. 이런 리더와 한 곡을 추고 나면, 나는 그의 인품에 대해 환상에 가까운 일방적인 신뢰를 품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게 된다. 착각일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렇담 나는 어떨까. 오늘 홀딩한 당신들에게 나는, 어떤 팔뤄로 기억될까. 부디 기분 좋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팔뤄로 기억될 수 있다면. 물론, 실체와는 별개의 문제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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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3-08-12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너무나 근사해요. 수양님 스윙 리듬을 타고 춤을 추신단말이죠! 춤을 추는 사람의 몸짓에도 적지 않은 게 담게있군요. 일견 편견이라해도 충분히 그럴것 같아요. 글도 마찬가지잖아요. 편견이라해도 분명 드러나죠 적지않은 것들이. 그나저나 정말이지 춤, 시도해보고싶어집니다. 만날생각만 말고ᆞᆢ

수양 2013-08-13 01:39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춤 꼭 시도해보세요 완전 강추예요!! 첫 스텝을 밟는 순간 정말 과장 안 하고 천지가 진동하면서 새로운 세계가 열립니다ㅋㅋㅋ 정말 하나의 '세계'라고 단언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