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한해 - 이만희 감독과 함께한 시간들
문숙 지음 / 창비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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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입견이 좀 있었나. 나도 모르게 얕봤다. 문학적 완성도가 이렇게 높은 책일 줄이야. 눈부시고도 치명적이었던 생의 한 시절을 활자로 최대한 세밀하고 정확하게 복원해내려는 저자의 의지가 묵직하게 느껴지고 이 책이 내게 준 가장 큰 감동은 거기 (어떤 순수한 사명감마저 감지되는 정직한 회고적 글쓰기의 태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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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없는 사람 문학과지성 시인선 397
심보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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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들

 

                                   심보선

 

내가 오늘 한 일 중 좋은 일 하나는

매미 한 마리가 땅바닥에 배를 뒤집은 채

느리게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준 일

죽은 매미를 손에 쥐고 나무에 기대 맴맴 울며

잠깐 그것의 후생이 되어준 일

눈물을 흘리고 싶었지만 눈물이 흐르진 않았다

그것 또한 좋은 일 중의 하나

태양으로부터 드리워진 부드러운 빛의 붓질이

내 눈동자를 어루만질 때

외곽에 펼쳐진 해안의 윤곽이 또렷해진다

그때 나는 좋았던 일들만을 짐짓 기억하며

두터운 밤공기와 단단한 대지의 틈새로

해진 구두코를 슬쩍 들이미는 것이다

오늘의 좋은 일들에 비추어볼 때

어쩌면 나는 생각보다 조금 위대한 사람

나의 심장이 구석구석의 실정맥 속으로

갸륵한 용기들을 알알이 흘려보내는 것 같은 착란

그러나 이 지상에 명료한 그림자는 없으니

나는 이제 나를 고백하는 일에 보다 절제하련다

발아래서 퀼트처럼 알록달록 조각조각

교차하며 이어지는 상념의 나날들

언제나 인생은 설명할 수 없는 일들투성이

언젠가 운명이 흰수염고래처럼 흘러오겠지

 

봄이 왔다고 며칠 전에 사서 꽂아 둔 하얀색 프리지아가 빛이 바랬다. 아무도 보아주는 이 없이 빈집에 홀로 있던 시간이 대부분이었던 그 꽃은 그리도 차분하게 제 수명을 다했다. 시든 꽃과 썩은 꽃병 물을 버려본 사람이라면 알겠지. 거기서 얼마나 쓸쓸한 악취가 진동하는지. 죽은 꽃다발을 잘 정리해서 쓰레기 봉투에 접어넣고 꽃병을 깨끗이 씻어 엎어두었다. 내가 어제 한 일 중 좋은 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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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01 2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02 17: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eBook] 위로하는 정신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유유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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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유의 유려한 변사(辯士)풍(?) 문체로 역사적 인물들을 입체감 있게 복원해내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장기는 이 책에서도 여전하다. 영혼의 자유를 잃지 않으면서도 사회적으로 주어진 역할을 일평생 충실히 수행해내며 혼돈의 시대를 조용히 살아내었던 16c의 지성 몽테뉴. 정신적 자유(내적 탐구 의지)와 사회적 책무감은 한 지혜로운 인간 안에서 어떻게 공존하는가. 수상록을 읽어볼 필요가 있겠다, 라고 썼다가 갑자기 씁쓸하다. 수신론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거야말로 노화의 명백한 징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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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길들지 않는다 - 젊음을 죽이는 적들에 대항하는 법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 / 바다출판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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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에게도 길들여지지 말고 ‘자립한 젊음’을 확보하라는 마루야마 겐지의 독설은 매섭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사회가 이미 심각하게 야생화(化)되어가는 판국에 야생동물로서의 저력을 발휘하라는 그의 외침은 자칫 시대의 야만적 흐름에 음조를 함께 하는, 그리하여 종국에는 이 시대가 부르는 기이한 노래의 화음을 더욱 풍성하게 수놓는 묘한 선동이 되고 만다. 

가령 그는 자영업을 찬양하며 생을 만끽하기 위해 기꺼이 불안으로 뛰어들라고 말하지만 이런 다그침은 개인사업자가 창업한지 3년을 망하지 않고 살아있을 확률이 고작 4분의 1정도에 불과하다는 오늘날 한국의 절망적 상황을 감안하면 얼마나 무책임하고 속편한(?) 조언인가. 과연 개인의 정신무장만으로 극복될 현실인가. 

사실 길들여짐과 길들지 않음의 경계란 모호한 게 아닐까. 길들지 말라는 경고가 길들임을 부추기는 것이 되기도 하고 길들여지지 않겠다는 선언이 이미 길들여졌다는 반증이 되기도 한다. 대항해야 할 모종의 적이 있고 여기에 길들여질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이런 문제 설정은 어쩌면 굉장히 단순하고 조야한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식의 이분법이 갖는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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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eo0320 2021-07-14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길들여진 인간1
 
파테이 마토스 - 암과 함께한 어느 철학자의 치유 일기
백승영 지음 / 책세상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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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읽으면서 책으로도 동영상으로도 선생님 은덕을 많이 입었는데 아프셨다니 마음이 안 좋다. 완쾌되시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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