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교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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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이 뜨겁도록 박수치고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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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알랭 드 보통 지음, 박중서 옮김 / 청미래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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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은 "신앙의 지혜는 온 인류의 것"이므로 우리가 꼭 신을 믿지 않더라도 기존의 종교 문화로부터 얼마든지 삶에 유용한 아이디어를 얻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 "종교를 믿지 않은 사람이 여러 개의 신앙들에서 이런저런 요소를 차용하는 것이야말로, 예를 들면 문학 애호가가 수많은 고전들 중에서 자기가 특히 좋아하는 작가 몇 명을 골라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결코 범죄가 아니다." 

 

무신론자 용으로 개발된 '보통'식 종교는 어떤 모습일까? 이 종교는 인류의 정신 문명과 과학 기술을 낙관하는 인문주의자 모두를 위한 종교라 해도 무방하겠다. 우선, 이 종교의 신도(?)들을 진리의 빛으로 이끄는 것은 하나님 말씀이 아니라 역사, 문학, 철학, 예술을 망라한 인문학이다.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이들 역시 나름의 계율 속에서 평생에 걸쳐 인문학을 탐구하는 삶을 살아간다. 이들이 일생 동안 공부하게 될 경전은 프로이트, 마르크스, 무질, 오에 겐자부로 기타 등이 써낸 일체의 저작들이다.

 

한편 이 가상의 종교에서는 성 베네딕트나 성 세바스챤 대신에 구텐베르크, 셰익스피어, 데카르트 등 문명의 역사가 한 걸음씩 도약하는 데 공헌을 세운 인물들을 세속 성인으로 추앙한다. 이 세속 성인들은 '자비의 신전이'라든가 '고요함의 신전'이라든가 하는 이름을 가진 신전들 안에 각각 성화로 제작되어 모셔져 있다. 가정집 거실에서도 역시 세속 성인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버지니아 울프나 휘트먼, 링컨, 처칠, 스탕달 등이 미니어처로 제작되어 여기저기에 장식품으로 놓여 있기 때문이다. 

 

딱히 섬기는 신이 없는 이 종교에서는 봄이면 아내와 어머니를 기념하는 축하 행사가 열리고, 여름에는 "철강 산업이 인류의 진보에 미친 중대한 기여"를 기념하는 축제가 열리며, 겨울에는 개와 돼지와 닭 같은 가축에게 감사하는 잔치를 벌인다. 또 이 종교에서는 "산업용 면방적기를 발명한 아크라이트 경을 기념하는 날"이라든지 "무려 16년이나 허탕을 친 끝에 중국산 도기의 유약을 자체 개발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인내의 모범이 된 베르나르 팔리시를 기리는 날" 따위가 석가탄신일이나 부활절을 대신한다.

 

그런데 왜

 

보통이 말하면 재밌는데 내가 말하면 재미없을까. 머리가 안 벗겨져서 그런가. (역시 보통과 비교되는 나의 유머 드립은 여기까지) 아무리 써도 맛보기에 불과한 데다가 쓰면 쓸수록 보통의 매력을 깎아먹기만 하는 장광설이 밑도 끝도 없이 이어지기 전에 얼른 그만 써버리는 게 낫겠다. 다정하고도 위트 넘치는 보통의 포교 연설을 경청하다 보면 누구나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에 귀의하지 않고서는 배겨날 도리가 없겠다. 그래, 딱 이 한 문장이면 족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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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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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풍 코믹 환타지 대하 고전 소설이라는 엉터리 이름마저도 붙일 수 없는 이 희한하고 독특한 소설이 겨우 사백 페이지 남짓에서 끝나버린 것은 순전히 인내심 부족한 독자를 위한 작가의 배려가 아니었을는지. 독자를 의식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이 작가는 셰헤라자드처럼 영원히 이야기를 계속해 나갈 기세다. 가히 '이야기'에 대한 도착증적 열정마저 느껴지는 이 작가는 <고래> 한 권으로 이미 이야기꾼으로서의 저력, 아니 괴력을 충분히 보여주고도 남은 것 같다. 그러나 끝없이 이어지는 서사의 유장함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유할 만한 내용이 빈곤하다는 사실은 다소 맥빠지고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소설 <고래>는 마치 놀라운 괴력을 지녔으되 지나치게 '무구'했던 소설 속 주인공 '춘희'와도 닮아있다. 소설에서 의미를 구하는 일의 의미 없음을 지적하며 소설의 가장 큰 덕목이란 무릇 재미가 아니겠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나는 철학이 빠진 소설은 결정적으로 재미가 없다는 데 한 표를 던진다.

 

철학이 반드시 작품 속에서 어떤 메시지로 구체화되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철학은 그저 모나리자 같은 표정으로 소설 전반에 스며들어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독자를 끝까지 붙잡아 둘 수 있는 결정적 요소는 유장한 서사의 힘이 아니라, 바로 그 미묘하고도 알 수 없는 '표정'에 있는 것일 테니. 그리고 '꾼'과 '대가'의 차이 역시 거기서 비롯되는 것일 테니. 재미난 이야기를 일껏 경청해 놓고서는 이제와서 표정을 만들어내라고 주문하는 이 괴팍한 트집쟁이 독자는, 이 작가가 앞으로 좀 더 깊은 사유로 무장하여 '무구함'으로부터 벗어나길 원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욕심을 내자면, 이 작가가 단지 소설이라는 장르에 갇혀있지 않고(사실 <고래>와 같은 이야기를 소설이라는 활자 매체에 담는다는 것 자체가 다소 비효율적인 일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고래>는 마치 시나리오집이나 줄거리 요약본 같기도 해서, 반드시 소설이어야 할 어떤 형식적 당위성을 갖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더 너른 장소에서 무한한 상상력을 펼치는 모습을 보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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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열정
아니 에르노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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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했던 것보다 싱겁고, 짧다. 내가 겪었던 고통의 나날과 암흑의 시절들이 활자화된다면 이보다 훨씬 더 비장한 문학적 성취를 이룰 수 있겠다는 터무니없는 확신만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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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생활의 발견
와타나베 쇼이치 지음, 김욱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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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가의 로망을 품고 있는 자라면 경청해볼 만한 현실적인 조언들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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