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테리어
우디 앨런 감독, 다이앤 키튼 외 출연 / 마루엔터테인먼트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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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카메라 앵글은 주로 눈높이에 머물고 그마저도 정적이다. 춤추는 장면에서 실제로 흘러나오는 음악 외에는 어떤 배경 음악도 삽입되지 않았고. 마치 건조한 사실주의 연극처럼. 등장인물 각각에 대한 캐릭터 구축, 심리 묘사, 인물 간 갈등 양상, 기승전결의 구성, 그리고 이야기의 주요 무대인 집안의 '인테리어'까지 다 좋다. 몰입감 있다. 확실히 7-80년대가 우디 앨런의 전성기였구나. 패기와 야망이 느껴진다. 도전적인 시도를 해보겠다는. 다양한 장르를 넘보겠다는.

2 가족만큼 안락하고 끈끈하고 애정 넘치는 집단이 어디 있을 것이며 동시에 가족만큼 온갖 심리적 문제가 산적해 있는 위태로운 집단이 또 어디 있을 것인가. 무수한 배면을 품은 이 아슬한 관계의 형태를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구성원 저마다 애써 감내해야 할 것들은 얼마나 많은가. 차마 말 못 할 그 모든 비밀들을 집 앞 잿빛 바다에 파묻고 살아가야 하는 어떤 가족의 이야기가 보편적 호소력을 갖는 까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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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리그
우디 앨런 감독, 미아 패로우 외 출연 / 조이앤무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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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 하나 앞세워 포복절도하게 만드는 만만한 코미디려니 하고 방바닥에 널브러져서 봤다가는 기습 당하고야 말 것이다. 훅 치고 들어온다. 무려 '주체적인 인간이 될 것'을 이 영화가 촉구하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면 무슨 도덕군자의 진부한 훈교 같지만 영화에서 이 메시지를 구현하는 방식은 소름 돋는다. 놀랍고 극적이고 감동적이다. 웃기는 건 기본이고.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탁월한데 이 영화는 비범하게도 한 발 더 나아가- 주체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모방과 재현에만 특화된 인간이 보여주는 의외의 잠재력과 또 다른 가능성, 어떤 희귀한 인간 유형이 지닌 고유의 속성에서 비롯하는 명암이 갈리는 갖가지 사건들과 그에 대한 대중의 극단적이고도 피상적인 조삼모사식 가치평가까지도 사려 깊게 주목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한편으로는 우리로 하여금 주체적인 인간이 되기를 촉구하면서도 그저 주체적인 인간이 바람직하고 그렇지 못한 상태는 문제적이라는 일차원적 결론에 머무는 게 아니라, 왜 인간사는 모 아니면 도로 단순하게 나누어떨어지는 산수가 아닌지, 왜 사회는 예측불허의 우연과 부조리와 아이러니로 가득할 수밖에 없는지 그 필연적인 복잡성에 대해서마저도 숙고하게 만든다.

아울러 영화는 극단적으로 주체성을 상실해버린 이 '젤리그'라고 하는 인간이 어떤 연유로 사회에 출현하게 되었는지 그 심리적 내지는 사회적 기원에 대해서도 청산유수의 허풍을 떨어가며 다각도의 심층적인 진단을 해보이고 있는데, 꽤나 설득력이 있다. 아마도 부분적으로는 우디 앨런 자신에 관한 자기분석이기도 할 것이다.

엄격한 자기객관화,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은 인문학적 이해와 철학적 통찰 없이는 절대 만들 수 없는 작품이란 생각이 드는 와중에, 더욱 대단하게 느껴지는 점은 이 모든 이야기가 무슨 고리타분한 현대사회학 강좌가 아니라 '코미디'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 영화는 웃기다. 코미디 장르라는 본분에 지극히 충실하다. 세상에 코미디물은 많지만 비범한 코미디는 드물다. 드문 것은 귀하다. 이 영화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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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녹음이 싱그러운 한여름의 초원을 배경으로 청춘남녀의 엇갈린 애정사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애니홀> 이후 우디 앨런에게 무슨 신이라도 강림했나. 기량이 만개한 정도가 아니라 거의 작두 위에 올라탔다. 삽입곡인 멘델스존의 <한여름 밤의 꿈>은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핵심 동력이나 마찬가지인데 찾아보니 공교롭게도 앙드레 프레빈이 지휘한 85년도 빈필 녹음이 명반으로 꼽히는가 보다. 앙드레 프레빈이라면 82년작인 이 영화를 찍으며 우디 앨런과 연인 사이가 되었던 미아 패로의 두 번째 남편이자 동시에 우디 앨런의 현 장인어른 아닌가. 재미있는 우연이다. (포스터는 프랑스판이 더 나은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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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더스트 메모리즈
우디 앨런 감독, 마리-크리스틴 버럴트 외 출연 / 디비존필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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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현실이 반복해서 서로를 차용하면서 상호 간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더불어 무의미해지고) 가상과 실재라는 상반된 차원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맞물리는 마법 같은 경지를, 이 영화가 보여준다. 영화를 포함한 현실이 다시 영화에 삽입되고 그 영화는 또다시 새로운 현실의 일부가 되는 이 기묘하고도 끝없는 이야기는 어쩌면 한 점의 자화상 같다. 우연히 거울 사이에 끼어 옴짝달싹 못하게 된 우디 앨런 자신의 모습을 자조적으로 그린.

자기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이 영화는 사뭇 심오하다. 렘브란트의 자화상 같은 이런 영화 앞에서 감히 오징어 다리 같은 걸 입에 물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 사람의 전기작들엔 실존적 고뇌가 있고 철학적 고민이 있고 문제 의식이 있고 치열함이 있고 심금을 울리는 어떤 절실함이 있다. 그는 분투하는 열혈청년이었다. 애석하게도 전기작들에서 보여준 만큼의 날선 고민이나 절실함을 근래 작품들에서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대신에 그는 노련해졌고, 이제는 <레이니 데이 인 뉴욕> 같은 세련된 (어쩌면 노회한) 영화를 만든다. 그는 실로 영화를 능란하게 잘 만드는 사람이 되었다. 일종의 장인이 된 것이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초인적인 기세로 일평생 소처럼 영화만 만들어온, 그리하여 영화가 삶이었고 삶이 곧 영화였던 사람의 족적을 통시적으로 들여다보고 있자니 이것이야말로 인간의 한살이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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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죽음
우디 앨런 감독, 다이앤 키튼 외 출연 / 무비스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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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대로 주인공이 사랑과 죽음을 겪는 이야기. 사랑과 죽음에 관해 이 영화가 주는 직접적인 메시지는 이러하다- 사랑은 양보다는 질이 중요하나 다만 양에 있어서 그 횟수가 8개월에 한 번 꼴로 저조해지면 곤란하다. 죽음은 비용을 절감하는 효율적인 방법일 수 있는데 왜냐하면 살아가는 동안 죽음보다 더 끔찍한, 이를테면 보험 세일즈맨과 저녁을 같이 한다든지 하는 따위의 일들이 다반사로 일어나기 때문. (인간의 삶을 이렇게 고통으로 점철되도록 설계해버린 신은 저능하면 저능했지 결코 악한은 아닐 거라고 ㅎㅎ) 죽음을 맞이한 주인공이 저승사자와 얼싸절싸 막춤을 춰가며 표표히 저승길을 떠나는 모습을 오래도록 비추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여운이 남는 엔딩씬이다.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일견 한없이 결연해서.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이보다 더 바람직한 자세가 또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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