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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리그
우디 앨런 감독, 미아 패로우 외 출연 / 조이앤무비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광대 하나 앞세워 포복절도하게 만드는 만만한 코미디려니 하고 방바닥에 널브러져서 봤다가는 기습 당하고야 말 것이다. 훅 치고 들어온다. 무려 '주체적인 인간이 될 것'을 이 영화가 촉구하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면 무슨 도덕군자의 진부한 훈교 같지만 영화에서 이 메시지를 구현하는 방식은 소름 돋는다. 놀랍고 극적이고 감동적이다. 웃기는 건 기본이고.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탁월한데 이 영화는 비범하게도 한 발 더 나아가- 주체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모방과 재현에만 특화된 인간이 보여주는 의외의 잠재력과 또 다른 가능성, 어떤 희귀한 인간 유형이 지닌 고유의 속성에서 비롯하는 명암이 갈리는 갖가지 사건들과 그에 대한 대중의 극단적이고도 피상적인 조삼모사식 가치평가까지도 사려 깊게 주목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한편으로는 우리로 하여금 주체적인 인간이 되기를 촉구하면서도 그저 주체적인 인간이 바람직하고 그렇지 못한 상태는 문제적이라는 일차원적 결론에 머무는 게 아니라, 왜 인간사는 모 아니면 도로 단순하게 나누어떨어지는 산수가 아닌지, 왜 사회는 예측불허의 우연과 부조리와 아이러니로 가득할 수밖에 없는지 그 필연적인 복잡성에 대해서마저도 숙고하게 만든다.
아울러 영화는 극단적으로 주체성을 상실해버린 이 '젤리그'라고 하는 인간이 어떤 연유로 사회에 출현하게 되었는지 그 심리적 내지는 사회적 기원에 대해서도 청산유수의 허풍을 떨어가며 다각도의 심층적인 진단을 해보이고 있는데, 꽤나 설득력이 있다. 아마도 부분적으로는 우디 앨런 자신에 관한 자기분석이기도 할 것이다.
엄격한 자기객관화,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은 인문학적 이해와 철학적 통찰 없이는 절대 만들 수 없는 작품이란 생각이 드는 와중에, 더욱 대단하게 느껴지는 점은 이 모든 이야기가 무슨 고리타분한 현대사회학 강좌가 아니라 '코미디'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 영화는 웃기다. 코미디 장르라는 본분에 지극히 충실하다. 세상에 코미디물은 많지만 비범한 코미디는 드물다. 드문 것은 귀하다. 이 영화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