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에 기반한 출발은 좋았으나 욕심이 과했다. 중반부 쯤에서 적당히 자제했어야 했는데. 법조계, 정계 인물들을 데려다가 <아저씨>를 찍어버리면 어떡하나. 피칠갑을 해서 한꺼번에 몰살을 시켜버리다니 클라이막스를 향한 의지는 알겠지만 이건 뭐랄까 너무 초현실적이잖아. 비록 욕심을 주체를 못하고 산으로 올라가다 못해 승천해버리긴 했지만 여러모로 저평가된 영화이긴 한 듯. 성지순례 다녀올 만하다.
우디 앨런이 96년도에 뉴올리언스 재즈 밴드 멤버들과 함께 유럽 여러 도시들을 순방하며 클라리넷 공연을 펼치는 모습을 담은 이 다큐는 -물론 어떤 계산이 좀 있었겠지마는- 순회공연의 여정 못지않게 순이와 앨런의 관계도 비중 있게 보여준다. 사실 순이가 이렇게 큰 비중으로 등장할 줄은 몰랐는데. 비키니 입은 모습까지 보게 될 줄이야. 오물 범벅의 진흙탕을 헤쳐나가기 위해선 오로지 솔직만이 답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던 걸까. 다큐에 나오는 순이는 배려심 있으면서도 주관이 뚜렷하고 전반적으로 밝은 사람 같다. 열 길 물속보다 깊은 남의 연애사를 어찌 알랴만은 그래도 섬세한 영혼을 가진 비관주의자가 정서적으로 기댈만하기에는 히스테리컬한 면이 느껴지는 미아 패로보다야 나아 보인다.
자기반영적 성격이 두드러진다는 점에서는 전작 <스타더스트 메모리즈>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도 같지만 수준은 그에 훨씬 못 미친다. 정신적 긴장도(?)가 많이 떨어져 보인다. 자신이 만들어낸 작중 인물들에게 우디 앨런이 감사를 표하고 이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는 장면이 영화 막바지에 나오는데 자기가 창조해낸 허구의 인물들에 대한 애정이야 알겠지만 뭐랄까 너무 자족적이잖아. 이 영화에선 유독 우디 앨런의 자기 비하가 심하다. 원래 그런 게 특기라지만 이번엔 거의 자기 학대 수준이다. 문제는 이게 너스레처럼 느껴진다는 거다. 앓는 소리 같다. 자기고백에 진정성이 부족해 보이는 까닭은 정작 이 영화의 대단원이 상당히 자족적이고 일견 자기도취적으로 완결되고 있기 때문 아닐까. 이것은 하나의 역설이다. 이 영화의 커다란, 어쩌면 문제적인 역설이다.
막간의 소극 같은 정도의 작품이지만 오래도록 인상에 남는다. 이야기에 담긴 페이소스 때문에. 뭉클한 온기 때문에. 이 영화엔 그 어떤 비관주의나 냉소주의의 기미도 안 보이고, 단지 애틋함과 다정함만 배어있다. 어디선가 이 영화를 우디 앨런이 자신의 매니저를 모티브로 해서 만들었다고 읽은 것 같기도 한데, 그게 정말이라면 마땅히 매니저에게 바치는 헌정작이라 할 만 하겠다. A를 배신하면서까지 B에게 정성을 다 바쳤으나 결국 B에게 배신당하고 자신이 버린 A와 똑같은 신세로 전락한 주인공, 그제야 비로소 A에게 미안함을 느끼고 그동안 괄시했던 삶의 어떤 진실을 깨닫게 되는데... 그러고 보니 맨하탄과 비슷한 플롯 같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