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선집 1 - 개정판
김종철 엮음 / 녹색평론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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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92년도에 녹색평론지에 게재된 글 가운데 일부를 추린 책. 시인, 수필가, 환경운동가, 과학자, 건축가 등 다양한 직종을 가진 필자들이 모여 생태와 환경에 대한 담론을 펼치고 있다. 내용을 언급하기에 앞서 먼저 이 책의 생김새 자체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겠다. 외형부터가 이미 책에서 논의된 담론을 적극적으로 실천함으로써 무언의 웅변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출판사의 <오래된 미래>보다도 한층 더 금욕적인 느낌이 드는 이 책은 전 페이지를 통틀어 사진이 전무하고 표지는 한없이 엄숙하며 400페이지에 육박하는 내지는 역시나 재생지인데다가 글자 크기 또한 깨알 같다. 철학과 신념이 고스란히 반영된 이 책의 외형에서 순간 경건함마저 느꼈다면 지나친 감상일까.  

이 책에서 녹색평론 주간 김종철 씨는 "진실로 사람다운 삶을 누릴 수 있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협동적인 공동체를 만들고, 상부상조의 사회관계를 회복하고, 하늘과 땅의 이치에 따르는 농업 중심의 경제생활을 창조적으로 복구함으로써 생태학적으로 건강한 생활을 조직하는 일밖에 다른 선택이 없다"고 (헤아려 보면 20년 동안 일관성 있게) 주장하고 있으며, 미국의 환경운동가 제리 맨더는 "텔레비전이 인간의 의식과 정신을 침략하여 그것들을 상품화한다"면서 텔레비전을 집에서 없앨 것을 제안하고, 하싼 파티라는 건축가는 주인이 소외된 채 자본논리에 의해서만 건축되는 현대의 가옥에 의문을 제기하며 저렴하고 토착의 재료를 사용한 (그래서 그 어느 곳보다도 제3세계에 꼭 필요한) 생태적 가옥을 소개한다. 또한 영국의 과학자 제임스 러브로크는 생물권과 대기권과 지각과 수계가 화합을 이루어 유기적으로 활동하는 거대하고 전지구적인 기능적 단위로 가이아라는 개념을 제안하며, <탈학교 사회>를 쓴 이반 일리치는 간디의 오두막을 다녀온 소감으로 "우리가 평생 동안 끊임없이 수집하는 가구나 기타 물품들은 우리에게 결코 내면적인 힘을 주지 않으며, 우리가 소유한 불필요한 물건이나 상품들은 오히려 주위환경으로부터 행복을 섭취할 수 있는 우리 고유의 능력을 위축시킨다"고 강조한다. 

이 책에서 특히 곱씹어 볼만한 이야기는 마지막 꼭지인 제레미 리프킨의 <쇠고기를 넘어서>라는 글이다. 리프킨은 이 글에서 개인의 건강을 위해서든, 지구생태계의 보전을 위해서든, 제3세계의 굶주리는 사람들을 위해서든, 또는 동물 학대를 막기 위해서든, 산업사회에 있어서 고기 중심의 식사습관은 하루빨리 극복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날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기근으로 죽어나가는 에티오피아가 유럽 국가들에 가축 사료를 수출하기 위해 농토의 일부를 사료용 곡물을 재배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거나, 지난 반세기 동안 세계 전체 목초지의 60퍼센트 이상이 과도한 방목으로 파괴되었다거나, 소들이 먹는 사료용 곡물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석유화학 비료에서 지구온난화 요인의 6퍼센트에 해당하는 질소산화물이 발생한다거나 하는 이야기들은 나로서는 그야말로 금시초문의 충격적인 사실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나는 쇠고기를 얼마나 진심으로 열렬하게 충심으로 가슴 깊이 투철하게 사랑해왔단 말인가! 그러나 앞으로는 어쩐지 쇠고기를 먹을 때마다 죄책감에 시달리게 될 것 같다. 차라리 모르고 말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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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삶을 만나다
강신주 지음 / 이학사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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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에게 철학이란 '우리라는 특정한 공동체에서는 지금 당장 수용되지 않더라도 앞으로 도래할 세계의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수용될 수 있는 새로운 주장을 제안할 수 있는' 어떤 것이다. 철학은 '지금-여기now-here'를 비판적으로 다루면서 또한 동시에 '아직 없는nowhere' 세계를 상상하는 학문이기에 참된 철학이란 니체의 말처럼 항상 반시대적이어야 한다. 이런 관점을 바탕으로 이 책에서는 가족, 국가, 자본주의 등을 하나하나 낯설게 (그래서 불온하고 발칙하게) 고찰한다. 이 책을 읽어 나가다 보면 사회를 유지하는데 필요악으로 여겨졌던 국가가 기본적으로는 '지속적인 강탈을 위해 재분배를 작동시키는 폭력적인 기구'일 수 있다거나 하는 등의 신선한 깨달음을 끊임없이 얻게 되는데 그로인한 즐거움이 바로 이 책의 묘미인 것 같다.   

이 책에서 재미있었던 (그리고 전적으로 동의하는) 부분: '사랑'에 대해 프랑스 철학자 바디우는 '둘이 하나를 지향하는 변증법적 노정'으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둘 사이의 긴장된 관계성'을 그 본질로 정의내린다. 사랑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독자적이고 주체적인 두 개체의 존재가 전제 조건인 것. 그의 사유에 따르면 사랑하는 관계에서는 고독이 불가피하게 된다. 사랑에 빠진 주체가 사랑하는 타자 속에서 일종의 무한성을 경험하게 되기 때문. 사랑 속에서 경험하는 무한성 앞에서 유한한 우리는 항상 고독과 좌절을 느낄 수밖에 없다. 마치 기도하는 자가 자신의 침묵 속에서 그런 감정을 갖게 되는 것처럼. (p.133) 바디우는 이때의 고독을 '방법론적 고독'이라 일컬으며 칸트의 방법론적 회의가 사유의 주체를 정립시켰듯이 방법론적 고독은 사랑의 주체를 가능하게 해줄 것이라고 말한다. '함께 있되 거리를 두어 하늘바람의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던 칼릴 지브란의 시구절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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率路 2009-06-21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애하는 친구들이 조울증 걸린 사람처럼 허구헌날 자랑하다 앓는소리 하다 자랑하다 앓는소리하다를 반복하는게 괜한일이 아니었군요!-_-;;;; (이거야 말로 엉뚱한 소리겠죠?^^;;;;;)

수양 2009-06-21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솔로님도 어서 솔로 탈출하셔서 사랑의 주체가 되어 자랑하다 앓길 반복하길 바랍니다 하하
 
위험사회 (양장) - 새로운 근대(성)을 향하여
울리히 벡 지음, 홍성태 옮김 / 새물결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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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가족, 사회, 계급, 관계 맺기 방식, 생애주기, 성(gender), 과학, 노동, 정치 등 다방면에 걸쳐 미래 사회의 변화 모습을 예견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산업사회 이후에 도래할 새로운 사회를 ‘위험사회’로 규정하고 있는 점이 특징적이다. 울리히 벡은 고전적 산업사회에서 부 생산의 논리가 위험 생산의 논리를 지배했었다면, 다가올 위험사회에서는 이 관계가 역전된다고 말한다.  

위험의 개념과 특징 및 그 파급 효과ㅣ 위험사회에서의 ‘위험’의 개념이란, 대단히 스케일이 커서 일반 대중의 인지 수준을 뛰어넘는, 거대한 베일 속의 정체 모를 어떤 것(?)을 말한다. 그것은 구체적이지 않고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으며 초국가적이고 초계급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런 종류의 위험으로는 방사선 누출이라든지 지구 온난화 현상, 전문직 근로자의 스트레스성 정신질환, 노동시장이 저고용 체계로 전환되면서 고용 불안정성이 야기하는 위험 같은 게 있다. (그 외 수만가지)  

위험사회에서는 위험이 사회 정치적 논쟁에서 중심적인 중요성을 획득한다. 그러니까 미래사회에는 위험이라는 개념, 즉 위험의 분배나 위험으로부터의 안전 등이 사회의 화두가 된다. 위험 사회에서는 위험을 진단, 판단, 논증할 수 있는 소수 전문가 그룹이 권력을 갖게 된다. 또한 위험이 피상적이고 관념적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위험의 조작, 은폐, 왜곡이 가능하며 대중은 이러한 위험요소에 대해 속수무책으로 무방비하게 노출된다. 그런가 하면 위험은 하나의 시장기회이기도 하다. 위험으로 인해 득을 보는 자와 손실을 입는 자가 생긴다. 기타 등등 위험이 야기하는 여러가지 변화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다는 못 쓰겠다.  

성찰적 근대화ㅣ 한편, 산업사회가 근대화의 시절이었다면 위험사회에서는 성찰적 근대화가 일어난다. 말이 성찰적 근대화지 뭐 대단한 것이 아니라 이를테면 급진화된 근대화, 즉 근대화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한 가지 예로 과학 분야에 있어서의 성찰적 근대화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과학은 이제 진리의 권좌에서 물러나고 운명론, 점성술, 종교 등의 새로운 진리의 연금술사들이 대두한다. (지식원천의 다원화, 분화, 극복잡성) 그리하여 고정적이고 정확하고 확실한 계산이 이루어지기 힘들고, 중구난방식의 평가가 무성해지면서 (계산가능성의 감소, 평가가능성의 증대) 더 이상 과학적 처리결과가 하향식의 권위주의적 방식으로 실행되지 않는다. 

개인의 생애에 있어서의 성찰적 근대화ㅣ 이 책에서 특히 개인의 생애에 있어서의 성찰적 근대화 부분이 인상적이다. 울리히 벡은 사람들의 개인주의 경향을 노동시장의 산물이라고 하면서, 미래사회에는 개인주의가 지금보다 훨씬 심화될 것으로 전망한다. 가족이나 이웃 등의 전통적인 지원망이 소실되고, 개인은 경제적 생존을 위해 노동시장에 의존하게 된다. 개인의 자급자족력이 떨어지고, 반면에 시장종속성, 제도 종속성, 사회 의존성 등은 심화된다. 자급자족력이 떨어지는 모래알 같은 사람들을 위해서 각종 인프라가 다양하게 구축되고 제도도 더욱 복잡해진다. 그럴수록 개인은 점점 더 강력하게 사회망에 종속된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미래에는 개인주의가 만연하면서도 지극히 제도 의존적인 통제 사회가 가능하게 된다. 

이제 미래사회의 인간은 무성해진 제도와 갖가지 복잡한 사회 시스템들을 직접 취하고 판단하고 결정할 줄 알아야 한다. 자기생존을 위해 사회제도들을 능란하게 운용할 줄 아는 것이 미래인간의 기본적인 소양이 되는 것이다. 과거의 위난이 자연재해처럼 외부의 절대적이고 강력한 영향으로 인해 야기된 것이었다면, 미래에는 개인의 판단 실수, 계산 착오가 돌이킬 수 없는 위난을 야기한다. 복잡한 선택 항목 없이 그저 조상의 라이프스타일을 답습하면 되었던 과거의 표준적인 생애에서 이제는 자기선택적인 생애로 변화한다. 즉, 생애주기가 다원화된다. 그래서 미래의 인간은 주체적이고 자발적이고 독자적으로 자기의 생애를 형성해 나간다. 개인의 생애가 ‘성찰적 근대화 과정’을 겪는 것이다.  

이러한 책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아마도 성찰적 근대화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미래사회의 인간이라면, 복잡한 사회 시스템과 제도들을 기본적으로 줄줄이 꿰고 있어야 할 모양이다. 말하자면 미래사회의 호모 사피엔스란- 보험제도, 은행대출서비스, 주식투자, 각종 부동산 관련제도 기타 등등에 관해 해박한 사유가 가능한 자를 일컫는 셈이다. 아, 나는 보험이니 부동산이니 하는 말만 나와도 서서히 골치가 아파오기 시작하는데. 미래 사회는 나 같은 몽상가들에게는 한없이 냉혹한 사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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率路 2009-05-18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사진에 대해선 다들 한마디씩 하는듯.. 새판이 나와도 똑같더군요-_-;;;;;

수양 2009-05-18 0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스처가 뭔가 심상치 않은 것이.. 입 다물고 가만히 있으라는 건가 싶기도 하구;;
 
만들어진 신 - 신은 과연 인간을 창조했는가?
리처드 도킨스 지음, 이한음 옮김 / 김영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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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반부에 저자가 종교를 '과거에는 유용했던 심리적 성향의 불운한 부산물일 수 있다'고 주장하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과거에 유용했던 심리적 성향이란, 인간이 이원론적이고 창조론적으로 세계를 인식하는 성향을 말하는데, 이것이 인간으로 하여금 경험자의 명령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도록 하는 특질을 낳았고, 종교라는 형식으로 구체화되면서 오늘날 전세계적 광신 현상의 시발이 되었다는 것이다.  

'부산물(내지는 부작용)'의 개념은 나방 이야기에 비유하여 설명할 수 있다. 나방은 광원을 일종의 나침반으로서 이용한다. 즉 나방의 비행로는 빛을 기점으로 한 나선 궤도이다. 만약 광원이 달빛이라면 나방은 직선 방향으로 날아갈 수 있겠지만, 달빛이 아닌 인공조명이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가로등 주위를 미친듯이 맴돌고 있는 나방, 그것은 일종의 '불운한 부작용'이며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보자면 에러가 난 것이다.  

종교 활동(정확히는 광신 현상)을 가로등을 맴도는 나방에 비유한 저자의 탁견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이 시대의 맹목적인 종교 활동은 오늘날의 자본 사회 시스템과 공생 관계를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정체나 휴식의 시간이 부재하고 항상 끊임없이 무언가를 선택하고 소진시키기를 부추기는 자본 사회의 속성이 광신을 부채질하고 있는 건 아닐까. 갑자기 시야에 나타나 우리를 현혹하는 가로등, 느닷없이 출현하여 인류를 에러 상태로 몰고 가는 신종 컴퓨터 바이러스 같은 존재가 혹 자본 사회 시스템은 아닐까...  

2. 초월적이고 원대한 가치를 발견하려는, 또는 그러한 것을 지향하려는 끝없는 상승의지, 자신의 의미결핍을 극복하고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로서 온전한 실존을 찾고자 하는 욕망- 이러한 성향들은 어쩌면 인간이 인간이기에 가질 수 있는 아름다운 본능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러한 본능이 종교라는 제도로서 현현하는 것인지도. 뭐랄까, 진화생물학적 자기인식은 너무나 정직해서 차라리 앙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거기에는 인간만이 가진 형이상학적 욕망, 꿈과 이상과 낭만과 희망이 개입할 여지가 하나도 없다. 그런 것이 과학이라면, 애석하게도 나는 과학이라는 학문을 별로 좋아하고 싶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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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이해하는 현대사상 그림으로 이해하는 교양사전 1
발리 뒤 지음, 남도현 옮김 / 개마고원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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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전반에 대한 배경지식이 희박한 독자들을 향해 현대 철학사상의 핵심적인 개념이나마 최대한 쉽게 설명해주려는 저자의 태도가 너무나 곡진하게 와닿는다. 지금까지 장님 코끼리 더듬는 식으로 이것 저것 읽어본, 대중을 위한 철학 개론서 중에서는 가장 자상한 것 같다. 혹자는 너무나 명쾌하게 설명된 나머지 철학의 복잡한 개념들이 도식화되어버린 건 아닌가 하는데, 도식화된 기본 개념조차 깔려있지 않은 나 같은 사람에게는 단비 같은 책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이것이 위험스러울만치 단순한 이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나 이렇게 시작하기 마련이고, 또 당연히 그럴 수 밖에 없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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