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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사회 (양장) - 새로운 근대(성)을 향하여
울리히 벡 지음, 홍성태 옮김 / 새물결 / 1999년 3월
평점 :
품절
환경, 가족, 사회, 계급, 관계 맺기 방식, 생애주기, 성(gender), 과학, 노동, 정치 등 다방면에 걸쳐 미래 사회의 변화 모습을 예견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산업사회 이후에 도래할 새로운 사회를 ‘위험사회’로 규정하고 있는 점이 특징적이다. 울리히 벡은 고전적 산업사회에서 부 생산의 논리가 위험 생산의 논리를 지배했었다면, 다가올 위험사회에서는 이 관계가 역전된다고 말한다.
위험의 개념과 특징 및 그 파급 효과ㅣ 위험사회에서의 ‘위험’의 개념이란, 대단히 스케일이 커서 일반 대중의 인지 수준을 뛰어넘는, 거대한 베일 속의 정체 모를 어떤 것(?)을 말한다. 그것은 구체적이지 않고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으며 초국가적이고 초계급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런 종류의 위험으로는 방사선 누출이라든지 지구 온난화 현상, 전문직 근로자의 스트레스성 정신질환, 노동시장이 저고용 체계로 전환되면서 고용 불안정성이 야기하는 위험 같은 게 있다. (그 외 수만가지)
위험사회에서는 위험이 사회 정치적 논쟁에서 중심적인 중요성을 획득한다. 그러니까 미래사회에는 위험이라는 개념, 즉 위험의 분배나 위험으로부터의 안전 등이 사회의 화두가 된다. 위험 사회에서는 위험을 진단, 판단, 논증할 수 있는 소수 전문가 그룹이 권력을 갖게 된다. 또한 위험이 피상적이고 관념적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위험의 조작, 은폐, 왜곡이 가능하며 대중은 이러한 위험요소에 대해 속수무책으로 무방비하게 노출된다. 그런가 하면 위험은 하나의 시장기회이기도 하다. 위험으로 인해 득을 보는 자와 손실을 입는 자가 생긴다. 기타 등등 위험이 야기하는 여러가지 변화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다는 못 쓰겠다.
성찰적 근대화ㅣ 한편, 산업사회가 근대화의 시절이었다면 위험사회에서는 성찰적 근대화가 일어난다. 말이 성찰적 근대화지 뭐 대단한 것이 아니라 이를테면 급진화된 근대화, 즉 근대화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한 가지 예로 과학 분야에 있어서의 성찰적 근대화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과학은 이제 진리의 권좌에서 물러나고 운명론, 점성술, 종교 등의 새로운 진리의 연금술사들이 대두한다. (지식원천의 다원화, 분화, 극복잡성) 그리하여 고정적이고 정확하고 확실한 계산이 이루어지기 힘들고, 중구난방식의 평가가 무성해지면서 (계산가능성의 감소, 평가가능성의 증대) 더 이상 과학적 처리결과가 하향식의 권위주의적 방식으로 실행되지 않는다.
개인의 생애에 있어서의 성찰적 근대화ㅣ 이 책에서 특히 개인의 생애에 있어서의 성찰적 근대화 부분이 인상적이다. 울리히 벡은 사람들의 개인주의 경향을 노동시장의 산물이라고 하면서, 미래사회에는 개인주의가 지금보다 훨씬 심화될 것으로 전망한다. 가족이나 이웃 등의 전통적인 지원망이 소실되고, 개인은 경제적 생존을 위해 노동시장에 의존하게 된다. 개인의 자급자족력이 떨어지고, 반면에 시장종속성, 제도 종속성, 사회 의존성 등은 심화된다. 자급자족력이 떨어지는 모래알 같은 사람들을 위해서 각종 인프라가 다양하게 구축되고 제도도 더욱 복잡해진다. 그럴수록 개인은 점점 더 강력하게 사회망에 종속된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미래에는 개인주의가 만연하면서도 지극히 제도 의존적인 통제 사회가 가능하게 된다.
이제 미래사회의 인간은 무성해진 제도와 갖가지 복잡한 사회 시스템들을 직접 취하고 판단하고 결정할 줄 알아야 한다. 자기생존을 위해 사회제도들을 능란하게 운용할 줄 아는 것이 미래인간의 기본적인 소양이 되는 것이다. 과거의 위난이 자연재해처럼 외부의 절대적이고 강력한 영향으로 인해 야기된 것이었다면, 미래에는 개인의 판단 실수, 계산 착오가 돌이킬 수 없는 위난을 야기한다. 복잡한 선택 항목 없이 그저 조상의 라이프스타일을 답습하면 되었던 과거의 표준적인 생애에서 이제는 자기선택적인 생애로 변화한다. 즉, 생애주기가 다원화된다. 그래서 미래의 인간은 주체적이고 자발적이고 독자적으로 자기의 생애를 형성해 나간다. 개인의 생애가 ‘성찰적 근대화 과정’을 겪는 것이다.
이러한 책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아마도 성찰적 근대화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미래사회의 인간이라면, 복잡한 사회 시스템과 제도들을 기본적으로 줄줄이 꿰고 있어야 할 모양이다. 말하자면 미래사회의 호모 사피엔스란- 보험제도, 은행대출서비스, 주식투자, 각종 부동산 관련제도 기타 등등에 관해 해박한 사유가 가능한 자를 일컫는 셈이다. 아, 나는 보험이니 부동산이니 하는 말만 나와도 서서히 골치가 아파오기 시작하는데. 미래 사회는 나 같은 몽상가들에게는 한없이 냉혹한 사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