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콤 X는 흑백 통합이 아닌 흑백 분리를 주장한 급진적 흑인 인권운동가였는데, 그는 마틴 루터 킹 목사를 백인 입맛에 맞는 흑인해방운동을 한다고 비난한다. 그의 눈에 비친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어디까지나 ‘백인 밑에 기식하는 흑인 부르주아지’의 이익을 대변하는 운동가였던 것이다. 말콤 X와 마틴 루터 킹 목사를 필두로 미국 흑인해방운동의 노선이 두 가지였다는 사실, 즉 60년대 미국 흑인 인권 운동에는 인종뿐만 아니라 계층 문제도 깊숙이 개입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이 책을 읽기 전엔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말콤 X는 미국의 가장 밑바닥 사람들, 그러니까 할렘가 흑인들의 삶을 조명했던 셈이다. 이런 사람들은 언제나, 강자가 서술하는 역사에는 결코 큰 비중으로 등장하지 않는 것 같다.
이한열, 박관현, 박종철, 김세진, 이재호. 이들은 모두 이십대 초중반에 최루탄에 맞거나 분신자살 함으로써 생을 마감했다. 이들의 개인적 삶은 어떠했을까. 어떤 힘이 이들의 정신을 각성시키고 용기를 불러 일으켰을까. 그들의 육신은 이미 오래전에 세상을 떴지만 자취는 여전히 활자로 살아남아 나 같은 이로 하여금 인간의 의지, 용기, 정신성 같은 것들을 곱씹어 보게 만든다.
폭력은 옳지 않다. 그렇다면 부당한 상황 속에서 일어나는 폭력은 어떨까. 80년대 폭력 시위,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테러, 말콤 X의 인권운동, 안중근의 히로부미 저격 등과 같은 폭력 행위도 모두 부정되어야만 할까. 정작 부정해야 할 것은, 평화주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그런 폭력들이 무조건 부정적으로 이해되는 상황 자체가 아닐까. 만약 우리가 극악무도한 군부체제를 겪고 있는 시민이라면, 혹은 여태껏 살아온 터전을 한순간에 빼앗겨버린 팔레스타인 사람이라면, 혹은 피부가 검다는 이유로 핍박과 차별과 굴욕을 감내하며 살아야만 한다면, 우리는 폭력을 저질러야 한다. 윤리적으로, 그리고 당위적으로.
개발도상국이 민주주의와 방임적인 시장경제 제도를 동시에 받아들여 세계화의 대열에 합류하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저자는 개도국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기만적으로 통용되고 있는지 다양한 사례를 들어 설명한 후, 개도국이 받아들이는 방임적인 시장제도가 서구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포기한 제도라고 강조한다. 요지는, 개도국의 세계화가 불가피하게도 이러한 모순과 병폐를 안고 진행되기 때문에 그로 인해 시장점유 소수집단에 대한 다수토착세력의 원한과 증오가 점차 가중되는 부작용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세계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점들을 도의적인 차원에서 해결할 수 밖에 없단 식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는데 뭔가 김빠지는 결론이다.
4.19의 의의와 한계, 박정희의 개인사, 이승만 하야 후 뚜렷한 정치적 구심점 없이 사분오열했던 정치판, 군부의 성장과 5.16 쿠테타 등을 다루고 있다. 특히 이 책에서는 이승만 대통령 하야 이후 5.16 쿠테타가 일어나기 전까지 거진 일 년 정도 존재했던 장면 내각에 대하여 굉장히 소상히 조명하고 있다. 흔히 장면 내각은 쿠테타를 막지 못한 무능한 정부로 알려져 있지만, 이 책에서는 장면에 대한 세간의 인색한 평가가 쿠테타 세력이 30년 넘게 한국 사회를 지배함으로써 빚어진 역사 왜곡의 결과라고 말한다. 이 책에서 어떤 역사 연구자는 장면이 단군 이래 최초로 민주주의라는 신화를 역사적 현실로 바꿔놓은 인물이라고까지 평하기도 한다. 어쩌면 무능한 것은 장면이라는 일개인이 아니라, 당시 낙후되어 있던 국내 정치판과 시민 의식 전체였는지도 모른다.
한국의 현대사는 거진 미국의 배후조종에 의해 이루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이 책을 읽어보면, 오로지 국내에서 이루어진 이전투구의 정치사라고만 알고 있던 곳곳에 실상은 미국의 이권과 영향력이 깊이 개입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