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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 산책 1980년대편 1 - 광주학살과 서울올림픽 한국 현대사 산책 12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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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 산책> 시리즈로 뒤늦게 한국 현대사에 대해 알아갈수록 인간 존재의 지극한 동물성에 치를 떨게 된다. 흡사 원시림의 생태계를 방불케 하는 우리네 역사 속에서 인간이 동경하는, 혹은 당위로 여기는 초월적 관념들은 대체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어쩌면 그것은 일종의 프로파간다로서만 존재하는 허구가 아닐까. 한국현대사를 살펴보고 있으면 문득 인간 본연에 내재해 있는 동물적 야만성과 잔인성 같은 것들에 대하여 탐구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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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영국사 - 아서 왕에서 엘리자베스 2세까지 이야기 역사 9
김현수 지음 / 청아출판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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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프랑스와 같은 대규모 유혈 혁명이 일어나지 않은 까닭은 혁명의 과정이 온건하고 장기적인 방향으로 이루어진 덕분에 그 사이에 여러 완충지대들이 생겨났기 때문인 듯하다. 영국의 민주주의 발달사를 살펴보면 상대적으로 프랑스 혁명이 야만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지정학적 특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영국의 경우도 그렇고 확실히 유럽 국가에서 군주의 입지는 동양권 전제국가에 비할 바가 못되는 것 같다. 군주가 결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없고 끊임없이 제후들과 상호 견제 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 속에 영국의 민주주의가 자연스레 태동할 수 있었다면, 조선 후기 과열되었던 당파 싸움이 그토록 소모적이기만 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당쟁은 무조건 국론분열을 초래하는 정치악이며 강력한 중앙 집권 국가는 곧 나라의 기틀이 다져지는 바람직한 현상이라는 식의 논조로 일관했던 국사 교과서의 필자들은 꽤나 보수적인 역사관을 가지고 있었던 게 아닐까. 영국의 민주주의는 그야말로 참혹한 국론분열과 내전 속에서 피어난 한 송이 꽃인데.

이 책은 정확히 말하면 <이야기 영국'왕실'사>라고 해야할 것 같다. 찬탄을 거듭하며 영국 왕실의 역사를 훑고 나니 뭔가 가슴 벅찬 소회가 밀려온다. 왕실이 점차적으로 치국의 전면에서 물러나 의회와 국민 사이를 중재하는 완충 역할을 담당하게 되고 한편으로는 영국의 전통과 철학을 보여주는 상징적 존재로 거듭나는 자연스런 일련의 과정들은, 그야말로 민주주의 초석을 세운 국가답게 지극히 이상적이다. 영국에 비하면 우리나라 근대 정치사는 참으로 내세울 것이 없구나.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달사를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개도국의 전형 아닌가.

영국에서 정부가 노동당을 승인한 것이 조지 5세가 집권했던 20세기 초였다. 지금으로부터 약 백년 전이다. 출범한지 세 돌을 갓 넘은 민노당마저 사분오열의 위기에 봉착한 한국의 현 정치 상황은 영국의 백년 전 수준을 달리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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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파시즘
임지현.권혁범 외 지음 / 삼인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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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여러 명인데 그 가운데 권인숙 씨가 쓴 <진보, 권위 그리고 성 차별>이라는 글꼭지가 인상적이다. 굉장히 아름답고 감동적인 글이다. 그녀는 80년대를 인간이 암흑 속에서 얼마나 아름다운 형태로 살아남을 수 있는지 보여준 시대였다고 회상하며 386세대에 대한 기본적인 애정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가 살아온 시대의 변태성이 우리를 깊게 규정하고 있다'고 자성하면서 80년대 운동권 세대에 잔존해 있는 파시즘적 속성에 대해 경계한다. 누군가 말하기를, 우리는 우리가 가장 혐오하는 것과 가장 닮아있다고 하질 않던가. 어떤 대상을 극복하기 위한 궁극적인 방법은 대상과의 절교나 화해가 아니라 그저 대상이라고 하는 존재 자체를 망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확실히 월드컵세대는 축복을 받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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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럿이 함께 - 다섯 지식인이 말하는 소통과 공존의 해법
신영복 외 지음, 프레시안 엮음 / 프레시안북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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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김종철 최장집 박원순 백낙청 선생의 강연 및 토론 내용이 차례대로 실려있다. 그 중 두 번째로 나오는 김종철 녹생평론 발행인- 나는 이 분(함부로 이름을 부르기는 왠지 멋쩍은데 뭐라 해야 할지)을 작년도 창비 봄호에서 <민주주의, 성장논리, 농적(農的) 순환사회>라는 제호의 글로 처음 알게 되었고, 이후 한겨레 사회면에 큼지막하게 실린 인터뷰를 통해 또 한 번 만난 적이 있다. 지금 이 책이 세 번째인 셈인데, 세 번의 짧은 만남 만으로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나는 정말이지 이 분을 혁명가라 부르고 싶다. 성장 중단과 농적순환사회로의 회귀라는 기치를 내걸고 녹색평론이라는 사상지로 무장한 혁명가. 처음에 나는 이 분이 내놓은 대안이 지나치게 급진적이고 (심지어 낭만적으로까지 느껴지고) 실현 가능성은 영 희박해 보였기 때문에 회의적인 입장이었다. 이 시대에 무려 자급자족하는 소규모 영농사회로 돌아가자니! 그러나 언젠가부터 이 분의 말을 심각하게 경청하는 나 자신에게 놀라고 있다. 이 분의 말씀은 여전히 '꿈 같은 소리'지만,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순간 어느새 나도 꿈을 꾸게 된다. 불가능을 꿈꾸게 하는 것만으로도 그는 나에게 혁명가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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率路 2009-05-11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김종철 선생님께는 일종의 경외(?)같은걸 느끼는데요, 그게 참 가슴아프게도 저로써는 죽었다 깨어나도 실천할 수 없는 삶의 양식을 실천하고 계시는거 같아서 말이죠. 한마디로 동의는 하되 따라하진 못하겠습니다 지송, 뭐 이런...-_-;;;;;

수양 2009-05-12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뭐 역시 따라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꿈만 꾸고 감탄만 할 뿐이죠. 그래도 새로운 삶의 양식에 대한 꿈이라도 꾸기 시작했다는 게 저로서는 장족의 발전입니다.
 
츠바이크가 본 카사노바, 스탕달, 톨스토이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나누리 옮김 / 필맥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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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의 생애가 유독 흥미롭다. 그는 대외적으로는 세계 만방에 평화와 사랑, 인류애, 형제애를 천명하면서 내적으로는 극도의 자기 절제와 자기 재판, 자기 검열을 반복했던 사람이었다. 안과 밖으로 모두 지독한 이상주의자였던 것이다. 이 책 관련해서 친구와 나눴던 채팅을 요약하는 것으로 리뷰를 갈음한다. 

나: 슈테판 츠바이크의 <카사노바, 스탕달, 톨스토이>를 읽고 톨스토이가 남긴 일기에 관심이 생겨서 어제 학교 가서 톨스토이의 일기를 빌렸다. 나는 톨스토이의 소설보다도 톨스토이라는 사람 자체에 더 관심이 간다. 톨스토이는 확실히 나와 비슷한 인간형인 것 같다. 물론 그 사람은 거장이고 나는 한갓 필부라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친: 그 책에서 톨스토이는 어떤 사람으로 묘사되어 있나?
나: 그는 굉장한 이상주의자였다. 대외적으로는 작품을 통해 세계 만방에 평화와 사랑, 인류애, 형제애를 천명했지만 내적으로는 극도의 자기 검열과 자기 재판을 반복했던 사람이었다. 가혹하리만큼. 스스로를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채찍질했던 사람이다.
친: 빡센 인생을 살았겠군.
나: 난 그 정도까진 아니지만 뭐랄까, 나 역시 이상적 자아와 현실의 자아 간에 끝없이 어떤 괴리감을 느낀다는 점에서 톨스토이의 고통에 어느 정도 공감한다. 츠바이크의 책에서는 톨스토이의 일기가 자주 인용되는데 스스로를 너무나 자학하는 듯한 그의 일기에 기가 찬다. 
친: 어떤 이야기가 있길래?
나: 12시부터 2시까지 비기체프와 보냄. 너무 거리낌 없이 말함. 허영심이 강하고 자기기만적이었음. 2시부터 4시까지 운동. 지구력과 인내력 부족. 4시부터 6시까지 식사, 불필요한 것들을 사들임. 집에 와서는 글을 쓰지 않았음. 게을렀음. 볼콘스키에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하기 어려웠음. 거기 가서 거의 말을 하지 않음. 비겁함. 옳지 못한 행동을 함. 비겁함, 자만심, 경솔함, 나약함, 게으름.
친: 장난아닌데.
나: 츠바이크는 톨스토이가 소설을 통해서 굉장히 이상적인 사상을 이야기했으면서도 스스로가 일상에서는 그러한 이상을 따르지 못해서 내심 고통받았던 점을 무척 위대하게 묘사하면서 참으로 인간적인 인간이었다고 평가한다. 나는 카사노바랑 스탕달은 별로 매력을 못 느끼겠지만 이 톨스토이란 인물에 대해서는 참 흥미를 느꼈어.
친: 그런데 츠바이크는, 톨스토이를 나머지 두 사람과 함께 놓은 이유를 뭐라고 했지?
나: 왜 세명을 한데 묶었냐면, 모두 일생의 많은 부분은 자기묘사에 할애했던 사람들이거든. 소설이나 일기를 매개로 하여 자기 묘사를 보여준 사람들인데 그 질적 수준이 카사노바에서 스탕달, 스탕달에서 톨스토이로 갈수록 점점 높아지는 거야. 카사노바는 자기 보고, 스탕달은 자기 관찰, 톨스토이는 자기 재판에 가깝지. 그런 점에서 나는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반성하게 된 책이기도 해. 나 역시 지금은 카사노바에 가까운 것 같아.
친: 그런데 너는 스탕달의 자기 묘사가 자기관찰의 수준이라고 했는데 정확히 그게 어떤 것인지?
나: 사실 스탕달의 경우를 자기관찰이라고 하긴 했는데 잘은 모르겠다. 카사노바와 톨스토이의 중간적 단계 정도인 것 같긴 한데, 스탕달이 자기 기만의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카사노바보다 한 수 위였던 것 같다. 기만을 의도하는 어떤 장치조차 없이 그저 천진난만하고 생각없이 자기를 기술한 게 카사노바였고, 최소한의 어떤 자아상 같은 게 있어서 거기에다 맞추어 자기를 윤색했던 게 스탕달인 것 같다. 톨스토이는 이러한 모든 저열한 차원을 뛰어넘은 사람이고.
친: 그렇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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