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독일 이데올로기 1
칼 마르크스.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 박재희 옮김 / 청년사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3장 첫머리에서 맑스는 “어떠한 시대에서도 지배적 사상은 곧 지배 계급의 사상”이라고 말한다. 이런 맑스에게 역사를 지배하는 추상적 힘으로서 어떤 독자적인 정신을 상정하고 역사는 그 정신이 자기를 규정해나가는 과정이라고 말하는 헤겔의 역사철학은 교조적인 잠꼬대에 지나지 않았다. 사상을 낳는 기저의 힘, 사상이 만들어지게 된 구체적인 사회적 조건이나 사상의 생산자에 대해서 일절 고려하지 않는 헤겔의 철학은 맑스가 보기에는 그저 현실을 은폐하는 사변 철학에 불과한 것이었다.
맑스는 유물론적 관점에 따라 사회의 토대가 되는 물질적 생산 구조를 분석함으로써 그 사회를 이해하려고 했다. 이러한 관점은 인류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그에게 인류의 역사는 결코 어떤 추상적이고 고아한 정신의 외화 과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생산력의 역사였으며, 생산력의 발전에 따른 생산 관계 변천의 역사였다.
향상된 생산력은 자기 활동의 조건으로 새로운 교류 형태를 만들어 낸다. 그러나 생산력이 점차 발전함에 따라 그러한 교류 형태가 나중에는 자기 활동에 대한 질곡으로 다가오는 시기가 찾아온다. 역사상의 모든 충돌은 생산력과 교류형태 간의 모순이 발생하는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그리고 이때 사회는 자기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향상된 생산력에 조응하는 새로운 교류형태를 또 다시 만들어 낸다. 이러한 부단한 과정이 곧 인류의 역사다.
여기서 맑스는 생산관계의 법적 표현물로서 사유재산이라고 하는 소유 형태에 주목한다. 그는 사유재산의 형태가 변화하는 모습에 초점을 맞추어 인류의 역사가 부족적 사유재산제 사회에서 고대 노예제 사회로, 고대 노예제 사회에서 봉건적 혹은 토지적 사유제산제 사회로, 그리고 이후 부르주아적 사유재산제 사회로 넘어간다고 말한다.
4장은 변천 단계의 마지막 모습인 부르주아적 사유재산제 사회의 성립 과정에 대해 기술한 부분이다. 그는 이 장에서 부르주아 사회가 어떤 식으로 형성되고 발전했는지 사회의 생산 구조를 중심으로 분석하고 있다.
자연발생적 생산용구와 문명이 만든 생산용구
먼저 맑스는 산업이 발달하기 이전의 사회와 이후의 사회를 대별한다. 전자는 물이나 경작지 같은 자연발생적 생산 용구에 의해 생산이 이루어지는 사회이고, 후자는 공장이나 기계처럼 문명이 만든 생산 용구에 의해 생산이 이루어지는 사회이다.
전자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연에 예속되어 있으며, 소유가 자연에 대한 직접적 지배로 나타난다. 교환은 인간과 자연 사이의 교환을 의미한다. 개인들은 가족과 부족 및 토지 등등의 유대 하에 결합되는 것을 자기 생존의 근거로 삼는다. 이 사회에서는 육체적 활동과 정신적 활동이 분리되지 않으며, 노동 역시 분업화 되지 않은 상태다. 무소유자에 대한 소유자의 지배는 어디까지나 공동체적 관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인격적 관계이다.
반면, 후자의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노동 생산물에 예속되어 있다. 소유는 자연을 지배함으로써가 아니라 인간의 노동에 대한 지배를 통해 일어난다. 이 사회는 철저한 분업화 사회이며 따라서 공동체적 유대 관계보다 교환 관계를 통해 주로 개인 간 결합이 일어난다. 이 사회에서 지배는 화폐라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길드 시스템
맑스는 중세 이후 도시가 출현하고 점차 도시와 농촌이 분화되어가는 모습을 자본과 토지 소유 간의 분화로서 이해한다. 그리고 그는 중세 도시의 생산 구조의 변화를 분석함으로써 토지적 사유제산제 사회가 어떻게 부르주아적 사유제산제 사회로 이행해 가는지 보여준다. 도시를 향한 농노들의 도망은 중세 사회가 완전히 무너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이들 농노들은 도시 안에서 아무런 권력을 획득할 수 없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노동은 숙련을 요하는 전문직의 노동이 아니라 그저 날품팔이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도시에서 뿔뿔이 흩어져 빈민으로 살아갔다.
빈민이 끼어들 수 없을 정도로 당시의 도시는 도제 시스템이 모든 직종에서 조직화 되어 있었다. 장인과 장인 밑에서 수련하는 직인들은 화폐를 매개로 한 고용-피고용의 관계가 아니라 가부장적 유대관계로 이루어진 사이였다.
또한 노동의 분업화가 아직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이 사회에서의 자본이란 투자가 빠른 근대적 자본과는 다른 종류였다. 그것은 소유자의 특정한 노동 분야에 직접적으로 결합된 채 결코 그 노동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자본이었다.
도시들 간의 노동 분업과 공장제 수공업의 출현
그러나 이후 노동 분업은 점차 확장되었다. 생산과 교류가 분화되고 장인이 만들어낸 것을 판매만 하는 계급, 즉 상인이라고 하는 특수한 계급이 형성되었다. 상인들이 활동하면서 도시 간 상업적 교통 또한 활발해졌다. 생산과 교류가 분화되고, 교류의 규모 또한 확장되면서 도시 간 경쟁이 심화되고, 마침내 도시들 간에도 새로운 생산의 분업화가 일어났다. 도시로서 존속하기 위해 각 도시마다 대규모 특화산업이 발달하게 된 것이다. 이제 각 도시는 제각기 하나의 주요 산업 분야를 개척하여 떠맡게 되었다.
도시 간 노동 분업의 결과 출현한 것이 ‘공장제 수공업’이라고 하는, 길드 체제의 틀을 벗어난 생산 방식이었다. 이 새로운 생산방식은 많은 변화를 불러 일으켰다. 우선 소유관계가 변화했다. 공장제 수공업은 대량의 자본 동원을 필요로 했으며, 이때부터 근대적 의미의 자본이 개인들 손에 축적되기 시작했다. 일부는 길드 내에서 일부는 상인들 내에서 손쉽게 이동 가능한 근대적 의미의 상인 자본이 축적되었다.
한편, 공장제 수공업은 도시로 도망쳐 왔으나 딱히 가진 기술이 없어 날품팔이 신세를 면할 길이 없던 농노들에게 유익한 도피처가 되어주었다. 공장제 수공업은 봉건제가 해체되는 과정에서 생긴 유랑자들 역시 재빨리 흡수하였다.
공장제 수공업의 출현과 함께 여러 나라들은 각각 보호관세, 수입금지, 각종 조약 등을 내걸고 상업 전쟁 상태에 들어가게 된다. 이제 상업은 정치적 중요성을 갖게 되었다. 공장은 특권 없이는 유지될 수 없는 것이었지만, 경쟁이 가속화된 나라들은 외국 간 경쟁에 대처하기 위해 많은 특권을 공장주들에게 허용했다. 공장제 수공업은 국내 시장에서는 보호 관세에 의해, 식민지 시장에서는 독점에 의해, 그리고 해외에서는 여러 가지 차등 세금들에 의하여 가능한 한 보호받았다. 반면, 소(小)부르주아들이 모인 길드는 점차 공장제 수공업의 위력 앞에서 몰락해 갔다.
공장제 수공업의 출현은 고용주와 노동자 사이의 관계에도 변화를 일으켰다. 길드에서는 장인과 직인들이 가부장적 관계로 맺어져 있었으나, 공장제 수공업에서는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에 화폐 관계가 나타났다.
길드가 융성했던 시대에는 도제 수업을 통해 숙련된 기술을 갖춘 장인과 직인들이 일종의 전문 인력이었으므로 당시에 근대적 의미의 자본가가 희소하게나마 활동했다 한들 그는 노동과정에 구체적으로 개입하여 간섭할 수 없었다. 이런 조건 속에서 자본가가 취할 수 있는 이윤은 매우 제한되어 있었다.
그러나 공장제 수공업의 출현과 함께 협업 체제가 발달하고 기계가 도입되면서 기계에 장악된 노동은 점차 숙련노동의 성격을 잃어갔고, 자본은 노동과정에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되었다. 그 결과 노동자에 대한 자본가의 착취는 점차 심화되었다.
대규모 공업의 발달
공장제 수공업이 대두했다고는 하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정치적 영향력은 상업에 집중되어 있었고, 공장제 수공업이 상업에 주는 영향력이란 미미한 것이었다. 국가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장제 수공업은 상업에 비해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분야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후 영국을 시초로 대규모 공업사회가 등장하게 되면서 이런 관계는 역전된다. 19세기 등장한 대규모 공업은 상업을 자기 자신에게 예속시켜 모든 자본을 산업 자본으로 전환시킨다. 대규모 공업은 근대적 세계시장을 낳았으며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신속한 유통 체계와 자본의 집중을 만들어냈다.
대규모 공업이라는 생산 방식의 변화는 사회의 많은 모습을 바꾸었다. 대규모 산업은 수공업을 비롯한 이전의 모든 단계의 산업을 파괴했다. 노동은 일체의 자연적 성격을 잃었다. 농촌은 몰락하고 도시는 비대해졌다. 도시 안에서는 계급의 분화가 또렷해졌다. 개인들의 생활 조건은 계급에 의해 좌우되었으며, 생활상의 지위 및 인격적 발전 역시 자신이 속한 계급에 귀속되었다.
대규모 공업 및 자유경쟁 하에서의 생산력과 교류 형태 간의 모순, 노동과 자본 간의 모순
도제 사회였던 중세 도시에서의 자본은 소유자의 특정한 노동 분야에 직접적으로 결합된 채 결코 그 노동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자본이었다. 그러나 대규모 공업사회에서는 노동과 자본이 분리된다. 축적된 노동과 현실적인 노동이 분리되는 것이다. 또한 분업이 심화됨에 따라 노동의 조건 또한 분열하여 노동 도구와 노동 재료 간의 분리가 일어나고, 그에 따라 도구의 소유자와 재료의 소유자에게로 각각 자본이 분리되어 축적된다.
이렇게 대규모 공업사회의 노동 분업은 자본과 노동 간의 분열 뿐 아니라 갖가지 서로 다른 소유 형태까지도 내포한다. 노동 분업이 발전함에 따라, 또한 축적이 진행되고 증대됨에 따라 이러한 분열 역시 더욱 첨예해진다.
또한 대규모 공업사회에서 생산력은 각 개인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독자적인 세계로서 나타난다. 그리고 이 생산력은 분산되어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개인들을 결합하는 현실적인 힘으로서 작용한다. 사람들은 일체의 현실적 생활 내용을 박탈당한 채 추상적 개인으로 살아가지만, 또한 바로 그 사실로 인하여 개개인들이 ‘개인으로서’관계를 맺는 것이 가능해진다.
근대적 사유재산제 사회로의 이행에 있어 국가의 역할
근대적 사유재산제 사회에서 사유재산 소유자들은 자신들의 이익과 재산을 사수하기 위해 조세나 국채 등의 수단을 동원해 근대 국가를 장악한다. 결국, 국가란 유산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이익을 그 속에서 관철하는 형태로서 존재하게 된다. 지배 계급의 이익을 관철하는 국가는 무엇보다도 자본의 증식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시초가 되는 자본, 즉 본원적 자본의 축적에 깊게 관여했다. 자본의 시초 축적은 국가의 대규모 폭력이 동원되지 않았다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자본의 본원적 축적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우선 지배세력과 기득권층에 의한 폭력과 약탈, 강압과 협박에 의해 생산자와 생산수단의 분리가 자행된다. 그 결과 자본가의 생산수단 독점이 이루어지고, 근대적 무산자가 대규모로 양산되어 인력풀이 형성된다. 이렇게 형성된 시장은 더 이상 원시적 형태의 ‘단순상품 내지 소생산에서 비롯되는 국지적인 자연발생적 교환의 장으로서의 시장’이 아니라, ‘기아와 결핍에 의하여 시장에 나가 노동력을 팔아야 하는 자본주의적 시장’이다.
국가는 통치 전략으로서 이러한 시장의 전국적인 확대를 지원하는 한편, 노동력으로 기능할 수 없는 자들은 치안을 이유로 모조리 수용소, 병원, 학교, 감옥 등에 격리 또는 감금하고, 교화와 훈육 및 처형을 감행한다. 즉 근대 이후 자본주의 국가는 거대한 국가적 폭력이 개입하여 지극히 부도덕한 방식으로 성립된 셈이다. (이 부분은 《자본을 넘어선 자본(이진경, 그린비, 2004)》 참고)
사유재산제 폐지의 필연성, 전제 조건 및 그 결과
자본사회에서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일체의 자기 활동을 박탈당한 채 자본가의 하수인으로 전락한다. 그들의 노동은 더 이상 유적 존재로서의 자기 활동이 아니라 물질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즉 월급을 타서 생계를 잇기 위한 벌이, 즉 수단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말았다. 맑스는 프롤레타리아들이 유적 존재로서의 자기실현을 이루기 위해 생산력들의 총체를 그들 자신의 것으로 점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러한 점취가 사유재산 폐지를 통해 가능하며, 이 모든 과정은 오로지 노동자들의 단결과 혁명에 의해서만 수행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혁명은 오래 지속된다
맑스는 사유재산제 폐지를 주장하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예견하지만, 역사는 결코 그 내적인 논리에 따라 원시공동체에서 노예제, 자본주의, 공산주의로 이행되어가는 식의 단선적 흐름이 아니었다. 공산주의 사회는 20세기 중반에 이미 실패한 실험으로 판명되었으며, 현재에도 여전히 자본주의는 전 세계를 아우르는 지배적인 경제 형태로서 맹위를 떨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 역시 빈부 격차, 경쟁, 자원 낭비, 과잉 생산, 실업률의 증가, 불황과 공황, 기계화와 분업화로 인한 노동 소외 등 자본주의가 낳는 각종 모순으로부터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고, 그런 점에서 맑스는 아직도 우리에게 유효하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맑스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자본을 넘어선 자본》에서 저자는 공산주의와는 구별되는 '코뮨주의'를 제안한다. 공산주의가 내부성의 논리를 따라 자본주의 발전 법칙에서 필연적으로 도출되어야 하는 것이라면, 코뮨주의는 자본이 지배하는 세계 안에서 자본의 '외부'를 구성하려는 부단한 시도이며, 이는 곧 다양한 양상으로 창안되고 창출될 수 있는 '현재'의 시제를 갖는 이행운동이라는 것이다.
훗날 자본주의의 맹아가 된 중세의 자치도시라는 것도 말하자면 봉건신분제라는 당대의 주된 사회 시스템으로부터 탈주한 '외부'의 영역이 아니었을까. 그러니까 당대의 외부였던 중세의 자치도시를 다음 시대를 향해 가는 하나의 '이행운동'으로서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혁명으로 점화된 20세기 체제 실험이 거대한 막을 내리고 바야흐로 자본주의가 정점에 이르렀다는 이 시대에도 중세의 자치도시처럼 시스템의 외부를 형성하려는 전략들이 여전히 사회 곳곳에서 지속적으로 기획되고 있음은 고무적인 일이다.
이러한 활동의 성과들이 점진적으로 축적되어 언젠가는 분명, 지난 세기의 그것과는 또 다른 종류의 임계치를 넘어서는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끊임없이 외부를 구성하여 탈주의 공간을 마련함으로써 점진적으로 이행되어가는 운동이 여전히 이 시대에 현재진행형으로서 계속되고 있는 한, 맑스가 꿈꾸었던 혁명은 결코 실패로 돌아간 게 아닐 것이다. 자본주의체제 내부의 무수한 맹점으로부터 발아하는 조용한 혁명, 무수한 외부로부터 서서히 번져나가는 21세기형 혁명! 어쩌면 밤늦게 맑스를 함께 읽는 지금 이 순간도 그러한 혁명의 한 모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