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ns, Germs, and Steel: The Fates of Human Societies (Hardcover, Revised)
Diamond, Jared / W W Norton & Co Inc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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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오스트레일리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은 제국주의 시대의 풍파 속에서 살아남지 못했을까? 왜 일방적으로 몰락하고 말았을까? 이 책은 한 문명이 권력과 우위를 점하는 직접적인 이유에 대해 병원균, 과학기술(총기를 비롯한 각종 발명품, 제련술과 인쇄술에서 군사기술과 해양기술에 이르기까지), 중앙집권적 정치(+종교)조직, 문자의 보유를 꼽고, 이를 가능케 했던 근원적 요인에 대해서는 식량생산을 지목한다. 수렵채집에서 가축사육과 작물생산으로의 변화가 대륙의 운명을 가르는 결정적 문턱이었다면 이 변화는 왜 지역마다 그 시점과 속도가 고르지 않았을까. 심지어 어떤 지역은 왜 이런 변화가 아예 일어나지도 않았을까.

책에 의하면 선사시대의 초기농경은 수렵채집에 비해 딱히 월등한 이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뿐만 아니라, 당시의 어떤 사회를 유랑형 수렵채집경제와 정주형 식량생산경제로 명확히 구분짓기도 어려웠다고. 수렵채집과 식량생산은 각 사회가 처한 나름의 여건에 따라 가성비적 관점에서 적정비율로 취사선택하는 생계 방식이었지, 여기서 저기로의 비가역적 도약이나 의식적 혁명이 아니었던 것. 저자는 식량생산 경제로의 최종적인 안착이 사냥감의 감소, 작물화할 수 있는 야생 식물의 증가, 먹거리 가공과 저장 기술의 발달, 인구증가와 같은 요인에 따라 생각보다 훨씬 더디고 무의식적으로 사회마다 제각각 진행된 변화였다고 본다.

지역마다 농경목축이냐 수렵채집이냐를 놓고 수지타산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이 책에서는 매우 상세하게 살피고 있다. 가령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는 지리적 이점과 기후 조건 때문에 야생 곡류 식물의 종류가 다른 지역보다 훨씬 다양하고 종자 크기 또한 월등했다거나, 그곳에선 동물군 또한 다양해서 여러 동물의 가축화가 일찍이 수월하게 이루어졌다거나, 반면에 중앙아메리카 같은 경우 키울 수 있는 동물이라고는 오직 칠면조와 개밖에 없어서 19세기에 유럽인들이 오기 전까지 동물을 농업에 이용하지도 못했다든가. 설상가상으로 아메리카는 대륙의 모양이 남북으로 길쭉한 바람에 위도에 따라 생태조건이 크게 잘라져 농작물과 가축이 전파되는 속도가 유라시아에 비해 훨씬 느렸다고. 오스트레일리아는 어떤가. 거기는 땅이 척박하기도 하거니와 엘니뇨 남방 진동 때문에 연중 기후가 불규칙해 차라리 그때 그때 날씨 봐가며 먹거리 조건 나은 지역으로 이동하며 사는 게 정착형 농경보다 생존에 유리했다고.

요는, 지역마다 지리와 기후가 달랐던 만큼 주어진 야생동식물의 전체 구성 또한 달랐고, 투입 시간과 노동력을 최소화하면서 최대치의 영양분을 얻기 위해서는 그 중 어떤 것들을 어떤 비율로 선별하여 어떻게 가공해 먹고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계산이 사회마다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식량생산과 맞물린 인구증가는 수렵채집 중심의 사회가 이러한 계산 속에서 마냥 자족적으로 영속할 수만은 없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는데, 즉 초반에는 각 사회마다 수렵이나 농경이 다양한 비율로 혼재했지만 식량생산 비중이 높은 사회는 점차 인구가 많아져 총균쇠를 보유하기도 전에 오로지 규모의 힘으로 이웃 사회를 몰아낼 수가 있었고, 나중에는 이웃에 짓밟히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다들 식량생산을 받아들여야 했다고. (이 책에서는 중앙집권국가의 기원도 치수사업이 아니라 인구증가로 설명한다.)

이 책은 총 4부로 나뉜다. 1부에서는 문명 발흥 이전의 인류사를 개괄하고, 폴리네시아인의 사례를 중심으로 대륙의 환경이 역사에 미친 영향을 살펴본 다음, 이 책의 표지 그림이기도 한 피사로의 잉카 정복 사건으로 넘어가 두 문명이 극적으로 충돌했던 역사적 순간을 조명한다. 이어 2부는 문명의 권력우위를 가르는 심층적 요인으로서 식량생산의 기원과 형성과정, 3부는 식량생산이 어떻게 이 책의 제목인 ‘총•균•쇠’로 이어지는지(즉 심층적 요인인 식량생산과 표층적 요인인 세균, 문자, 과학기술, 고도화된 정치조직이 서로 어떤 관련을 맺으며 연결되는지), 마지막 4부는 오스트레일리아와 뉴기니, 중국, 동남아시아, 태평양 섬나라들, 아메리카, 아프리카, 일본 등 세계 주요 지역의 사례를 통해 2~3부의 분석을 구체적으로 재확인한다. 앞서 적었던 내용은 이 책의 핵심이라 보여지는 2부 일부를 간추린 것이고 이후에도 광범한 영역에 걸친 탐구가 이어지는데, 읽다보면 마주치게 되는 놀라운 사실들이 많다.

콜럼버스 등장 이후 유럽인이 휘두른 총칼에 의해 사망한 아메리카 원주민 수보다 유럽인으로부터 퍼져나간 세균 때문에 침상에서 자연병사한 원주민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다든가. 심지어 미국의 선조들이 아메리카 내륙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한참 전에 이미 유럽발 세균으로 인하여 원주민의 95%가 초토화된 상태였다고. 아메리카 대륙은 가축으로 키울 만한 동물이 별로 없었던 탓에 다양한 인수 공통 바이러스를 보유하지 못했고 이것이 훗날 불평등한 세균 교환으로 이어진 것이다.

아메리카에서 바퀴의 발달이 지지부진했던 데에도 복잡한 내막이 있었다. 중앙아메리카의 마야 사회에서 일찍이 바퀴를 고안해 내긴 했었으나 이곳에서는 바퀴에 체결하여 운송 수단으로 활용할 만한 대형 포유류가 없어 바퀴의 마땅한 쓸모를 찾지 못했다고. 더 안타까운 사실은 바로 지척의 안데스에서 아메리카 대륙의 유일무이한 대형 포유류인 라마가 (그마저도 유라시아의 소, 말 따위에 비하면 체구나 노동력이 영 시원찮기는 했지만) 가축으로 키워지고 있었음에도 지리적 단절로 인해 무려 오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라마와 바퀴가 서로 만나지 못했다는 것. 가축과 작물은 물론이고 발명품과 과학기술마저 그 확산에 있어 지형적 악조건이 큰 장벽으로 작용한 경우이다.

이 책은 어떤 사회 나아가서는 어떤 문명이 한 시대의 패권을 장악하는 데 있어서의 결정적 변수가 절대적으로 환경의 영향임을 (대표적 인자로는- 가축화•작물화 할 수 있는 동식물의 종류, 대륙 내 혹은 대륙 간 가축•작물•사회제도•언어•기술 등의 확산 및 전파의 용이성의 정도, 대륙의 면적과 인구 규모) 다양한 역사적 사실과 과학적 검증을 통해 설득력있게 보여준다. 특정 인종이 오늘날 세계를 선도하게 된 까닭은 그 인종의 생물학적 우수성 때문이 아니라 좋은 환경 속에서 우연히 얻게 된 기회 덕택이었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책의 논지에 따르면 지난 세기 우리가 일구어낸 한강의 기적 또한 단순히 인종의 우수성으로, 그러니까 그저 불굴의 의지로 똘똘 뭉친 근면성실한 국민성 덕분으로 설명할 수만은 없게 된다. 정주형 농경 문명의 전파와 도입이 원활했던 지리적 환경은 물론이거니와 일찍이 새로운 식량생산 기술을 받아들이고 국가의 연대기를 써내려간 호랑이 담배필 적 조상님들의 공을, 그 켜켜이 쌓인 지층과도 같은 역사의 공을 결코 무시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현재는 사실상 그 도저한 연쇄 고리의 산물이므로.

거대한 주제와 부담스런 두께 때문에 오랫동안 경원하며 책장에 모셔두기만 했었는데, 온갖 구체적인 자료들과 다채로운 사례가 쉴새없이 등장해 지루할 틈 없이 그래도 어찌저찌 등반은 하게 된다. 승자의 협소한 시선이 아닌, 생태지리학과 진화생물학에서 고고학과 언어학까지 종횡무진 넘나드는 현대 과학의 입체적인 시선으로 (그러니까 피사로의 그것보다는 좀 더 반성적인 시선으로) 복기하니 인류사가 새롭게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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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easy Street: The Anxieties of Affluence (Hardcover)
Rachel Sherman / Princeton University Press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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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거주 부자 55인과의 심층 면담을 통해 미국 부유층의 공통된 심리를 들여다 본다. 베블런이나 부르디외와 차별되는 이 책의 특장은, 전자가 타인과의 비교 속에서 그러니까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자기 가치 발견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본다면, 후자는 보다 내면적인 차원에서 그와 같은 과정을 조망한다는 점이다. 이 책이 그리고 있는 것은 우월한 지위를 향해 혹은 구별짓기를 위해 타인과의 경쟁적 투쟁에 목숨 건 부자들의 모습이 아니라, 특권을 정당화시켜 주는 (것으로 믿는) 도덕적 가치를 고수하기 위해 내적으로 고군분투하는, 아울러 거기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모순으로 인해 항시적으로 불편한 딜레마를 겪고 있는 혹은 혼란스런 자가당착에 빠져있는 미국 부자들의 복잡다단한 내면 풍경이다. 이 책의 제목이 'uneasy' street인 까닭이다.


누리는 특권을 합당한 것으로 인식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부자들이 표방하는 도덕적 가치란 무엇인가. 도덕적으로 어떤 면을 준수한다고 자부하기에 그들은 자신이 부자로 사는 것이 옳다고 스스로 믿는가. 인터뷰 과정에서 그들은 공통적으로 자신이 "good people"임을 피력한다. 굿피플의 요건은 크게 세 가지로, 첫 번째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다. 아메리칸 드림 이데올로기를 반영하는 가치라고 할 수 있으며, 노동에 중대한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에 자급자족(자생자활), 생산성, 실력주의를 미덕으로 삼는 반면 방만하고 게으른 태도, 의존성은 비난한다.

굿피플이란 검소하고 신중한 소비자이기도 하다. 인터뷰이들은 청교도 윤리에 어긋나는 과시적이고 물질적이고 낭비벽 있는 부자들과 자신을 구분하면서 그런 이들에 비하면 자신은 부자로서 entitled 되어 있지 않은, 평범하고 견실한 사람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이상의 덕목들은 원래 중산층 계급의 것으로서, 이와 같이 하향화된 자기 인식 프레임은 (본의든 아니든 결과적으로) 부를 독점하고 있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심정적 불편함을 상쇄하는 데 얼마간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자기 규정과 실제 현실 간의 괴리는 부득이 모순을 자아낼 소지를 안게 된다.

굿피플의 마지막 요건은 "awareness" 즉 사회의식에 관한 것이다. 기부 활동으로 대표되는, 부의 사회 환원을 위한 이들의 지속적인 노력은 여기서 비롯한다. 그런데 기부라는 행위에는 자신이 누리는 사회적 특권에 대한 인정과 감사가 전제되어 있는 바, ‘평범한 사람’임을 천명하는 앞의 요건들과 논리적 충돌이 발생한다. 그래서 기부를 하면서도 자신이 부자로 보이는 것에 대해서 양가적인 감정을 갖게 되는데, 이는 이들이 겪는 여러 딜레마 가운데 하나이다. 한편으로는 기부를 한다는 사실, 그만큼 내가 계급 문제를 인식하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개인적인 갈등과 고민을 겪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도덕적 자기 회유, 자기 달래기(moral appeasement to self)로서 기능하기도 한다. 기부 행위가 자기정당화와 자기위안을 위한 하나의 절차화된 의식적 활동이 되는 것.

사회의식을 지니는 것은 타인과의 교류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자신의 부가 부각되지 않도록 경제적 격차를 환기시키는 주제를 가급적 삼가고, 계층에 상관없이 모두의 인격을 존중하며 예의를 갖추어 친절하게 대하는 태도가 미덕으로 중시된다. (이는 자신이 결코 부자로서 entitled되어 있지 않다는 생각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계급 격차에 대한 인식'이 도리어 '계급 격차가 존재하지 않는 듯한 행동'을 이끌어냄으로써 사회는 평등한 것으로 간주 내지 가장된다. 계급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남이 나를 대해주길 바라는 식으로 나도 남을 대한다는 기독교적 골든룰은 결국 아이러니하게도, 사회에 엄존하며 사회적 갈등의 핵심을 구성하는 계급 격차를 (겸손하고 사려깊게) 지워버리는 효과를 낳는다.

열심히 일하고 검소하며 가진 것을 나눌 줄 아는 평범한 사람으로서 자신을 규정하고, 이러한 척도에서 벗어난 부자야말로 사람들의 지탄을 받는 몰상식한 진짜 부자(?)라고 여기는 것- 저자는 부자를 선한 종류와 악한 종류로 양분하고 자신을 전자에 귀속시키며 후자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이런 사고가 부의 편중 자체를 용인함으로써 부의 재분배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를 차단해버리는 효과를 낳는다고 지적한다. 가령, '착한 부자' 역할을 맡기 위해서는 논리를 완성하는 상보적 쌍으로서 반드시 'suffering others'가 필요하다. 이 책의 어느 인터뷰이는 good citizenship을 발휘하는 착한 부자로서 자기 자신을 포지셔닝하기 위해 도리어 경제적 약자의 존재를 필요로 하는, 본말이 전도된 듯한 발언을 흘리기도 한다. 같은 맥락에서, 귀감이 되는 '옳은 부자' 개인의 사례가 관심을 끌수록 부의 불균형을 심화시키는 구조적 문제들은 상대적으로 도외시된다.    

이 책은 사회의 최상류층에도 적빈계층이 겪는 심리적 스트레스 못지 않은, 하지만 그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복잡한 심사가 존재함을 보여주면서,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라는 격언에 따라 이를 사회 구조적인 문제와 결부시켜 고찰하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연구가 단순히 관음증적 차원에서 부유층의 경험과 관점을 이해하고자 하는 것도, 미디어의 선정적인 조명에 직면하여 그들을 "humanize"하려는 것도 아니라면서, '부를 가지고 있으면서 도덕적으로 옳은 사람이 된다는 것'이 개인의 내면에 구체적으로 어떤 풍경을 조성하는지 살펴보고자 했음을 강조한다. 미국의 부유층이 "legitimately privileged"로서의 자신을 정당화하는 기제가 무엇인지 파악하고자 하는 것. 이러한 심리적 기제는 사람들의 상식을 구성하고 나아가 부의 사회적 불균형을 온당한 것으로 용인하며 자원의 불균등한 분배구조를 공고히 하는데 기여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

솔직히 말하면 저자의 집필 의도와는 어긋나게도 순전히 관음증적 호기심으로 집어든 책이었는데(영어 공부 하려고 자극적인 책 찾다가), 한국 사회의 실정과는 다소 동떨어진 부분이 있다고 느껴져서인가, 미국을 넘어 사회 보편적으로 의미있는 연구인지는 잘 모르겠다. 가정 경제 규모는 달라도 결혼해서 자녀를 양육하는 인간의 생애 주기별 발달 과업은 크게 다르지 않고, 과업 수행 도중에 갖게 되는 여러가지 개인적인 심사 또한 문화권이나 계층을 초월하여 비슷한 구석이 많구나 싶다가도, 사고의 저변에 디폴트 값으로 깔려있는 공동체 정신과 사회 의식의 수준이 우리와는 달라도 너무 달라 (저자의 집필 의도와 다시 한 번 어긋나게도) 난데없는 존경심마저 품게 된다. 선진국은 선진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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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len Focus: Why You Can't Pay Attention--And How to Think Deeply Again (Paperback) - 『도둑맞은 집중력 -집중력 위기의 시대,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법』원서
요한 하리 / Crown Publishing Group (NY)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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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력이 예전만 못하다고 신세 한탄하던 차에 우연히 발견한 책. 읽고 나니 감자 한 알 캐려다 온 감자밭을 헤집은 거 같아 당혹스럽다. 이 책은 현대인의 집중력 부족이 단순히 생물학적 노화나 개인의 의지박약에서 비롯하는 문제가 아니라 정보량의 급증, sns의 출현, 식이, 스트레스, 대기오염, 화학합성물질, 양육 방식 등 생활 환경 전반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현상이며 근본적으로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 시스템을 살펴봐야 하는 사안이라고 역설한다. 비만 인구 증가하는 것과 같은 차원에서 이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구조적인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 저자가 주목하는 것이 스키너 이래 발전을 거듭해온 인간 행동의 심리 통제 기술이다. 심리 통제 기술이 단지 오프라인의 상업 공간 배치나 옥외 광고 양식만이 아니라 온라인 세계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 인터넷에 접속하는 순간 우리는 우리가 어디서 어떻게 그리 되고 있는 지도 모른 채 끊임없이 설득당하고 유도당하고 인도당한다. SNS가 개인 맞춤형 광고를 위한 정보 자원으로 활용되어 이러한 과정을 정교화하고, 인간 심리의 취약성을 이용한 각종 기술적 트릭들이 오랜 시간 광고 노출과 그에 따른 수익을 위해 전략적으로 기획된다. 

현대의 상업적인 관점에서 시선의 머무름이란 이윤을 위해 기를 쓰고 확보해야 할 새로운 천연자원에 다름 아니다. 외부 자극에 대한 생명체의 자연스런 신체 반응이라고 할 수 있는 시선과 눈길 하나하나가 이제는 모두 돈으로 환산된다. "attention economy"가 운용되는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되도록 주의가 분산된 채 장기간 온라인에 머물러 있는 편이 수익의 측면에서 이롭고, 이러한 상태를 최적으로 만드는 알고리즘 수집 작업으로서 개인 정보와 일상이 낱낱이 털리기 시작한다. "surveillance capitalism"으로 시장구조가 재편되어 간다.

책의 중반부에 이르러 저자가 제안하는 제도적 해법은 우선 개인 정보를 거래하는 행위를 지금보다 더욱 엄격하게 규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광고주의 개입 없이 사용자에게 직접 구독료를 받아 수익을 창출하는 식으로 사이트 운영 형태가 바뀌어야 한다고. 그래야만 페이스북이 더 이상 광고주의 기쁨이 아닌 사용자의 기쁨(=집중력)을 위해 일하게 될 거라고. 정부가 아예 영향력 있는 sns를 선별 매입하여 공적 오너십으로 운영하는 방법도 제안되고 있다. 소셜 미디어를 일종의 필수 공공재로 삼는 것. 구상은 다양하지만, 소셜미디어 사이트의 수익 모델을 바꾸어 사용자 중심의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게 공통 핵심이다.

어떤 것은 너무 과격해서 자유주의의 기본 신념에 위배되어 보이기도 하고 어떤 것은 그 실효성에 의문이 가기도 한다. '사회적인 영역'을 시장경제의 침식으로부터 보호하고자 하는 취지는 알겠지만, 애초에 초국가적 영향력을 지닌 데다가 끊임없이 자생하여 흥망성쇠를 거듭하는 sns를 대체 어떻게 하수도관처럼 국가 차원에서 유지 보수 관리한다는 것인지? 하지만 온라인 세계를 살아가는 현대인이 당면한 '집중력 부진'이라는 과제에 대해서 더 이상 명상수행과 같은 순진하고 지엽적인 정신승리법 (내지는 자기계발)에 머무는 게 아니라, 기술 발전에 보조를 맞춘 새로운 제도 도입을 통해 적극적으로 사회적 개선점을 모색해 나아가야 한다는 저자의 기본 입장에는 깊은 각성을 얻지 않을 수 없다. 효과적인 방안 마련을 위해 보다 심층적인 논의가 계속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인의 집중력 저하를 유발하는 다양한 사회적 요인들을 톺아보느라 저자야말로 포커스를 도둑맞은 거 아닌가 싶게 뒤로 갈수록 논의가 지나치게 방만해지는 감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그 모든 문제의 기저에 웅크리고 있는 것은 오로지 가속도가 붙어야만 그 존재가 유지되는 성장 중심의 현 자본주의 시스템이다. 감자밭을 뒤엎었다고 할 수밖에. 이 책은 문제의식을 갖게 된 개인적 체험과 일화 그리고 관련 연구를 수행해온 여러 학자들과의 인터뷰가 상호교차 되며 긴밀하게 짜여 있다. 인터뷰는 저자가 직접 발품을 팔아 세계 곳곳의 석학들을 찾아다니며 수년 동안 진행한 것이라고. 설득력 있는 글쓰기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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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French Women Know : About Love, Sex and Other Matters of Heart and Mind (Paperback)
Ollivier, Debra / Piatkus Books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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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이 프랑스 사람들에 대해 갖고 있는 인상이 어떤지 알 수 있다. 제3자 입장에서는 양국의 대조적인 성향과 기질을 피상적이나마 가늠해 볼 수 있기도 하고. 이 책을 수년 전에 번역본으로 읽어보고 원서가 쉬울 줄 알았더니 오산이었다. 인문학적 배경지식이나 미국 대중문화를 알고 있어야 파악할 수 있는 구절(그랜트 우드의 회화 작품에 나오는 삼지창과 슈퍼볼 결승전 하프타임쇼에서 논란이 되었던 자넷 잭슨의 wordrobe malfunction 따위를 내가 어찌 알 것이며, 미드 Six Feet Under를 안 본 이상 six feet under에 파묻혀있는 dysfunctional cohorts의 상태를 무슨 수로 가늠할 수 있을 것인가), 뭔가 심층적인 의도가 있어 보이는 문장, 조크와 은유, 곳곳에서 난데없이 튀어나오는 (영미권에선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듯한) 불어 하며...

매사를 너무나 세세하고 엄격하고 완벽하게 재단, 통제, 규정, 계획하지 않고 살짝 풀어진(?) 채로 융통성 있게 즉흥적으로 (하지만 그 와중에도 결코 미학적 고려를 놓치지 않으며) 살아가는 생활 방식, 마찬가지로 (남녀) 관계에 있어서도 모호성과 가변성을 전폭 수용하는 태도, 가정을 유지하면서도 개인의 성적 자유를 최대한 허용하는 결혼 문화, 다양성과 차이를 인정하고 상호보완적 호혜 관계를 중시하며 무엇보다도 본유의 여성성을 억압하지 않고 중용의 도를 추구하는 프랑스식 페미니즘, 최선을 다해 순간을 살고 현재를 즐기는 실존주의적 삶의 태도, 지나친 도덕주의의 결벽에 갇히지 않고 자연스러운 관능을 중시하는 성문화 등등 저자가 눈여겨보는 프랑스 문화의 덕목들은 아시안의 입장에서도 음미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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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ey Money (Hardcover)
Catherine Hakim / Allen Lane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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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otic capital이라는 명칭의 적합성에 대한 의문. 젊음, 성적 매력 같은 것은 애당초 축적되는 성질의 것이 아닌데 이걸 자본이라 할 수 있나? 오히려 인생 전반에 걸쳐 점차적으로 와해되고 소실되어 가는 요소 아닌가? 이런 걸 자본이라고 오인하게 되는 순간 인생의 리스크는 더 커지고 마는 것 아닌지? 아울러 에로틱 캐피탈이 상정하고 추구하는 미의 성격을 과연 전복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인가? 저자가 비난하는 기존의 주류 페미니즘 못지 않게 이 또한 궁극적으로는 가부장 질서와 공명하는, 체제 강화에 기여하는 개념(이 책에 나오는 용어를 돌려주자면 'unholy alliance'로서) 아닌가? 몇 가지 의문이 남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전투적이고 래디컬한 puritan Anglo-Saxon 페미니즘의 맹점과 한계, 왜곡과 모순을 지적하며(시몬 드 보부아르마저도 현실 모르는 강단 페미니스트라고 저격하는 패기!) 새로운 차원의 시각을 열어보이는 라틴계(?)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도발적인 목소리는 일견으로 상당히 호소력 있고 인상깊게 와닿는다. (가령 성매매 및 대리모 합법화에 대한 견해라든지- 하지만 궁금한 게, 이 책의 논리대로라면 장기매매도 양성화해야 하는 거 아닌가? 희소가치를 갖는 신체 자원을 필요시 자유의사에 따라 능동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또한 장기의 보다 합당하고 정교한 가격 책정과 공정한 거래가 가능해진다는 점에서? 저자의 의견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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