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학자, 퀴어를 옹호하다

성서, 퀴어를 옹호하다 - 성서학자가 들려주는 기독교와 성소수자 이야기
박경미 지음 / 한티재 / 2020년 9월

성서학자, 퀴어를 옹호하다. 책을 덮으니 제목이 이렇게 읽혔다. 성소수자를 축복했다는 이유로 목사에게 '정직'을 내리는 교단, 숱한 성범죄 사건에는 침묵하면서 성소수자 축제는 집단으로 공격하는 교회, 결혼은 오직 이성 간의 신성한 것이므로 동성 간 결혼은 시민 '결합'일 뿐이라고 말하는 교황이 존재하는 시대, 성소수자 권리를 위해 전통적 기독교와 화해하기란 요원해 보인다. 하지만 성소수자를 옹호하겠다며 그들보다 앞서 방패가 되겠다고 나서는 개인들을 보면 희망을 버릴 수는 없다. 이 책도 그렇다. 성경 문서 옹호 여부 이전에 성서학자 한 사람이 대놓고 퀴어를 옹호하겠다는 고백이, 더는 보수 기독교의 폭력을 두고 볼 수 없다는 분노가 읽는 내내 전해졌다. 성소수자에 관한 기본적 팩트 체크와 역사적 변모를 살펴보는 1부를 지나, 해당 성경 구절을 다각도로 분석하는 2부를 통해 성소수자를 핍박하는 신앙의 불가능성을 외친다. 간혹 엄밀한 논증을 뛰어넘는 열정적 주장은 아쉽기도 했지만, 앞으로 이 주제로 맨 처음 권할 책을 만나 기쁘다. 성소수자 부모들 고백을 담은 ＜커밍아웃 스토리＞(한티재)에 이어, 이런 책을 출간한 출판사에 고맙다는 말을 꼭 하고 싶다.

[100자평] 예수와 다윈의 동행

예수와 다윈의 동행 - 그리스도교와 진화론의 공존을 모색한다
신재식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3년 7월

이 주제를 다룰 수 있는 국내 학자의 가장 탁월한 책. 향후 이 책을 넘어서는 기획을 만나기 어려울 듯 하다. 일반 과학계와 세계 신학계를 역사적으로 두루 살펴보며 진짜 큰 그림을 제시하는 저자의 종합력, 분석력이 멋지다. 결론까지 다 담진 않았더라도, 최소한 이 책으로 동행의 첫 발을 내딛자.

[100자평]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김원영 지음 / 사계절 / 2018년 6월

존엄한 삶과 세계를 변호하고 추구하기 위한 저자의 철학적 에세이. 글, 투영된 삶, 방향성 모두 빛난다. 겉모습만 욕망하고 비교하는 속물 품격주의자들의 세상에서, 죽음보다 못한 삶과 자아가 아니라 스스로 존엄하다 수용할 수 있고 상호 관계하도록 격려하는 문장들. 인생의 책으로 손색 없다.

[100자평] 12가지 인생의 법칙

12가지 인생의 법칙 - 혼돈의 해독제
조던 B. 피터슨 지음, 강주헌 옮김 / 메이븐 / 2018년 10월

혼돈과 질서라는 다소 이분법적 세계관으로 비극의 현실을 직면하고 똑바로 살라는 심리학자의 충고 바이블. 의미를 잃은 청년 세대의 열광이 이해되는 경험이었다. 그러나 맑시즘 이후 포스트모던 사상에 대한 부정이나 페미니즘에 관한 거친 비판 등을 보며 소위 피터슨 신드롬은 여전히 우려스렵다.

[100자평] 아마추어

아마추어 - 영혼 없는 전문가에 맞서는 사람들
앤디 메리필드 지음, 박준형 옮김 / 한빛비즈 / 2018년 8월

이 책 이후로 아마추어란 표현은 하나의 이상이자 지향이 되었다. 세계과 도시를 망치는 전문가 집단의 통계와 수치놀이에 이골이 난 저자는 다양한 영역에서 기존의 관념과 질서를 해체하고 갱신한 진짜 전문가를 아마추어라 명한다. 살아 있는 이들을 위한 도시는 이런 아마추어리즘으로만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