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1
김신용 지음 / 미학사 / 199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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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이라니 이게 무슨뜻이지요? 책 표지에 제목옆에 작은 글씨로 쓰여진 글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는 작가는 독자보다 더 독하고 아니면 더 순수하고 초연하다.

읽는 내내 책에서 눈을 거두다 말다를 반복했다. 눈길을거두면 읽는 것들이 마음속에서 생생히 그림을 그리고 소리를 내고 사람들이 걸어다녔다.

주인공 나는 부랑아로 범죄자로 표현못할 온갖 인생 밑바닥의 일을 겪으며 살아가는 시부랑탕이란 아이다.

피를 팔아 먹을것을 사먹는 주인공은 한없이 스스로에게 타인이지만 타인이 되는 주인공은 한없이 순수한 모습으로 남루하게 서있다.

더이상은 무슨일이 더 이어지고 일어날까라는 순간에도 작가는 그 질긴 사람의 목숨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만 한다.

작가의 말처럼 노래처럼 풀어가는 무수한 사건들은 가장 힘없고 보잘것 없는자가, 그래서 가장 순수한자가 말한 것임에 틀림없다.  인간이라니 이게 무슨뜻이지요? 라고 말이다.

인간과 삶 이런 거창한 말을 하며, 삶의 희노애락을 고민했더라고 생각한 나는  이 책을 읽은후   적어도 사람에 대해 알고자 한다면 누구 보다 더 바보스레 순수하게 믿고 따라보고 그리고 짓밝히는 비참함이 없으면 잘 모르는 것라고 느껴졌다. 무슨뜻도 모르채 사람행세를 한 바보된 느낌이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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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 곡예사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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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에서 아마 제일 많이 번역한 작가가 폴 오스터라고 생각한다.

흥행에 검증된 책을 출판하는  것이 물론 운영상 중요한 거라 생각이 들지만 한 작가의 책을 그렇게 무더기로 내놓는 것을 보자 한편으론 야..이거 좀 너무 심한 편애하냐..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책은 공중부양을 하는 이야기가 전체를 감싸고 있다. 망나니 같은 아이는 스승을 만나 온갖 고생을 하며 공중부양을 배운다.. 그런데 배우는 과정이 영 눈에 거슬린다.

동양적 수련은 자신을 이기고 겸손을 배우는 과정으로써 수련인데 내가 보기에 이 수련과정은 왠지 가학적 성격이 짙은 수련이었다.

온갖 방랑과 여러곳을 여행함과 사랑과 복수등이 한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이 나열되어 있다.

스승의 여인과 사랑에 빠지고 인생을 호기있게 낙관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작가의 의도된 작품성이나 상품화의 대중화의 교묘함이라고 할찌라도 왠지 이런 배경과 의도가 미국이 지나온 세월과 지금의 모습을 관통하는 하나의 맥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비교적 약자인, 대중적인 미국인들이 지나온, 추억이 담긴..어떤 대표성을 띤 인생스타일을 작가가 그린것 같다는 것이 책을 읽고 난 느낌이다. 마치 시골에서 서울로 상경한 철수와 만수의 인생역전이야기 같다고 할까..

공중 곡예사는 이런 시각으로 볼때면 어른를 위한 재미난 이야기나 동화일 것이다.

그래도 한가지 기억남는 장면은 주인공의 스승이 지구본을 가지고 프로포즈하는 장면은 지금껏 내리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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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호를 아는가
마르시아스 심(심상대) 지음 / 문학동네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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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 소설이니 묵호라는 곳이 있으리가 없다고 생각했는데..묵호는 많이 알려진 항구이라는 것을 얼마후에 알게 되었다. 울릉도를 갈때 3개의 항에서 배가 출발하는데 그중 하나가 묵호다.

묵호는 여름에도 피서객이 제법 찾는 곳이라 알고 있다. 여름에 오대산을 기차로 가는중 묵호역을 지난적이 있는데..스산한 소설의 풍경을 대비시켜 보았다. 묵호를 보니 한지역은 옛날 모습에 층이 있는 지역이고 옆은 새로 개발된 지역으로 보였다.

마르시아 심은 이 책에서 여러 소재를 가지고 다양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래서 이 소설가는 여러분야에 관심도 많고 글쓰는 것에 많은 걸 생각하는 사람같다고 느껴졌다.

묵호를 아는가를 읽고 독자는 여러 해석을 할수 있겠다 생각했다.

남녀간의 애정문제나 삶을 살아가는 중에 만남과  간극문제, 타인을 받아들임과 이해함..그런데 나는 엉뚱하게도 남북문제를 떠올리게 됐고 이 소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이 이문열의 아우와의 만남이라는 것이라 단정지어 버렸다.

여기서 등장한 남녀는 묘하게 남한과북한의 양면을 다가지고 있는 것 처럼 나타난다고 생각이 들었고 이것은 그들이 남녀이기 때문에 하나가 될수 있다라는 것에 회의하는 작가의 분명한 주제와도 연결된다고 생각했다.

이문열의 아우와의 만남에서는 형제이기때문에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하나가 될수 밖에 없음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런 연상이 된것인데..

소설 막바지에 아내의 모습을 말하는 장면,,,그리고 이 사내의 독백은 남녀관계를 넘어선 자신과 타인관계의 해석도 가능하고 개인적으론 확신하지만...분명 현 남북의 모습을 그려내는 것 같기도 하다. 그 과정에서 각 사회의 속성들도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다.

하여간 이 책은 해석을 여러할수 있는 선명한 거울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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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분 후의 세계 - 20세기 일문학의 발견 11
무라카미 류 지음, 이창종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199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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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의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떤 이유에서 좋아할까?

복잡하고 심도있는 생각을 정리해서 말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노멀하게 이런 부분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은 별로 보지를 못했다. 그래서 나부터 말하자면..무라카미 류의 소설은 적어도 내게는 자신을 솔직하게 보여줌으로 해방감을 주어서 좋아한다.

사랑에 관한 짧은 기억, 라인,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토파즈, 피어싱, 우울과 부드러움의 이야기등..무수히 많은 책들이 번역이 되었지만..많은 내용이 이탈된 사람들의 이야기로 꾸며져 있다.  그런데..이런 이탈과 타락, 추락된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멀게만 느껴지지 않은 이유는 우리 자신을 확대한 모습같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각설하고 이책은 이탈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무라카미가 생각하는 일본, 그리고 이런 모습을 희망하는 것을 솔직하게 드러낸 소설이라고 할까.. 주인공은 설명할수 없는 사건으로 군대에 쫏기는 신세가 되는 것으로  시작되는 글은 5분후란 약간의 희망을 갖고 볼려는 미래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치열한 전투씬을 보면 한편의 영화를 만들어도 무난한 스토리를 갖고 있다. 무라카미류가 전투장면의 소설을 쓴것 자체가 그의 팬이라면 호기심이 충분히 날 것 같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혼자만의 생각일지는 모르지만 한없는 타락과 추락, 혼란을 잘 그리는 무라카미이지만 한편으론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람글에서는 보수적인 그림자가 따라다닌다고 느껴진다.

기존의 가치를 버리고 자유를 찾아 나선 이들의 허울을 벗기고 벗겨도 그들은 허무란 그림자를 지울수가 없으니 차라리 이런것을 위로하고 잡아줄 그런 잣대가 자신도 모르게 찾을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러나 무라카미류가 그럴일은 없을 것 같다. 좀더 늙어지면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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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인을 기다리며
존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들녘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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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읽으면서 작가가 이라크 전쟁을 계기로 쓴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

허나 이 소설이 쓰여진 것은 긴 시간의 강을 건널 만큼 오래전에 쓰인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보면 작가가 얼만큼 제국이 야만이라 불리는 것에 가하는 폭력을 역사를 관통하는 시각을 제공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주목할 점은 주인공이 영웅이 아니라 제국의 관리직이라는 점이고 주인공 역시 나약하고 인간적인 약점을 무수히 들어내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제국의 특성인 확장과 이 과정에서 상대를 규정짓는 행위 그리고 침략과 폭력 이 모든것을 합리화하는 혼란과 권력의 속성을 작가는 담담하지만 깊이 짚어낸다.

주인공이 야만인을 죽이려는 군인을 말리는 장면에서는 마음에 강한것이 두드리는 기분이었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해 무수한 민간인이 죽는 상황임에도 무수한 합리화가 뻔뻔하게 자행되는 현실을 생각해 봤다. 어쩔수 없는 일이다. 마음은 꺼림직 하다.라는 얄팍하고 가증스런 핑계로 폭력을 도우는 행위가 사회전반의 분위기라는게 개인의 착각이면 차라리 좋겠다.

이 모든 폭력의 행위를 반대하고 나서는 기준은 무얼까..?

작가는 인간내면의 그 무엇을  말하지만 분명하게 말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고스란히 독자에게 질문이 전가된다.

읽고있는 내내 나는, 그리고 앞으로 읽을 독자는 이런 부조리하고 잘못된 것에 나는 어떻게 살아오고 있으며 어떻게 할것인가는 물론이고 이런것을 반대할 잣대와 기준에 대해서도 답을 궁리하게 된다.

소설자체로는 따분한 감이 없지 않지만...오히려 이런 따분함이 현실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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