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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 늙지도 않아
이경자 지음 / 문이당 / 1999년 11월
평점 :
품절
이 소설은 현재와는 다소 시간차가 있는 배경으로 되어있다. <새마을 운동>이니 자식을 볼려고 첩을 들이는 사람이 요즘 어딨냐는 소설속 말처럼 소위 <근대화>이전과 이후의 시간을 등에 업고 있다.
이 소설은 세명의 인물에 집중하며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넉넉한 살림을 배경으로 젋어서 부터 <오입>깨나 하고 살고 여러첩을 두지만 전작 자식복이 없는 <도철>과 도철과 궁합과 금실은 유별나게 좋은데 자식을 못낳은 본처<필례>, 도철의 제대로 된 사랑도 못 받고 본처 필례에게도 구박받지만 나중에 아들을 생산하는 <영실>이 그들이다.
이 세인물들은 제각기 마음의 양지와 음지가 확연하다. 작가는 이런 인물들의 내면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속내, 푸념, 대화, 추억들을 징검다리 건너듯 이동해 생생히 전한다. 이런 과정에서 들어나는 <필례>와 <영실>의 하소연은 한치도 물러설수 없이 확고하고 때론 질투와 시기로 나타나고 가끔은 행복한 꿈을 꾸기도 한다.
필례와 영실의 한과 설움은 현대와 근대이전의 여성이 겪는 고초범위에 닿아 눈길을 끌었다. 그것은 이른바 대를 이을 아들을 생산하지 못하는 여성, 신체가 온전히 <정상적>이지 못한 여성, 가족과 남성중심에서 배려받지 못하는 여성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식을 낳지못해 수없이 첩을 들이는 필례의 마음과 신체의 온전치 못함과 여자라는 가치때문에 첩살이를 시작하고 다시 아들과 자식을 못난다는 이유로 냉대를 받았던 영실은 표면적으론 필례와 앙숙관계지만 그들 스스로는 나름대로 합리화 할수 있는 이유와 호소력을 갖고 있다. 계속해서 그들은 서로에게 상처주고 질투하고 감시하지만 이것을 둘만의 시기심이나 질투로 보기에는 상황이 구조적이고 문화적인 것이다.
필례와 영실은 도철을 서로 독차지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어하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이런 상황과 자신에게 헤어 나올수 없어 궁지에 몰린다. 이런 연장선에서 소설은 가족이란 틀속에서 부부라는 것에 눈길을 주고 결국 남녀관계라는 것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情이라는 원동력을 보여준다.
소설속의 정은 인간본성에서 나오는 사랑받고싶어하는 것이고 또 그것의 환타지이며, 당시 현실적인 유일한 공유수단인 섹스를 통한 것이며, 자신을 무장해제하는 순수함의 발견이고 이 순수함을 나누고 마음을 의지하는...삶의 원동력이자 뼈대인 것이다. 이것은 개인사가 덧붙여 나중에 이르면 돌이킬수 없는 그자체의 인생살이의 모습이 되어버린다. 이때의 원동력으로써 정은 지금 굳건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종교의 신과 온갖 학문과 미디어 설파하는 개인의지나 권리이전에 차지하고 있던 자리로 보인다.
가족과 남녀의 관계는 점차 변하고 있다. 이제는 남아선호의 풍토와 자식이나 가족이란 틀때문에 사랑없는 관계가 비판받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여러시각도 존재한다. 온전히 사랑을 쏟는 가족의 일원을 강조하기도 하고 사랑이 없다면 가족이나 부부의 틀에서도 이탈할수 있는 것도 말해진다. 이 소설은 당시에는 너무나도 당연한 풍경을 생생히 들려주고 있어서 지금의 우리의모습도 필례나 영실 혹은 도철처럼 지금, 현재를말하게 하고 생각하게 한다.
이외에도 확실히 구수한 사투리와 욕설은 이 소설을 살아있게 하는데 긴밀했고 감정표출의 대화나 독백또한 이 책에서 말하는 바와 호응했다고 본다.
어찌보면 필례와 영실은 답답하고 옹졸하게 보이고 때론 순수하게도 보이는 것이 지금의 현대인의 어떤면과 비교되어 그렇게 보일까 생각하게 했다. 그런면에서 보면 필례와 영실의 악다구니와 현대인의 냉혹함이 비슷한 면도있는것이 아니겠나...
사람이 살아가는 것이 분명 살비비고 의지하면서 사는것이 이치이지만 믿고 신뢰할 것이 과연 사람일까라는생각을 하며 책을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