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니아도 많고...평도 많았다. 자잘한 토론이나 갑을논박도도 물론 많았다. 윈두의 죽음부터 해서..셀수도 없다.

스타워즈에서 상품으로 안되는 것이 한때는  실제로  <포스신앙>도 갖고 있다는 미국사람처럼 그 황당한 눈에 안보이는 것이 아니겠나 싶었다.  <포스>야 말로 상품으로 만들지 못할 유일한 것이 아니겠나  생각한적이 있었다. 그러나 포스측정기는 팔리고 있었다.

감독이나 팬들이 부정하더라도 스타워즈의 상품적 성격과 물량은 아무래도 눈길이 가는 것이 사실이다.

이번 에피소드3는 그동안 공백으로 남아있던 그림을 맞추는 영화이다. 감독은 아마 만들면서 자기마음대로 만들수 있는 부분이 얼마나 될까 고민했을것이다.

개인적으로 스타워즈의 특징은 운명론도 두들러지지만 상품적인 특성이 다분한 세계가 아닐까 하는 점이다.  상품적인 특성은 어떻게 보면 운명론과 맥락이 비슷한데 이미 모든것이 구비되어 있는 물질적 세계라는 것이다. 자판기속 캔처럼 정교하게 준비된 놀이공원처럼 말이다. 이것은 제다이의 신앙인..포스와도 어색하지 않게 친밀한 성격이다.  여러종교적 특성이 혼합되어 있지만 아무래도 기독교적인 성령적 특성이 강하게 내포되어 있는 포스는 그 성격은 인격적이지는 않다. 마치 듣기 지겹고 보기어려운 클래식과 그림을 <팝>화 시켜 가시를 제게해 놓것처럼 말이다. 포스는 팝화된 종교이다.

스타워즈의 안에는 백화점의 상품처럼, 아직 가보지 못한 외국의 유명한 놀이공원처럼  특이한 우주선이 이미 존재해 있고 주인공의 행방이 운명적으로 정해져 있고 수많은 외계인처럼 알수없는 것들이 들끊는다. 상상했던 즐거운 쇼핑과 물건 이상의 제품이 영화속에서는 걸어다니고 말하며 싸운다. 그리고 그것은 쉽고 눈에 금새 보이는 포스의 신학으로 별거 아닌듯 진열되어 있다.  그것은 마치 우주적 디즈니랜드같다. 루카스는 우주에다 미키마우스대신 다스베이더와 루크 스카이워커를 집어넣어 광선검대결을 시키는...황제의 예언을 조롱하는 신적인 존재다.

하지만 스타워즈의 소박한 이야기는 무시할수가 없다.

그것은 다스베이더을 향한 시선이다. 다스베이더의 캐릭터 자체가 현대의 인간적인 비극인이라는 시선도 유효하지만 영화에서 그에 대한 시선은 두가지로 각을 이룬다.

하나는 요다와 오비완등에서 나오는 어두운 포스를 가진 기계덩어리에 불과하다는 시선과 루크 스카이워커와 그의 아내의 시선이다. 가족은 그를 사랑하기 때문인지 그에 대해 밝은 면이 남아있다고 믿는다. 이것은 클래식 3부작에서 증명이 되는데..사랑하기 때문에 그의 실체를 볼수 있는...아니면 사랑하기때문에..그렇게 되었던..것이 소박한 이야기중 하나다. 그리고 다스베이더가 해결하려는 죽음의 문제이다.

사랑하는 여인을 죽음에서 구해내려 하지만 그가 깨달은 것은 누구도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완벽의 가까운 예언을 할수 있는 황제도..그의 죽음은 알지못했다.

나에게는 수많은 시리즈와 무수한 영화평, 각기의 캐릭터와 영화속의 역사들은 다 허무하게 우주속으로 빨려들어갔고..루카스가 수십년의 세월과 공력으로 말한 것은 진정사랑하면 그사람을 구원하고 제대로 알수 있으며 누구도 죽음은 피할수 없다는 로맨스가 가득한 이야기로 귀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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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주의자 예수
프란츠 알트 지음, 손성현 옮김 / 나무심는사람(이레) / 2003년 4월
평점 :
절판


김수행 교수의 회갑을 기념으로 출간된 <현대 마르크스 경제학의 쟁점들>은 그의 후배나 제자들이 여러편의 글을 추스려 만든책이다.  글중에 신정완 교수의 <사회주의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이란 글에 보면 이 사회를 개혁하고 변혁하려는 시도를 소개하는 부분이 나온다.  그는 여기서 생태주의(生態主義)를 최근 큰 활력을 보이고 있는 대표적 이념 조류로 소개하고 이렇게 정의한다.

<생태주의는 근대 서양사회에 뿌리를 둔 이념인 자유주의의와 마르크스주의 그리고 그 체제적 구현 형태인 자본주의와 국가사회주의가 공유하는 산업주의적 경제중심주의적 사고를 거부한다.> 그리고 공동체주의와 강한 친화력이 있다점, 아나키즘(anarchism)과 뿌리가 깊다점을 열거한다.  아나키즘과 연관이 되어있는 것은 자유의 자기충족적 가치와 국가사회주의가 구현하지 못한 평등과 연대를 향하는 것에 주목한다.

하지만 이런 뜻있는 소수의 이념을 가진자들이 <국지적 실험을 넘어>서 사회 전체에 어떻게 확신시키며 기존의 기술과 산업들을 배제, 활용할 것인가가..남긴 숙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위의 지적을 감안해서 책을 읽어보면  우선 생태주의자 예수에서는 여러 청정대안 에너지를 소개하고 있다. 우선 눈길이 가는 부분은 오히려 서양에서 많은 시도와 실험이 활발히 행해지고 있다는 점이 부럽다는 것이다. 그것이 단순히 경제적인 이유가 아니라 새로운 가치에서 출발한다는 점도 눈길이 간다.

그러나 저자가 예수나 신학을 기존의 것에서 생태주의자의 전도사정도로 만든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이 든다.  그 이유는 기존의 기독교에서도 지금 치열하게 생태주의 공동체등을 만들어 단순히 생태적 환경뿐만 아니라 공동재산등을 실험하는 단계까지 하고 있다. 이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기존의 단체들이 각성할 부분은 많이 있지만 그들의 기본적 토대까지 부정하면서 생태주의를 부르짖는 것은 효율적이지도 못할 뿐더러 작은 독단처럼 보인다.

더군다나 지금의 생태주의는 공동체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실험을 하고 있는데 기독교의 공동체사상과 동떨어진 성경해석만으론 작은실험조차 이루어 질수 없다고 본다.

저자가 소개한 여러 대안에너지는 확실히 가슴을 뛰게 만들고 우리가 무시했던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앞으로 생태주의가 더욱 치밀하고 확대되는 모습으로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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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 이따금 생각이 나서 다시 봤다. 막상 다시 볼려니 마음을 다잡아야 볼수있었다. 예전에 봤던 시(詩)나 영화를 다시 보게되면 처음에 강렬한 느낌과 감동은 찾을수 없다. 예를 들어 <토토의 천국>에서 늙은 토토가 옛여인을 만나는 장면이 있는데 처음봤을때 사람들 사이로 눈길이 맞주치는 장면이 길게 느껴졌는데 다시 보니 시간상으론 같은 프레임이었다. 강렬한 느낌은 물론 시간차이로 달랐던 것이다.

<흐르는 강물처럼>을 처음봤을때 느꼈던 것은 우선 삶이 빨리가는 것을 강하게 느꼈다. <제시도 죽었다....>라는 독백과 강물의 배경은 적잖이 충격이었다. 목사의 설교도 내내 가슴에 남긴 남았다. <완전하게 이해할수는 없지만 완전하게 사랑할수는 있다..>두번째 봤을때도 그말은 사뭇쳤다. 대신 그말앞부분이 깊게 공명을 했다. <가까운 사람조차 도움이 필요할때 도움을 주지못했다.>..

사람들은 목사의 마지막 설교부분을 말하지만 폴<브래드 피트분>이 죽고 나서 노먼이 부모에게 전하는 장면도 인상깊었다. 목사는 아픔에도 계속 묻는다.

<나에게 할말이 더 없느냐..> <어느손인가..>그는 자신의 상처가 더 벌어짐을 아랑곳하지 않고 감당할수 없는 자식의 죽음조차 한부분이라도 놓치지 않으려 한다.

처음봤을때는 무심코 지나쳤지만 목사가정의 어머니에 대해 눈길이 갔다. 너무나 순수하고 여리고 자식의 사랑이 넘치는 상은 마치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을것 같은 사람이었다.

막상 두번째로 보니 원작자의 회상도 상상하게 된다. 칠순이 넘겨 처녀작을 내놓은 <흐르는 강물처럼>은 자전적 소설인데 저자의 지난 추억이 강하게 느껴지게 됐다.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몬타나를 배경으로 한 웅장하고 수려한 자연의 찬미도 포함되지만 동생에 대한 사랑이 저자 즉 노먼은 아버지 못지않게 강하게 나타나있다.

노먼의 부인이 되는 <제시>의 오빠가 잠시 머물고 떠나는 장면은 노먼의 동생 <폴>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제시는 오빠가 내년에 온다고 말했지만 다시는 오지 않을거라 우는 장면이다. 그리고 노먼에게 묻는다 <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도움을 안받는지 알아요?> 노먼은 모른다고 한다.

이 대답은 노먼이 아버지의 마지막설교부분에서 눈시울 적시는 부분과 연결된다고 본다. 노먼은 동생폴의 죽음이 아버지삶은 물론 자신의 여생에서도  온전히 사랑하지 못했나 하는 아련함이 짙게 내포되었던 게 아닌가 싶었다.

어느 영화평론가는 고도의 윤리의식을 보여줬다고 하는데..난 이 영화가 자연을 배경으로 고도의 윤리의식을 당연히 사람이 가져야 할 자연스런 삶이라고 말했다는게 마음에 든다.

새삼 몬타나의 웅장한 산림과 삶의 빠름이 가슴에 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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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사람의 선명한 기준 전병욱 미니북 시리즈 1
전병욱 지음 / 규장(규장문화사) / 2001년 10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돋보이는 점은 간략하고도 선명하게 말하고자 하는바를 제시함에 있겠다.

모세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해야할 것을, 갖추고 행해야할 것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 대개 간략한 압축은 엉성한 내용으로 이어질수도 있지만 내용의 견고성은 예상외로 견고하고  분명하다.

군더더기가 없다라는 표현이 딱 맞다라는 생각이다. 각 사건에서 저자는 그것은 이런 것을 말함이다라는 것을 확연하게 제시하고 또한 그것은 원리적이고 보편적인 원리에 충실하다.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다음과 같겠다. 하나님을 바라고 변화된 삶에서 하나님의 뜻으 이루기 위해 할것들을 몇가지 강조하는데 그것은 기도와 성경의 여러 장면에서 나오는 지혜, 순종, 헌신이겠다.

한편으론 비판적 시각에서 읽기도 했는데 성공적인 부흥으로 알려진 저자의 행적을 살펴보면 역시 쉽게 내용을 정리하고 제시한다는 점에서 많은 어필을 한 것같고 제시한 내용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내용이겠다. 그리고 기도나 헌신을 강조함으로 에네지를 교회내로 집중시키는 효과도 봐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치만 늘 불만 스러운 것은 지금의 교회의 한계는 벗어나지 못하는것이 아닌가 한다.

그것은 원리적 해석이 갖는 폭넑은 의미로 합리화하는 실천적 논리의 부재이다.

늘 새로운 개념과 단어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고 다양한 문화적 망과 시대흐름에 공명현상으로 이루어지는 활동등은 새로운 부흥의 결과로 나타나곤 한다.  하지만 이것은 부흥하는 교회와 교인들은 생길수도 있지만 변화되는 사회는 없다는 반대의 그림자도 제시한다.

모세의 예로 모세의 장점들을 수없이 나열한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며 온전히 자신을 맡기는 등의 설교는 수없이 새로운 버전으로 등장해 사람들을 감동시키지만 전작 현실에서는 억압받는 것에서의 해방이나 우상의 타파는 거의 볼수가 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애굽에서 탈출했다는 실존의 선언을 하고 간증을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정되고 제한된 에너지같다. 사람들이 애굽에서 나오는 등의 사회적 변화는 없다. 마치 혁명의 행동패턴만 끝임없이 재생산 되는 것 같다.  이런 비판은 늘 자신들이 말하는 설교의 해석의 범위에서 충분히 포함된다고 하지만 일단 부흥이란 엄청난 순간적에너지와 장기적 교회의 사명의 에네지는 교회안에서만 소진될 뿐이다. 마치 폐쇄회로의 무한반복처럼 아무리 새로운 부품을 끼고 효율을 높이더라도 자체시스템을 유지, 확장시키는 원리가 다른 무엇보다도 강한것을 부정할수는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짧게 요약이 잘된 책이므로 중요한 것을 환기시킬때 읽을만 하다고 생각했다. 괜히 위에 처럼 복잡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마땅히 배워할 점을 강조함에 있어 괜찮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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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안 2005-05-07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병욱 목사님 설교는 많이 들었어도 책은 본적이 없네요. 보관함에 담아 갑니다.
 
비전과 존재 혁명
강준민 지음 / 두란노 / 200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책분량이 많치 않고 문장도 손쉬운 단문이다. 내용이 정리가 잘 되어 있고 말하는 봐도 선명하다. 고등학생부터 대입초까지 읽으면 무난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읽으면서 엉뚱한 생각이 들어 몇자 적는다.

저자는 비전이란 물음을 제시하고 그의 답을 성실히 제공하고 있는데 내용으로 종합한 비전은 결국 <신앙>이란 말과 같은 것이다. 뭐 다르게 표현할수 도 있겠다. 성도가 해야할 것, 신앙의 자세, 예수님을 본받는 삶등으로...

그런데 하필 비전이란 영어로 된 단어와 존재혁명이란 말에 기존에 나와있던 내용을 다시 재정리하고 집어넣으려 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것이 청소년을 위한 눈높이의 일환으로 그에 익숙하고 쉽게 받아들이는 것을 선택하고 새로운 개념이나 호흥하는 것으로 다시 제시됨을 감안하더라도 그안에 암암리에 침투?나 배어있을 매커니즘이 있을가 혹시라는 마음이 계속 들었다.

그것이 의도되어 있든 아니건 간에 새로운 가나안땅의 개척이란 명제로 기존의 것을 선취하려는 의도나 영어권헤게모니에 전도된 사회에서 파생된 언어문화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에 일단 개인적 위안의비전으로 삼으려 했다.

생명의 삶에 실었던 글이라 하는데..새삼 예전의 내용과 별반 다를것이 없는 중요한 핵심이 새삼무엇일까라는 궁금증을 자극했다. 그것은 어떤 한정된 실천논리의전형을 제공한다는 것이 사견이지만 책에서 말하는 원론적인 내용은 청소년이면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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