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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벌루션 No.3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현대문학북스 / 200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백수 생활의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면서 우울증의 기미가 느껴지는 분, 이 소설 읽어보시면 도움 되겠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백수 2년차다. 이 세상에 어떻게 편입해야 할지 참으로 눈앞이 깜깜하다. 설상가상으로 올해 사주의 취업운에는 '아직 노력이 멀었다. 더욱 더 정진하라'고 나오니 애통스럽기 짝이 없다. '그래도 이렇게 주저앉을 수는 없다. 다른 방식으로 세상에 편입하리라'며 남몰래 내공을 쌓고 계신 분들, <레벌루션 NO.3>읽으며 힘들 내시라.

이 소설을 만화로 각색해도 손색 없으리라. 유쾌한 명랑 학원물로 읽힐 터이니. 군데군데, 배를 잡게 만드는 부분들이 많다. '삼류 남고생들의 일류 여고 축제 기습 작전'이라는 스토리 자체가 황당무계하지 않는가. 그럼에도 읽을 때는 전혀 유치하다는 생각이 안 든다. 가슴 두근거리며 '이번에는 어떤 작전이? 얘들아 제발 성공해라'며 읽게 되는 것이다. 그 가운데서 생겨나는 '더 좀비스' 멤버들의 우정과 의리에 찡해지기도 하면서.
그 끈끈한 멤버쉽에서 '우리는 친구 아이가'라는 맹목적 우정 지상주의가 읽히기도 한다. 그래도 이들에겐 영화 <친구>에서와 같은 냉혹한 칼부림은 없다. 이들에게 실수는 있어도 배신은 없다. '왕재수'인 야마시타는 언제나 크고 작은 실수로 조직을 뒤흔들어 놓지만, 절대 축출되지 않는다. 오히려 해결해야 할 문제거리를 던져 주고, 웃음을 유발하는 귀여운 광대로 그려진다.

야마시타와 대척점에 놓여 있는 인물이 있다. 벌써 '순신'이라는 이름부터가 범상치 않다. 이순신 장군을 염두에 두지 않았나 싶다. 이 소설을 쓴 작가는 재일동포라는 사실을 숨길 수 없는 모양이다. '더 좀비스'의 순신은 차별을 뼛 속 깊이 체험하며 자라난 재일 한국인이다. 그럼에도 그는 절대 찌그러지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세상에 편입하고자 속 깊이 실력을 쌓는다. 고등학생 치고는 어렵겠다 싶을 고차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철학서와 법서 등을 탐독하면서. 게다가 그는 주먹에 있어서도 야쿠자들이 모셔가고 싶을 정도로 실력파다. 그래서 그는 재일한국인임에도 왕따 당하기는커녕 짱으로 치켜세워지는 것이다. 아무리 팔은 안으로 굽는다지만, 재일한국인 소년을 너무 멋있게 그린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하긴, 이 소설을 읽는 일본인들에게나마 재일한국인들의 이미지가 '업'될 수 있다면 그것도 하나의 좋은 소득일 것이다.

3류 소년들의 명랑 활약기를 읽어나가다보니 은희경의 <마이너리그>가 떠오른다. 절대 1류가 될 수 없지만 1류에 편승하고자 기를 쓰는 가운데 벌어지는 개그 콘서트. 그러나 <레벌루션 NO.3>의 소년들에게는 다른 점이 있다. 그들은 1류의 토대 없이 1류에 편승하려고 몸부림치는 짓은 승산없는 게임이라는 사실을 벌써 알고 있다. 그러니 차라리 1류의 세계에 바람 구멍이나 내보자는 것이다. 유쾌하고 명랑하게. 그러나 3류는 3류대로 실력을 쌓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은 준엄한 현실이다. '더 좀비스'의 조력자인 아기나, 문무를 겸비한 순신 같은 존재를 떠올려보자면 말이다.

이 책을 덮으면서 남는 아쉬움 하나. 이 시대의 여성 마이너들이 공감할 수 있는 유쾌한 소설이 눈에 잘 뜨이지 않는다는 점. 가네시로 가즈키는 남자이니 그렇다 치고 은희경씨는 왜 여자이면서 굳이 남자들의 이야기를 쓴 걸까. '여성 작가이지만 남자들의 이야기도 쓸 수 있다'는 점에 점수를 주기보다 '여성 작가들이여, 여자 이야기를 제대로 써다오'라는 주문을 하게 된다. 남/녀, 남자소설/여자소설의 어설픈 이분법에서 하는 말이 아니다. 나의 독력이 짧은 탓도 있겠지만 제대로 여성을 구현하는 소설들을 발견하기 힘든 이유에서이다. 어둡거나 내밀하거나 불륜을 저지르거나 모성을 구현하는 식의 여성성은 이제 지겹지 않는가. 이제는 명랑한 처녀들을 만나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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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결혼이다
우애령 지음 / 하늘재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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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는 대학물을 먹은 20대 초, 중반의 다른 여자 친구들처럼 페미니즘 서적을 탐독했고, ‘어머니처럼 살고 싶지 않다’고 주먹을 꼭 쥐어보는 타입에 속한다. 그리고 결혼이라는 제도에 먹히지 않기 위해 독신도 꿈 꿔 봤고, 여러 다른 형태의 가능성들도 생각해 봤다. 결혼한 언니, 아줌마들을 붙잡고, “결혼해보니 어떻든가요?”하고 숱하게 물어도 봤다.

결혼에 대해 아기자기한 판타지를 가진 또래들을 보며 “쯧쯧.. 저렇게 결혼에 대해 환상을 기지고 있다가 코가 깨지고 말지” 라고 생각했다가 “나중에 코가 깨지더라도 결혼에 대한 환상이 건강한 삶의 동력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라고 고쳐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러니 나는 “결혼”이라는 거대한 제도를 두고 답 안 나오는 고민을 한참 동안이나 해 왔던 것이다.

그러던 중 우애령씨의 <결혼은 결혼이다>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결혼은 미친 짓’이라는 화끈한 정의도 아니고 ‘결혼은 결혼’이라는 동어반복의 문답 속에 과연 내가 찾을 답이 있을 것인가 하는 미심쩍은 물음과 함께. 책 날개 안쪽에 붙어 있는 사진 속의 우애령씨는 후덕하고 인자한 아주머니의 모습이다. 결혼을 통해 그닥 고생해 본 것 같지 않은 인상이다. 아니면, 고난을 현명하게 지나쳐 왔던가.

우씨는 후자 쪽에 속한다. 6대 독자에다 일곱누이를 둔, 유학생활을 거친 철학자가 그의 남편인만큼, 그의 결혼도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을 거라는 짐작을 해본다. 물론 그녀의 털털한 성격 덕도 있겠으나 사회복지와 심리학 전공, 오랫동안의 상담자 역할을 통해 쌓은 내공이 그녀의 한 세월을 지탱해 주었을 것이다.

오랫동안 눈물콧물 흘려가며 결혼생활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내담자들을 맞이했을 그녀는 이제 독자들과 그 이야기들을 나누고자 한다. ‘결혼 혐오증’ 내지 ‘결혼 공포증’에 걸린 나 같은 독자들이 있다면 그녀의 에세이를 통해 카운슬링을 받아보기 바란다.

그녀의 입담은 후덕한 외모만큼이나 구수하다. 책 표지에 적혀 있는 ‘위트와 유머가 넘치는 솔직한 프로포즈’라는 광고문구가 과장이 아니라고 느껴질 만큼 재미있다. 동서양을 넘나드는 고전과 동화와 전설, 신화에서부터 최근에 이슈가 됐던 소설과 영화에다 상담사례, 알기쉽게 풀어놓은 심리학 이론이 겹치면서 결혼에 대해 동서, 고금에 걸친 통찰을 가능케 한다. 사실, 진정한 상담자는 내담자로 하여금 스스로 대답을 찾게끔 하는 자이다. 그러니 이 책에서 ‘결혼을 하라, 마라 또는 이혼을 하라, 마라’는 식의 점쟁이나 해 줄 수 있는 답을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잠시 우씨의 얘기를 해 본다. 우씨는 미국 유학 시절, 박사학위를 코 앞에 앞두고 있는 남편과 폐렴 걸린 아이들 사이에서 더 이상 공부를 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하고 기말 시험을 포기하고 만다. 그 때 지도교수였던 크리슈나는 우씨를 찾아와 “나는 동양식 결혼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어요, 일이 어려울 때 아내가 양보해야 하는 것을요.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학교에 나오라고 권유하러 온 건 아니예요. (중략) 그렇지만 혹시 시험 때문에 돌아오지 못한다면 그 부분은 있는 힘을 다해서 도와주겠다고 이야기하러 왔어요” (99-100p)라고 격려한다. 크리슈나는 무작정 학교로 돌아오라고 설득하지 않으면서, 모든 선택은 우씨에게 맡겨 두었던 것이다. 크리슈나의 현명한 조언처럼 우씨 또한 모든 열쇠를 독자에게 맡겨두고 있다.

이 책을 덮으면서 비로소 ‘나는 왜 결혼 때문에 신경증을 앓아야 했던가’ 하는 물음에 답을 찾았다. 그것은 ‘어째서 결혼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지나치게 완벽하고 이상적인 답을 찾으려 했던 데서 온 것이었다. 물론 결혼은 잃는 만큼 얻는 것이 있고, 얻는 만큼 잃는 것이 있다. 우씨는 이러한 인생의 순환원리를 받아 들이는 것이 성숙한 인간의 태도라고 이야기한다. 인생의 순환원리를 받아들인 다음에 우리가 해 볼 수 있는 질문은 보다 현실적이다. ‘아내와 어머니로써 무엇을 얻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그런 다음 결혼의 좋은 점이 문제점을 능가할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우리, 여자들의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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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토니 모리슨 지음, 김선형 옮김 / 들녘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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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조, 라는 사내가 있었다. 그는 열 여덟 어린 소녀를 사랑했다가 그 느낌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어 소녀를 쏘아 죽였다. 조의 아내인 바이올렛은 참을 수 없는 질투심으로 소녀의 장례식에 가서 시체의 얼굴을 칼로 긋는다. 소설은 선정적인 사회면 기사처럼 충격적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초입부의 강렬한 분위기와 달리 조와 바이올렛을 둘러싼 주변 인물들- 1920년대 흑인 거주지인 레녹스 주민들의 이야기가 입담좋은 아줌마의 육성으로 펼쳐지기에 흥분한 교감신경은 이내 가라앉을 것이다.

흑인 이주민들의 삶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뿌리뽑힌 삶'이라 할 수 있다. 1870년대 이후 백인들의 박해와 궁핍을 못 이긴 남부 흑인들은 희망을 안고 북부로, 도시로 몰려들었다. 도시는 이들에게 무엇이었을까.'도시에서 그들은 낯선 신참 주민이지만 그들의 자아는 더더욱 새롭다. 훨씬 더 강하고,훨씬 더 모험적인 자아가 새로 태어나는 것이다. 갓 도착했을 때부터, 또 도시와 함께 20년 동안 성숙한 뒤에도 그들은 새로운 자아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타인을 사랑하는 법을 망각하고 만다.'

하지만, 비로소 참된 자아를 찾은 듯한 느낌은 도시의 매혹이 가져다주는 착각에 불과하다. 백인들의 거주지에서 떨어진 흑인 할렘가에 기거하며 백인들의 사무실을 청소해주거나 파트타임으로 벌어먹으며 그럭저럭 살아가는 것이 그들 삶의 실상이다. 도시로 이주했지만 채워지지 않는 이들의 뿌리 깊은 박탈감은 '흑인'이라는 정체성에서 기인한다. 결코 바꿀 수 없는 숙명임에도 불구하고 '나 아닌 또 다른 나'를 추구할 때 결국 분열이 초래되고 만다.

바이올렛이 그 대표적 인물이다. 바이올렛은 '흑인'이라는 핸디캡과 더불어 '여자'이기에 분열의 정도는 훨씬 극심하다. 궁핍한 삶과 부양의 의무를 버리고 대의명분을 찾아 집을 떠난 아버지와 자식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무거운 짐과 핍박을 견뎌내다 못해 자살한 어머니를 보며 자란 바이올렛은 '어머니처럼 살지 않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리고 절대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하지만 뒤늦게 찾아온 모성에 대한 갈망은 그녀를 괴롭힌다. 남의 아이를 충동적으로 훔치기도 하며 정신나간 여자 취급을 받던 바이올렛은 남편의 외도에 직면해 뿌리째 뒤흔들리고 만다.

소녀의 시신에 칼을 댄 것만으로도 모자라 죽은 소녀의 이모인 앨리스를 찾아가 소녀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싶어한다. '아주머니라면 안 그러시겠어요? 자기 남자를 지키려고 싸우지 않으시겠어요?'라는 바이올렛의 절규에 앨리스는 외도한 남편의 죽음과 남편의 장례식에 나타났던 남편의 애인을 상기해낸다. 버림받은 여자의 고통을 이해하는 앨리스는 바이올렛을 따듯하게 감싸준다. 이렇게 해서 도저히 화해할 수 없을 것 같았던 두 인물의 화해가 이루어진다. 이루어질 것 같지 않던 화해는 바이올렛과 죽은 소녀의 친구인 펠리스 사이에서도 이루어진다. 바이올렛은 인생의 마흔줄에 이르러 겪은 커다란 방황을 펠리스에게 들려준다.

'내 인생이라는 걸 잊어버렸어. 내 인생, 내가 다른 사람이었으면, 하고 바라면서 거리만 왔다갔다 걸어다닌 거야.'
'누가요, 누가 되고 싶으세요?'
'누구라기보다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해야겠지. 백인, 빛, 다시 젊어지고 싶어.'
하지만 그녀는 결국 '나 아닌 나'를 버리고 나니 '나'가 남았다는 자기긍정에 도달한다. 가끔씩 떨칠 수 없는 회한이 스며들 때면 우울하면서도 신명 넘치는 흑인들의 음악- 재즈가 그녀를 위로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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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책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199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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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제 막 여행을 떠나려는 당신에게 저는 '어디 가십니까?'라고 묻지 않고, '무엇 때문에 여행을 가십니까?'라고 묻고 싶습니다. 그러면 당신들은 잔뜩 기대에 부푼 얼굴로 대답합니다. '답답한 일상으로부터의 도피'라거나, '기분 전환하러' 또는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을 위해서'라고. 사흘 뒤, 일주일 뒤, 아니면 한두달 뒤 여행에서 다녀온 당신들에게 물어봅니다. 애초의 목표들은 잘 이루셨냐고. 당신들은 피곤한 얼굴로 머뭇머뭇합니다. 뭔가 기대만큼 충족되지 못했기 때문일겁니다. 저는 여러분들과의 대화에서 한가지 의문을 느낍니다. 왜 여행은 기대만큼 충전을 가져다주지 않는가?? 제가 느낀 의문에 공감하시는 분들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여행의 책>을 통해 특별한 경험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베르나르가 제안하는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 우리는 살갗을 속박하고 있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완전한 그대만의 공간과 시간을 갖게 되었을 때 비로소 여행은 시작됩니다. 이 여행에서 동반자는 없습니다. 오로지 '바보'가 되어 당신 혼자 떠납니다. 프랑스어에서 '바보'란 '목발이 없는 사람'이라는 어원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바보란 목발도 지팡이도 보호자도 없이 홀로 서서 걸어야 하는 사람입니다. 이제야 비로소 감이 오실겁니다. 이 여행은 오로지 당신의 상상력, 정신력 그리고 오감을 통해서 깨달아 가는 과정입니다. 그대에겐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 등 육체적인 오감 뿐만 아니라 감정, 상상력, 직관, 의식, 영감 등 정신적인 오감도 있답니다. 아마 이 여행을 통해 충분히 활용하게 될 겁니다.

우선 우리들은 집 한채를 짓게 됩니다. 시야가 툭 트여진 넓은 공간에 당신의 상상력과 재능으로 어떤 형태로든, 원하는 대로 그대의 안식처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대의 내밀한 안식처, 뭔가 일이 잘 안될 때면, 언제라도 가서 다시 힘을 얻을 수 있는 곳. 비록 상상속의 집이지만, 한 재산 얻은 듯 든든한 느낌을 갖게 될 겁니다. 새로 지은 집에서 편하게 쉬고 싶다구요? 하지만 이 여행은 단지 휴식만으로 채워져 있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일곱 번의 싸움을 거쳐야 합니다. 이 싸움을 거친 후에야 당신은 진정한 평안을 맛볼 수 있을 겁니다. 투쟁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데서 시작하여 그대에게 가장 큰 해악을 끼친 자와의 싸움, 체제나 조직과의 싸움, 질병과 불운과 죽음, 마지막으로 그대자신과 싸우기에 이르기까지.

하지만 이 싸움이 반드시 고통스럽지만은 않은 것은 <여행의 책>이 주는 조언 때문일 것입니다. 가슴을 파고드는 대목들이 여럿이나 한가지만 소개하겠습니다. '해학은 죽음보다 강하다' 물론 한번의 여행으로 괴로운 문제들을 모두 해결할 순 없겠지만 든든한 무기를 얻은 이상 의연한 도전과 투쟁은 우리를 자유케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여행은 과거로 갑니다. 당신과 당신 부모님, 조부모, 또 그 윗대 할머니 할아버지... 중세와 고대를 거쳐 선사시대의 조상들을 만나고 유인원과 물고기를 닮은 더 먼 선조와 단세포생물, 물 분자... 그 이전의 빛... 그리고 태초의 빅뱅, 그것이 그대 존재의 가장 깊숙한 근원입니다. 느껴지십니까? 저에겐 좀 어렵게 느껴지는군요. 태초의 빅뱅에 대한 기억, 이제 우리존재의 근원에까지 이르렀으니 길고 길었던 여행을 마칠 때인가 봅니다. 하지만 <여행의 책>이 이르기를 이것이 여행의 끝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대는 단 하나의 시공간을 탐사했을 뿐이다. 외적인 오감과 내적인 오감의 지각력을 높여서 다른 시공간들을 여행해 보라.'는군요.

이 여행을 마친 뒤에 저는 가뿐하고 생기발랄하며 든든하고 강해진 느낌입니다. 올여름 재충전을 위해 여행을 떠나신다는 분들에게 <여행의 책>을 적극 추천하고 싶습니다. 아마도 여러분들께서 갖고 계시던 막연한 물음들이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다가올겁니다. 물론 그 물음에 답해야 할 것은 목발없는 바보- 바로 당신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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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민경 2008-09-06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의연한 도전과 투쟁은 우리를 자유케한다..... 아 정말 마음에 와닿는 문구입니다.
여행이 책과 다른 좋은 점이라면 바로 이런 것들이겠죠. 여행을 다녀온 후 당장은 느낄 수 없지만, 마치 보약을 먹은 후, 서서히 그 효과를 느끼듯, 여행도 알게모르게 스스로를 강하게 컨트롤 할 수 있는 힘= 내공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이 책 한번 읽고 싶네요, 히히^^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유용주 지음 / 솔출판사 / 2002년 9월
평점 :
절판


아직 변변한 습작 한번 제대로 해 본적 없으니 '문청' 소리 들을 자격도 없는 나에게는 강박적인 버릇 한가지가 있다. 어떤 책을 쥐건 간에 꼭 앞표지 날개에 붙은 글쓴이의 이력을 들춰 보는 일이다. '몇년도 어디 출생, 무슨 학교 졸업, 모모 잡지 또는 아무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작가 아닌 어느 누구의 생이든 몇 줄 안되는 이력으로 요약할 수 있으랴. 특히나 작가는 글로 승부하는 이들이니, 글을 통해 삶을 읽을 일이지 이력으로 그 자취를 가늠하지 말지어다라는 생각, 하면서도 그 버릇 여태껏 개 주지 못했다. 그러나, 유용주의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를 읽으면서는 거듭 그의 이력을 더듬고, 곱씹게 된다.

…내게 단 한번이라도 검푸른 교복과 석유 냄새 상큼한 새 책의 아름다운 시절이 있었던가. 공부랍시고 책을 가까이 해본 적은 야간 검정 고시 학원을 다닐 때 청계천 헌책방에서 구입했던 국정 교과서 덮은 것이 마지막이었고, 고금과 소총을 아울러 오로지 현장이 표지였고 중국집 배달통이 제목이었으며 접시닦이와 칼판이 차례였고 제빵 공장 화부와 도넛부의 펄펄 끓는 기름솥이 서문이었으리라. 구두닦이와 귀금속 세공과 막노동이 내 청춘의 본문을 화려하게 장식했다면 이제 막판에 몰려 배운 무면허 운전 정도는 뒷표지 날개에 붙은 파리똥만큼이나 하찮은 독서였다…

그의 시집 <가장 가벼운 짐>, <크나큰 침묵>에 이은 이번 산문집 <그러나…>에서도 마찬가지로 그의 이력들은 생생하게 살아나 움직인다. 노가다란 노가다는 두루 거쳐 본, 그의 생은 참으로 화려하다. 아니 눈물겹다. 그의 삶을 한마디 경구로 요약하자면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자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쯤 될까. 하지만 그의 노동은 <성공시대> 유명인사들의 그것처럼 성공을 위한 발판이 아니었다. 그의 노동은 말년에 뜨듯한 집한칸이라도 마련하기 위한 것도 아니요, 먹물들의 위장취업처럼 발각되면 그만두고 말 성질의 것도 아니었다. 그에게 노동은 차라리 구원이었다 한다. 일에 몰입하지 않으면 일 속에 빠져들지 안으면 과거의 고통들이, 곡절많은 가족사가 끊임없이 그를 괴롭혔기 때문이라 한다.

간난신고의 팍팍한 삶 속에서 문학과 조우하게 된 것은 작가 유용주에게 또 어떤 구원이었을까. 노동이 삶을 지탱해나가기 위한 오기부림이었다면 문학은 그의 생을 '경험'에 묶어두지 않고, 향내 나는 것으로 발효케 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글을 통해 오랜동안 잘 담금질 된 빛나는 강철을 보게 된다. 푹 고운 사골국물을 맛보게 된다. 결 곱게 잘 짜여진 직물을 만져보게 된다. 그의 가슴아픈 가족사와, 노동의 역사와, 문우들과 벌인 취객열전들을 정신없이, 숨가쁘게 읽어내린 후 드는 생각은 크게 두가지이다. 첫째는, 부박한 땅 위에서나마 땀 흘리며 피워낸 꽃이 더 아름답다는 진리를 또한번 재확인 하게됐다는 것이고, 둘째는 웬지 모를 아쉬움이다.

'아직까지 시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제 문학은 자서전에 불과합니다. 누구에 대한 외침이 아니라 오직 제 자신에 대한 반성과 다짐입니다.'

유용주 시인 스스로도 말했듯이 그의 글들이 아직 자기고백의 중간보고서이기 때문일까. 그의 끝간데 모르는 폭음이 쉴 틈을 가질 때, 그의 아픔들이 좀 더 곰삭여질 때 그의 시야는 좀 더 넓어지게 될지도 모르겠다. '여태까지는 제 자신 하나 감당하지 못해 버둥거렸고, 핍진한 가족사에 매달려 정신이 없었는데 지금부터는 옆사람, 그리고 이웃들과 어울려 사는 방법을 배우겠습니다'라는 그의 고백이 더욱 넓고 깊어질 앞으로의 글들을 기다리게 만든다. 맷집좋아 보이는 든든한 외모만큼이나 동시대의 핍진한 삶을 끌어안을 넉넉한 품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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