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스틀 『이브닝 포스트』의 특별판‘에는 관람객들이 어느 지역에서 왔는지를보여주는 지도가 실렸다. 심지어 우루과이에서 온 관람객도 있었다. 하지만 관람객대다수가 전에는, 혹은 오랫동안 미술관에 가본 적 없는 사람들이라는 점이 가장 중요할것이다. 뱅크시는 새로운 관람객을 불러들였다. 하지만 통계라는 수단으로 관람객들을분류하면 대다수는 ‘부유한 성취자‘, ‘도시의 자산가‘, ‘편안하게 잘 사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니까 더할 나위 없이 대중적이고 거의 공짜에 가까운 이런 전시조차 뱅크시가바랐을 법한 관람객들에게는 충분히 다가가지 못했던 것이다.
- P125

그의 작업이 알아보기 쉽다는 이유로 폄하되는 것은 뱅크시를 짜증나게 하는 게틀림없다. 당시 『선데이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평소의 삐딱한 스타일을 잡간접고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많은 비평가들이 이린 종류의 예술을 좋아하지않는 건 검증이나 해석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죠. 설명하거나 맥락에 끼워 넣을 필요가 없는작품은 그들에게서 일자리를 빼앗을 테니까요. 애초에 나는 이해하기가 나무 쉽기 때문에.
예술이 아니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아요."
- P127

프로그램의 첫 페이지에서 뱅크시는 베르톨트 브레히트를 인용하며,
디즈멀랜드가 ‘흔한 사탕발림의 판타지랜드‘가 아니라 다른 종류의 가족 나들이‘를제공하려는 시도라고 했다. 이 어리벙벙한 놀이공원은 이렇게 말한다. ‘얘들아, 미안해.
의미 있는 일자리가 없는 것에 대해, 전 세계적인 불의에 대해… 동화는 끝났어, 세계는 기재앙을 향해 넋을 놓고 걸어 들어가고 있어, 어찌면 현실 도피밖에 답이 없을지도 몰라.‘
- P131

하지만 놀이터를 장악하고 제대로 작동하도록 만든 이는 이 놀이터의 왕자인뱅크시 자신이었다. 주차금지 표시인 듯싶은 게시물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재앙이될 가능성이 없다면 예술이 아니다. 그리고 디즈멀랜드는 재앙이 될 가능성이 있었다.
그것은 1만 제곱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로 극비리에 지어졌는데, 뭘 짓고 있느냐고묻는 사람들에게는 ‘그레이 폭스Grey Fons‘라는 영화를 촬영할 세트라고 둘러댔다. 아무튼뱅크시는 하고 싶었던 걸 할 수 있었다. 여기서 여러분은 그저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생각하게 됩니다‘ 같은 메시지를 전달하도록 말이다.
- P134

실수가거의 없는 이 팀이 그리도 숨기려는 것은 진심으로 걱정스러운 뱅크시의 정체성이아니라, 여러모로 아웃사이더가 이제는 인사이더라는 사실이다. 여태까지 뱅크시 팀은필사적으로 이를 수호해왔다.
- P173

뱅크시의 주장은 분명하다. 그가 그림을그리기로 선택한 맥락은 아주 중요하다. 맥락 또한 작품의 일부다. 작품을 맥락에서떼어낸다는 건 원작을 파괴하는 짓이다. 그는 벽에서 떼어낸 자신의 그림은 어떤 것도인증하지 않았다(하지만 드물게 예외를 두었는데, 판매 수익금이 자선단체에 기부되는경우였다).
- P177

붓을 놓았을 때 그림이 끝나는 게 아니라는 걸 경험으로 배웠어요. 오히려그림은 그때부터 시작되죠. 대중의 반응이 의미와 가치를 만들어내요. 예술이란 사람들의논쟁 속에 살아나는 겁니다.‘
- P184

하지만 뱅크시가 자신의 작품이 놓인 맥락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던 말이 무슨의미인지는 명확하다. 뱅크시가 2012년 5월 런던 북부 우드그린에 있는 파운드랜드매장 벽에 노예 노동을 그려 넣자 곧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그걸 보고 감탄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즉위 60주년 축전을 위해 재봉틀 앞에 웅크리고 앉아 만국기를만드는 모습을 담은 이 그림은 딱 적당한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런던의 지저분한 구석.
대부분 저임금 국가에서 수입된 값싼 물건들을 파는 가게 옆이다. 이 그림을 보러 온사람들 대부분은 미술관에 들어가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모두들 소핑하던중에 한숨 돌리며 중요한 예술작품을 보고 즐겼다.
-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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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이다. 그래피티 세계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이 보기에 그래피티는 파괴적인 행동이다.
하지만 내가 만난 그래피티 아티스트들 대부분에게 그래피티는 기물 파손에서 벗어나는길이며, 어떤 학자의 말에 따르면 ‘박탈당한 자가 정체감을 얻기 위한 전술‘이다.
- P39

하지만 그래피티 라이터들은바깥세상을 놀라게 하려고 작업하지 않는다. 동료를 놀라게 하려고 작업한다. "우린오로지 우리끼리만 이야기를 주고받죠." 열차에는 아무도 닿을 수 없는 벽에는 자신의작업을 완성하는 일, 언제 잡힐지 모르는 순간에 솟구치는 아드레날린, 보안 시스템을망가뜨리고 마치 축구 선수들이 경기에서 이긴 뒤 나누는 이야기처럼 일이 끝나고동료들과 수다를 떠는 것. 이게 전부다.
- P40

이곳은 비정하고 다툼이 끊이지 않으며 온통 남성으로만 이루어진 세계다.
2010년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의 스트리트 아트 순회 전시를 기획한 리카 쿠이티넨은이렇게 말했다. "그래피티는 밤에 작업하죠. 상당히 육체적인 작업이고 위험해요. 대부분 소년들의 일이죠. - P50

익숙한 것과 놀라울 만큼 생소한 것을 결합시키는 방식, 유머, 작품의 질과기교…. 원본이 사라지고 남아 있는 사진을 지금 보아도 당장 감탄할 수밖에 없는방식으로, 뱅크시는 그가 애초부터 남다르게 탁월한 존재임을 보여준다. 광고, 이름,
영향력, 돈, 명성을 둘러싼 모든 논쟁을 잊자, 여기 유일무이한 아티스트가 있다.
1970-80년대에 뉴욕 거리와 지하철에서 갤러리로 끌어올려진 장 미셸 바스키아와 키스해링과는 다르게, 뱅크시는 앞선 어느 예술가도 해보지 않은 방식으로 거리에서 자신을알렸다.
- P63

그는 실제로 ‘오늘날 세계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부당한 구조물인 이스라엘의 분리장벽부터 ‘특권적이고 가식적이며 나약한 이들의 안식지인 예술계에 이르기까지 모든장소에 발을 들여놓고 견해를 표명하는, 익명의 권위를 지닌 존재로 여겨진다. 하지만이 익명을 유지하려면 매우 계산적이고 결연한 조치가 필요했다. 그는 홍보 에이전시를통해 자신을 홍보했고 또한 자신을 캐내려는 이들로부터 스스로 보호했다. 필요하면변호사도 고용했다.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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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2-16 15: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2021년 서달인 추카 해유 ^ㅅ^

바람돌이 2021-12-17 09:4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스콧님도 축하드려요. 저는 12년만에 다는 앰블럼이라 얼떨떨해요. ^^

thkang1001 2021-12-16 15: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2021 서재의 달인!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바람돌이 2021-12-17 09:4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하반기에 활동이 좀 뜸했던지라 별로 생각안하고 있었는데 되니 그래도 좋네요. ^^

쎄인트saint 2021-12-16 15: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021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바람돌이 2021-12-17 09:4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쎄인트님도 역시 같이 축하드립니다. ^^

bari_che 2021-12-16 17: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바람돌이 2021-12-17 09:4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bari_che님도 서재의 달인 축하드려요. 달인이라니 뭔가 느낌이 뿌듯... ^^

얄라알라 2021-12-16 17: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달인 엠블렘, 축하드립니다!!

바람돌이 2021-12-17 09:45   좋아요 0 | URL
북사랑님 감사합니다. 북사랑님도 축하드려요. 한동안 엠블렘 부심으로 뿜뿜할듯요. ^^

새파랑 2021-12-16 23: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서재의 달인 축하드려요~!!

바람돌이 2021-12-17 09:46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내년에는 새파랑님의 반만큼만 읽고 쓰자 하고 있습니다. ^^

희선 2021-12-17 01: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 님 서재 달인 축하합니다 이번주는 따듯했지만 미세먼지가 안 좋았네요 오늘부터 좀 춥다고 하니 감기 조심하시고 2021년 남은 시간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바람돌이 2021-12-17 09:46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희선님도 축하드립니다. 감기조심하시고 늘 건강하게 서재에서 만나요. ^^
 

카프카는 현대인의 실존을 ‘벌레‘라는 이미지로 포착했고, 헤세는 여전히 18세기 이상적 휴머니즘의 인간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카프카의 말처럼 문학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
를 깨부수는 한 자루 도끼"와 같은 것이지, 잘 가꾸어진 아름다운 언어의 정원이 아니다.
- P102

과거 청산은 또한 국가 발전의 동력이기도 하다. 독일은 철저한과거 청산을 통해 국제적으로 도덕적 권위를 회복했고, 국내적으로 사회적 정의를 구현했다. 이것이 국가 발전의 발판이 되었음은물론이다. 그에 반해 한국은 과거 청산의 부재로 인해 국제적으로도덕적 권위를 인정받기 어려웠고, 국내적으로는 냉소주의와 허무주의가 팽배한 나라가 되었다. 한국 사회를 휘감고 있는 거대한무력감과 패배주의의 뿌리는 청산되지 않은 과거에 닿아 있다.
- P109

미래가 아무리 장밋빛이라 해도, 삶은 한순간도 ‘유예 될 수 없다.
- P121

 올바른 성교육을 통해 리비도의 존재를 악마화하지 않고 당연한 생물학적 현상으로 인정함으로써 죄의식‘을 내면화하지 않는 인간으로 길러내는 것이다. 독일 성교육의 제1 원칙이 성을 도덕적으로비판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런 식으로 강한 자아를 가진 아이들을 길러내는 것이 공동체의 민주적성숙을 결정하는 요인이기에 성교육을 가장 중요한 정치 교육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올바른 성교육은 강한 자아를 만드는 출발점이고, 강한 자아는 성숙한 민주주의의 조건이다.
- P136

한국에서 교육개혁이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개혁의 불철저성에 있다기보다는 개혁의 방향성과 목표가 잘못됐다는 데 있다.
‘공정‘이라는 이름으로 더 가열찬 경쟁을 부추기는 ‘개혁은 개선이 아니라 개악이다.
- P152

무엇을 할 것인가. 이미 답은 나와 있다. 유럽의 대다수 나라들이 하는 대로 정의로운 교육을 실천하면 된다. 구체적으로는 네가지를 폐지해야 한다. 첫째는 대학입시 폐지, 둘째는 대학 서열 폐지, 셋째는 대학 등록금 폐지, 넷째는 특권학교 폐지가 그것이다. 이것은 꿈이 아니다. 유럽에서는 상식이자 일상이다. - P155

우리가 살고 있는 ‘헬조선‘의 현실은 자연의 질서가 아니라 역사의 질서다. 우리가 만든 질서이기에 우리가 변화시킬 수 있다. 문제는 이 질서를 지배하는 자들의 거짓과 폭력과 야만과 파렴치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무능과 무위와 무력과 무관심이 더큰 문제인지도 모른다. 무릇 모든 해방은 자기해방이다. 청년을 고통에서 해방시켜 줄 자는 바로 청년 자신밖에 없다. 그리고 청년세대는 자신을 해방시킬 힘을 가지고 있다.  - P193

‘헬조선‘은 우연히 닥친 재난이 아니다. 그 저변에 지식인의 침묵과 굴종이 있고, 그 배후에 블랙리스트가 있다. 지식인이 자기검열의 늪에 빠져 불의한 권력에 저항하지 못하는 사회는 이미지옥의 문턱에 들어선 사회다.
- P196

이런 취지에서 ‘아래로부터의 교육혁명‘을 이끌 ‘한국교육연구노조의 건설을 모든 교육자, 연구자에게 제안한다. 한국의 교육자여 단결하라! 우리가 얻을 것은 참교육과 참학문이고, 우리가잃을 것은 거대한 무력감과 패배주의뿐이다. - P199

대학이 이상사회를 꿈꾸지 않고, 대학생이 소확행에 빠져드는사회에 미래는 없다.
-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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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어 서점 마음산책 짧은 소설
김초엽 지음, 최인호 그림 / 마음산책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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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생각한다. 

야 이건 정말 소설이야, 이걸 소설로 쓰면 진짜 재밌을텐데 뭐 이런 생각말이다.

하지만 보통의 인간인 나는 그냥 생각만으로 그칠 뿐이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점, 한순간 아 이거 이야기가 되겠네 싶은 단상들을 놓치지 않고 작품을 만들었다.

그러므로 반짝이는 단상들이 곳곳에 포진해있다.

아 이런 생각으로도 소설이 만들어지는구나 감탄하며 이 짧은 이야기들에 흠뻑 취하게 된다.


임팩트가 가장 강한건 역시 첫 글인 <선인장 끌어안기>이다.

무엇이든 피부에 닿는 순간 엄청난 고통을 느끼는 병에 시달리는 파이라라는 전직 건축가의 이야기다.

그런 그녀가 온 집안에 선인장을 키우는 것은 왜일까?

자신과 같은 병을 앓고 있던 어린 소녀 소영을 사랑하는 그녀에게 자신의 병은 새로운 고통이 된다.

사랑은 스킨쉽니다. 

누구든 사랑하는 이의 손을 잡고싶고, 따뜻하게 안고싶어한다.

그 포옹에 사랑의 기쁨이 담겨있다.

그러나 파이라와 소영에게 이런 기쁨은 불가능하다.

서로의 손가락 끝이라도 맞닿는 순간 불같은 고통이 각자의 몸을 공격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소영은 죽음을 앞두고 파히라에게 말한다.

'파히라, 내가 당신을 안아봐도 될까요? 딱 한 번만요.'

둘은 비명을 참고 눈물을 참으며, 피부 표면을 칼로 베어내는 것 같은 통증을 느끼며 고통을 주지 않는 것이 사랑일까, 아니면 고통을 견디는 것이 사랑일까 (30쪽) 생각한다.

고통이 곧 사랑이 되어버린 파히라는 쓸쓸하게

"그래도 그 사랑을 감수하고 싶은 사람이 있었지."라고 읊조리는 것이다. 

그래서 소영을 잃은 파히라는 선인장을 키운다.

이 이야기는 절망에 대해 말하지만 또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근래에 읽은 어떤 사랑 이야기보다 강한 사랑이야기이다.

짧다고 감동의 크기가 작은 것은 아니라는걸 이 이야기가 말해준다.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것은 치명적인 어떤 결핍을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행복해지고 싶은 인간들이다.

각자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고 다르게 생각하고 다른 결핍들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 행복해지고 싶은 인간의 기본 본능을 다양한 변주로 이야기한다. 또한 행복해지는 방법도 결국 사람마다 다르다.

시력을 잃고 기계 눈을 가지게 된 여성은 행복해지기 위해서 자신의 기계 눈을 가장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연습을 하고 그것을 SNS에 올린다. 그리고  눈이 아름답다는 타인들의 찬사에 나는 기계눈이어도 행복하다고 자위한다.

정말로 그녀는 행복할까? 사실상 그녀의 행복은 모래성이라는 것을 그녀 자신은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모든 사이보그는 아름답다는 말이 정말로 사이보그들을 더 행복하게 만들것인지(40쪽) 고민하는 순간 그녀는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이미 찾은 것일게다. 자신의 행복의 조건을 타인의 찬사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자존에서 찾기 시작했으므로.....


정말로 사람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영화속에 흔한 소재로 등장하는 평행세계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그것은 영화처럼 그렇게 극적인 일이 일어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이곳에서 멜론을 파는 가난한 상인은 나는 저쪽 세계에서는 거리에서 연주를 하는 가난한 바이올린 연주자일수도 있다.

그래 둘 다 별볼일이 없다니 너무 불공평하지 않나라고 생각하는건 스펙터클이나 스릴러의 영역이고,

소설속에서는 멜론을 파는 나도 나쁘지 않지만 바이올린 연주자인 나도 괜찮은것 같아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게 뭐야? 둘 다 너무 별볼일 없잖아?

하지만 멜론을 파는 내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나를 바라보는 순간은 왠지 둘 다 근사하다는 느낌이 든다.


근사하게 산다는 말은 왠지 근사하다.

몸에 칲으로 심어진 통역기로 어떤 언어의 책이든지 바로 읽을 수 있는 세상에서 더 이상 언어는 학습이 대상이 아닌 세상을 꿈꾸지만, 그럼에도 어딘가 하나쯤은 그것이 불가능한 언어도 있지 않을까?

어떤 번역기로도 번역되지 않는 그 책이 행성어 서점에 있다.

그 책을 읽기 위해서는 인류가 오래 그래 왔듯이 느리게 그 행성의 언어를 공부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으로 누구도 읽지 못하는 책을 읽는 것은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어떤 전자기기에 의해서도 포착되지 않는 별안개 풍경앞에서 절망하지 않고 물감과 붓을 꺼내 그리는 노인의 모습은 또 얼마나 근사한가?

늪지에 가라앉지 않고 다른 방식의 삶을 찾아 떠나고야 마는 소년도 근사하다.

이렇게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누구 하나 초라하지 않다. 

그래서 그렇게 근사한 사람들을 만나는 독서를 하는 내가 잠시 근사해보이기도 한다.


무언가를 잃는 다는 것이 바로 불행을 의미하지는 않는데, 우리는 때때로 그것을 잊어버린다.

그리고 하나를 잃은 것이 전부를 잃었다고 마음껏 착각하고 불행의 관념속으로 자신을 밀어넣는다.

하지만 세상은 너무나 많은 것들로 채워져 있고, 하나를 잃으면 무언가 다른 것이 우리를 기다리기도 한다.

외계의 기생생물로 인해 얼굴에 가면이 붙어 떨어지지 않게 된 사람들은 억지웃음을 웃지 않아도 되게 되면서 오히려 서로에게 진짜 다정함을 베푸는 것(136쪽)을 배운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무언가를 잃은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얻은 사람이 되고 그리고 근사해진다.


김초엽 작가의 글은 모두 절망과 상실을 이야기하는 듯하지만 그것은 소재일뿐 결국 중심은 희망과 연대, 사랑이다.

그래서 그의 글을 읽다 보면 내가 좀더 좋은 인간이 돼가는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그의 소설을 읽는 시간은 행복한 시간이 된다.

최근에 나왔던 첫 장편 <지구 끝의 온실>은 소재나 주제 모두가 흥미로웠지만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이 좀 딸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직은 단편들이 더 좋은 작가지만 얼마가지 않아 단편들에서 느껴지는 이 힘을 장편에서도 오롯이 느낄 것을 기대하며 작가에게 감사와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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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12-09 07: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작가님이시군요 ㅋ 그 책만 읽어봤는데 이 책도 재미있을거 같아요 ^^

바람돌이 2021-12-10 09:21   좋아요 2 | URL
전 재밌게 읽었어요. 소설이 짧다보니 금방 읽고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글들을 쓴 짧은 생각들의 여운이 길더라구요. ^^

페크pek0501 2021-12-10 13: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요즘 김초엽 님이 인기네요. 짧은 글로 매력을 발산할 듯합니다.^^

바람돌이 2021-12-10 14:00   좋아요 2 | URL
지금 단편집도 하나 새로 나와서 아껴놓고 있어요.

mini74 2021-12-10 20: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단편집 사고 고개 돌리니 엥? 또 나왔네 하면서 고민중 ㅎㅎ 아이가 더 좋아하는 작가 ~ 랍니다. 바람돌이님 글 읽으니 아무래도 미루지 말고 사야헐 듯 합니다 ~

바람돌이 2022-01-07 23:49   좋아요 1 | URL
방금 떠나온 세계를 사고 읽으려고 하는데 또 므네모사가 새로 나왔어요. 김초엽작가 완전 다작인데 독자로서야 고맙죠. 우리집 딸래미들은 지금 책이라고는 안 읽고 한명은 연애에, 한명은 게임에 홀릭하고 있어 슬퍼요. 나랑 같이 책읽고 서점도 같이 가주고 하면 좋으련만.....ㅠ.ㅠ

희선 2021-12-11 03: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 님이 쓰신 글을 보니 여기 담긴 이야기 좋아 보이네요 사랑에는 아픔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 것도 사랑으로 여기면 좋을 텐데... 사람이 하나를 잃는다고 다 잃는 건 아닐 텐데, 그걸 잘 잊는군요

바람돌이 님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바람돌이 2022-01-07 23:51   좋아요 2 | URL
저는 다 좋았어요. 짧은 이야기들이 다 아 이런 생각도 할 수 있구나 같은..... 사람이란 다 어느정도는 자기 중심적인데 사랑을 하면 그게 더 심해지는거 같아요. 내가 이렇게 너를 사랑하는데 너는 왜 아닌거 같니 뭐 이런 감정이랄까? 어쨋든 누구에게나 사는건 쉽지 않고 무언가를 얻는건 또 무언가를 잃는 것이기도 하지요.
희선님도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

scott 2022-01-07 17:1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이달의 당선 추카!
부산에 행성어 서점이 생길지도 ㅎㅎㅎ

바람돌이 2022-01-07 23:52   좋아요 2 | URL
감사하빈다. 부산에 행성어 서점이 생기는건 좀...... 그걸 읽으려면 언어를 새로 배워야 하잖아요. 아 정말로 전 언어 배우는거 너무 싫어요. 힘들잖아요. ㅠ.ㅠ

mini74 2022-01-07 17: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 축하드려요 *^^*

바람돌이 2022-01-07 23:5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주말 편히 보내세요. ^^

thkang1001 2022-01-08 02: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이달의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주말과 휴일 보내세요!

바람돌이 2022-01-07 23:5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한달에 한번 알라딘이 주는 선물 좋네요. ^^ 뭔가를 이룬 듯한 기분이랄까? ^^

새파랑 2022-01-07 17: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방학에 당선까지~!! 바람돌이님 축하드려요 ^^

바람돌이 2022-01-07 23:53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그런데 방학은 아직도 못했어요. 여름방학이 길었던 휴유증이 정말 ..... ㅠ.ㅠ
다음주 화요일 방학입니다. ㅎㅎ

희선 2022-01-08 00: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 님 축하합니다 주말 따듯하게 보내세요


희선
 

혼돈의 시대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쉬이 판단이 서지않을 때가 많다. 과거의 동지들이 가장 험한 적이 되어 낮을 붉히고 뿔뿔이 흩어진다. 정체성의 뿌리였던 젊은 날이 통째로 부정당하는 고통을 날마다 겪는다. 악과의 싸움은 외려 쉬웠다. 용기만 있으면 충분했으니까. 모순과의 싸움이 어려운 것이다. 그것은냉철한 지성을 요구한다.
- P5

‘역사란 승자의 발자취‘라는 역사가의 말을 나는 믿지 않는다.
깊은 의미에서 역사는 잘 진 싸움의 궤적이다. 패할지라도 우리가 끝내 포기할 수 없는 가치를 향한 싸움 말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역사는 이상주의자의 좌절을 통해 발전해 온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지는 싸움도 해야 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 세상이완전한 지옥이 되지 않은 것은 지는 싸움을 해온 사람들 덕분이다. 진 싸움이 만든 역사가 희망을 지켜주었다.
- P8

아차, 앞에 인용한 볼프 비어만의 말에는 한마디가 더 붙어 있다. 그의 말을 온전히 옮긴다.
"이 시대에 희망을 말하는 자는 사기꾼이다. 그러나 절망을 설교하는 자는 개자식이다."
- P9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코로나 위기는 우리 사회에 혁명적인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근본적인 체제 변화와 근원적인 인식 변화가 있어야 한다. 코로나 대유행이 깨우쳐준 길은 분명하다. 자주 국가, 복지국가, 생태 국가가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다.
- P19

불안은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본원적인 힘이며, 사회를 통제하고 관리하는 숨은 지배자다. 불안은 인간을 길들이고, 소진시키며, 예속시킨다. 불안은 비인간적인 체제를 유지시키고 강화하며,
변혁을 차단하고 저지한다. 불안은 무한 경쟁의 논리 속에서 심화되고 일상화된다. 그리하여 마침내 불안은 생명을 죽인다.
한국 사회에서 불안이 극단적이고 편재적인 것은 그것이 실존적, 철학적 불안이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 불안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가 극단적 불안사회로 변화하기 시작한 시점이 바로 신자유주의의 지배가 시작되는 시기와 일치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 P27

권위주의적 성격을 극복하기 위해 그가 강조한 것이 ‘반권위주의 교육과 ‘비판 교육이었다. 권위 앞에서 쉬이 순종하는 약한 자아가 민주주의에 가장 위협적인 요소이기에, 학생들의 비판 의식을 고취해 강한 자아를 가진 시민으로 길러내는 것이 민주주의 교육의 요체라는 것이다.  - P36

광화문의 열기에도 불구하고 헬조선의 현실은 변한 게 없다.
이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제 광장 민주주의가 현장 민주주의로 확장되고 심화되어야 한다. 삶의 현장에서 민주주의를 요구하고, 실천하고, 실현해야 한다. 내 마음속에서, 가정에서, 학교에서, 일터에서 촛불이 타올라야 한다. 촛불이 나를 변화시키고, 일상을 변화시키고, 현장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변화시키고, 마침내국가를 변화시켜야 한다. ‘내 안의 최순실‘을 불태우고, ‘내 안의박근혜‘를 몰아내야 한다.
- P47

1970~1980년대 군사 독재 시절에 거리에서, 교정에서 ‘민주주의‘를 외치며 젊은 날을 보낸 우리 세대에게 민주주의는 ‘쟁취‘의대상이었지, ‘감행‘의 대상은 아니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독재와 싸워서 되찾을 제도‘로 알았지, 일상의 삶을 변화시킬 ‘태도‘
로 생각지 못했다. 우리는 광장에선 민주주의의 투사였지만, 일상에선 민주주의자가 아니었다.
- P55

한국 교육의 패러다임을 경쟁과 우열, 승자독식의 원리에서 교감과 평등, 연대의 원리로 전환하지 않는 한 한국 사회는 오만하고 이기적인 엘리트들이 대중을 깔보며 자신들의 특권 수호에만매진하는 엘리트 특권 사회로 굳어져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교육부는 교육 문제를 단지 입시 문제로 보며 경쟁을 부추기고있으니, 그 무능과 단견에 절망할 뿐이다.
- P71

86 세대의 실패는 이 세대의 비극을 넘어 한국 사회의 비극이다. 한때 정의를 외치며 자신을 희생했던 세대의 정치적 실패는사회 전반에 더 큰 실망감과 좌절감, 냉소주의와 패배주의를 퍼뜨린다. 지금 한국 사회를 휘감고 있는 거대한 무력감의 뿌리는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이 86세대에게는 어쩌면 마지막 기회다. 재벌개혁, 정치개혁, 교육개혁, 검찰개혁, 사법개혁을 결연히 감행하여 100년 대한민국을 ‘새로운 대한민국의 원년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하여후세대에게 ‘지옥을 넘겨주지 않는 것, 이것이 86세대에게 남겨진 마지막 시대적 소명이다.
-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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