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방금 떠나온 세계
김초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10월
평점 :
품절
김초엽이라는 작가를 관통하는 키워드를 내 나름대로 뽑아보자면 다름으로 인한 결핍, 연민, 그리고 환대쯤 될까?
이전에 읽었던 책들과 마찬가지로 이 단편집 역시 이런 키워드로 읽을 수 있었다.
이 단편집의 주인공들 모두 어떤 결핍들을 가지고 있다.
사실상 결핍을 가지지 않은 인간이 어디에 있겠냐마는 문제는 그것을 가릴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영악하게 자신의 결핍을 가리고 산다.
이 사회는 결핍이 결핍으로 인정되는 순간 그것은 자신의 약점이 되고, 자신을 규정지음으로써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기 힘들게 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결핍이 숨겨지지 않는 종류의 것일 때 사람들에게서 받을 수 있는 최대의 호의래봤자 동정 정도일까?
이 단편집의 주인공들은 그 숨겨지지 않는 드러낼 수 밖에 없는 결핍들을 가지고 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없이 멸망한 문명의 증거들을 회수하는 작업을 하는 로몬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죽음의 두려움을 인식하는 로몬족, 그러므로 그는 다른 로몬들처럼 담대할 수 없고 늘 어딘가 모자라는 로몬으로 취급받는다. 당연히 멸망의 잔재들을 수거하는 작업에서 늘 배제될 수 밖에 없다. 이것은 로몬으로서 자신의 정체성 자체를 의심케 하는 결핍으로 치부된다.
시지각 이상증을 겪는 마리는 플루이드라는 기계가 전해주는 위치 좌표를 통해 다른 사람의 행동을 파악하고, 로라는 자신에게 제3의 팔이 있다는 감각을 견딜 수가 없다. 또 한편으로 모두가 의미 입자들을 봄으로써 소통하는 세계에서는 인간의 언어를 통한 소통은 이방인이다. 태어날 때부터 작고 여리게 태어난 이브는 자기 세계의 적응에 필요한 신체적 능력이 함량미달임으로 해서 그 세계에의 합류를 거부당한다. 그것이 설사 배려라는 이름을 달고 있을지라도, 배제는 배제일뿐이다.
책이 SF라는 외피를 띄고 있는 것은 이런 결핍을 이야기하기에 더없이 좋은 전략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주인공들이 가지고 있는 결핍들은 단어 몇개만 살짝 바꾸면 지금 우리 사회의 배제당하는 사람들로 생각해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장애인이라든지 이주노동자라든지 등등....
이런 배제들을 직접적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이 가지는 선입견을 영리하게 비켜갈 수 있는 소재로서의 SF, 그럼으로써 이런 배제의 문화를 우리 앞에 객관적으로 제시하며 당신의 생각은 어때요라고 묻는 듯한 효과를 보여준다.
이야기의 진행은 항상 연민에서 시작되어진다.
자기가 속한 세계로부터 배제당하는 이들을 그 세계에 속해있는 누군가가 연민을 느끼고 다가가고, 그럼으로써 결핍을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거나 결핍이 결핍이 아님을 그래서 오히려 결핍을 조장하는 사회의 틀이 잘못이었음을 깨달아 가는 것이다.
멸망한 세계를 지키며 인간 친구 라이오니를 기다리는 기계 셀과의 만남에서 자신의 오랜 복제 원본이었을 라이오니를 깨닫는 로몬족 나는 무언가 모자랐던 로몬족이 아니라 당연히 느껴야 할 감정을 가지고 있는 온전한 존재로 각인한다.
마리의 춤연습을 돕는 나 역시 플루이드를 통한 의사소통을 인지하고서야 그들의 존재를 숨겨왔던 세계의 폭력성을 깨달을 수 있다.
이러한 배제의 폭력성에 대한 깨달음이 있어야 그 다음 진정으로 서로를 환대하는 것이 가능하다.
제3의 팔을 기계로 장착하고서야 자신의 존재와 의식의 조화를 회복한 로라의 심정을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녀의 그 느낌을 인정하는 순간 3번째 기계팔로 자신을 안아주는 로라를 느끼며
"사랑하지만 끝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신에게도 있지 않나요."(126쪽)라고 물을 수 있게 된다.
환대와 사랑이 무조건 받아들이고 이해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저 물음은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끝내 이해할 수 없지만 그래도 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 있다.
다름이 그저 차이로 인정될 수 있다면.....
그러나 모든 단편들이 다 이런 이해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결국 숨그림자 사람들의 입자를 통한 소통방식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방인으로 존재할 수 밖에 없었던 조안은 다른 세계를 찾아 떠날 수 밖에 없다. 조안이 말하는 "이곳을 사랑하게 만드는 것들이 이곳을 덜 미워하게 하지는 않아. 그건 그냥 동시에 존재하는 거야. 다른 모든 것처럼."(182쪽)
결국 소통과 연대는 연민이 아니라 타자를 인정하는 것, 다름과 차이를 그 자체로 인정해야만 이루어질 수 있는 지점이다.
다만 그 시작이 연민일뿐....
그렇다고 해서 모든 소통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캐빈 방정식에서 보이는 언니와 나의 세계는 서로 이해할 수 없는 영역에 존재한다.
그럼에도 그들이 캐빈속에 함께 했던 그 순간 그들은 따뜻한 무엇인가를 공유하고 그 순간 삶은 따뜻한 공감으로 환대의 손을 내민다.
후기에 적은 작가의 말처럼 그 짧은 접촉의 순간들을 그려내는 일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김초엽 작가의 책을 4권째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작가 고유의 스타일을 완성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 스타일은 앞에서 말했던대로 우리 인간의 다양한 결핍을 그려내고 그 결핍이 만들어내는 배제가 극복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겠다. 그래서 작가의 말처럼 여기서 손을 흔들 때 저쪽에서 안녕 인사가 되돌아오는 그 순간들을 그리고 싶은 것이다. 그런 환대가 우리 삶을 좀 더 살만한 것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것일게다.
어떻게 보면 작가의 스타일의 무한 변주를 보는 느낌이다.
작품들마다 비슷한 느낌을 주고 있는걸 보면.
그래도 아직은 좋다. 그 비슷한 상황들과 스타일을 독특하다고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작가의 상상력의 세계가 무궁무진하게 펼쳐지고, 그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세계를 보는 것도 김초엽이라는 작가를 읽는 이유로 충분하니까....